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읽고쓰기(reading & essay)

살롱 드 경성 - 김인혜, 해냄

소요유+ 2023. 12. 16. 16:51

인간은 아무리 혹독하고 열악한 환경에서도 적응하며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누군가는 아름다운 예술을 창조 한다. 


[본문발췌]


사실 '평범한 행복을 유지하는 삶'이야말로 쉬운 일이 아니다. 행복이란 진정한 용기와 마음의 자유를 지닐 때 비로소 쟁취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중섭의 고생 스토리가 아무리 끝이 없다 할지라도, 이중섭 세대야말로 그나마 운이 좋았다고 생각될 때가 있다. 그 이전 세대 서양화가들은 더욱 열악한 환경에서 화가로 살아갔기 때문이다. 어떤 예술가가 오늘날 조금의 성공이라도 하고 있다면, "그것은 단순한 개인적 행운이 아니라 과거에 불우하게 끝마친 모든 선인(先人)들에 대한 보답"이라고 한 철학자는 말했는데, 그것은 어느 세대에나 적용되는 원리 같다.


유영국이 존경했던 화가 몬드리안에 의하면, 제1차 세계대전과 같은 비극이 일어난 것은 인간이 낭만적인 서사에 빠져 분별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예술가는 그런 우매함에서 빠져나와, 수학적 직관을 통해 자연이 지닌 완전한 균형과 질서를 표현해야 하는 존재이다. 그리고 이를 회화뿐 아니라 인간 삶의 모든 시각 영역에 적용시켜야 한다.


"탐험하는 자가 없으면 그 길을 영원히 못 갈 것이오. 우리가 욕심을 내지 아니하면 우리 자손들을 무엇을 주어 살리잔 말이오? 우리가 비난을 받지 아니하면 우리의 역사를 무엇으로 꾸미잔 말이오?" - 나혜석


그러나 결국 오지호의 말년 작품은 다시 환해졌다. "어떠한 추악함이나 증오 속에서도 미(美)를 향해 나가는 흐름이 있을 때 비로소 회화 세계는 존재한다"는 것이 오지호의 굳은 신념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이론에 의하면, 어떠한 고난이 와도 삶은 총체적으로는 "환희(歡喜)"이다. 그리고 예술은 그 환희를 표현하는 일이다. 그러니까 인간 삶의 영역에서도 예술에서도, "그늘에도 빛이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한 사람의 인생을 평가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삶을 평가하는 일도 쉽지 않다. 2022년 작고한 이어령은 본인의 삶을 '실패'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 이유는 진정 자신을 잘 아는 가족과 친구, 삶의 동행자를 갖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스스로 늘 애정 결핍 속에서 살았다는 고백이다. 진정으로 풍요로운 '내면의 풍경'을 지닌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겉으로는 누가 봐도 부러운 삶이 자기 자신에게는 완전히 공허할 수도 있다.

88세에 생을 마칠 때까지 수많은 경구를 남긴 이어령은 그의 '마지막 수업'에서 이렇게 말했다. "남의 신념대로 살지 마라. 방황하라. 길 잃은 양이 돼라." 어찌 보면 이대원의 삶이야말로, 바로 이 경구를 실천하여 성취해 낸 결과물이다. 행복이란, 남의 신념대로 살지 않으려는 의지를 가지고, 방황하고 길을 잃는 어쩔 수 없는 과정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바로 내 옆에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무엇'인가 보다.


장욱진은 자신의 <자화상>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이 그림은 대자연의 완전 고독 속에 있는 자신을 발견한 그때의 내 모습이다. 하늘에 오색구름이 찬양하고 좌우로는 자연 속에 나 홀로 걸어오고 있지만, 공중에선 새들이 나를 따르고 길에는 강아지가 나를 따른다. 완전 고독은 외롭지 않다." '그냥 고독'은 외롭지만, '완전 고독'은 외롭지가 않다. 고독은 어찌보면 타인과의 비교에 따른 상대적 개념인데, 그러한 세속적 비교에서 벗어나면 오히려 완전한 고독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완전 고독'은 어쩌면 '자유'의 다른 말이다. 그리고 그러한 경지에 올랐을 때, 인간과는 소통에 불편을 느꼈던 자아가, 자연과는 풍요로운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된다. 들녘은 때맞춰 노랗게 흔들리고, 개와 새는 자신을 따르지 않는가.


