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읽고쓰기(reading & essay)

개소리는 어떻게 세상을 정복했는가 – 제임스 볼

소요유+ 2024. 3. 23. 08:39

기술적으로 정보의 양과 유통 속도가 급격히 발전했지만  사회적으로 정보의 질과 편협(향)성도 증가했다.

사실을 판단하고 진실을 규명하고자 하는 노력 없이는 정치인과 언론의 개소리에 노출될  수 밖에 없다.
 
 
[본문발췌]

“사실이 아닙니다.” “근거가 없습니다.”라고 점잖게 말하는 기성 언론의 팩트체크 기사보다 개소리들이 훨씬 더 재미있고 귀에 쏙쏙 박힙니다.
 

거짓을 말하는 사람과 진실을 말하는 사람이, 이를테면 같은 게임에서 맞서 싸운다고 해보자. 각자는 어떤 사실에 대해 자신이 이해한 대로 반응한다. 물론 한쪽은 진실의 권위에 따라 반응하고, 다른 쪽은 그 권위를 거부하고 권위의 요구에 응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개소리꾼은 이런 요구 자체를 완전히 무시한다. 그는 거짓말쟁이와 달리 진실의 권위를 거부하지도, 이에 맞서지도 않는다. 전혀 신경쓰지 않을 뿐이다. 이런 이유로 진실의 더 큰 적은 거짓말보다 개소리다. 다시 말해 개소리꾼은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는 데 유리한 발언을 할 뿐 그것이 사실인지 여부는 개의치 않는다.
 

기자 한 명이 오랜 시간을 들여 주장을 검토한 후 사실을 토대로 신중히 기사를 작성하면 비용은 더 들고 클릭 수는 줄어든다. 이보다 더 쉽게 수익을 늘리는 방법이 있다. 원래 주장이 사실인지 확인하지 않고 그대로 서둘러 기사로 내보내서 그 주장에 대한 분노와 반박을 조금이라도 더 끌어내는 것이다. 폭로 기사는 다른 언론사가 쓴 기사를 그냥 베끼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관련 기사가 예닐곱 개 나오는데 그중에는 서로 모순되는 내용도 있을뿐더러 직접 취재한 기사는 하나도 없다.
 

가짜뉴스는 신뢰의 부재를 낳은 원인이라기보다, 이를 보여주는 현상에 가깝다. 개소리는 말할 것도 없이 진실의 적이다. 진실을 인지하는 능력 없이는 절대로 정치적 성향을 넘어 토론할 수 없고 그저 상반된 담론을 향해 고함치는 데 그치고 만다.


정보 제공자가 맞춤형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이용자에게 편향된 정보만 도달하는 필터 버블 현상도 큰 과제였다. 내 친구들은 나와 정치적 견해가 매우 비슷한 만큼 서로 동의할 기사만 공유할 확률이 높다. 우리가 뉴스 대부분을, 아니면 어느 정도라도 페이스북 피드에서 접한다면 결국 거의 모든 사람이 나와 생각이 비슷하다는 인상을 받기 쉽다. 개소리의 힘이다. 사람들은 믿고 싶은 말만 들으려 해서 전문가의 말이나 실제 벌어진 사건보다 페이스북에 올라온 글을 더 신뢰한다. 필터 버블은 사람들이 진실을 더 쉽게 무시하도록 자극해 탈진실 사회를 부추긴다.
 

트래픽이 높아진다는 것은 당연히 해당 사이트의 수익이 올라간다는 뜻이다. 제목은 나중에 바꾸더라도 일단 기사부터 올리면 트래픽이 올라가지만 시간을 들여 사실을 확인한 후 아무 기사도 올리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자원이 줄어든 편집실에서는 보통 안전한 대책을 찾는다. 대학을 갓 졸업한 미숙한 기자가 정치 논쟁을 보도한다고 할 때, 가장 간단한 방법은 한 후보가 한 말을 그냥 보도한 후 상대 후보의 반박을 싣는 것이다. 내용을 확인하는 일 따위는 생략한다. 현실 풍자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으나 이게 현실이다. 특히 기사가 다수 매체의 일반적 보도 지침인 중립성이나 객관성을 만족할 때 이렇게 보도한다. 한 후보가 뻔뻔스럽게 거짓말을 해도 마찬가지다. 자원이 풍부하고 숙련된 기자가 있는 편집실에는 정치 논쟁을 조목조목 따질 역량과 자신감이 있다. 그런 기자들이 부족한 편집실에서는 정치 논쟁을 제대로 문제 삼지 못한다.
 

