예술은 아픔을 치유하고 감각을 일깨우며 생각을 새롭게 한다.
[본문발췌]
예술의 일곱 가지 기능 : 기억, 희망, 슬픔, 균형회복, 자기이해, 성장, 감상
좋은 작품은 중요한 핵심을 못으로 박아 강조하는 반면, 나쁜 작품은 우리에게 어떤 생각을 명백히 일깨운다 해도 본질이 어디론가 새어나가는 것을 막지 못한다.
미술은 경험을 보존하는 방식이며, 우리 주변에는 일시적이고 아름다운 경험이 많은데, 그런 경험을 마음에 담으려면 도움이 필요하다.
유쾌함은 멋진 성과이고, 희망은 축하할 일이다. 낙천주의가 중요하다면, 이는 우리가 낙천적이기 때문이다. 이 노력은 성공의 중요한 요인이다. 이 진실은 재능을 좋은 인생의 기본 조건으로 보는 엘리트적 관점과 정면으로 충돌하지만, 많은 경우에 성공과 실패는 다름아닌, 무엇이 가능한가에 대한 우리의 감각 그리고 자신의 정당한 몫을 타인에게 인정받기 위해 쏟아부을 수 있는 에너지로 가름된다. 우리의 운명은 재능의 부족이 아니라 희망의 부재가 결정할 수 있다.
인생의 고난을 깨닫게 될 때, 아름다움은 더 깊이 이해된다.
예술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의외로 중요한 기능들 중 하나는, 고통을 보다 잘 견디는 법을 가르쳐준다는 데 있다.
예술에서 승화는 천하고 보잘것없는 경험이 고상하고 세련된 경험으로 변환되는 심리적 변형 과정을 가리킨다. 슬픔이 예술을 만날 때 일어날 수 있는 바로 그것이다. 승화란 고통이 아름다움으로 변형되는 과정이다. 많은 경우, 슬픈 일들이 더 슬퍼지는 건 우리가 혼자 슬픔을 견디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예술은 인간의 조건인 고난을 웅대하고 진지하게 볼 수 있는 유리한 관점을 제공한다.
일상적인 삶에서 숭고에 대한 자각은 대게 찰나에 이루어지고 무작위로 찾아온다. 예술은 그러한 무작위와 우연을 줄여준다. 예술은 믿을 만한 기초 위에서 유용한 경험을 이끌어내는 도구이며, 그래서 우리가 슬픔에 잠겨 있다가도 고개를 들 수만 있다면 언제나 숭고의 경험에 계속해서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예술은 우리가 잃어버린 성향을 농축된 형태로 내놓아, 우리의 기울어진 자아의 적당한 균형을 회복시켜준다. 예술은 인성의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할 뿐 아니라 우리를 보다 도덕적으로 만들어준다.
예술에는 우리 자신을 이해하고, 그런 뒤 내가 누구인지에 대해 타인과 소통하게 해주는 이 능력이 있기 때문에, 대체로 우리는 주변에 어떤 예술작품을 둘 것인가에 신경을 많이 쓴다.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모든 장소, 모든 시대에 우리 앞에 진열되어 있진 않다. 이질적인 것과의 연결점을 발견할 때 비로소 우리는 성장할 수 있다.
예술은 우리가 놓치기 쉬운 모든 것을 전면에 내놓음으로써 바로 그 선입견에 당당히 맞선다. 예술은 우리가 어쩔 수 없이 인생을 이끌어야 할 때 인생의 진정한 가치를 일깨워줄 수 있다.
예술의 핵심은 무엇인가? 예술과 관계를 맺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예술이 우리를 도와 더 나은 삶, 더 나은 자아로 이끌어준다는 확신이다. 예술은 기념하고, 희망을 주고, 고통에 존엄하게 공감하도록 하고, 균형 회복과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자기 이해와 소통을 돕고, 감상을 고취하고 그 지평을 넓히고자 할 것이다.
우리가 그 작품을 좋게 보는 이유는 그 작품이 우리의 영혼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예술에서 무언가를 얻었다면 이는 그 예술을 이해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우리 자신을 깊이 있게 탐구했음을 의미할 것이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에 대응해 언제라도 우리 자신을 들여다볼 줄 알아야 한다. 예술은 그 자체로 좋거나 나쁘게 여겨지지 않는다. 망각, 희망의 소실, 존엄 추구, 자기 이해의 어려움, 사랑에 대한 갈망 같은 우리의 약점을 얼마나 보완해주느냐에 따라 우리에게 좋거나 나쁘게 여겨질 것이다. 따라서 예술작품에 다가가기에 앞서 자신의 성격을 알고, 자신이 무엇을 위안하고 되찾으려 하는지 안다면 유용할 것이다.
