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空'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9.10.23 [검색사전] 여백(餘白) / 空

동양 미술에서 '여백의 美'는 대상의 형체보다는 그것이 담고 있는 내용을 표현하기 위한 방법 중의 하나라고 한다.

구체적 표현의 한계를 극복하고 상상력과 마음의 소통을 여백으로 전달한다고 해야 할까?

 

불교에서 '空'은 존재의 시작과 끝, 수양으로 다다를 지향점으로 이야기 하기도 한다. 점과 점을 선으로 연결하듯, 삶은 '空'에서 태어나 죽어 '空'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선으로 연결한다는 것이겠지.

 

 

 

여백 (餘白) [명사] 종이 따위에,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고 남은 빈 자리.

[비슷한 말] 공백, 빈자리, 공란

 

(네이버 영어사전) blank (space); (페이지 양 옆의 빈 칸) margin      

책의 여백마다 메모가 가득 적혀 있었다 Every blank space in the book was filled with jottings.

마이크로소프트 워드에서 여백 설정 메뉴가 어디 있지요? In Microsoft Word, where's the menu for setting margins?

문단 사이에 여백을 좀 더 주는 것이 좋겠다 It would be better if you leave a little more space between the paragraphs.

그는 교과서의 여백에 중요한 내용을 적어 두었다 He made notes of important points in the margins of his textbooks.

동양화에는 여백의 미가 있다 Oriental paintings have beauty of space.

 

 

[시, 글과 책 속에 쓰인 '여백'에 대한 다양한 표현들]

 

 

알렉산더 폰 쇤 부르크,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법>

편안함은 비좁음을, 우아함은 공간의 여백을 사랑한다.

 

 

마셜 매클루언, <미디어의 이해>

시각적으로 조직화된 서양에서처럼 연결에 의해서가 아니라, 선禪의 미술과 시는 사이와 틈을 통해서 참여를 창조해 낸다. 동양 예술에서 관람자는, 스스로가 작품 속의 여백을 메워야만 하기 때문에 작가가 되어 버린다.

 

 

이정우, <개념: 뿌리들>

깨어 있는 다중의 끝없는 저항만이 우리 삶에 숨쉴 수 있는 여백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이기주, <글의 품격>

여백 가장 본질적인 재료

  • 소중한 사람의 빈자리는 아무것도 없는 무無의 공간이 아니다. 쓰라린 사연이 블랙홀처럼 모든 걸 송두리째 삼켜버린 상태다. 이는 공백이 아닌 여백이다. 공백과 여백은 엄연히 다르다. 공백은 애당초 아무것도 채워지지 않은 공간이므로 공란과 비슷한 반면, 여백은 곁에 머물던 무언가가 빠져나간 후 채 가시지 않은 여운에 가깝다. 여백은 존재가 아닌 부재不在의 결과다. 만나고 헤어져야, 다가왔다가 멀어져야, 소유하던 것을 잃어버려야 여백에 닿을 수 있다. 때론 눈물이라는 열쇠로만 우린 '여백이 문'을 열 수 있다.

  • "난 공기를 그리는 사람입니다. 예전에는 복잡한 그림을 그리려고 애썼지만, 이젠 여백을 많이 남기면서 단순하게 표현합니다. 고수의 동작은 단순해야 해요. 솜씨를 죽일 줄 아는 사람이 진정한 고수입니다." - 수묵화가 김호득의 한 언론 인터뷰 中

  • 글도 그림도 힘을 빼고 여백을 만들어야 지면과 화폭에서 불필요한 요소를 밖으로 밀어내고 본질에 집중할 수 있다. 어쩌면 글쓰기의 가장 본질적인 재료는 문장이 아니라 여백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문장을 다 채우기보다 적절하게 비워내고 그 비움의 파편들을 모아서 크기와 높이를 쉽게 가늠할 수 없는 여백의 공간을 지을 때, 문장과 문장 사이로 햇빛과 바람을 불러들일 수 있고 글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다. 우린 펜이 아니라 여백을 쥐고 글을 쓰는지 모른다. 빽빽한 활자 사이사이에 삶의 희로애락이 깃든 각자의 공간을 새겨 넣기 위하여....

 

글쓰기 노하우는 기술보다 습관에 가깝다. 때론 내가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내 습관이 글을 쓰는 건지 모른다. 습관이 스스로 미끄러지고 번지면서 내 삶의 여백을 진하게 물들이는지도 모를 일이다.

 

글을 써나가는 과정에서 작가가 내리는 무수한 판단과 선택,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등이 텅 빈 여백에 점點처럼 찍히고, 그 점들이 모여 일정한 방향의 선線으로 그어질 때 문장마다 고유한 개성이 입혀진다. 그때 비로소 작가의 문체가 솟아난다.

