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의 시대는 소수의 특정 계층이 권력을 독점하고 다수의 자유와 평등, 행복 증진이 아닌 특정 계층의 이익을 위해 그 권력을 사용하며 다수의 일반을 통제하고 고통과 상실, 비참함을 겪도록 하는 세상이다. 권력을 쥐고 주인 행세를 하며 보호자로서의 역할이라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그들은 농민 운동 지도자 자크 카이에의 연설에서 이야기하듯 강도짓에 길든 사나운 폭군, 못된 망나니, 탐욕스런 박해자들일 뿐이다.
 
 
[본문발췌]
 
필립 6세와 장 2세 치하에서 토지 예속은 전례 없이 잔인했다. 온갖 봉건적 권리가 횡행했다. 밀 10파운드를 수확한 농민은 영주와 사제에게 7파운드를 주었다. 전자에게 봉건 십일조, 후자에게는 성무 십일조를 바쳤다. 게다가 농민은 영주에게 현물세 혹은 농지 수입 5분의 1, 농노 각자에게 임의로 부과되는 정액 지대(地代), 종종 한 달에 10일 걸리는 부역, 무거운 조세 그리고 수많은 사용료를 바쳐야 했다. 밤에는 영주 저택을 지켰고, 4가지의 경우에는 영주에게 인두세를 바쳤다. 농노와 봉신은 영주의 볼모가 되어야 했고, 짐 나르는 짐승들처럼 매매되었다. 또한 14세기에는 성직자가 주교구에 말을 타고 부임했는데, 이때 시중드는 남자 3명과 여자 3명을 대동했다.
영주는 초야권을 누렸는데, 15세기 초까지 심지어 신부와 사제, 그리고 주교도 마찬가지로 그 권리를 행사했다. 그들은 소녀들에 대한 권리를 가졌으며, 이를 이용해서 미혼모에게 벌금을 부과했다.
망나니권, 판매권, 측량권, 영지 매매권 등을 행사해서 영지에서 거래되는 모든 것의 일부분을 그들이 취했다. 잔재권으로 모든 유기 가축을 차지했고, 그들의 땅을 지나는 통로와 강에 대한 통행세, 겨울에 불을 지피는 농민에게 부과하는 세금인 호별세, 임의 몰수권, 사냥 및 어업세, 기타 잡세 및 인두세, 재미를 위한 농지 유린권을 행사했고, 무역을 가로막는 외국인 재산 몰수권 및 파선권 등을 가졌다. 백성은 죽기 전에 사제의 재산을 늘려주려 하지 않으면 교회 축성지에 묻힐 수 없었다. 혼례를 치르지 않고, 사제에게 결혼 음식을 바치지 않으면 결혼할 수 없었다. 엄청난 특권을 가진 성직자는 십일조를 정확히 납부하지 않은 사람, 교구를 위해 유산을 남기지 않은 사람, 그리고 수도사가 자식을 출가시키라는 명령을 전할 때 따르지 않는 사람을 파문할 수 있는 권리도 행사했다. 가문의 장자가 아닌 사람들은 장자권 때문에 어려움에 처했다.
성관은 종종 강도들의 소굴이었다. 루이 성왕 시대에, 행인을 더 이상 강탈하지 않고 위조화폐를 더 이상 발행하지 않기로 했던 영주들은 모두 이전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토지 예속 농노들은 불행을 타고 태어난 초가집에서 죽을 수밖에 없었다. 법도, 치안도, 사법도, 풍습도 없어 프랑스에는 온통 강도짓과 미신, 광신, 특권 그리고 불행이 가득했다.
 
※ 4가지 인두세 : 1) 농민들은 영주가 성지순례를 떠나면 여행비용을 부담했다. 2) 영주가 감옥에 갇히는 경우 돈을 지불하고 그를 석방시켰다. 3) 영주가 어떤 기사단에 가입하면 그들의 옷값을 부담했다. 4) 영주 딸이 결혼하면 지참금을 냈다.
 
