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과 외로움은 가끔 비슷한 의미로 혼동할 때가 있다.

철학자 폴 틸리히는 "'외로움loneliness'은 '홀로 있는 괴로움'을 표현하기 위한 단어인 반면 '고독solitude'은 '홀로 있는 영광'을 표현하기 위한 단어"라고 말했다.

문요한 작가는 <여행하는 인간>에서는 "물론 둘 다 홀로 있는 것이지만 '고독(solitude)'이 스스로 관계에서 물러나 자신을 벗 삼고 있는 시간이라면 '외로움(loneliness)'은 다른 사람과 단절되고 자신도 의지가 되지 않는 공허의 시간이다. 여행은 자신과 함께하는 고독의 시간이다."라고 했다. 고독의 삶의 긍정적 과정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겠지.

 

우리는 홀로 걷는 산책, 혼자 떠다는 여행 등을 통해 긴 고독의 시간을 갖거나 샤워기 아래에서 짧은 고독의 시간을 음미하기도 한다. 생각이 필요할 때, 우리는 고독을 찾는다. 내면의 시간을 보낸다.

 

 

고독, 孤獨

1.세상에 홀로 떨어져 있는 듯이 매우 외롭고 쓸쓸함. 고독을 느끼다

2.부모 없는 어린아이와 자식 없는 늙은이.

 

(네이버 영어사전) [명사] loneliness, solitude, [형용사] lonely, solitary, lonesome       

고독한 남자 a lonely[solitary] man

고독한 생활을 하다 lead[live] a lonely[solitary] life

고독한 생활을 하다 live in solitude

고독한 생활을 하다 live all alone

고독을 느끼다 feel lonely[alone]

고독에 빠지다 fall into loneliness

그들의 영광 뒤에는 많은 슬픔과 고독이 있다 Behind their glory lies much sorrow and loneliness.

 

 

 

[시, 글과 책 속에 쓰인 '고독'에 대한 다양한 표현들]

 

 

심보선 시집 『슬픔이 없는 십오 초』, 「구름과 안개의 곡예사」 중에서

 

나는 그저 고독한 아크로바트일 뿐

굳이 유파를 들먹이자면

마음의 거리에 자우룩한 구름과 안개의 모양을 탐구하는 '흐린 날씨'파

고독이란 자고로 오직 자신에게만 아름다워 보이는 기괴함이기에

타인들의 칭송과 멸시와 무관심에 연연치 않는다

즐거움과 슬픔만이 나의 도덕

사랑과 고백은 나의 금물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서는 결단코 침묵이다.

 

 

보후밀 흐라발, <너무 시끄러운 고독>

내가 혼자인 건 오로지 생각들로 조밀하게 채워진 고독 속에 살기 위해서다. 어찌 보면 나는 영원과 무한을 추구하는 돈키호테다.

 

 

문요한, <여행하는 인간>

여행은 본디 처음 출발한 곳으로 다시 돌아오는 귀환을 목적으로 한다. 그렇기에 떠나는 길과 돌아오는 길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방랑자는 돌아갈 곳이 없거나 돌아갈 마음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이들은 여행이 아니라 정처 없는 방랑을 한다. 여행자들은 홀로 떠난 여행 중에도 별로 외로워하지 않는다. 누군가와 심리적으로 연결돼 있으며 언제라도 여행을 끝내고 자신을 환영해 주는 누군가에게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고독의 시간을 즐긴다. 반면 방랑자들은 누군가와 연결돼 있다는 느낌이 없으며, 여행이 끝나도 자신을 진심으로 환영해 줄 그 누군가 혹은 그 어딘가가 없다. 당연히 방랑자는 여행 중에도 종종 외로움의 고통에 시달린다. 다만 환경이 낯설고 다른 여행자들과 어울리게 되면서 내면보다 외부로 의식이 옮겨 가기 때문에 외로움과 고통을 덜 느낄 뿐이다.

 

우리의 자아 경계는 여행을 할 때 느슨해진다. 여행은 자아 밖으로 우리를 이끌어 새로운 사람, 자연, 문화 등과의 연결을 만들어낸다. <체 게바라 어록>에는 왜 여행을 할 때 낯선 존재에게 먼저 다가갈 수 있게 되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 나온다. "낯선 존재에게 말을 거는 용기는 아마도 자연이 가르쳐준 것이리라. 자연의 존재들은 끊임없이 낯선 존재에게 말을 건넨다. 바람은 나뭇잎과 가지에게, 곤충은 꽃에게, 하늘은 땅에게, 모든 존재들은 나에게 말을 건넨다. 그런 자연에는 절대 고독이란 없다."