수 세기 동안 미디어는 정부와 정치인에게 책임을 묻는 역할을 했다. 19세기 들어 미디어를 일컫는 ‘제4계급’이라는 별칭이 생겼는데, 이는 미디어의 권력 견제 기능을 공식화한 용어였다. 미디어가 영향력과 신뢰를 잃으면 권력에 책임을 묻는 능력도 약해진다.
 

정치는 과거에도 그랬듯 미래에도 공공정책을 논하는 순수하고 열띤 토론의 장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지만 무관심과 냉소주의에도 안전한 범주와 해로운 수위가 있으며, 정치 전략에도 다른 것보다 더 유해한 방식이 있다. 정치 행위자가 미디어와 피드백 회로를 형성해 얄팍한 근거나 사실만으로도 공론화가 가능해지면, 정치권에 대한 신뢰는 더욱 무너질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두 가지 방법을 살폈다. 하나는 자신의 신념과 다른 증거를 찾지 않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증거가 내 주의를 끌더라도 이를 믿거나 그에 따라 행동하지 않는 것이다.
 

“확증 편향이 적극적인 정보 탐색을 가로막듯이, 역화 효과도 내게 들어오는 정보를, 나를 기습적으로 공격하는 정보를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 뭐가 뭔지 혼란스러울 때 우리는 신념을 의심하기보다 고수하는 쪽을 택한다.”
 

우리는 필터 버블 때문에 서로 다른 의견에 가까워지지 못할 뿐 아니라, 중도적 관점에서 더욱 멀어진다. 우리는 내가 속한 집단에 순응하고, 그 집단의 구성원이라는 신호를 보내며, 집단을 통해 성향이 양극화한다. 소속 집단의 정체성을 뒤흔드는 정확하고 검증 가능한 정보보다, 정체성을 한층 더 견고하게 하는 개소리 정보를 더 반기는 이유다. 정체성이 한층 단단해지는 또 다른 상황은 바로 다른 집단과 대립을 할 때다. 이를 일컬어 내집단, 외집단 행동, 또는 현실 갈등 이론이라고 한다. 우리는 집단에 대한 진짜 소속감을 다른 집단에 대한 경쟁의식, 심지어 적대감을 통해 느끼기도 한다.
 

우리는 정치적 신념과 맞는 구절을 보면 쉽게 믿고, 거의 반사적으로 공유하려고 한다. 반면 잠깐이나마 출처를 살피고 사실인지 확인하려면 어느 정도 노력이 든다. 전자는 시스템1 행동에 해당한다. 후자는 시스템2를 발동한 것으로 공유하기 전에 정보를 더 신중히 검토해보자는 결단이 필요하며, 노력 없이 할 수 없는 일이다. 정보를 대강 훑을 때 나오는 순간적인 사고를 누르고 의식적으로 다른 방식의 사고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스템2 사고를 작동시키는 것은 자기통제 행위로, 때로 ‘자아 고갈’이라고 부를 만큼 피곤한 일이다. 그렇지만 의식적이고 신중한 사고와 자기통제가 없으면 우리는 개소리에 노출될 것이다.
 

주류 언론이 개소리에 대응하는 주요 무기는 사실 검증팀을 띄운 것이었다.
 
정치인,언론, 대중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철저하게 확인하지 않는 풍토가 우려될 때, 우리는 손쉬운 해결책으로 사실 검증을 활성화할 수 있다. 허위 정보에 대한 해결책으로 정치인이나 미디어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를 찾아내 주장의 진위를 가려주는 균형 있고 공정한 정보만 한 게 어디 있겠는가?
 