 

 

윌리엄 파워스, <속도에서 깊이로>

디지털 기술을 대하는 지금의 사고방식, 즉 네트워크는 절대 끊어지지 말아야 한다는 근거 없는 믿음은 시간의 공백이 가진 중요성을 완전히 간과하고 있다.... 시간의 공백은 디지털 도구를 실용적인 도구에서 창조성, 깊이, 초월성의 도구로 만드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 시간의 공백은 사람들을 줄 서게 만든 마법의 핵심이다. 시간의 공백 덕분에 나는 지극히 평범한 경험을 통해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디지털 도구를 사용하는 모든 일이 마찬가지다. 시간의 공백이 없다면 가치 있는 경험도 없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는 공백을 만들기는커녕 점점 더 없애고 있다.

 

디지털 업무 사이의 공백이 사라지면 깊이의 기회도 사라진다. 갈수록 바빠지고 깊이가 사라지는 스크린 중심의 삶은 정신의 교통 정체와 같다. 또한 내 자신도 주변 사람들도 돌보기 힘들어진다. 

 

어떤 일을 하던 한발 물러나 재충전하고 일상의 균형을 되찾을 시간이 정기적으로 필요하다. 디지털 세상에서 이러한 공백의 필요성은 어느 때보다 더 중요해졌다. 하지만 공백을 창조하기는 쉽지 않다.

 

 

이기주, <언어의 온도>

기다림은 무엇인가. 어쩌면 기다림은, 희망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기다린다는 것은 마음속에 어떤 바람과 기대를 품은 채 덤덤하게 혹은 바지런히 무언가를 준비하는 일이다. 누군가의 연락을 기다릴 때, 만남과 결과를 기다리는 순간에도 우린 가슴 설레는 상황에 빠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어쩌면 구체적인 대상이나 특정한 상대를 능동적으로 기다린다는 것은, 우리가 살아 있다는 증거인지도 모른다. 기다림은 그런 것이다. 몸은 가만히 있더라도 마음만큼은 미래를 향해 뜀박질하는 일. 그렇게 희망이라는 재료를 통해 시간의 공백을 하나하나 메워나가는 과정이 기다림이다. 그리고 때론 그 공백을 채워야만 오는 게 있다. 기다려야만 만날 수 있는 것이 있다.

 

종종 공백이란 게 필요하다. 정말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 무언가 소중한 걸 잊고 산다는 느낌이 지울 수 없을 때 우린 마침표 대신 쉼표를 찍어야 한다. 공백을 갖는다는 건 스스로 멈출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제 힘으로 멈출 수 있는 사람이라면 홀로 나아가는 것도 가능하리라. 그러니 가끔은 멈춰야 한다. 억지로 끌려가는 삶이 힘겨울수록, 누군가에게 얹혀가는 삶이 버거울수록 우린 더욱 그래야 하는지 모른다.

 

 

이기주, <한때 소중했던 것들>

인생에서 뭔가 선택한다는 것은 몇 가지 선택지 가운데 하나를 골라 뽑는 행동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진정한 선택은 선택하지 않은 것에 한 점 미련을 두지 않고 내가 선택한 것에 최대한 집중하는 일련의 과정이 아닐까 싶다. 선택은 삶의 여백에 한 번 찍고 마는 점點이 아니라 일정한 방향으로 힘을 주어 긋는 선線에 가깝다. 다만 선택이라는 선을 그려나갈 때 나침반 역할을 하는 근거와 이유는 그리 정교하거나 또렷하지 않은 듯하다. 우린 종종 "합당한 이유로 선택한 거야"라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시간이 흐른 뒤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해보면 별다른 이유가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구체적인 이유 없이 결심을 하면 결심 뒤에 적절한 이유가 뒤따라오거나 빚어지기도 한다. 심지어 어떤 선택을 하는 과정에서 그 선택에 집중하기보다 나름의 이유를 더 열심히 찾는 경우도 있다. 훗날 자신의 선택을 합리화하기 위해, 혹은 변명과 핑곗거리를 미리 마련해놓기 위해...

 

 

빈센트 반 고흐, <영혼의 편지>

캔버스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도 무한하게 비어 있는 여백, 우리를 낙심케 하며 가슴을 찢어놓을 듯 텅 빈 여백을 우리 앞으로 돌려놓는다. 그것도 영원히! 텅 빈 캔버스 위에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삶이 우리 앞에 제시하는 여백에는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는다. 삶이 아무리 공허하고 보잘것없어 보이더라도, 아무리 무의미해 보이더라도, 확신과 힘과 열정을 가진 사람은 진리를 알고 있어서 쉽게 패배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난관에 맞서고, 일을 하고, 앞으로 나아간다. 간단히 말해, 그는 저항하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이덕무, <문장의 온도>

봄비는 윤택해 풀의 싹이 돋는다. 가을 서리는 엄숙해 나무 두드리는 소리에 낙엽이 진다. - <선귤당농소>, 극도로 절제된 표현과 간략한 묘사는 어떤 글보다 강한 여운과 여백의 미를 준다.

