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 같은 것은 어디에도 없다는 걸. 다만 영웅을 찾는 사람들만이 있을 뿐. 결국엔 이러한 사람들의 이야기만이 남는다. 그렇다. 영웅담은 이런 식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사실 우리의 이야기다. 그는 애초에 떠났고, 우린 그를 찾아 여기까지 왔다. 우리 시대의 영웅일지도, 아닐지도 모르는 자를.' - <작품해설 중>에서
영웅은 이야기 속에 만들어진다.
[본문발췌]
나는 이 러시아인이 어쩌다 함께 살게 된 종족의 관습에 적응해 나가는 능력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정신적 특성이 비난받을 만한 것인지 칭찬받을 만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바로 이 점이 그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유연하다는 것, 그리고 명확한 상식을 지녔다는 것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여기에서 상식이란 악이 필요하다고 느껴지거나 그것을 없애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느껴질 때마다, 용서해 버리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사회적 인습으로부터 벗어나 자연으로 더 가까이 다가설 때에 그처럼 어린아이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습득해 온 모든 것들이 영혼으로부터 떨어져 나간다. 그러므로 영혼이란 과거의 한 때와도 같은 것이 되며, 미래의 어느 날에도 또다시 이러한 모습이 될 것이다.
만약 모든 사람들이 조금만 더 생각해 본다면, 삶이란 그다지 많은 걱정을 할 가치가 없음을 알게 될 것을....
"왜냐하면 일이란 건 그렇게 될 수 가 없는 거니까요. 평범치 않게 시작된 일은 반드시 평범치 않게 끝이 나죠."
아무리 악한 영혼이라 할지라도 한 사람의 영혼이 지나온 역사란, 온 나라의 역사만큼이나 흥미롭고도 유익한 것이다. 그것이 성숙한 마음의 견지에서 스스로를 관찰한 결과물이며, 동정심이나 놀라움을 불러일으키려는 야망 없이 쓰인 것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루소의 <고백록>은 그가 직접 이를 친구들에게 읽어 주었다는 점에서부터 진정한 고백일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이해할 수 있을 때 용서하는 것이다.
나는 모든 과거의 기억들을 훑어 보면서 나도 모르게 궁금해졌다. 나는 왜 살았을까? 무엇을 위해 태어난 걸까? 하지만 무엇이었건 간에 목적이 있었을 것이고, 나의 종착지 역시 높은 곳에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영혼 깊숙한 곳에서부터 무한한 힘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 종착지를 짐작할 수 없었고, 공허하고 배은망덕한 열정에 매료되어 왔다. 나는 호된 시련을 통해 강철처럼 딱딱하고 차가워졌지만, 고귀한 열망이 지닌 열기를 영원히 잃어버렸다. 인생에서 피어나는 최고의 꽃을 말이다. 그로부터 얼마나 무수히 운명의 손에 들린 도끼 역할을 했던가! 사형 집행인의 도구가 되어 불운한 희생자의 목으로 떨어졌던 것이다. 종종 아무런 원한도 없이, 늘 아무런 후회도 없이.... 내 사랑은 누구에게도 행복을 주지 못했다. 왜냐하면 난 사랑하는 이를 위해 그 무엇도 포기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나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만 기꺼이 사랑했다. 내 마음의 기괴한 욕구를 충족시켜왔을 뿐이다. 그것의 감정과 애정과 기쁨과 고통을 게걸스럽게 삼켜 버리면서.... 여기엔 끝이 없었다. 이는 마치 배고픔과 피로로 지친 사람이 잠이 들면 풍성한 음식들과 거품이 이는 포도주를 보게 되는 것과도 같다. 그는 공상이 준 이 천상의 선물을 기쁘게 먹어 치운 뒤에 흡족해하는 듯하다. 그러나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모든 환영은 사라지고.... 남은 것은 한층 더 배고픔과 절망뿐인 것을!
이 모든 일을 생각해볼 때, 과연 애써 산다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렇지만 모두들 살아가는 것이다. 호기심 때문이다. 계속해서 새로운 무엇인가를 기대하면서... 우습고 성가신 일이다!
내 기억 속의 과거는 얼마나 분명하고도 날카롭게 각인되어 있는가! 시간은 어느 한 개의 선, 어느 한 개의 얼룩조차 지워내지 못했다!
인생이라는 폭풍 속에서 저는 몇 가지 생각만을 해 왔습니다. 거기에는 어떤 감정조차 없었어요. 오래전부터 저는 가슴이 아니라 머리로 살아왔습니다. 저는 저 자신의 열정과 행동에 엄격한 호기심의 잣대를 들이대고 그것들의 무게를 달고 분석해 왔지만, 한 번도 그 속에 참여한 적은 없었어요. 제 속에는 두 명의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말 그대로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생각해서 그 사람을 판단하는 사람이었죠.
이런 게 사람이다! 사람들은 다 똑같다. 어떤 행동의 나쁜 점에 대해 이미 다 알면서도 당신을 돕고, 당신에게 충고하고, 심지어 그런 행동에 찬성하기까지 한다. 다른 방식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면서, 그러나 나중에는 발뺌을 하며, 모든 책임을 짊어질 용기가 있는 사람으로부터 분에 찬 모습으로 떠나 버린다. 사람들은 다 그렇다. 심지어 아주 선량하고 똑똑한 사람들까지도!
어떻게 자신이 무언가를 확신하고 있음에 대해 알 수 있겠는가? 그리고 얼마나 자주 우리는 지각의 속임수라든지 이성의 실수를 확신과 혼동하는가? 나는 모든 일을 의심하는 것을 좋아한다. 이러한 경향의 마음이 성격상의 단호함과 충돌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와 반대로 무엇이 나를 기다리는지 모를 때엔, 언제나 더 용감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 같다. 왜냐하면 죽음보다 나쁜 일은 일어날 수 없으며,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제가 바보인지 악당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저도 불쌍한 사람이라는 겁니다. 어쩌면 벨라보다도 더요. 제 영혼을 세상이 버려 놓아서, 불안한 공상과 탐욕스러운 마음만이 남았습니다. 제겐 무엇이든지 모자라요. 저는 즐거움 만큼이나 슬픔에도 쉽사리 길들여지고, 제 삶은 날마다 더더욱 공허해지는 겁니다. 이런 저에게 남은 유일한 처방이라면, 여행을 떠나는 것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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