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여행이 설레이지만, 자연과 함께하는 여행은 정신과 몸을 더 건강하게 만든다.


[본문발췌]

여행의 정형화는 여행의 자살이다. - 다치바나 다카시


여행은 유랑이다. 익숙한 곳에서 벗어나 낯선 장소로의 떠돎이다. 날뛰는 마음 망둥이를 가이드 삼은 방랑이자 배회다.
이는 매우 품위 있고 자유로운 행위라서 조급하게 서두르거나 망설일 게 없는 활동이다.


한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 - 체호프


술은 첫물에 취하고 사람은 끝물에 취한다.


사람이 자생력을 얻을 수 있는 곳은 역시 자연이 아닐까요. 자연 속에서 오감을 발달시키고 본성을 바라보는 기회를 자주 가짐으로써 본연의 생명력을 키울 수 있다는 생각이죠. 자연에 내 몸을 합일시키기, 이게 살아갈 길이라고 봅니다.


우리는 달팽이가 아니지만 누구나 저마다 존재라는 무거운 집을 등에 지고 산다.
편리성과 기능성만을 중시하는 도시의 물적 속성이 삶의 품위를 훼손한다고 읽는다.


내가 사는 여기가 지옥일 수도, 천국일 수도 있다는 건 은유가 아니라 바로 삶의 실상이다. 문제는 욕망의 조절이다.
진부한 욕망들에 눈멀어 감히 행복하지 않다고 말하지 마라.


자연은 농부에게만 필요한 게 아니라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는 창작인에게도 중요합니다. 자연이 불러일으키는 영감으로 창작하는 화가나, 자연 안에서 결실을 거두는 농부나 서로 다를 게 없는 것이죠. - 최용건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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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기회와 탐험은 우주 그리고 가상현실에서 벌어질텐데 블록체인, 메타버스, NFT는 가상현실이 구체화되고 일상에서 활용되는 기반이 될 것이다.

 

 

[본문발췌]

 


메타버스,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활동이 일어나는 초월 공간(현실이나 세계)'.
공간을 초월한 만남과 연결, 상호작용을 통해 현실과는 다른 사회적 관계, 경제적 기회를 얻는 초월 공간.

 


메타버스가 여타의 흐름과 가장 크게 구분되는 지점이 경제활동에 있다는 것입니다. 중앙의 통제를 받지 않는 개인들 간의 자유롭고 민주적인 경제활동이 이루어지는 것이 메타버스의 중요한 구성요소. 이것이 메타버스에 사람들이 매력을 느끼는 이유이다.

 

 

메타버스를 결정 짓는 7대 메가트렌드

  • 멀티 아바타Multi-Avatar
  • 확장 경제Extended Economy
  • 쌍방향Two-way interaction
  • 익명성Anonymity
  • 플레이 미션Play mission
  • 유사현실In similar life
  • 동시성At the same time

메타버스 내 익명성은 개인의 설명을 통해서 강화되고 약화됩니다. 남에게 자신을 설명하는 가운데 자기 캐릭터를 구축하는 거지요. 그래서 메타버스에서는 판단하는 문화보다 설명하는 문화가 앞서게 됩니다. 자신을 구성하는 주요 요인이 자기 판단과 그에 따른 설명이라면, 자신을 인식하고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타인의 눈은 별로 기여하는 것이 없습니다. 타인의 판단은 보통 부정적이기 십상인데요. 이보다 더 부정적인 건 타인의 눈을 의식한 자기 인식이에요.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하는 것인데, 현실에서는 타인의 판단을 거부하거나 객관적으로 수용하기가 쉽지 않죠.

메타버스에서는 스스로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실 자기 자신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 메타버스 내에서는 자신을 설명하며 자신을 알게 되고, 자기를 성찰하며 자기애가 생기기도 합니다. 타인의 판단에 의존하기보다 직접 설명하기를 실천해보면 자아존중감이 높아질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메타버스의 익명성은 온전히 나 자신에게 집중하게 하는 익명성으로, 자기 자신이 온전하게 홀로 존재하는 경험을 하게 합니다. 언제든지 단절을 택할 수 있지요. 선택적으로 익명성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살다 보면 익명성에 숨고 싶거나, 익명성 뒤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순간이 은근히 많거든요. 익명성은 메타버스에 많은 사람을 유입시키는 가장 중요한 매력이 될 수 있습니다.