현실은 훨씬 더 복잡하지만, “진실이 신발을 신을 때, 거짓말은 이미 지구 반 바퀴를 돌았다”라는 오랜 격언은 어느정도 현실을 반영한다. 지금까지 살핀 내용을 보면, 우리는 사실 검증팀이 정보를 꼼꼼히 모으고 제대로 된 글을 써서 신속히 공개해도 개소리를 쉽게 억제하기 어려운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테다. 개소리는 우리를 사로잡고, 우리의 신념을 강화하며, 남들과 공유하고 싶은 충동을 자극한다. 우리는 자신의 신념을 확증해주는 정보를 믿는 편이고, 사실에 근거한 기사보다 자극적인 기사에 더 솔깃한다. 우리는 사실 검증을 하더라도, 전부터 의심한 사실 정도만 확인하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항상 의심하고 습관처럼 사실을 확인해보는 사람은 드물다.
 
 
개소리는 만들긴 쉬워도 그에 맞서긴 어렵다. <가디언>의 미디어 편집자 재스퍼 잭슨Jasper Jackson은 “이 싸움은 비대칭 전쟁이라고 부를 만하다”라고 말했다. 언론 조직은 정보 유통에 절대적 지배력이 있는 만큼, 전쟁 포로의 인권을 규정한 국제협정인 제네바협약에 상응하는 보도 원칙에 제약을 받는다. 그렇지만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자들은 그런 제약이 없으므로 보도 절차에 따라야 한다는 부담이 전혀 없이 언론사들의 약점을 파고든다.
 

인터넷의 허위 정보와 싸우는 일은, 하나같이 빠르게 움직이는 여러 개의 과녁에 총을 겨누는 것과 같다. 


전부 거짓은 아니기에 더 위험한 나쁜 뉴스
<스놉스>를 만든 두 설립자 중 한 명인 데이비드 미컬슨David Mikkelson은 2016 미국 대선 결과가 나온 후 일주일 정도 지나 “우리에게는 가짜뉴스가 아니라 나쁜뉴스가 문제다”라는 논평을 올려 이 문제를 언급했다. “온라인 세상에는 나쁜 뉴스가 참 많지만 그 모두가 가짜는 아니다”라면서, <스놉스>가 대적하는 당황스러운 허위 정보를 열거했다. 진짜 뉴스를 가져다가 왜곡이 심한 낚시 기사로 둔갑시키는 당파적인 정치 사이트가 있다. 예전에 나온 뉴스를 마치 지금 떠도는 정보처럼 포장하는 사이트도 있다. 출처가 모호하고 의심스러운 기사들을 모아 놓은 사이트도 있다. 주로 건강과 과학 분야에서 말이다. 자기 딴에는 타당한 정보를 제공한다고 하나, 정보를 모으고 보도하는 과정에서 정확성이 매우 떨어지는 사이트도 있다. 이런 형태의 뉴스는 어떻게 보든 하나같이 나쁜 뉴스지만, 모든 정보를 가짜뉴스라고 한데 묶어버리면 가뜩이나 혼란스러운 이슈를 더 애매하게 만들어버린다. 
 

우리 모두는 이 생태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가 검토 없이 정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거나 검증하지도 않고 글이나 사진, 영상을 공유할 때마다 이 생태계에 잡음을 키우고 혼란을 부추긴다. 이 생태계가 너무 혼탁해진 만큼 우리는 온라인에서 접하는 정보를 독자적으로 확인해야 할 책임이 있다. 이는 사람들이 자신의 본능적 반응과 거리를 두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자신이 어떤 콘텐츠를 보고 불같이 화를 내거나 내 관점이 옳았음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며 우쭐거린다면, 다른 관점을 취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탈진실을 문제 삼을 때, 진실을 말하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대중과 권력자가 부쩍 늘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는 우리 모두와 관련한 문제다. 공직자윤리위원회가 공직자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대중에게 물은 적이 있다. 응답자들이 하원의원에게 기대하는 가장 중요한 덕목은 진실을 말하는 것이었다. 진실을 등한시하는 태도는 문제다. 나라를 통치하고자 한다면 진실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탈진실 방식으로 캠페인 활동은 가능했더라도 언제까지나 탈진실 방식으로 통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미디어 그리고 탈진실에 관해서는 서로 다른 담론이 맞선다. 우리는 사람들의 기존 신념을 자극하는 감정적 담론이 소셜 미디어에서 인기가 높고, 가장 많은 대중에게 전달되며, 대중의 믿음을 얻는 데 매우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앞서 짚었다. 이는 사실 검증 문화와 거의 대조적이다. 사실 검증은 공명정대하고 신중한 자세를 보이려 하고, 논쟁에서도 당파적 입장에 빠지지 않으려고 애쓴다. 그리고 우리는 가장 주목받은 사실 검증 기사조차, 이들이 대적하려는 가짜뉴스나 개소리보다 도달률이 훨씬 떨어진다는 사실도 알았다.
 