사랑은 당연히 인생의 큰 즐거움이어야 하지만, 나와 가장 쉽게 상처를 주고받는 사람은 다름 아닌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다.
위대한 예술에는 우리의 감각을 일깨우는 힘이 있다.
사랑할 줄 아는 건 감탄하는 것과 다른다. 감탄에는 왕성한 상상력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능력이 필요치 않다. 문제는 두 사람이 삶을 공유하려 할 때 고개를 든다. 집, 자녀, 사업 및 가계 운영을, 처음에 멀리서 봤을 땐 감탄스러웠던 사람과 공유해야 한다. 이럴 때 우리에게는 저절로 툭 튀어나오는 법이 거의 없고, 연습을 안하면 좀처럼 도움이 안 되는 자질이 필요하다. 상대방의 말에 예의바르게 귀기울이는 능력, 인내심, 호기심, 회복력, 관능, 이성과 같은 것 말이다. 예술은 그런 자질들로 인도하는 유능한 길잡이다. 성공한 예술작품의 요소들이 관계를 아름답게 발전시키는 데 필요한 요소들과 유사하기 때문에, 예술작품을 찬찬히 보다보면 더 나은 연인으로 거듭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는 다 그럴 만한 근거가 있다.
우리는 판 데르 휘스가 붓꽃의 그림자에 세심하게 마음을 썻듯, 우리 성격의 미세한 면, 신체의 움직임, 엉뚱한 지리학적 이해에도 그렇게 마음을 써줄 사람을 찾게되길 갈망한다.
리처드 롱의 물줄기들은 사랑의 현실적인 유지와 성장에 기본이 되는 특질, 즉 좋은 연인 관계는 인내에 달려 있음을 가르쳐 준다. 우리는 즉각적인 만족(말다툼에서 이기기, 상대방에게 죄책감 안기기, 내 고집대로 하기)을 버려야 한다. 그런 포기들이 물방울처럼 모이고 쌓일 때 연인들은 그들의 순례를 마칠 수 있다.
호기심은 무지를 진지하게 여기고, 모르는 상태를 인정할 만큼 자신만만하다. 호기심은 모름을 인식하고, 그것을 넘어서기 위해 팔을 걷어붙인다. 모든 연인 관계에는 상대방이 나를 올바르게 탐사하기보다는 오해하고 마음대로 상상해버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숨어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내가 겪는 어려움과 문제점을 아는 척하면서 엉뚱한 곳을 짚을 때 우리는 심란해진다. 상대방은 진실을 알려 하지 않고, 내가 겪는 상황의 본질을 세심히, 애정을 기울여 알려하지 않는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경험에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고, 우리 앞에 실제로 존재하는 것을 바라보고, 세계의 다양성과 개체성을 존중하는 태도가 얼마나 가치 있는지 가르쳐준다.
관능은 촉감과 움직임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즐기는 것이다.
이성(또는 좀더 부드럽게 표현하면 합리성)은 좋은 연인이 되는 것과 무관하고 심지어 그에 반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는 우리가 사랑을 지적 성취라기보다 하나의 감정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합리적이거나 이성적인 사람은 단지 논리에 집중하는 사람이 아니다. 차갑고 기계적인 방식으로, 배려와 갈망을 계산과 분석으로 대체하는 사람도 아니다. 합리적이라는 건 정확한 설명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다. 따라서 합리적인 사람은 쉽게 화를 내지 않고, 속단하지 않는다. 인간관계에서 단단하고 건설적인 주체가 되려면 이성이 필요하다는 것, 정확한 사고, 신중한 주장, 명확한 설명, 여러 요소가 어떻게 조직되어 있는지 이해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친한 사이에서는 고충과 좌절을 이야기하는 방식이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된다. 감정적인 상황에서는 고통의 책임을 가장 뚜렷한 대상에게 전가해버리고 싶은 마음이 쉽게 생겨난다. 배우자 또는 부모가 그런 대상이다.
