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눈에서 멀리 치워진다고, 분리수거와 재활용 제품을 찾아 소비한다고 쓰레기가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코로나19를 겪으며 배달음식 주문과 1회용품 사용이 늘어나며 얼마나 많은 플라스틱과 비닐, 쓰레기가 생겨났을까?
[본문발췌]
「프롤로그」, 당신이 '분리수거한' 플라스틱이 도착하는 곳, 민 카이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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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용은 인간이 자연 활동을 관찰하고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쭉 논의되어 왔다. 연금술사가 납을 금으로 바꾸려 했던 것처럼 버려진 물건과 재료는 거의 무한대로 가치 있는 물건, 심지어 은화로 가공할 수 있다는 원칙에 기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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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신화는 물질적인 동시에 사회적이고, 기술적인 동시에 문화적이다. 사회 속에서 인간관계의 변형만큼이나 재료의 변형에 대한 이야기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물건을 가치화하는 것은 재료의 수거와 가공에 가담하는 개인들의 가치화와 맥을 같이 한다. 마치 19세기 파리에서 넝마주이들이 쓰레기를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지원금으로 여겼던 것처럼 말이다.
「'플라스틱' 블랙박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사라진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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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주 바타유는 저서 <저주의 몫>에서 일반 경제가 생산한 에너지와 재료의 과잉을 정의하면서 인간 사회가 '소모'의 길을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렇게 축적된 쓰레기 속에는 실제로 저주의 양상이 있을 수 있다. 어쨌거나 물질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측면에서도 행복과 불행은 역사의 주역들에게 공평하게 분배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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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에 베트남 중앙 지역에서 목격한 재활용 쓰레기를 파는 여성의 모습은 나에게 '운명의 수레바퀴'를 떠오르게 했다. 가뜩이나 적은 그의 수입은 변동적인 시장 상황과 원재료 가격에 따라 달라진다. 권력 문제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기회의 불공평과, 누군가는 폐기할 때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처리해야 하는 실상의 불평등은 세계에서 작은 지역에 이르기까지 전방위로 퍼지며 갈등을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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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천적 쓰레기 분류'와 '환경을 위한 작은 실천'이라는 법령 속에서 개인의 사생활과 일상에 쓰레기 관리 문제가 정치적으로 끼어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세계적으로 불평등한 무역이 이뤄진다는 명백한 사실과 더불어, 아일랜드에서 출발한 더러운 종이 상자를 분리하는 베트남 농민의 두 손을 통해 드러난 것은 바로 정치적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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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비판도 공론화하지 못하는 현실의 억압된 측면을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표현하는 것을 존재하게 만드는 창조적 발언'이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관찰한다는 것은 나타낸다는 것과 동의어이므로 본다는 것은 곧 눈에 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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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래기의 은폐와 해외 이전이라는 쓰레기 관리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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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에 유럽 연합은 27,490,340톤의 쓰레기를 수출했다. 2004년 이후로 두배나 증가한 양인데, 주로 플라스틱, 종이, 종이 상자, 금속 등이다. 우리가 버린 쓰레기가 해상 수송으로 두 배나 더 먼 곳으로 이동하면서, 그 존재와 그에 따른 문제들도 멀어졌다. 그러나 일상적으로 소비하면서 버린 재료들이 우리 눈에서 멀리 치워진다하더라도 누 꾸인 지역에서는 더 잘 보이게 된다는 점은 변함이 없다. 먼 곳에서 화물선에 실려 하이퐁 항구에 도착한 쓰레기 컨테이너들은 이곳에 매일 하역되어, 쓰레기 더미 위에 중산층 집들이 들어서는 민 카이 마을에서 해체되고 분리되어 팔리고 재활용된다.
「쓰레기 패러독스」, 다시 태어났는데 또 쓰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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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 카이 마을에 있는 수공업 공장들의 재활용 라인을 한 단계 한 단계 훑으면 물질 부스러기는 광석으로 변한다. 인간과 기계의 힘이 작용한 여러 작업 단계를 거쳐 처음의 형태를 잃는다. 큰 보따리가 작은 보따리가 되고, 필름이 조각이 되며, 조각은 냉온탕을 지나 세척된 후 녹아서 떨어지고 섞인 다음, 용암이 되어 사출기를 밧줄처럼 빠져나가서 알갱이가 된다. 마치 산이 수많은 모래알로 침식되는 것처럼 고체와 액체 사이의 불분명한 이 재료의 성질은 향후 생산에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형태가 없어야 다시 형태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런 변형이 소멸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우리에게 관찰의 척도를 바꾸고 물질과 함께 지하세계로 뛰어들 것을 권한다. 이 세계에는 보고, 맛보고, 느끼고, 들을 줄 아는 사람들에게 특화된 형태와 색, 특성이 여전히 존재한다. 이는 날카로운 감각을 개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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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카이에 있는 가족 회사의 라인에서 온 광석은 극도로 제한된 판로를 갖는다. 대부분이 사출이나 팽창 과정을 통해 다시 플라스틱 봉투를 만드는 데 쓰인다. 그렇게 더러운 봉투가 깨끗한 봉지로 바뀌면서 돌고 돌아서 다시 원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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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염된 재료의 비중을 상쇄하기 위해서는 근원적 정화가 이뤄져야 한다. 보물로 둔갑하여 숨기려고 하는 것은 곧 '쇠퇴'라는 것을 잊지 말자. 형태만 바뀔 뿐 특성은 변하지 않는다. 플라스틱 가공을 할 때 색 배합에는 교훈이 숨어 있다. 