 


"놀이의 형식적인 특성을 정리하자면, 의식적으로 '일반적인' 삶을 벗어나 행해지는, '심각하지 않은' 지속적인 자유활동이라고 할 수 있지만, 동시에 플레이어를 강렬하고 완전하게 흡수하는 활동이다." - 요한 하위징아
  
놀이의 네 가지 요소 : 경쟁(agon), 모방(mimicry), 운(확률, alea), 현기증(ilinx)

 

 

생각이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이성적으로 이해하는 일이죠. 하지만 쉽게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것에 우리는 공감합니다. 그 공감은 두 가지 근거에 기인하는데,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게으름입니다.

 


새로운 것에 호기심을 느끼고, 실패를 각오하고, 일단 빠르게 실천해보는 것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높이기 위해서 먼저 갖추어야 할 것은 듣기 능력입니다. 흔히 '경청'이라고 하지요. 무작정 듣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한 말의 주제, 맥락, 감추어진 속뜻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잘 듣는다고 해서 문해 능력이 저절로 갖추어지는 게 아닙니다.

  • 문해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말에서 핵심을 찾아내는 훈련을 늘 의식적으로 해야 합니다. 보통 발화 행위는 '설명적 말하기'와 '설득적 말하기'로 이루어지는데, 설명적 말하기는 정보를 전달하고, 설득하는 말하기는 주장을 전달하지요. 설명적 말하기는 핵심 정보가 있고, 나머지는 핵심 정보를 자세하게 설명하는 것입니다. 설득하는 말하기는 주장이 있고, 나머지는 그 주장의 근거가 됩니다. 이렇게 주장과 설명의 핵심을 먼저 잡고, 다른 말의 구성을 파악하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 협오, 증오 발언 배척하기
  • 권위를 버리고 존중의 자세. 현실의 나이와 직업을 굳이 묻거나 궁금해하지 않는 태도를 가져야 진정으로 평등한 소통을 나눌 수 있습니다. 나이가 어리다고 무시하거나 부하 직원급이라고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가 상대방 말에 귀를 기울이는 방해가 됩니다.

 


룰을 따르는 사람이 아닌 룰을 만드는 사람

  • 기존 산업사회에서는 대규모 공장을 돌려야 하므로 규격화되고, 계량화된 작업의 프로세스가 필요했습니다. 바로 매뉴얼이죠. 모든 직무는 매뉴얼화되어 있고, 사람을 뽑을 때는 매뉴얼을 잘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을 뽑았습니다. 그래서 인재의 기준은 성실, 끈기 같은 것이었죠. 기존의 매뉴얼을 학습한 뒤에 그것을 잘 수행하는 사람이 필요했으니까요. 교육 역시 그런 인재를 양성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같은 나이 또래의 학생들을 한 교실에 몰아넣고, 똑같은 것을 배우며, 누가 더 잘 암기기했는지를 시험하는 방식으로요.
  • 메타버스가 현실과 다른 점은 돈, 경험, 연륜, 인맥 없이 혼자서도 얼마든지 창업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메타버스에서는 가게를 만들고, 물건을 확보하고, 상품을 보관하고, 인테리어하는 등의 돈이 들지 않습니다. 오로지 시간만 들어갑니다. 그 시간은 경험과 바꿀 수 있는 자산이니까 시간이 들어가는 것도 아깝지만은 않습니다.
  • 메타버스에서는 제약 없이 룰을 만들어가는 창의력이 필요합니다. 메타버스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구현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상상력에 제한을 가하는 것은 자기 자신뿐입니다. 한계 없는 상상력을 구현해야 승부수를 던질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드는 창의적 능력은 소수의 예술가에게 허락된 능력입니다. 그런데 사회에서, 또 메타버스에서 필요한 창의력은 세상에 있는 것들을 다르게 활용하거나 융합하는 능력입니다.
  • 창의성은 전제를 깨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전제라는 것은 상식인데, 그건 고정관념, 편견, 사고의 한계라고 바꾸어 말할 수 있습니다.