 

 

프리초프 카프라, <현대 물리학과 동양사상>

선(禪)의 영향을 받은 중국과 일본의 회화는 소위 '여백(餘白, onecorner)' 양식이라 불리는 방법으로 자주 그려졌다. 또한 일본 정원에 불규칙적으로 배열된 부석(敷石)은 극동 문화의 이런 면을 잘 보여 주고 있다.

 

 

그리움 ㆍ 신달자

 

내 몸에 마지막 피 한 방울

마음의 여백까지 있는 대로

휘몰아 너에게로 마구잡이로

쏟아져 흘러가는

이 난감한

생명 이동

 

 

강판권, <나무 철학>

나무는 잎을 버린 뒤에야 여유를 찾는다. 잎을 달고 있을 때는 풍요롭지만 여유가 없다. 인간도 몸이 가벼워진 뒤라야 여유로울 수 있다. 여유는 비어 있는 여백과 같다. 나무가 잎을 떨어뜨리면 가지와 가지 사이에 여백이 생긴다. 겨울나무는 사람들이 겨울에 옷을 껴입고 움츠리는 것과 달리 옷을 입지 않고도 힘차게 생동한다. 여유가 있어야 자유롭다. 잎 떨어진 나무는 절대 자유 그 자체다. 충만한 기운으로 가득 찬 겨울나무의 모습은 인간이 가야 할 길을 안내하는 나침반이다.

 

 

웬델 베리, <생활의 조건>

우리는 단일 작물만 심어진 광대한 밭에서 자연의 힘이 쇠약해져가고 있음을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로 단일 부류만을 염두에 두어 획일적으로 개발되는 주택지를 보면서도 인간생활의 토대가 탄탄치 못함을 걱정한다. 산업문명이 가져온 획일적 문화에 젖은 우리는 마치 향수병에 걸린 것처럼 수많은 여백과 다양성을 가진 다목적 풍경이 보여주는 인간성과 자연성을 열망한다. 여백이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이는 작업의 종류와 땅의 종류뿐만 아니라 부지를 나누기도 한다. 산울타리 사이의 좁은 길, 강가, 나무가 늘어선 울타리 등등의 여백들은 항상 야생이 소유했으되 인간의 의도에 따라 그 범위가 설정되는 것들이다. 이런 장소들은 동식물과 같은 야생의 생물들뿐만 아니라 인간의 아이들이 야외에서 뛰어놀기에도 더없이 좋다. 이런 여백의 장소들로 인해서 인간과 야생 쌍방은 서로의 경계를 보다 더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다. 이는 단일 재배의 풍경이 아니라 모든 종류의 생명들에게 보다 안전한 조화의 풍경인 것이다. 우리는 단일 문화의 풍경이 획일적이고 전체주의적인 반면에 조화의 풍경은 민주적이고 자유롭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문영미, <디퍼런트>

희귀한 가치의 제안 : 풍요와 과잉이 세상에서 여백과 침묵의 가치를 제안

 

 

미야모토 테루, <금수>

사랑은 환상이다. 모르는 게 많아야 환상은 유지된다. 현실이 개입하면 환상은 힘을 잃고 사랑은 희미해진다. 그러므로 서로 알아 가는 과정, 곧 사랑을 만들어 가는 과정은 사랑을 잃어 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랑하게 되면 그를 알고 싶어진다. 모르면 내 세계 안에 그를 규정할 수  없고, 규정할 수 없으면 불안하기 때문이다. 알아간다는 것은 내 세계 안에 그의 좌표를 그려 넣는 일이다. 불안하지 않으려면 그를 내 세계 안의 어떤 좌표로규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안심할 수 있으나 환상은 깨지고 사랑은 멀어진다. 즉, 알아 간다는 것은 그의 공백 부분을 채워가는 과정인데, 다 채워지면 안정된 관계는 유지되지만 낭만적 사랑은 떠나가는 것이다. 이렇듯 안다는 것과 사랑은 이율 배반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낭만적 사랑이 떠나간 자리에는 편안함과 안정된 기억이 남는다. 이제 그 기억만으로 살아가야 한다. - <옮긴이 후기> 중

 

 

문요한, <여행하는 인간>

여행이 끝나고 일상으로 복귀하면 우리는 여행의 속도를 유지할 수 없다. 흔히 삶의 속도를 가속시킨다. 여행을 다녀오느라 비워뒀던 공백을 메워야 하기 때문이다.

 

 

한 줄의 글자와 공백으로 구성되는 시구는 인간이 삶을 흡수하고 명확한 말을 되찾아내는 이중의 작용을 한다. 《P.클로델/입장(立場)과 제언(提言)》

 

 

반응형
Posted by 소요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