연인 관계에서 나타나는 대단히 우울한 양상은, 처음 알았을 땐 더없이 감사하다고 느꼈던 사람에게 너무사 빨리 익숙해진다는 사실이다. 손목이나 어깨만으로도 우리를 흥분시켰던 사람이 눈앞에 벌거벗고 누워 있어도 무덤덤하기만 하다. 우리는 겹겹이 쌓인 습관과 타성 밑에서 선하고 아름다운 면을 찾아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여행은 장대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에 따르는 위험을 알아야 하고, 위험에 대처하는 능력에 경의를 표해야 한다. 예술의 도움으로 우리는 어려움에 대한 인식과 소중한 것을 거머쥐는 성공 사이에 연결점이 있음을 파악한다. 우리의 문화는 빙하의 바다를 항해할 때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대단히 솔직하면서도, 사랑에 관해서라면 더없이 감상적으로 변한다는 점에서 너무 편향적이다. 예술은 사랑의 교훈을 담은 이미지를 창조하고 우리의 마음 앞에 붙들어놓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랑에서 생각, 습관, 태도, 통찰은 항해에서 닻, 육분의, 기타 장비에 해당한다. 미래의 이상적인 문화에서는 먼저 올바른 장비를 손에 넣고 그 사용법을 익히지 않으면 누구도 사랑의 들판에 나서도록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자연은 생명의 동인이자 죽음으로 이끄는 힘이다. 자연의 순리대로 살 필요가 있다고 말할 때, 이는 우리를 젊음의 열정과 햇빛의 아름다움에 내맡기는 것은 물론이고, 가을과 내리막을 받아들일 줄도 알아야 함을 의미한다.
삶의 문제들은 오늘, 우리 앞에 펼쳐진 며칠, 그리고 강렬하거나 혹은 멍한 몇 시간 동안은 아주 크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결국에는 모두가 사소해져 기억조차 희미한 하찮은 과거의 일이 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시간에 구속된 동물이라는 사실을 그리 잘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죽음을 진지하고 현실적으로 느끼게 해 현재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침착히 판단하게 하려는 큰 뜻이 있다. 그런 관점에서 봐도 현재는 무가치해지지 않고, 오히려 그 가치가 증가한다. 진정으로 가치 있는 노력에 우리의 삶을 바칠 필요가 좀더 분명해지고, 현재 이 순간 더욱 확실하고 강력해진다.
우리는 인간 공통의 운명을 피하지 못한다. 우리는 자신의 삶을 특별하게 느낄 수 있지만, 삶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운명적인 죽음에 좀더 주의를 기울이면 다가울 일에 마음이 보다 정밀하게 조율되고, 그에 따라 우리는 가진 것에 감사하고 그 가치를 더 깊이 느끼게 된다.
우리의 문화는 고통과 소멸을 부인하지만, 예술은 고통과 소멸을 예견하는 문화로 우리를 인도한다.
미술가는 반드시 자연이나, 그 밖의 어떤 것을 재현해 보여주는 사람이 아니다. 미술가는 우리가 자연 또는 그 밖의 어떤 것을 보다 즉각적이거나 유의미한 방식으로 직접 볼 기회를 창조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이 새로운 국면에서 미술가는 과거에 자신이 했던 경험을 기록하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가 할 수도 있는 경험을 안무하는 사람이 된다.
예술은 자연의 기념물을 창조하거나 재현하는 행위에서 자연을 더 가깝게 또는 더 의미 있게 지각하는 기회를 창조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 그림을 보는 대신 이제는 실물을 본다. 하지만 미술가의 역할은 여전히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그 경험은 창조적인 마음의 통찰력과 상상력이 빚어나고 조직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을 미술가로 간주하는 기준은 그가 예술의 참된 역사적 사명, 즉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을 감각적으로 더 잘 이해시키는 사명에 관심이 있느냐다. 미래의 미술가는 예술이 항상 전념해왔던 가치들을 증진하는 사건의 기회를 창조할 것이고, 그 범주에는 탑, 분화구, 만찬, 유치원이 포함될 수 있다. 예술은 여전히 우리가 세계를 경험하는 방식을 변화시키고지 하는 기본적인 사명에 매진할 테니...
돈을 버는 기술 못지않게 잘 쓰는 안목도 중요하다. 메디치가는 경제적 자원을 이용해 세계에서 가장 감동적이고 고상한 수준의 건물들을 창조했다. 중요한 문제는 돈을 모으는 게 아니라 돈을 현명하게 쓰는 것이다.