 

2021년의 현대인은 기술과 상황이 워낙 급변하는 '뷰카VUCA'(변동성Volatile, 불확실성Uncertainty, 복잡성Complexity, 모호성Ambiguity의 앞글자를 모은 단어로 현대사회의 단면을 상징) 시대를 살고 있지요. '뷰카'는 너무나 빠른 최근의 경영환경을 묘사합니다. 메타버스에서는 하루아침에 무언가 세워졌다 사라지는 일이 반복될 수 있어요. 이런 환경 변화는 눈으로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빠를 수 있습니다. 해보고 안 되면 수정하고, 다시 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는 현대 사회 거의 유일한 성공의 방식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메타버스 내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언가 시작하셔야 합니다. 시작한다고 해서 꼭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성공한 사람 중에 시작하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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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에 대한 환상, 삶은 현실이다.

 

 

 
[본문발췌]

 

 
홀로서기 정신의 부족.
  • 부모에게 의존하고, 학력에 의존하고, 직장에 의존하고, 사회에 의존하고, 국가에 의존하고, 가정에 의존하고, 술에 의존하고, 경제적 번영의 시대에 의존하면서 이럭저럭 수십년을 살아온 삶. 홀로 설 기회를 그때마다 잃고, 그저 공부나 일을 하면서 겪은 혹독함 정도를 인식하고 있을 뿐입니다. 사실 당신은 자신에게서, 세상으로부터 도피하고 또 도피해 온 것은 아닐까요.
  • 한 사람의 성인이 몸으로 익혀 두지 않으면 안 될 조건을 그저 지식으로만 머릿속에 채워 둔 것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 '인생 2막'은 전반생에서 얻지 못한 홀로서기 정신을 되찾기 위한 시련의 장으로 준비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요. 또한 그래야만 되는 것이 아닐까요.
  • 만약 당신이 능력을 남김없이 발휘하면서 살아왔다면, 그리고 홀로서기를 한 어른으로 60세를 맞이했다면, 이후의 인생 목적이나 삶의 보람 등을 마음에 명확하게 품고 있을 것입니다.
  • 새장에서 풀려나 자유의 몸이 되었을 때, 생애에 걸쳐 추구하고 전력할 일이나 취미가 있어서 곧바로 그것들로 옮겨 갈 수 없다면 지금껏 헛되고 무의미하게 살아왔다고밖에 할 수 없습니다.
 
 
자연이 아름답다는 것은 뒤집어 말하면 생활 환경으로는 가혹하다는 의미입니다. 여행자가 아닌 도시에서 이주한 당신은 더는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처지에 있지 않습니다.
 
 
 
농민들이 오랜 시간 물 흐르듯이 척척 일을 해낼 수 있는 것은, 어릴 적부터 육체 노동으로 단련해 온 강인한 다리와 허리로 힘을 잘 배분해 전혀 무리를 하지 않는, 실로 효율적인 일머리를 몸에 익혔기 때문입니다. 좋아하는 야채를 길러 먹으려고 재미 삼아 괭이를 드는 수준이라면 괜찮습니다. 하지만 60세가 넘어 처음으로 농사일을 시작해 보겠다는 것은 너무나 위험한 발상입니다.
 
물론 농약을 쓰지 않는 유기농법 등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누구나 야채를 기를 수 있습니다. 당신이 처음에 각오했던 만큼 어렵지는 않습니다. 처음 수확한 야채를 식탁에 올렸을 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거의 느껴 본 적 없는 감동에 젖습니다. 농경민족으로서 본능이 깨어나 피가 꿈틀거리고 환희에 찰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감동과 마찬가지로 그것도 그리 오래가지는 않습니다. 농작물의 이모저모를 얼추 이해하게 된 단계에서 순식간에 빛이 바랩니다.
 
우선 너무 많이 거둔 야채가 고민거리가 됩니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수확해야 하는 일에 진절머리가 나고 말 것입니다. 소금에 절이고 된장찌개에 넣고 다른 것에 곁들여도 다 먹어 치울 수가 없습니다. 도시라면 가까운 이웃에게 나눠 줄 수라도 있을 텐데 주변이 죄다 농가이다 보니 아까워도 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먼 곳에 사는 친구나 아는 사람에게 떠넘겨 버리는 방법도 있습니다만 운송비가 장난이 아니어서 이것 또한 좌절됩니다.
이왕이면 여러 야채를 먹고 싶다는 생각에 다양한 품종을 소량으로 기르기로 마음먹습니다. 실제로 해 보면 너무 힘듭니다. 야채마다 성질이 달라 기르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물의 양이며 잘 맞는 흙이며 일조량 등이 모두 달라 한 밭에서 기를 수가 없습니다.
간신히 출하 단계에 이르더라도 수입으로 연결하려는 생각은 꿈에도 해서는 안 됩니다. 야채의 형태를 띠었을 뿐 맛, 크기, 양 등에서는 시장이 요구하는 수준에 한참 못 미칩니다.
 