 

농락당하고, 지치고, 짓눌리고, 절망에 빠진 백성들은 더욱 심하게 반발했다.  혼란은 극에 달했다. 각자는 자신의 이익만 생각했고, 그에 도달하기 위해 모든 것을 뒤엎었으며, 그런 것에 놀랄 필요도 없었다. 왕은 대중의 행복보다 자신의 권력을 더욱 키우는 데 몰두했고, 각자는 그런 왕의 본을 따랐다.
 

나는 내 아버지의 주인인 그 영주만 잔인한 괴물인가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특권층에 속한 사람들 대부분은 한결같이 비정하고 야만적이었다. 영주가 농민을 대하는 방식을 가만히 보면, 정말로 각각은 피가 다르고 시원(始原)이 다르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영주는 권력과 재산을 갖고 죄를 짓고도 당당한 데에 반해, 농민은 언제나 힘없고 가난하며, 고통을 당하면서도 선행을 베풀었다. 모든 농노는 물론 그들의 잘난 주인과 마찬가지로 내 아버지도 일자무식이었다. 하지만 선량했다. 아버지가 좋은 일을 하는 경우가 드물었던 것은 그럴 만한 위치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오두막과 작은 경작지, 농기구, 아내, 자식들 그리고 아버지 자신 등 모든 것은 영주에게 속했다. 나는 아들 4명 가운데 막내였고, 아버지가 똑같이 애지중지하는 우리 아들 넷은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죽을 때까지 토지에 딸린 종살이를 하며 살아야 하는 신세였다.
 
 
인간이란 사방의 비천한 것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면 스스로 대단해진다고 생각하고, 그가 지배하는 모든 사람들을 비천하게 하려고 하지만 실제로는 스스로 비천해질 뿐이다.
 
 
"내가 살인이나 다른 비슷한 죄를 저질렀더라도, 가벼운 처벌만 받으면 풀려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선을 행했고, 내가 복종하는 고위 성직자가 관심을 갖는 복수에 도움을 주지 않았다. 그 때문에 나는 무슨 이단 범죄를 저질렀다는 구실로 죽을 때까지 지하 감옥에서 지내거나 그보다 더 가혹한 형벌이 내려질 것 같다."
 
 
"대부분 사람들은 자기들만이 올바른 생각을 가졌다고 마음대로 상상하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굴복시키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그들은 이단자들을 설득하려고 하지 않고, 화형에 처해 버린다. 그들은 잘못 생각하는 사람들의 종족을 없애야 한다고 믿고 있다."
 
 
"무지의 시대에 배운 사람은 불행하고, 야만의 시대에 예민한 사람은 불행한 법! 하지만 내가 가진 지식과 내가 경험하는 연민의 감정은 무지가 낳을 수 없고 악한 자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희열을 준다네. 나는 하느님이 나의 운명을 정하신다는 것을 알아. 고난의 순간 다음에 오는 무한한 행복을 알고 있지. 지상에 널려 있는 불행한 사람들을 애통해하지만 압제에 시달리는 것이 압제자가 되는 것보다 낫고, 또 다른 세상과 영원한 시대가 있다고 생각하며 곧 눈물을 닦는다네."
 
 
수 세기 전부터 우리는 땅의 노예입니다. 도대체 우리가 굴종 상태에 놓여야만 하도록 우리 조상은 무엇을 했으며, 우리는 무엇을 했습니까? 프랑스 전역에서 수천 명의 사람이 한 명의 영주 아래서 떨고 있습니다. 단지 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괴물이 우리의 재산을 몰수하고 우리를 극도로 힘든 노동에 시달리게 하며, 우리 아내들의 순결을 훔치고 그의 변덕에  따라 우리 생명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리를 가졌습니다. 오직 우리가 땅을 일구고, 오직 우리 손으로 불쌍한 우리 조국 사람들을 먹여 살리며, 오직 우리만 유익한 일을 하는 주민이며, 오직 우리만 압제에 시달립니다. 영주의 삶은 어떻습니까? 명령하고, 몰수하고, 처벌하고, 그리고 불쌍한 사람들을 만들어 냅니다. 농노의 몫은 무엇입니까? 노동, 면죄부, 고통 그리고 처형입니다.
 
