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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11.25 잃어버린 여행가방 - 박완서

곽재구  시인의 <포구기행>에 '짧은 길을 긴 시간을 들여 여행한 사람은 경험상 행복한 사람입니다.'라는 문장이 있다. 여행에서 스쳐지나가는 시간과 공간들을 슬로모션으로 세심하게 들여다보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낀다는 표현이겠지.  

 

삶이라는 여행도 게으른 걸음처럼 느릿느릿 살피고, 주변을 감상하며 살아갈 때 가치있는 시간을 보냈다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본문 발췌]

 

내가 지금까지 해온 여행은 과정을 무시한 목적지 위주의 여행이었다. 그게 얼마나 바보 여행이었던가를 알 것 같았다. 어디를 가기로 정하면 먼저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갈 수 있는 교통편을 강구하고, 가면서 통과하게 되는 고속도로나 국도변의 풍경은 가능한 빨리 스치는 게 수였다. 공업화, 산업화, 관광지화를 꿈꾸거나 이미 이룩한 지방들은 자연도 인심도 도시의 변두리일 뿐 순전한 시골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휴가라는 명목으로 여행을 갔다 오면 더욱이 피곤하고 짜증스러워지는 것은 관광 인파와의 부대낌 때문만은 아니다. 가도 가도, 심지어 산간벽지까지도 골고루 걸레처럼 널려 있는 문명의 쓰레기와 상업주의 때문에 이 땅에서 도시적인 것으로부터 벗어나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식한 어쩔 수 없는 결과였을 것이다. - 남도기행

 

모든 것은 돌고 돈다. 가장 앞서갔다고 생각되는 게 가장 처진 게 될 수도 있다. 지금 가장 낙후된 고장처럼 보이는 것이 가장 앞선 희망의 땅이 될 수도 있다.

 

풍성하게 쌓인 낙엽을 밟는 맛은 보는 맛 못지않았으며, 젖은 낙엽이 풍기는 냄새는 특이했다. 꽃내음도 아닌, 코끝과 정감을 동시에 건드리는 은은하고도 격조 높은 향기였다. 나는 그 향기를 기억하기 위해 깊이깊이 들이마셨고, 옷자락에도 스미라고 일부러 오래 이슬비 속에 서 있기도 했다.

 

나는 라다크 사람들이 그처럼 험난한 환경에서 어떻게 하여 생존해 가고 있는지를 배우기 시작했다. 나는 또한 '검소'라는 낱말의 의미를 배우기 시작했다.  서양에서는 '검소'라고 하면 늙은 아주머니와 자물쇠가 잠긴 광 같은 이미지를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라다크에서 보는 검소함이라는 것은 사람들이 번영을 누리고 사는 데 근원이다. 제한된 자원을 주의깊게 이용한다는 것은 인색함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검소함은 적은 것에서 많은 것을 얻어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라다크 체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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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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