 

나는 지난 여행을 통해 고독과 외로움의 확연한 차이를 알게 되었다. 물론 둘 다 홀로 있는 것이지만 '고독(solitude)'이 스스로 관계에서 물러나 자신을 벗 삼고 있는 시간이라면 '외로움(loneliness)'은 다른 사람과 단절되고 자신도 의지가 되지 않는 공허의 시간이다. 여행은 자신과 함께하는 고독의 시간이다.

 

 

리칭즈, <여행의 속도>

도로 위의 여정은 인생의 축소판 같다. 길 위에서 사람은 누구나 혼자이고, 고독하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할까 생각해 본다. 길을 잘못 들어섰다 싶으면 과감하게 돌아 나와 자신이 진정으로 원했던 곳으로 향해 계속 나아가야 한다.

 

항해는 낭만적이지만 고독한 여행 방법이다. 현대인들은 때로 고독을 원한다. 아무도 없는 조용한 곳에서 자신의 내면과 마주할 시간과 공간을 필요로 한다. 항해는 혼란스러움을 가라앉히고 마음을 안정시킨다. 그래서 현대인들에게는 한 번쯤 시도해 볼만한 가치가 있는 여행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시대고독 - 박노해

 

한 시대의 악이

한 인물에 집중되어 있던 시절의 저항은

얼마나 괴롭고 행복한 시대였던가

 

한 시대의 악이

한 계급에 집약되어 있던 시절의 투쟁은

얼마나 힘겹고 다행인 시대였던가

 

고통의 뿌리가 환히 보여

선과 악이 자명하던 시절의 결단은

얼마나 슬프고 충만한 시대였던가

 

세계의 악이 공기처럼 떠다니는 시대

선악의 경계가 증발되어 버린 시대

더 나쁜 악과 덜 나쁜 악이 경쟁하는 시대

합법화된 민주화 시대의 저항은 얼마나 무기력한가

 

구조화된 삶의 고통이 전 지구에 걸쳐

정교한 시스템으로 일상에 연결되어 작동되는

이 ‘풍요로운 가난’의 시대에는

나 하나 지키는 것조차 얼마나 지난한 싸움인가

 

옳음도 거짓도 다수결로 작동되는 시대

진리는 누구의 말에서나 반짝이지만

그것을 살고 실천할 주체가 증발되어 버린 시대

혁명의 전위마저 씨가 말라가는

이 고독한 저항의 시대는

 

 

무라카미 하루키, <하루키의 여행법>

인간은 나이가 들면 그만큼 자꾸만 고독해져 간다. 모두가 그렇다. 그러나 어쩌면 그것은 잘못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어떤 의미에서 우리의 인생은 고독에 익숙해지기 위한 하나의 연속된 과정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희인, <여행의 문장들>

바다가 태양을 품으면 찬란함으로 가득하고, 낭만을 품으면 사랑으로 가득하고, 분노를 품으면 파괴로 가득하겠지만, 쓸쓸함을 품으면 얼마나 거대한 슬픔과 고독을 빚어내는지 알 것 같았다.

 

 

김화영, <행복의 충격>

여행이 우리에게 주는 경이, 공포, 그 철저하고 낭만적이지도 않은 고독감, 그 모두로 인하여 나의 영혼, 나의 몸속에 꺼지지 않는 것으로 확인되는 청춘을 '이동하는 집'의 주민들은 포기해 버린다. 이동식 행복, 이동식 안락의 공간을 끌고 다니는 월급쟁이들이 나는 무서웠다. 카라반의 집단이 반드시 어느 날 내 청춘의 불덩어리를 서서히 눌러 끄고 그들의 관광, 그들의 바캉스, 그들의 안락을 유형무형으로 나에게, 우리들에게 강요할 것이다, 라고 나는 생각하였다.

 

 

오쿠다 히데오, <남쪽으로 튀어>

지로, 전에도 말했지만 아버지를 따라하지 마라. 아버지는 약간 극단적이거든. 하지만 비겁한 어른은 되지 마. 제 이익으로만 살아가는 그런 사람은 되지 말라고. ... 이건 아니다 싶을 때는 철저히 싸워. 져도 좋으니까 싸워. 남하고 달라도 괜찮아. 고독을 두려워하지 마라. 이해해주는 사람은 반드시 있어.

 

 

나카무라 요시후미, <다시, 집을 순례하다>

"인간이 자기 자신과의 대면이 가능한 때는 고독과 함께하는 때뿐입니다."