 
지금과 같은 처지라면, 우리와 프랑스 땅에서 신음하는 모든 농노를 포함한 우리에게 우리의 주인이라고 하는 자들은 강도짓에 길든 사나운 폭군, 못된 망나니, 탐욕스런 박해자들일 뿐입니다. 이 주인들은 보호자가 아니라 지옥에서 토해진 괴물을 닮았기 때문에, 복수를 위해 나섭시다. 우주의 조화를 파괴하고, 타고난 평등의 바탕을 뒤엎으며, 모든 인류를 학대하는 비겁한 적을 처단한들 우리가 하느님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리 있겠습니까? 오늘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나의 고통과 여러분의 고통, 나의 상실과 여러분의 상실, 내가 겪는 비참과 여러분이 겪는 비참, 나의 복수와 여러분의 복수, 나의 자유와 여러분의 자유, 나의 행복과 여러분의 행복, 프랑스 전체의 고통과 비참과 복수와 자유 그리고 행복이 분명합니다.
 
 
나는 내 기억력을 발휘하여 전할만한 모든 것을 진실하게 기록했다. 하지만 영주들이 주인 노릇을 하고, 농노들이 노예 사슬 아래서 떨고 있는 한, 불행한 자크리 전쟁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 그 전쟁을 강도짓이라 덧칠할 것이다. 우리는 사람들이 멋대로 비방할 수 있는 불쌍한 농민들이기 때문이다. 카이에를 음모가이자 폭도로 떠올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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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 같은 것은 어디에도 없다는 걸. 다만 영웅을 찾는 사람들만이 있을 뿐. 결국엔 이러한 사람들의 이야기만이 남는다. 그렇다. 영웅담은 이런 식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사실 우리의 이야기다. 그는 애초에 떠났고, 우린 그를 찾아 여기까지 왔다. 우리 시대의 영웅일지도, 아닐지도 모르는 자를.' - <작품해설 중>에서
 
영웅은 이야기 속에 만들어진다.
 
 
[본문발췌]
 
나는 이 러시아인이 어쩌다 함께 살게 된 종족의 관습에 적응해 나가는 능력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정신적 특성이 비난받을 만한 것인지 칭찬받을 만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바로 이 점이 그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유연하다는 것, 그리고 명확한 상식을 지녔다는 것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여기에서 상식이란 악이 필요하다고 느껴지거나 그것을 없애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느껴질 때마다, 용서해 버리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사회적 인습으로부터 벗어나 자연으로 더 가까이 다가설 때에 그처럼 어린아이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습득해 온 모든 것들이 영혼으로부터 떨어져 나간다. 그러므로 영혼이란 과거의 한 때와도 같은 것이 되며, 미래의 어느 날에도 또다시 이러한 모습이 될 것이다.
 
 
만약 모든 사람들이 조금만 더 생각해 본다면, 삶이란 그다지 많은 걱정을 할 가치가 없음을 알게 될 것을....
 
 
"왜냐하면 일이란 건 그렇게 될 수 가 없는 거니까요. 평범치 않게 시작된 일은 반드시 평범치 않게 끝이 나죠."
 

아무리 악한 영혼이라 할지라도 한 사람의 영혼이 지나온 역사란, 온 나라의 역사만큼이나 흥미롭고도 유익한 것이다. 그것이 성숙한 마음의 견지에서 스스로를 관찰한 결과물이며, 동정심이나 놀라움을 불러일으키려는 야망 없이 쓰인 것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루소의 <고백록>은 그가 직접 이를 친구들에게 읽어 주었다는 점에서부터 진정한 고백일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이해할 수 있을 때 용서하는 것이다.
 