단 몇 초라도 생각하는 시간을 갖자. 개소리를 공유할 확률이 훨씬 낮아진다. 
내가 믿는 담론을 믿지 않는 담론만큼 의심해보자. 우리는 이런 편향에서 빠져나와 의심해야 한다. 우리가 지지하는 운동 조직이나 후보가 받는 비판도 믿어보려고 해야 한다. 다른 정치인이나 세력의 입장에서 기사를 읽어보고, 내 입장에 변화가 있는지 살피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런 시도는 쉽지 않다. 내 정치적 입장을 제쳐놓고 어떤 스캔들을 들여다보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그렇지만 이를 어떻게든 해내면 사실과 증거를 제대로 판단하는 능력이 향상된다. 그리고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왜 우리가 흘려듣는 스캔들에 흥분하는지, 반대로 상대방이 무시하는 스캔들에 왜 우리는 열띤 반응을 보이는지 알게 된다.
 

명확성은 민주주의의 토대다. 혼란은 독재자의 도구다. 저질 정보, 망상, 허위 정보는 민주주의를 손상시키고 정보 스모그를 만들어서 무엇이 사실이고 사실이 아닌지 합의하려는 시도를 소모적으로 만든다. 사회 전반에 이런 불확실성이 커지면 독재자와 전제군주, 선동꾼이 힘을 얻는다. 구소련 전문가들은 러시아의 정보 전략 목적이 정치 선전을 믿게 하는 것이 아니라, 분열과 불확실성을 낳아 푸틴이나 그 어젠다에 대항하는 효과적인 담론이 나오지 못하게 차단하는 것이었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탈진실 사회의 접근법은 독재자의 접근법이다. 소모적인 캠페인 때문에 정부와 사법기관, 미디어 등 각종 기관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고, 대중 사이에는 서로 충돌하는 담론이 떠돌 뿐이다. 이 싸움에서 승자는 감정을 자극하고 이목을 끄는 과감한 주장을 내세우는 쪽이다. 보통 그런 주장은 역사가 보여주듯 소수집단들을 악마로 몰아간다. 이런 접근법을 러시아만 쓴 것은 아니다. 조직적이고 악랄한 체제의 결정판인 나치독일의 핵심 전략도 혼돈과 혼란이었다.
 

우리는 나와 생각이 다른 상대에게 말을 건네기보다 나와 생각이 맞는 사람과 그들에 관해 이야기하며(혹은 호들갑을 떨며),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 관한 최악의 사실만 믿고, 그들을 악의적으로 표현한 정보를 주저 없이 받아들이고 공유한다. 
 
언제나 그렇듯 현실은 음모론보다 더 혼란스럽고 복잡하며, 확실한 증거가 나오려면 훨씬 오래 기다려야 한다. 탈진실 시대를 만화책에 나오는 악당이나 우리가 쉽게 무찌를 수 있는 적으로 취급하는 것은 이를 무수한 원인이 얽힌 복잡한 문제, 모두가 개입된 문제로 보는 쪽보다 훨씬 마음이 편할 것이다. 그렇지만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문제 해결에 나설 수 있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냉소적으로 대하거나 안 좋게 바라보려는 충동, 사실이었으면 하는 정보만 믿으려는 충동을 억눌러야 한다. 그리고 개소리보다 진짜 정보를 다뤘을 때 정치인과 미디어가 더 유익한 결실을 얻을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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