이렇게 허무한 게 인생이다. 바로 그 허무함 때문에, 우리는 쓸데없는 욕심을 내려놓은 채 우리 곁에 있는 작고 여린 것의 소중함을 깨달아야 한다. 파릇파릇 있는 힘을 다해 자라는 나무, 사이좋게 떼지어 하늘을 나는 새들, 아무런 편견 없이 사람을 따르는 삐쩍 마른 동네 개, 작고 가난한 집에 옹기조기 모여 사는 나의 가족. 바로 그런 것들 말이다. 장욱진은 흙탕물 같은 세상 속에서 그렇게 작고 소소하고 사랑스러운 것들만을 말갛게 건져 올려 세상을 내놓고 사라졌다.


‘이 세상에 절대적 진리란 없다’는 것이 유일한 절대적 진리라고 믿었고, 이 모순된 문장을 사랑했던 사람이다. 김병기는 온갖 모순과 불확실성을 받아들일 수 있는 진정한 용기와 관용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런 용기가 예술가의 멈추지 않는 도전을 가능케 한 힘이다. 김병기는 잭슨 폴록의 말을 인용하기를 좋아했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기 전에 나는 내가 무슨 그림을 그릴지 알지 못한다.” 
우리도 우리의 인생이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지 않나. 다만 그런 불확실성을 안고서도, 하루하루 용기를 내어 도전할 뿐! 그것이 인생이니까.


"예술은 언제나 공허하고 죽을 만큼 지루하게 영원한 반복 속에 갇혀 무엇인가 기다릴 것도 없이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이라고 변시지는 썼다. 그는 자유로운 인간이라면 피할 수 없는 지독한 고독의 정체, 그러면서도 포기하지 못하는 이상향을 향한 그리움을 작품에 담고자 했다.


"신들에게 다가가 그 빛을 인류에게 퍼뜨리는 것보다 아름다운 일은 없다." 베토벤의 말이다. 1903년 로맹 롤랑이 쓴<베토벤의 생애>에 수록된 문구이다. 베토벤에 따르면, 예술가란 신들의 영역과도 같은 높은 차원의 경지를 인간에게 언뜻 느끼게 하는 메신저이다. 이들은 지상에 발 디디고 있으면서도, 영원을 좇아 불멸을 꿈꾸는 이들이다.


권진규-허명회-허준이. 한 인터뷰에서 허준이는 수학을 공부하는 원동력이 “아름다움의 추구”에 있다고 말했다. 수학 이론은 현실에서 경험적으로는 알 수 없는 세계를 암시하기 때문에 마치 비현실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 결과는 매우 순수한 아름다움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수학자의 내적 동기는 예술가의 그것과 같다.”고 그는 말했다. 음악가, 조각가, 수학자는 불멸의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그렇게 같은 곳을 응시하고 있다. 그러나, 아, 너무나도 먼 응시!


문신의 ‘시머트리(대칭)’는 땅에 단단하게 발 딛고 선 어떤 존재가 어떻게든 중력을 거슬러 자라는 동안 생겨나는 형상이다. 이 형상은 위로 자라면서도 옆으로도 좌우 균형을 유지하려고 실은 안간힘을 쓰고 있다. 견고한 안정감과 극도의 긴장감이 절묘한 조화를 이룸으로써 태어나는 존재라고나 할까. 생은 바로 그런 극단적인 힘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균형감각이다. 그러하기에 우주에 던져진 어떤 존재에게나, 생은 그만큼 어렵고, 신비롭고, 기적 같고, 엄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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