농촌의 인구가 왜 그렇게 줄어드는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당신이 멋지게 생각하는 삶을 왜 젊은이들이 저버리고, 당신이 기피하는 도시로 떠나선 정년퇴직해서도 돌아오지 않을까요. 그것은 농사일이 고되고, 채산에는 맞지 않으며, 고령자의 체력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는 현실을 익히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완전히 초보자인 당신의 안이한 생각만으로 성공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지쳐 있을 때 결단하지 마라.
오랜 세월을 거쳐 축적해 온 그 귀한 지식과 경험과 기술과 인간관계를 몽땅 하수구에 버리고 마는 식의 삶은 순수함과는 분명 다릅니다.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합니다. 실로 아까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애석합니다.
시골로 거처를 옮겨 지치고 지친 심신을 충분히 쉬게 하고픈 마음은 압니다만 그런 피로야 반년쯤 쉬면 바로 사라집니다. 다시금 일하고픈 의욕이 솟구칩니다. 그때 당신이 아직 도시에 있다면 재기할 기회는 시골에 비해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도 가장 지쳐 있을 시기에 중대한 결단을 내리는 일은 피해야만 합니다.
설사 급하게 시골로 이주했다 치더라도, 의지와 지혜만 있다면 도시인다운 발상으로 새로운 일을 개척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시골로 왔다고 해서 당신이 그 전까지 가졌던 전부를 버리고 무리를 해서까지 모든 것을 시골 상황에 맞출 것은 아닙니다.
그런 점을 깨닫고, 퇴직 전에 하던 일을 혼자 그대로 꾸려 가는 직접적인 방식이 아니라 좀 더 간접적이고 유연한 아이디어로 시골에 적합한 작은 사업을 벌여 궤도에 올린 똑똑한 사람도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인생 2막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품격이란 어떠한 달콤함에도 어떠한 회초리에도 결코 굴하지 않고, 자신이 비록 틀렸더라도 권위나 권력에 아양을 떨지않는 의연함 그 자체입니다. 내 생각으로 판단하고, 혼자일지라도 행동할 때에는 행동한다는 독립된 한 인간에게만 적합한 말입니다.
 
 
 
시골 생활을 시작할 때 그 지역 주민들과 접촉하는 정도를 미리 정해 두는 일은 아주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 아주 중요한 문제에는 단호한 양자택일밖에 없습니다. 말하자면 긴밀히 할 것인지, 거부할 것인지 둘 중 하나만 있습니다. '적당히'와 같은 중간적이고 회색적인 답이 도시에서는 있을 수 있어도 시골에서는 있을 수 없습니다.
한 가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어울리지 않고 미움을 사는 편이 어울리고 나서 미움을 사는 편보다 원망이 훨씬 더 적다는 점입니다. 후자의 경우 일방적인 원한을 사고 말아 회복 불가능한 상태에 빠질 수 있습니다. 결국 그곳에서 생활할 수 없어 야반도주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처지로 내몰리기도 합니다.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지역 주민들에게 어떻게 해서라도 인정받고 싶어 적극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피하는 쪽이 좋습니다. 주민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라면 어떤 타협도 사양치 않겠다는 식의 비굴한 태도는, 양쪽이 대등해야 한다는 교제의 기본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인구가 극히 적은 지역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려고 할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은, 그곳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가 아니라 무엇을 하기 위해 그곳으로 가는지 처음부터 확실한 목표를 세우는 일입니다. 확실한 목표가 있느냐 없느냐가 시골 생활의 성패를 좌우할 것입니다.
유유자적하며 조용히 살고 싶다는 식의 추상적인 바람이어서는 안 됩니다. ... 하면 할수록 심오함이 느껴지고 정신을 차리고 나면 하루가 다 지나갔을 정도로 모든 것을 잊고 몰두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도시에서 이주애 온 사람들이라고 해서 모든 것을 안심하고 어울릴 수 있을까요. 대답은 당연히 '아니오'입니다.
시골로 온 무리에는 어딘가 수상쩍은, 사기꾼 비슷한 이가 섞여 있기 때문에 늘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시골에서 살 길을 찾지 않으면 안 되는 생계가 막막한 사람, 빚 갚기가 힘들어 도망쳐 온 사람, 도시에서 신용을 잃어 대접을 못 받게 된 사람, 감추고 싶은 과거가 있는 사람 등 아주 다양합니다.
특히 젊은 사람들에게는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자연이 너무 좋아서. 자연 속에서 사람답게 살고 싶어서. .... 지방의 토착 문화나 예술을 세계로 알리고 싶어서. ...
질문한 것도 아닌데 상대편에게 이런 이유를 늘어놓는다면 일단 그 사람은 상대하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그들은 그 지역에서 뚜렷한 직업도 없이 말만으로 세상살이를 하려는, 그런 주제에 대의명분만은 찾고자 하는 교활한 철면피들입니다.
또한 마을을 일으키고 면을 부흥시키기 위해 지역 사회끼리 활발히 교류해야 한다고 거의 반강제적으로 부추기는 이들도 조심해야 합니다. 이들은 이대로 두면 마을과 면이 소멸해 버린다고 위기감을 조장하며 광고 이미지 비슷한 꿈같은 제안을 합니다. 그러다 예산이 내려오거나 후원자가 생긴 시점에서 활동의 주도권을 잡아 쥐고는 너무나 그럴싸하게 행동하면서 반은 놀면서 먹고살아 가려고 합니다.
 
