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기술의 발전과 산업화로 과거 어느 시대보다 편리함과 풍요의 세계에 살고 정보통신 기술의 혜택으로 손가락 하나로 원하는 지식을 얻는다. 과거에는 모든 것을 스스로 하고 얻어야 했다면, 현재는 많은 것들이 전문화, 분업화 되면서 서로서로 의존하는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러면서 삶의 가치와 모습도 돈과 권력을 얻기 위한 삶의 모델을 닮아가기 위해 애쓰고 있지는 않은지?
각자 스스로 삶의 가치와 방향, 삶의 모습을 정하고 주체적 다양성을 추구하는 삶을 위해서 생각이 필요하다.
많은 것들을 외부에 의존하더라도 생각마저 외부에 아웃소싱 해서는 안 된다. 저자는 생각하는 삶을 위해 생각의 은유, 원리, 문장, 수, 그리고 수사라는 생각의 도구가 무엇이고 어떻게 사용되어왔고, 활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 한다.
아이를 기르는 부모들이 읽어보면 좋을 만한 책이다.
본문의 내용 중 와 닿는 글 귀들을 발췌해 옮겨 적는다.
모든 생물은 범주화해야 한다. 심지어 아메바도 자기와 마주치는 것들을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으로, 또는 다가가야 할 대상과 멀리 떨어져야 할 대상으로 범주화한다. 아메바는 범주화의 여부를 선택할 수 없으며 단지 범주화할 뿐이다. 이것이 동물계의 모든 층위에 적용된다. 동물들은 음식, 약탈자, 가능한 짝, 자신들에 소속된 동물 등을 범주화한다. 동물들이 범주화하는 방식은 자신들의 감각기관과 이동능력 및 대상 조작능력에 의존한다. 그러므로 범주화는 우리가 신체화되어 있는 방식의 한 결과다. 우리는 범주화하도록 진화되어왔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는 생존할 수 없었을 것이다. - 조지 레이코프, 마크 존슨, <몸의 철학>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는가>의 저자인 질 포코니에와 마크 터너 같은 인지과학자들에 의하면, 우리가 컴퓨터에게 지각적 범주화를 하게 하는 일(컴퓨터공학자들은 이 작업을 패턴인식이라고 한다)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왜 1세 남짓한 아이도 쉽게 할 수 있는 일을 컴퓨터로는 하기 어렵다는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컴퓨터는 범주화의 기준을 유사성similarity이 아니라 동일성sameness으로 삼기 때문이다.
창의성은 오늘날 이미 우리의 경제와 사회를 움직이는 거대한 능력으로 부각되고 있고, 앞으로 점점 더 막강한 권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교육에서 창의성이 중요시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서로 다른 사물이나 사건들의 유사성(동일성이 아니다!)을 재빨리 간파하는 능력이 창의성을 기르는 데 다른 무엇보다도 탁월한 효과가 있다. 따라서 학습을 통해 은유라는 생각의 도구를 능숙하게 다루도록 하는 일은 어른 아이 가릴 것 없이 누구에게나 매우 중요하다.
아이들이 만드는 은유는 때로는 천재적이고 또 때로는 부적절하기도 하지만, 아이들은 정말이지 쉴 새 없이 개념들을 연결하고 섞어 은유를 만들어 말하거나 논다. ... 그러다 6세 이후부터 학교에 다니면서 점차 부적절하거나 불합리한 은유를 순화해가는데, 그러면서 은유의 사용도 함께 줄어든다. 왜 그럴까? 그 주된 이유는 나이가 들면서 은유능력이 점차 떨어진다는 데 있다. 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유사성이 아니라 동일성을 기반으로 하는 교육에 의해 아이들이 점차 길들여지기 때문이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지 않고 단지 검색엔진을 돌려 찾아낸 정보와 지식에 의존해 살지 않을까 우려한다. '그게 어때서?'라고 물을 수 있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 그 이유는 정보와 지식은 어디서든 전송 받을 수 있지만, 진실과 지혜는 아무 데서도 전송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또 개별적이고 미시적이며 합목적적인 정보와 지식은 검색할 수 있지만, 보편적이고 거시적이며 합리적인 전망과 판단은 검색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의 삶에 진정 필요한 것은 매 순간, 현장에서, 오직 자기 자신에 의해 드러나는 진실과 지혜이고, 우리 사회에 필히 요구되는 것은 보편적이고 거시적이며 합리적인 전망과 판단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것들은 우리의 손에 든 뇌가 아니라, 오직 머리 안에 든 뇌에서만 생성되기 때문이다.
우리와 우리의 아이들은 이제, 학자, 전문가, 지도자들이 만들어서 도서관, 강의실, 영화관, 음악당에 쌓아놓은 정보와 지식들을 손에 든 뇌 안에 넣어가지고 다니면 된다. 그리고 머릿속에 든 뇌에는 그것들을 꺼내어 새로운 전망과 판단, 그리고 이에 합당한 지식을 만들어낼 생각의 도구들을 넣어가지고 다니면 된다. 본문에서 살펴본 은유, 원리, 문장, 수, 그리고 수사를 말이다. 이것들은 부드럽고 유연하고 포용적이고 설득적이다. 또 유능하고 창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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