 

 

윌리엄 파워스, <속도에서 깊이로>

20세기의 철학자 폴 틸리히는 '외로움loneliness'은 '홀로 있는 괴로움'을 표현하기 위한 단어인 반면 '고독solitude'은 '홀로 있는 영광'을 표현하기 위한 단어라고 말했다. 나는 대학 시절 두 가지 상태를 모두 경험했지만 기억에 남는 대부분의 기억은 고독에 관한 것이다. 나는 나이가 들수록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어느 정도 독립성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지만 동시에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도 실감하게 되었다. 사회는 군중이 없는 개인은 무가치하며 모든 것이 군중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세뇌시킨다. 그리고 개인과 군중 사이의 장애물을 끊임없이 제거하고 있다. 개인의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내세우는 나라의 시민들은 그러한 은밀한 메시지를 대수롭지 않게 여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유에 따르는 책임은 무거운 법이며 책임이 무거울수록 순응에 대한 매력도 커진다. 이를 알아챈 광고업자들은 군중 속의 개인들이 가진 개인주의적 감정을 일깨워 제품을 파는 방법을 익혀 왔다. 그들은 콜라부터 자동차까지 모든 제품이 자기표현과 자유를 위한 수단이라고 홍보한다. 물론 현실은 그 반대다.

 

내 오두막에는 3개의 의자가 있다. 하나는 고독을 위해, 다른 하나는 우정을 위해, 또 다른 하나는 세상을 위해서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

 

당신은 내가 인류에게서 멀어짐으로써 내 자신을 빈곤하게 만든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고독 속에서 나만을 위한 실을 지어 번데기를 만들고, 그 번데기에서 빠져나와 더 나은 사회에 알맞은 더 완벽한 창조물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

 

 

전규태, <단테처럼 여행하기>

고독은 우리 마음의 고향이다. 정신분석학자 칼 융은 "자기 주변에 사람이 없기 때문에 고독해지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매우 중요하다고 여기고 있는 것을 남에게 전할 수 없을 때, 또는 남에게 제대로 받아들여질 수 없는 어떤 관점을 지니고 있을 때 고독해진다."고 했다. "이럴 때면 익숙했던 곳을 떠나야 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고독감이란 자기 사고방식이 주변 사람들과 다를 때, 남의 사고방식이 납득되지 않을 때 느끼는 감정이며, 그런 때는 그런 주변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여행이란, 정착사회의 번거로움에서 스스로를 해방시켜보려는 욕구의 발로다. 여행이란, 안전한 일상생활과 다른 이질적인 세계로, 긴장을 내내 수반한다. 예컨대 편리한 환경에서 불편한 환경으로, 넉넉한 생활에서 모자라는 삶으로 스스로를 옮겨보는 과정인 것이다. 여행이란, 안전할 수도 있고 호사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여행자는 늘 자유분방해야 하며, 고독한 인간성의 회복을 위해 나서야만 한다. 여행이란, 여행자에게 있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경험이다. 자기 안의 '고독한 인간'을 만나는 즐거움이다. 스스로의 인생뿐 아니라 인류의 오랜 역사를 새삼스럽게 발견하는 놀라운 체험이다.

 

 

가오싱젠, <창작에 대하여>

고독은 차가운 정신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자기 자신을 깊이 성찰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며, 어려움을 극복하고 새로운 일을 개척할 수 있는 힘을 준다. "아이는 홀로 있을 때 어른이 되기 시작하고, 개인은 홀로 있을 때 성장한다."

 

아이는 고독감을 느끼며 어른이 되어갑니다. 개인은 고독 속에 있을 때 비로소 성장할 수 있습니다. 이런 고독감은 개인의 독립을 위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인격의 확립까지는 말할 수 없지만, 개인의 고독감이 사회의 조건을 형성하는 데 꽤 많이 기여하는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꼭 필요한 거리가 없으면 온종일 충돌이 일어납니다. 가정과 모임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이  함께 있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관용과 양해가 필요한데, 관용과 양해는 각자의 마음속에 충분한 공간이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고독은 개인의 자유에 필요한 최우선 조건입니다. 자유는 자유로운 사고에서 비롯되는데, 홀로 있을 때 비로소 자유로운 사고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옳고 그름, 찬성과 반대, 혁명과 반동, 진보와 보수, 정치적 올바름과 그릇됨이라는 이분법적 틀만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떤 선택을 할 때는 독립적인 사고의 여지를 남겨두고, 천천히 선택을 해도 됩니다. 특히 어떤 이념이나 사조, 유행, 열광이 밀려들 때는 고독만이 그 사람을 자유로울 수 있게 합니다.  미디어가 모든 시간을 장악해버린 이 소란스러운 세상에서 누군가 자기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자 한다면, 고독만이 그 사람을 지탱해줄 것입니다. 고독이 병통으로 흐르지만 않는다면 고독은 그 사람을 그 사람답게 하는데 꼭 필요합니다.