 
 
맑디맑은 공기와 물 그리고 신선한 먹을거리에 둘러싸인 대자연 속에서 도시 생활에서 완전히 망가져 버린 건강을 되찾을 거야 하는 이기적은 바람을 간절히 품고 이주하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분명 도시를 뒤덮고 있는 공기는 너무나 좋지 않고, 수돗물은 끓이더라도 마시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마셔야 하는 것입니다. 쉴 새 없이 들리는 소음과, 눈이 핑핑 돌아갈 정도의 잦은 변화와 이로 인한 스트레스가 병에 걸리는 한 원인임은 전문가들도 모두 인정하는 바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시골로 거처를 옮김으로써 곧바로 건강을 되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분명히 잘못입니다. 애써 환경을 바꾸더라도 생활 자체를 바꾸지 않고서는 맑은 물도 공기도 고요함도 그저 잠시 위안을 주는 정도의 조건에 지나지 않습니다. 요컨대 술과 담배, 폭음과 폭식, 밤샘 등을 완전히 그만두지 않는 한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담배와 비교하면 자도차 배기가스는 이렇다 할 독성을 가진 것이 아닙니다. 또한 매일 안 마시면 배기지 못하는 술을 끊지 않고서는 당신 몸은 나이보다 더 빨리 늙어 가고 말 것입니다. 원흉은 담배와 술에 있습니다. 그리고 좋아하는 것을 실컷 먹는다는, 동물적인 식사 태도도 큰 문제입니다.
 
 
 
자연에서 배우지 않으면 안 될 것은 무엇보다 스스로를 다스리는 일입니다. 그리고 홀로서기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몸에 나쁜 것을 그만두지 못하는 야생동물은 곧 죽음을 통해 사라질 운명에 있습니다. 다른 것들에 의지하려 하거나 주의를 게을리하자마자 소리도 없이 슬며시 몸이 파멸되기 시작합니다.
 
 
 
사회적 지위를 만족시켰는지 아닌지로 승리자와 패배자를 가르는 것은 큰 잘못입니다. 진정한 패배자란 자신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거나 다스릴 방향을 잡지 못한 사람을 이를 때 써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적이라는 표현은 어디까지나 지성과 이성에 부합하게 사는 것을 의미하지 결코 그 반대는 아닙니다. 동물로 태어나 동물인 채로 일생을 보낸 인간이야말로 진짜 패배자입니다.
 