근본을 숨기기 위해 변에 무엇을 섞어도 그 구린내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재활용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들」, 누군가는 진화하고 누군가는 퇴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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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이는 논 위로 왜가리가 날고 밤에는 개구리가 울어대는, 어떤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 과거 베트남 평야의 평화로운 풍경을 그와 함께 상상해 보려 했다. 그러나 이제 쓰레기, 오염, 공장, 도로 교통의 존재감이 워낙 뿌리 깊어서 이런 풍경을 돌이킬 수 없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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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진 쓰레기들이 햇빛에 썩어 가면서 뿜어내는 악취가 코끝을 자극하고, 귀에 들리는 소리라고는 끊임없이 돌아가는 모터와 기계의 소음뿐이다. 아마도 개구리는 여전히 거기 있을 것이다. 오염된 늪지에 숨어 있겠지만 소음이 점령한 이 풍경에서 개구리는 사라지고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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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용된 알갱이들을 생산하는 작업장에서는 플라스틱 입자가 둥둥 떠다니는 더러운 물을 흘려보낸다. 분쇄된 폴리머 쓰레기의 세척 수조에서 나오는 오수는 마을의 도랑이나 재활용 공장 주변의 공터로 흘러가 고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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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 대한 불신만 커진 것은 아니다. 항상 주위의 다른 것에는 오염물이나 독극물이 없는지 의심하게 되었다. 공동이 소유하고 공유하는 강은 일상생활의 전부이고, 지역의 특성을 나타내면서 공동체를 공들여 키워낸 존재이기도 하다. 베트남어 'nước'은 '물'과 '국가' 모두를 의미하는데, 이 점에서 우리는 오염된 물이 정체성 형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자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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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경험과 풍경 속에서 우리 삶의 방식은 플라스틱 재활용의 발전과 그에 따른 영향에 타격을 받는다. 더구나 그 영향들은 처음에는 인지할 수 없지만 환경, 인간관계 그리고 사물과 존재의 관계에 깊이 주입되어 있다. 마치 극빈곤층이 주로 잡는, 쓰레기를 먹으면서도 생존력이 강한 물고기 틸라피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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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향수 어린 쇠퇴론은 황금기와 손실을 암시하는 '과거에는 정말 좋았는가?'에 대한 담론이 기초되어야 하지만, 사실 누 꾸인 지역의 퇴화는 이미 뿌리 깊다. 매일 오염에 노출되다보니, 여러 발생원으로부터 시작되어 다양한 연쇄 관계로 묶인 유해 물질과 가까이, 더 나아가 위험 물질과 '섞여 사는 것'을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주변 유해 물질에 한 가지 원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원인들은 결합되었거나 얽혀서 혼합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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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가 있는 사물을 평가, 측정, 분류, 격리하는 현대 과학에서 이제는 구식이 된 용어를 다시 꺼내보자면, '미아즈마(Miasma)'(유행병의 원인을 나쁜 공기로 본 폐기된 학설)에 대해서 이야기해 볼 수 있다. 막스 리부아이론에 따르면 이 용어는 변화되기 쉽고 순회하는 잡다한 물질로, 플라스틱 가공제, 첨가제, 그리고 박테리아를 유발하는 플라스틱의 영향을 분석하는 데 적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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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 카이 마을과 가까운 이곳에서 플라스틱은 그 상태가 다양하고-플라스틱성-어디에나 존재해서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에 침투하기 때문에 주민들이 유독 물질에 반복적으로 노출된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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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와 땅, 그리고 강은 훼손됐고 동시에 삶도 변질됐다. 인간은 개인, 공동체 등 몸통을 구성하는 '화학적 관계의 범위를 인식'하고 환경과 다른 관계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 역사학자 미셸 머피의 '또 다른 삶(alterlife)'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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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대체적인 전망은 분명하지 않다. 시간의 화살은 더 많은 자원 개발, 물질 축적, 에너지 남용을 촉진시키고, 이러한 퇴화를 상쇄시키는 경제적 번영은 재활용 성공 모델을 가진 소수의 기업만 웃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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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것을 되돌리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열역학에서 말하는 엔트로피왁 같은 것이다. 패자들은 모두 운하 근처에서 탄식만 할 뿐이다. 승리하기 위해서는 과거를 미래로 가는 디딤돌로 삼아야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퇴화에 대한 거론은 꺼리면서 그들이 가져온 발전과 공로만을 이야기하곤 한다.
「돌고 돌아 다시 원점?」, 순환이라는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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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은 '야생'의 상태로 돌아가면 혹자가 '인류세'라 부르는, 즉 지구 생태계의 인간 발자국을 정의하는 미시, 중시, 거시적인 모든 측면에서 그 흔적을 남긴다. 빙하 코어부터 도심 나뭇가지에서 펄럭대는 비닐봉투를 거쳐 대양에 생겨난 플라스틱 섬까지, 플라스틱은 여기저기로 비집고 들어와 지금까지 끄떡없어 보였던 생태계의 균형을 깨뜨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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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연금술, 모든 것은 모든 것 안에 있다. 저마다 원리와 그 역을 가지고 있어서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타고 마르는 것은 비옥하게 하고 영양을 공급한다. 악취는 향수가 되고 썩은 것은 황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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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에는 악취가 나지 않는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22334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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