 
나는 모든 과거의 기억들을 훑어 보면서 나도 모르게 궁금해졌다. 나는 왜 살았을까? 무엇을 위해 태어난 걸까? 하지만 무엇이었건 간에 목적이 있었을 것이고, 나의 종착지 역시 높은 곳에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영혼 깊숙한 곳에서부터 무한한 힘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 종착지를 짐작할 수 없었고, 공허하고 배은망덕한 열정에 매료되어 왔다. 나는 호된 시련을 통해 강철처럼 딱딱하고 차가워졌지만, 고귀한 열망이 지닌 열기를 영원히 잃어버렸다. 인생에서 피어나는 최고의 꽃을 말이다. 그로부터 얼마나 무수히 운명의 손에 들린 도끼 역할을 했던가! 사형 집행인의 도구가 되어 불운한 희생자의 목으로 떨어졌던 것이다. 종종 아무런 원한도 없이, 늘 아무런 후회도 없이.... 내 사랑은 누구에게도 행복을 주지 못했다. 왜냐하면 난 사랑하는 이를 위해 그 무엇도 포기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나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만 기꺼이 사랑했다. 내 마음의 기괴한 욕구를 충족시켜왔을 뿐이다. 그것의 감정과 애정과 기쁨과 고통을 게걸스럽게 삼켜 버리면서.... 여기엔 끝이 없었다. 이는 마치 배고픔과 피로로 지친 사람이 잠이 들면 풍성한 음식들과 거품이 이는 포도주를 보게 되는 것과도 같다. 그는 공상이 준 이 천상의 선물을 기쁘게 먹어 치운 뒤에 흡족해하는 듯하다. 그러나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모든 환영은 사라지고.... 남은 것은 한층 더 배고픔과 절망뿐인 것을!
 
 
이 모든 일을 생각해볼 때, 과연 애써 산다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렇지만 모두들 살아가는 것이다.  호기심 때문이다. 계속해서 새로운 무엇인가를 기대하면서... 우습고 성가신 일이다!
 
 
내 기억 속의 과거는 얼마나 분명하고도 날카롭게 각인되어 있는가! 시간은 어느 한 개의 선, 어느 한 개의 얼룩조차 지워내지 못했다!
 
 
인생이라는 폭풍 속에서 저는 몇 가지 생각만을 해 왔습니다. 거기에는 어떤 감정조차 없었어요. 오래전부터 저는 가슴이 아니라 머리로 살아왔습니다. 저는 저 자신의 열정과 행동에 엄격한 호기심의 잣대를 들이대고 그것들의 무게를 달고 분석해 왔지만, 한 번도 그 속에 참여한 적은 없었어요. 제 속에는 두 명의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말 그대로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생각해서 그 사람을 판단하는 사람이었죠. 
 
 
이런 게 사람이다! 사람들은 다 똑같다. 어떤 행동의 나쁜 점에 대해 이미 다 알면서도 당신을 돕고, 당신에게 충고하고, 심지어 그런 행동에 찬성하기까지 한다. 다른 방식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면서, 그러나 나중에는 발뺌을 하며, 모든 책임을 짊어질 용기가 있는 사람으로부터 분에 찬 모습으로 떠나 버린다. 사람들은 다 그렇다. 심지어 아주 선량하고 똑똑한 사람들까지도!
 
 
어떻게 자신이 무언가를 확신하고 있음에 대해 알 수 있겠는가? 그리고 얼마나 자주 우리는 지각의 속임수라든지 이성의 실수를 확신과 혼동하는가? 나는 모든 일을 의심하는 것을 좋아한다. 이러한 경향의 마음이 성격상의 단호함과 충돌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와 반대로 무엇이 나를 기다리는지 모를 때엔, 언제나 더 용감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 같다. 왜냐하면 죽음보다 나쁜 일은 일어날 수 없으며,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제가 바보인지 악당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저도 불쌍한 사람이라는 겁니다. 어쩌면 벨라보다도 더요. 제 영혼을 세상이 버려 놓아서, 불안한 공상과 탐욕스러운 마음만이 남았습니다. 제겐 무엇이든지 모자라요. 저는 즐거움 만큼이나 슬픔에도 쉽사리 길들여지고, 제 삶은 날마다 더더욱 공허해지는 겁니다. 이런 저에게 남은 유일한 처방이라면, 여행을  떠나는 것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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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 Doljo 해변은 알로나비치에서 차로 이동이 가능하지만, 다이빙 포인트로 이동은 방카로 이동했다. 그런데 virgin island를 가운데 두고 먼 바다를 돌아 이동을 해서 발리카삭으로 이동하는 시간보다 더 걸렸다.