 
 
은퇴 전에 당신은 꿈꾸던 인생 2막에 대해 열심히 늘어놓았습니다. 우선 오붓하게 해외여행을 가자로 시작해서, 같은 취미 생활을 하고....
하지만 은퇴하자마자 당신은 마치 혼이 나가 버린 것처럼 집에만 틀어박혀 생각하는 일도 움직이는 일도 하지 않습니다. 먹고 마시고 자기만 하는,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의 중간 같은 성가신 존재로 변해 배우자를 하루 종일 압박합니다.
도대체 어떻게 되어 버린 것일까요.
일 자체나 대인관계에서 오는 긴장을 느낄 필요가 없어지고 시간에 구속당하지 않게 되어 마음이 완전히 풀어졌기 때문일까요. 분명히 그런 면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진정한 원인은 아닙니다.
그것은 당신이 홀로서기를 한 성인 남성이 되지 못했고 되려고도 하지 않았으며 어린애의 혼을 가진 채 60년을 지내 왔기 때문입니다. 명령을 받아야만 움직이고 자신의 의지로는 움직일 수 없는 목각 인형, 타율적인 빈껍데기 인생밖에 살아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당신은 다시금 어린애 시절로 돌아가고 만 것입니다. 어른아이로.
 
 
 
겉만 보고 시골살이의 결단을 내린다. 그때 당신들의 눈길은 바로, 낯선 땅에서 좋은 부분에만 마음을 빼앗기며 지나가는 여행자의 시선이었습니다. 하지만 여행하는 사람과 정착해서 사는 사람의 입장은 크게 다릅니다. 요컨대 당신들은 인생에서 최대이자 최악의 충동구매를 하고 만 것입니다. 실패했을 때의 후회가 흔한 후회의 범위를 넘어서는 너무나 어리석은 짓을 한 것입니다.
당신의 시골 생활의 정점은 땅을 사고, 집을 짓고, 그 지역으로 이주했을 때입니다. 신축 기념, 이사 기념, 새 출발 기념을 하려고 도시에서 사귄 친구들을 초대해 마당에서 바비큐 파티를 연 날이 행복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당신들이 친구나 지인들의 시선을 행복의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이나 가까운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것을 보면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고 확신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빠르면 수개월, 늦어도 몇 년 후에는 권태감과 고독감과 좌절감에 휩싸이는 처지가 될 것입니다. 낮에는 그다지도 눈부시던 광경이 해가 지기 무섭게 깊이를 알 수 없는 암흑에 휩싸이고 맙니다. 어둠의 깊이에는 시간이 흘러도 익숙해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들짐승에게 잡아먹히는 약한 동물로서의 방어 본능이 밤마다 살아나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시달립니다.
어느 사이에 도시 친구들도 들르지 않게 되고, 지역 주민들과 삶의 방식이 달라 지칠 대로 지쳐 갑니다. 자연에서 받는 감동은 점점 줄어들고, 자연이 주는 위협에 겁을 먹게 됩니다. 자연은 결코 이미지가 아니라, 삶과 죽음이라는 절실한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하는 현실 그 자체라는 당연한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시골에서는 내 일은 내 힘으로 한다는 강한 마음가짐과 체력이 필요합니다. 이주하고 나서 도시의 편리함과 비교하며 불평을 해 본들 소용이 없습니다. 어떤 것이든 스스로 해내는 것을 즐거워하지 않으면 굳이 불편한 곳에서 살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불편함이, 너무 편리한 도시 생활로 흐늘흐늘해진 당신 심신을 단련시켜 줍니다.
불편함이, 당신 뇌를 계속 지배해 온 싸구려 이미지를 말끔히 제거하고 가혹한 현실과 대치하는 묘미를 알게 해 줍니다.
불편함이, 당신 정신을 본래로 돌려줍니다.
불편함이, 당신 모습을 본래로 돌려줍니다.
이렇게 발상을 전환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시골 생활을 단념하는 편이 좋습니다. 아무리 오기로 버텨 보려 한들 소용이 없습니다.
 
 
 
진정한 빛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만 빛납니다.
진정한 감동은 현실의 고단함 속에서만 만날 수 있습니다.
 
어디에서 살고자 하든 한결같이 진지하게 살고, 바깥 세계와(현실과) 대치할 각오를 해야 합니다.
 
 
 
귀촌에 앞서 알아 두어야 할 것들
  • 어딜 가든 삶은 따라온다
  • 풍경이 아름답다는 건 환경이 열악하다는 뜻이다
  • 농부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 구급차 기다리다 숨 끊어진다
  • 고독은 시골에도 따라온다
  • 고요해서 더 시끄럽다
  • 돌잔치에 빠지면 찍힌다
  • 친해지지 말고 그냥 욕먹어라
  • 엎질러진 시골 생활은 되돌릴 수 없다
  • 시골에 간다고 곤강해지는 건 아니다
  • 불편함이 치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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