 

 

류시화,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소리 지를 때 더 고통받는 것은 상대방이 아니라 나 자신이다. 불붙은 석탄을 던지는 사람은 자신부터 화상을 입는다. 내가 사람들에게 화를 내면서 깨닫는 것은 그러한 행동이 나를 주위 세상으로부터 더 고립시킨다는 것이다. 혹시 우리는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멀어진 관계 속에서 소리를 지르고 있는 고독자가 아닐까.

 

 

김영하, <말하다>

잘 느끼자. 감성 근육을 키우자. 그리하여 함부로 침범당하지 않는 견고한 내면을 가진 고독한 개인들로서 서로를 존중하며 살아가자.

 

 

E. F. 슈마허 외, <자발적 가난>

자신의 삶을 단순화한다면, 우주의 법칙은 덜 복잡하게 보일 것이고, 고독은 고독이 아니요, 가난도 가난이 아니며, 약점도 더 이상 약점이 아니게 될 것이다. 왜 우리는 이토록 서둘러 성공하려고 애쓰며,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이토록 필사적인가? 사람이 이웃들과 같이 나아가지 못한다는 것은 그가 다른 북소리에 귀를 기울였다는 뜻이다. 그만이 듣는 소리를 멈추게 하자. 얼마나 크든,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든간에. - 헨리 데이빗 소로우, <월든>

 

 

코에케 류노스케, <생각 버리기 연습>

고독을 음미하고, 평온한 마음의 달콤함을 여유롭게 음미한다면, 홀로 자신의 마음과 대면해 보는 평온함을 알게 된다면, 이렇게 '고독'의 힘을 되찾아 상실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면, 당신안에 존재하는 부정적인 말이나 행동, 부정적인 감정은 모두 소멸될 것이다. 진리, 즉 마음의 인과법칙을 알게 되었다는 기분 좋음을 음미하면서. - <법구경> 205

 

고독한 자기 세계의 내면에 감추어진 문제를 직시하는 것은 당신 자신을 위한 것이다. 고독을 받아들이고 삭이지 않으면 세상을 공유하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그 결과 상대를 원하는 감정이 폭발하고, 더욱 외로워지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사람마다 각각의 우주가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1대 1의 인간으로써 접하면 어떻게될까. 부부일지라도 부모와 자식 간이라도 일정한 거리를 두고 신선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실은 세상은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아'라고 깨끗하게 정리함으로써, 다른 사람의 세계는 다른 사람의 세계로 존중할 우 있고, 서로 독립된 현명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야마구치 슈,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자유는 견디기 어려운 고독과 통렬한 책임을 동반한다.  - 에리히 프롬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백년의 고독>

고독이 그녀에게 추억을 걸러주고, 살아가면서 그녀의 가슴에 쌓였던 추억의 쓰레기들 가운데 둔감해진 부분을 불살라주고, 나머지 추억, 즉 가장 고통스러운 추억을 순화시켜 주고, 확대시켜 주고, 영원하게 만들어주었기 때문이었다.

 

 

정철, <한글자>

고孤, 사랑이 곁에 없으면 외로울 고. 고독. 사랑이 곁에 있으면 괴로울 고. 고통. 고독의 소원은 고통이 되는 것.

 

 

김연수, <청춘의 문장들+>

만유인력이란

서로를 끌어당기는 고독의 힘이다

 

우주는 일그러져 있다

따라서 모두는 서로를 원한다

- 다나카와 슌타로, <이십억 광년의 고독> 부분

 

기쁨은 노력하지 않아도 충분히 상상할 수 있지만, 그래서 아는 순간 바로 질투하고 시기할 수 있지만, 고통은 단 하나의 감각적 정보만 결여되어도 타인들은 그 고통을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고독이란, 그것도 이십억 광년의 고독이란 우리가 고통으로는 서로 연대할 수 없다는 사실에서 기인할 것입니다. 재앙은 우리를 가장 외롭고 연약한 사람들로 만듭니다.

 

 

김연수, <소설가의 일>

여기서 몇 번이고 강조하고 싶은 것은, 글을 쓰기 전에 소설가는 생각하지 않고 감각한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소설가는,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고독하다는 내용을 생각하고 소설을 쓰지 않는다는 말이다. 소설가가 쓸 수 있는 건 스물아홉 살의 미혼녀가 그해 크리스마스 저녁에 떨어지는 눈송이를 혼자서 바라보는 이야기 같은 것이다. 물론 그 이야기를 쓴 뒤에 교정할 때는 지금까지 자신의 독서 경험과 인생 체험과 논리적 사고를 이용해서, 단어와 표현을 좀더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고독하다는 쪽으로 바꿀 수는 있다. 하지만 그건 나중의 문제이고, 글을 쓰기 전에는 오로지 감각할 수 있는 것들로만 구성된 이야기뿐이다.