Doljo는 Doljo point와 Doljo house reef 두 개의 포인트를 들어가는데 발리카삭과 비슷하게 모래 바닥에서 시작해 wall과 산호 지형을 따라 다이빙을 즐긴다. wall 붙어 활짝 핀 산호와 산호 밑에 잠자는 트럼펫 피쉬, 그 중에서도 노란색 트럼펫 피쉬도 있고, 회색 산호에 위장한 프로그 피쉬와 대형 트리거 피쉬, 처음 본 오랑우탄 크랩 등 다양한 바다 생물을 만났다.

두 번째 다이빙 하는 중 발목과 손목이 살짝 따금 했는데 작은 해파리에 물렸다. 다른 다이버들도 안전정지 후 올라오는 과정에 목과 손등에 해파리에 쏘였다는데, 작은 해파리에 달린 촉수가 눈에 잘 띄지 않아 조심해야 하는 포인트였다.

돌호의 다이빙 시야는 10~20미터, 수온은 29도, 평균 다이빙 깊이는 13미터, 최대 22미터, 다이빙 시간은 58~63분.



3일차 다이빙은 pamilacan island로 간다. 출발할 때 하늘이 우중충 했는데 파도가 좀 있다.
파밀라칸은 총 3회 다이빙을 진행 했는데, 앞에 두번은 파밀라칸 비치 근처 같은 포인트에서 입수해 북쪽방향과 남쪽방향으로 나눠서 다이빙을 하는데 슬로프 지형을 따라 북쪽에서 남쪽으로 조류가 있어 북쪽 방향으로 올라갈 때는 조류를 거슬러 올라가야 해 약간 힘이 들지만 거꾸로 남쪽으로 방향을 틀면 조류에 몸을 맡기고 흘러가며 다이빙을 즐길 수 있다.

시야도 입수 포인트는 5미터 이내로 탁한데 모래바닥을 벗어나면 시야는 10~15미터 이상 나왔다. 파도도 심상치 않았는데 밤중에 바다가 뒤집혀서 그런지 전반적인 시야는 좋지 못했다.

파밀라칸의 바닷속은 산호와 해초, 물고기가 어우러져 바다 정원을 연상시킨다. 
그 가운데 Moorish idol 무리가 유유히 유영하고, 캐럿피쉬와 대형 복어, 작은 곰치, 대형 스내퍼와 고스트파이프 피쉬도 만났다. 두 번째 포인트에서는 잭피쉬 스쿨링을 만났는데, 회오리 치듯 감고 올라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세 번째 다이빙은 Pamilacan sanctury 근처에서 진행했는데 입수 전 수면 근처부터 대형 거북이가 반기더니 시작하자마자 wall로 하강하면서도 거북이를 만나고 시작부터 끝까지 여러 크기의 거북이와 모래밭에 기어다니는 스콜피온피쉬도 보았다. 마지막 안전 정지 전 가이드가 산호 밭을 덮은 조그만 그물을 수거하며 마무리.

파밀라칸의 다이빙 시야는 5미터부터 15미터로 입수 포인트는 시야가 좋지 않다가 Reef 넘어 Wall 근처로 가면 시야가 좀 나아지기는 했지만 전반적으로 좋지 않았고, 수온은 28~29도, 평균 다이빙 깊이는 10.4~15.1미터, 최대 27.7미터, 다이빙 시간은 51~6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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