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 로맹 가리
세상의 모든 일에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을게다.
[본문발췌]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새들이 왜 먼바다의 섬들을 떠나 리마에서 북쪽으로 십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이 해변에 와서 죽는지 아무도 그에게 설명해주지 못했다. 새들은 더 남쪽도 더 북쪽도 아닌, 길이 삼 킬로미터의 바로 이 곳 좁은 모래사장 위에 떨어졌다. 새들에게는 이곳이 믿는 이들이 영혼을 반환하러 간다는 인도의 성지 바라나시 같은 곳일 수도 있었다. 새들은 진짜 비상을 위해 이곳으로 와서 자신들의 몸뚱이를 던져버리는 것일까. 피가 식기 시작해 이곳까지 날아올 힘밖에 남아 있지 않게 되면, 차갑고 헐벗은 바위뿐인 조분석 섬을 떠나 부드럽고 따뜻한 모래가 있는 이곳을 향해 곧장 날아오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런 설명들로 만족해야 하리라. 모든 것에는 항상 과학적인 설명이 있게 마련이다. 시에서 설명을 구할 수도 있고, 바다와 우정을 맺어 바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도, 자연의 신비를 줄곧 믿을 수도 있다. 조금 시적이고 조금 몽상적이지만…. 스페인 내전에서, 프랑스의 레지스탕스에서, 쿠바에서 전투를 치른 다음, 모든 것이 종말을 고하는 안데스 산맥 발치의 페루 해변으로 몸을 피한다. 마흔일곱이란 알아야 할 것은 모두 알아버린 나이, 고매한 명분이든 여자든 더이상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나이니까. 자연은 사람을 배신하는 일이 거의 없으므로, 다만 아름다운 자연에서 위안을 구할 뿐. 조금 시적이고 조금 몽상적이지만… 하지만 시도 언젠가는 과학적으로 설명되고, 단순한 생리적 분비 현상으로 연구되리라. 과학은 모든 면에서 인간을 제압하고 있다. 오직 바다만을 친구로 삼고, 페루 해변의 모래언덕 위에 있는 카페의 주인이 되는 데에도 설명이 있을 수 있다. 바다란 영생의 이미지, 궁극적인 위안과 내세의 약속이 아니던가? 조금 시적이긴 하지만… 영혼이 존재하지 않기를 바라야 할 터. 그것이야말로 영혼이 과학에 당하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니까. 머잖아 학자들은 영혼의 정확한 부피와 밀도와 비상 속도를 계산해낼 것이다. 유사 이래 하늘로 올라간 수많은 영혼들을 생각하면 울어 마땅하다. 얼마나 막대한 에너지원이 낭비된 것일까. 영혼이 승천하는 순간 그 에너지를 잡아둘 수 있는 댐을 건설했다면, 지구 전체를 밝힐 만한 에너지를 얻을 수도 있으리라. 머잖아 인간은 송두리째 활용되리라.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꿈들이 전쟁과 감옥을 만드는 데 이미 쓰이지 않았던가. 어떤 새들은 아직 모래 위에 앉아 있었다. 새로 도착한 새들이었다. 그들은 섬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먼바다의 섬들은 조분석으로 덮여 있었다. 가마우지 한 마리가 평생 만들어내는 조분석으로 같은 기간 동안 사람의 일가 전체를 먹여살릴 수 있으니 수지맞는 사업이다. 그렇게 지상에서의 임무를 마치고 새들은 이곳에 와서 죽는다.
아침이면 언제나 그렇듯이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놀란 눈길로 바라보면서. “이런 얼굴이 되고 싶진 않았는데!” 그는 희극적인 말투로 중얼거렸다. 희끗희끗한 머리카락과 주름들이 그 얼굴의 일이 년 후의 모습을 여실히 말해주고 있었다. 품위 있게 처신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을 터였다. 길고 여윈 얼굴에 피로한 눈빛과 애써 지은 냉소적인 미소가 어려 있었다. 그는 이제 아무에게도 편지를 쓰지 않았고, 누구에게서도 편지가 오지 않았으며, 친하게 지내는 사람도 없었다. 자기 자신과의 관계를 끊으려는 그 불가능한 일을 하려 할 때 사람들이 언제나 그러는 것처럼 그 역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끊어버렸던 것이다.
자신의 손안에서 모든 것이 부서지는 걸 목격하는 일에 습관이 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늘 이런 식이었으므로 속수무책이었다. 그의 내부에 있는 무언가가 체념을 거부하고 줄곧 희망이라는 미끼를 물고 싶어했다. 그는 삶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는, 황혼의 순간 문득 다가와 모든 것을 환하게 밝혀줄 그런 행복의 가능성을 은근히 믿고 있었다. 대책 없는 어리석음 같은 것이 그의 안에 자리잡고 있었다.
사람을 쓰러뜨리고 뒤엎고 바닥으로 내던졌다가, 두 팔을 뻗고 두 손을 들어올리고 물위로 다시 올라가, 지푸라기가 눈에 띄는 순간 매달릴 시간만 남겨놓고 놓아버리는, 먼바다에서 다가오는 강렬하기 짝이 없는 고독의 아홉번째 파도에, 그 누구도 극복할 수 없는 단 한 가지 유혹이 있다면 그것은 희망의 유혹일 것이다.
“이 새들이 모두 이렇게 죽어 있는 데에는” 하고 그는 말을 이었다. “이유가 있을 거요.”
<도대체 순수는 어디에>
세상은 다시 한번 나를 배신했다. 대도시에서든 태평양의 가장 작은 섬에서든, 천박하기 이를 데 없는 계산이 인간의 영혼을 더럽히고 있다. 순수에 대한 내 끈질긴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선 정말이지 무인도로 들어가 혼자 살아야 하는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