사실 많은 사람들은 예술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알고, 믿을 만한 경험에 기초해 평가하는 척하지만, 사실은 생각하고 느끼기 위해 수고해본 적이 없고, 다소 공황 상태에서 단지 현재 이럴 것이라고 상상하는 유행을 모방하는 정도에 불과하다.
비평은 눈에 보이는 장면 뒤로 들어가 진정한 이유를 찾는 과정이다.
사람들은 연봉이 높고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의미 있다'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어떤 불완전한 내면의 욕구를 더욱 정확히 알려주는 일을 찾아 떠나곤 한다. 직업에 의미가 있어지기 위해선 두 가지 요건이 필요한 듯하다. 첫째, 사람들은 크든 작든 사람들의 고통을 줄이거나, 아니면 사람들에게 기쁨, 이해, 위안을 안겨주어 이 세계를 더 좋은 곳으로 만드는 데 보탬이 된다고 느낄 수 있는 직업을 원한다. 두번째이자 좀더 도전적인 면에서, 의미 있는 직업은 본인의 가장 깊은 재능 및 관심과 일치한다고 느껴져야 한다. 그런 직업은 우리의 내면에 잠재해 있는 소중한 능력을 극대화할 기회를 주고, 그래서 우리가 한 일을 되돌아볼 때 그것이 다른 사람들과 나 자신에게 나의 가장 성실하고, 진정하고, 가치 있는 특질을 말해준다고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수년을, 특히 사회에 첫발을 들였을 때 자신의 삶으로써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예술의 임무는 또한 우리가 자랑스러워할 만한 것(자부심)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데 있다.
우리의 바람직한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대개 오만이 아니라 자신감의 부족이다.
"우리는 미를 추구하고 사치를 피한다. 우리는 배움을 찬미하고 현학에 무감하다. 우리에게 부는 사용 가치를 위한 목표일 뿐, 공허한 자랑거리가 아니다. 또한 가난의 굴욕은 가난을 인정하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는 태만함에서 온다." - 아테네, 페리클레스
'정치'의 두가지 의미. 한편으로 정치는 입법, 통치, 정책 연설문, 선거, 정당이며... 이는 우리가 뉴스에서 보는 모습이다. 다른 한편으로 정치는 폴리스, 즉 도시에서 날마다 펼쳐지는 집단생활이다.
인간 조건의 해묵은 문제 중 하나는 인간이 자신을 정확하고 참을성 있게 보는 눈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다는 것이다. 자아도취와 자기혐오는 우리의 성가신 친구다. 이 심리적 약점을 개선하려는 노력은 우리의 가장 중요한 사업 중 하나이며, 여기에는 동시대 사람들과 문화의 도움이 필요하다.
예술에 대한 진정한 열망은 그 필요성을 줄이는 데 있어야 한다. 어느 날 갑자기 예술이 다루는 가치, 즉 아름다움, 의미의 깊이, 좋은 관계, 자연의 감상, 덧없는 인생에 대한 인식, 공감, 자비 등에 냉담해져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우리는 예술이 나타내는 이상들을 흡수한 뒤, 아무리 우아하고 의도적이어도 단지 상징적으로밖에 드러내지 못하는 가치들을 현실에서 구현하기 위해 싸워야 한다.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의 궁극적 목표는 예술작품이 조금 덜 필요해지는 세계를 건설하는 것이다.
예술의 의제는 어떤 초자연적인 목적이 아니라, 엄격히 인간적인 목표에 집중될 것이다. 우리는 예술가들이 당당하고 교육적인 사명, 즉 인류가 자기 이해, 공감, 위안, 희망, 자아수용, 충족을 찾는 데 일조하라고 권유할 것이다.
'4.읽고쓰기(reading & essay)'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 무라카미 하루키 (1) | 2024.01.06 |
---|---|
나를 다 안다는 착각 - 카렌 호나이 (1) | 2023.12.30 |
살롱 드 경성 - 김인혜, 해냄 (0) | 2023.12.16 |
나를 지치게 하는것들과 작별하는 심플 라이프 - 제시카 로즈 윌리엄스 (1) | 2023.12.09 |
신의 화살 - 치누아 아체베 (1) | 2023.12.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