 

 

소노 아야코, <약간의 거리를 두다>

세상은 무책임하게도 겉모습만 그럴듯한 안정된 가정, 남들이 인정하는 영광된 자리를 차지해야 객관적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며 개인에게 그와 같은 행복을 강요한다. 내가 알기로는 '객관적 행복' 이란 있을 수 없는 개념이다. 지식과 기준이 넘쳐나는 세월을 살아간다고는 하나,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것은 행복의 개념을 만들어내는 힘은 각자에게 달리 주어졌다는 것이다. 이 고독한 길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마르셀 프루스트, <독서에 관하여>

책과 친구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지혜의 깊이가 아니라 우리가 그들과 소통하는 방법이다. 독서는 대화와는 다르게 혼자인 상태에서, 즉 고독한 상태에서 지적인 자극을 계속해서 즐기고 영혼이 활발히 활동하는 것을 유지시키게 한다면 대화는 그것을 즉각적으로 해산시키는 방법이다.

 

 

P. G. 해머튼, <지적 생활의 즐거움>

인생을 감동시키는 것은 사랑입니다. 내 마음을 사로잡고, 나를 어린아이처럼 들뜨게 만드는 것은 사랑입니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시대의 문명 속에서도 나는 사랑을 기다립니다. 지적 노동을 사랑하고, 그 노동에 뒤따르는 고통을 사랑하고, 고통의 아픔을 사랑하고, 고통의 아픔이 전해주는 진실을 사랑합니다. 사랑의 표현은 기다림이라고 말하겠습니다. 기다림은 고독이라고 말하겠습니다. 사랑은 그 고독을 기다리는 행위입니다. 기다리다 지쳐 거리를 헤매고, 잠을 이루지 못하고, 황무지 같은 들판을 찾아가 자학하듯 울음을 터뜨리고 스스로 양심을 무너뜨리고, 또다시 기다리는 것입니다. 어떤 이는 아픔이 있는 곳에 사랑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은 고통과 기다림에 대한 인내인 것입니다. 고통을 치르지 않은 사랑은 사랑이 아닌 것입니다. 기다림이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닌 것입니다. 내가 나를 기다리지 못한다는 것은, 내가 나의 고통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내가 나를 사랑하지 못했다는 증거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

고독을 좋아하는 인간이란 없어. 억지로 친구를 만들지 않을 뿐이지. 그런 짓을 해봐야 실망할 뿐이거든.

 

 

진중권, <미학 오디세이>

다빈치와 미켈란젤로.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이 두 사람은  예술 활동으로나 이론 활동으로나 모든 면에서 적대적이다. 다빈치가 회화를 가장 높이 평가했다면, 미켈란젤로에게는 조각이야말로 예술중의 예술이었다. 다빈치가 아리스토텔레스를 읽고 과학적 관찰과 실험에 관심이 있었다면, 미켈란젤로는 신플라톤주의의 신비주의에 기울어져 있었다. 다빈치가 자신을 합리적 규칙에 따라 작업하는 과학자라고 생각했다면, 미켈란젤로는 영감에 따라 작업하는 고독한 천재로 의식하고 있었다.

 

 

롤프 포츠, <여행의 기술>

세상에 살면서 세상의 의견을 좇아 살기란 어렵지 않다. 혼자 살면서 당신만의 결정에 따라 사는 것도 어렵지 않다. 하지만 진정으로 위대한 사람은 군중과 더불어 살면서도 고독이란 자존을 아름답게 지켜가는 사람이다. - 랠프 왈도 애머슨, <자존>

 

확 트인 고독한 세계, 아무런 목적도 없는 세계, 도덕의 굴레라곤 없이 순전히 모험만이 숨쉬는 세계로 달아날 필요가 있다. 삶의 칼날을 더욱 바짝 세우고, 역경이 무엇인지 맛보며, 한순간이라도 필사적으로 아무것에 매몰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 조지 산타야나, <여행의 철학>

 

 

카트린 지타, <내가 혼자 여행하는 이유>

대화가 인간의 지적 활동에 묘약인 것처럼 고독은 인간의 정신 활동에 묘약이다. - 에밀 시오랑

 

 

나루케 마코토, <교양고전>

리스먼은 <고독한 군중>에서 사회적 성격을 '전통 지향적', '내부 지향적', '타인 지향적'이라는 세 단계로 분류했다. 현대 사회는 타인 지향적 단계에 속하는데, 이는 출생률도 사망률도 저하된 고령화 사회로서, 사람들은 타인의 취미나 언동에 민감해져 항상 타인을 의식하면서 행동한다. 또 타인 지향적인 사람들은 정치적인 의견에는 흥미를 보이지만 적극적으로 정치에 관여하려 하지 않는다. 즉 정치적으로 무관심한 경향이 강하다고 분석했다. 고독한 군중이란 바로 이러한 현대 대중사회 구성원의 특이한 성격 유형으로서 항상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면서 그들로부터 떨어지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자유는 인간을 속박에서 구원하는 한편 고립과 무력감을 초래한다. 자유란 단순히 '구속으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다. 사실은 '고독'과 표리일체의 개념인 것이다. 고정화된 생각도 정반대 방향에서 바라보면 새로운 생각이 탄생한다. 자유를 추구하면서도 한편으로 지배당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모순. '나는 자유로운 사회에서 살고 있다'라고 믿고 있더라도 실상 직장 또는 정치제도나 사회규범 등 각종 권위 시스템에서 완전히 해방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시라토리 하루히코, <니체의 말>

진정한 자신을 찾기위해서 누군가를 바란다, 자신을 상대해 줄 친구를 절실히 바란다, 막연한 안도감을 찾아 누군가에게 의지한다. 왜 그런 것일까? 고독하기 때문이다. 왜 고독한 것일까? 자신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순간적인 친구를 아무리 많이, 그리고 폭넓게 가졌다고 해도 고독의 상처는 치유되지 않고 자신을 사랑할 수도 없다.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힘만으로 무엇인가에 온 노력을 쏟아야 한다. 자신의 다리로 높은 곳을 향해 걷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에는 분명 고통이 따른다. 그러나 그것은 마음의 근육을 단련시키는 고통이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이정우, <개념: 뿌리들>

개념이라는 존재는 홀로는 존재하지 않고, 어떤 개념이 있으면 반드시 그 개념은 연쇄반응을 일으키면서 다른 개념들을 불러옵니다. 개념들에는 어떤 울림이 있는 것이죠. '소외'의 경우, 이 개념은 '고독'과도 연결되고, '군중'과도 연결되고, '현대'라는 시대와도 연결되지요. 개념들은 이런 식으로 마치 연쇄반응을 일으키듯이 이어집니다. 하나의 개념은 자체와 연관되는 다른 개념들의 갈래(계열)을 응축하고 있습니다.

 

 

알랭 드 보통, <불안>

시인 제라르 드 네르발은 재능과 기질 때문에 부르주아 세계에는 어울릴 수 없었던 그의 세대의 예민한 동지들의 경험을 이렇게 요약했다. "야망은 이 시대에 속한 것이 아니다. ... 자리와 명예를 쫓는 탐욕스러운 경주에 질려 우리는 정치 활동의 영역으로부터 멀어져 간다. 우리에게는 시인의 상아탑만 남았는데, 우리는 이곳으로 점점 더 높이 올라가 군중으로부터 고립된다. 그 높은 고도에서 우리는 마침내 고독의 순수한 공기를 숨쉰다. 우리는 전설의 황금 컵으로 망각을 마셨다. 우리는 시와 사랑에 취했다."

 

 

버트런드 러셀, <행복의 정복>

눈앞의 이득만을 내다보는 태도를 초월하여 원대한 그리고 서서히 발전하는 목표를 가질 때, 당신은 한 사람의 고독한 존재가 아니라, 인류를 문명생활로 이끌어 가는 행렬의 일원이 되는 것이다. 이런 인생관을 갖고 살아갈 때, 당신은 인생의 어떤 길을 걸어가든 깊은 행복을 느낄 것이다. 인간이 삶을 영위한다는 것은 모든 시대의 위대한 것과 정신적인 교섭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한 개인의 죽음은 작은 사건에 불과하다.

 

 

고독하다는 것은 ㆍ 조병화

 

고독하다는 것은

아직도 나에게 소망이 남아 있다는 거다

소망이 남아있다는 것은

아직도 나에게 삶이 남아 있다는 거다

삶이 남아 있다는 것은

아직도 나에게 그리움이 남아 있다는 거다

그리움이 남아 있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

아직도 너를 가지고 있다는 거다

 

이렇게 저렇게 생각을 해보아도

어린 시절의 마당보다 좁은

이 세상 인간의 자리

부질없는 자리

 

가리울 곳 없는

회오리 들판

 

아 고독하다는 것은

아직도 나에게 소망이 남아 있다는 거요

소망이 남아 있다는 것은

아직도 나에게 삶이 남아 있다는 거요

삶이 남아 있다는 것은

아직도 나에게 그리움이 남아 있다는 거다

그리움이 남아 있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

아직도 너를 가지고 있다는 거다

 

 

임병희, <목수의 인문학>

함께하지 않고 나누지 않으면 쓸쓸해진다. 고독해진다.

 

 

장 그르니에, <섬>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서 도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 그것은 불가능한 일 - 자기 자신을 되찾기 위하여 여행한다고 할 수 있다. ... 그런데 그 <자기 인식 reconnaissance>이란 반드시 여행의 종착역에 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은 그 자기 인식이 이루어지고 나면 여행은 완성된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 탄생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통과해 가야 하는 저 엄청난 고독들 속에는 어떤 각별히 중요한 장소들과 순간들이 있다는 것이 사실이다. 그 장소, 그 순간에 우리가 바라본 어떤 고장의 풍경은, 마치 위대한 음악가가 평범한 악기를 탄주하여 그 악기의 위력을 자기 자신에게 문자 그대로 <계시하여> 보이듯이, 우리들 영혼을 뒤흔들어놓는다.

 

 

최갑수, <우리는 사랑 아니면 여행이겠지>

레몽 드파르동의 사진들은 "무엇을 바라보려면 고독해야 한다"라는 것을 실감하게 해준다. 이 말은 오랫동안 대상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오랫동안 생각해야 하며, 오랫동안 사랑해야 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을 '오랫동안' 해야 비로소 완전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완전한 것만이 고독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아직 마음에 드는 문장을 쓰지 못하고 마음에 드는 사진을 찍지 못한 것은 내가 충분히 고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경철, <문명의 배꼽, 그리스>

삶은 좌절이나 권태가 아닌 고독한 투쟁이며, 그 속에서 우리는 숙명지워진 존재가 아닌 온전히 실존하는 내가 된다는 뜻이다.

 

 

베르나르 올리비에, <나는 걷는다>

꿈을 꾸고 고독을 느끼며, 느릿느릿 달팽이처럼 걸은 보람이 조금씩 나타났다. 보람이라고 할 만한 것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나는 보람이라고 느꼈다. 지나쳐가는 풍경과 생각과 만남으로 이루어진 보람. 우리 사회를 뒤덮은 듯한 광기에서 벗어나려고 했던 것이 사실이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미친 듯이 빠른 속도로 달려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긴박하게 속도를 늦추어야 한다. 나는 생각의 속도로 살기를 바랄 뿐이다. 걷기는 소위 문명화되었다고 하는 우리 사회를 뒤덮고 있고 있는 죽음 - 사람들은 삶과 혼동하고 있다 - 의 달리기에 브레이크를 건다. 내가 느끼기에 우리 사회는 텔레비전이 내미는 일그러진 거울을 통해서만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베르나르 올리비에, <떠나든 머물든>

지옥의 모든 것이 이 단어 속에 있다, 고독. - 빅토르 위고

 

 

스티브 도나휴, <사막을 건너는 여섯가지 방법>

인생의 사막을 건너는 것은 고독과 외로움,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 것 사이에서 춤을 추는 것과 같다.

 

 

앙드레 말로, <인간의 조건>

남의 소리는 귀로 듣고, 자기 소리는 목구멍으로 듣는다. ... 그렇다. 자기 생명도 목구멍으로 듣는 것이다. 그렇지만 남의 생명은? 우선 무엇보다도 인간에게는 고독이 있다. 고독은 무수한 인간들의 배후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마치 희망과 증오로 충만된 활량한 도시를 뒤덮고 있는 이 깊은 밤의 배후에 커다란 원시의 밤이 존재하듯이...

 

 

류콴홍, <철학우화>

모든 사람에게 죽음은 자기 자신의 일일 뿐이며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고, 다른 사람에게 전해줄 수도 없어요. 사람이 죽음을 이해하게 되면 스스로 사람들과 구별되어 자기 존재의 의미, 즉 고독의 존재를 진정으로 깨닫게 됩니다.

 

 

윤태호, <미생>

'꿈이 뭔가?', 뜻이 향하는 것. '지향'. 어떤 것을 위해 무언가를 포기하게 되는 근거는 '지향'에 있다. 무엇인가가 되고 싶고 갖고 싶어 그것을 향하게 되고, 그러다 당장의 자신을 배반하는 선택을 하게 될 때도 있다. 지향하는 바를 위해 이렇게 저렇게 해도, 지향하는 대로 살기란 매우 어렵고, 지향하는 바를 성취했다 하더라도 회한과 깊은 고독에 빠진다. 지향은 곧 길이고, 그 길을 걸을 뿐인 누군가는 길의 끝에서 거울을 마주하게 된다. 그 거울에서 소박하게 만족한 미소를 띤 누군가가 서 있을 수도, 괴물이 되어 있는 자신을 만날 수도 있다.

 

 

파울로 코엘료, <아크라 문서>

고독 속에 놓일 때 마음이 무거워지는 사람들은 삶의 가장 중요한 순간에 우리는 늘 혼자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사랑이 신의 영역이듯, 고독은 인간의 영역이다. 삶의 경이를 이해하는 사람들에게 사랑과 고독은 평화롭게 공존하는 개념이다.

 

 

스티브 디거, <잠들기 전에 읽는 긍정의 한줄>

최악의 고독은 스스로에게 편하지 못한 것이다. - 마크 트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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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둘레길, 세 번째 코스는 돌오름길!

 

서귀포 자연휴양림을 기준으로 동쪽 방향 동백길, 서쪽 방향 돌오름길로 나뉘고 한라산 둘레길 코스 중 가장 짧은 구간으로 1100도로를 오가는 버스를 이용할 수 있어 다른 둘레길 코스에 비해 대중교통 접근성도 조금 나은 편이다.

 

돌오름길의 제멋대로 뻗은 커다란 나무들과 그 나무를 휘감고 있는 덩쿨들, 마른 내천 바위에 이끼, 짧지만 하늘을 덮은 검은 숲길 등등 한라산의 원시성을 느낄 수 있어 걸었던 세 군데 둘레길 코스 중 가장 좋아하는 산책길이다.

 

중간에 돌오름 올라가는 길은 조릿대가 허리 높이로 덮고 있는 곳들이 많고 다듬어지지 않아서 헤멜 수 있어서 조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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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익숙한 제주 올레길, 최근에는 한라산 둘레길을 찾는 사람들도 조금씩 늘어나는 것 같다.

한라산 둘레길은 해발 600~800미터의 국유림 일대를 둘러싸고 있는 일제강점기 병참로와 임도, 표고버섯 재배지 운동로 등을 활용하여 연결한 숲길로 사려니 숲길, 동백길, 돌오름길, 수악길, 천아숲길 등의 코스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 사려니 숲길은 절물오름 남쪽 비자림로에서 물찻오름을 지나 사려니오름까지 이어지는 15km의 숲길이다. 오래전부터 5.16도로에서 교래리로 넘어가는 비자림로 들머리에 절물휴양림 뒷길과 마주보는 사려니 숲길 들머리는 비자림로 도로 양 옆으로 쭉 뻗은 나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 위해 사람들이 많이 찾던 곳이다.

 

동백길이나 돌오름길에 비해 평탄하고 공원길을 걷는 느낌으로 나이든 어르신부터 아이까지 가족 모두가 함께 산책겸 걸을 수 있는 길이다.

 

대중교통 접근성이 좋지 않아 여행 동선과 숲길 들머리 중 가까운 곳에 주차를 하고 출발지로 되돌아오는 코스를 선택하거나 시외버스터미널이나 시청 앞에서 교래리행 버스를 타고 사려니숲길 입구에 내리거나 5.16도로 교래삼거리에 내려서 찾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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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는 360여개 오름이 있다고 하는데, 갯수도 많지만 각각의 오름의 특징이 각양각색이다.

오름에 대해 잘 아는 친구에게 추천을 받은 곳은 몇 군데 중 이번에는 앞오름과 용눈이 오름을 갑니다.

 

용눈이 오름은 2~3번 가 본 곳이지만 앞오름은 처음 갔는데, 오름 분화구 안에 나무들 모양이 특이하고, 주변의 경치도 빼어난 곳입니다.

용눈이 오름도 날씨 좋은 날은 한라산 방향으로 솟아 있는 백악이/동검은이/좌보/높은 오름들, 바로 옆에 마주복 있는 다랑쉬 오름, 바다쪽으로 멀리 성산일출봉 등을 볼 수 있는 전망이 좋은 오름이다.

 

오름은 대부분 높이도 낮지만, 오르는 길도 완만하고 올라가면 바람이 넘실넘실 불어 약간의 땀도 식히며 주변 풍광을 감상할 수 있다.

 

앞오름, https://goo.gl/maps/eLkSrQoLRxcubkoDA

용눈이오름, https://goo.gl/maps/KaVreZtDE8od86DZ6

제주의 화산 오름,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627585&cid=51955&categoryId=55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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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서편, 노을과 아름다운 일몰을 감상할 수 있는 장소가 많다.

 

그 중에 한 곳 영락리 노을 해안로, https://goo.gl/maps/1hevEftjZAmq3T4i8

이덕무 선생의 글이 어울리는 낙조! 

 

"아침노을은 진사(辰砂)처럼 붉고, 저녁노을은 석류꽃처럼 붉다" - 이덕무, <이목구심서2>

 

더불어 중산간까지 올라가지 않더라도 원시 자연의 모습을 간직한 숲길을 걸을 수 있는 곳 화순 곶자왈. , https://goo.gl/maps/M2jBZMtVYs3VhBxy6

 

우중 숲 산책을을 좋아하는데, 화순 곶자왈 우중 산책은 화산석 여기저기 초록이 선명한 이끼와 숲 바닥과 나무 사이사이 온 사방에서 풍겨나온 자연의 냄새, 비와 바람에 우수수 떨어져 만들어진 찔레 꽃길로 운치를 더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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