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인생에서 자주 두 갈래 길에 마주선다. 미래에 펼쳐질 상황을 예측할 수 없는 경우 상상력이 그려낸 두려움이 선택을 어렵게한다.
[본문발췌]
남의 의견은 들어주되 판단은 삼가라... (플로니어스)
이 가슴속에 간직하고 자물쇠를 잠갔으니, 열쇠는 오빠가 맡으세요. (오필리어)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가혹한 운명의 화살을 참아내는 것이 중요한가, 아니면 고통의 물결을 두 손으로 막아 이를 조절하는 것이 중요한가? 죽는 건 잠드는 것, 그뿐이다. 잠들면 모든 것이 끝난다. 마음의 번뇌도 육체가 받는 온갖 고통도, 그렇다면 죽고 잠드는 것, 이것이야말로 열렬히 찾아야 할 삶의 극치가 아니겠는가? 잠들면 꿈도 꾸겠지. 아, 여기서 걸리는 구나. .... 죽은 뒤의 그 어떤 두려움과 한 번 가면 영영 돌아오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가 결심을 무디게 하고, 그래서 미지의 저승으로 날아가느니 차라리 현재의 고통을 참게 만드는 것인가? (제 3막 제1장 중)
중용을 지켜서 연기에 대사를, 대사에 연기를 일치시켜야 해. 특히 자연의 절도를 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명심하라고, 무엇이고 지나치면 연극의 목적에서 벗어나는 법이니. 연극의 목적은 예나 지금이나 자연을 거울에 비추어 선은 선한 모습으로, 악은 악한 모양으로 반영해서 그 시대의 양상을 본질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니까. (제 3막 제2장 중)
습관은 악습에 대한 인간의 모든 감각을 먹어 삼키지만 천사의 역할도 합니다. 항상 좋은 행동을 하고 있으면, 처음에는 어색한 옷 같지만 어느새 몸에 꼭 어울리게 만들어 줍니다. (제3막 제4장 중)
대개 민중이란 이성으로 판단하지 않고 눈으로 보아서 좋고 옳고 그름을 결정해서, 범죄자가 받는 형벌만 문제를 삼고 범죄 그 자체는 생각지 않거든. (제4막 제3장 중 클로디어스 왕)
우리는 우리가 살찌자고 다른 동물들을 살찌우고, 우리가 살찌는 것은 구더기를 살찌우기 위한 것입니다. 살찐 임금이나 여윈 거지나 맛은 다르지만 한 식탁에 오르는 두 쟁반의 요리지요. 그뿐입니다.
왕을 뜯어먹은 구더기를 미끼로 고기를 낚고, 구더기를 먹은 그 고기를 사람이 먹을 수도 있습니다.
왕이라도 거지 뱃속으로 행차할 수 있다는 말씀을 드린 것뿐입니다. (제4막 제3장)
인간이란 대체 무엇인가! 인간의 행위와 한평생의 삶이 단지 자고 먹는 것뿐이라면? 그렇다면 짐승과 다를 바 없다. 신이 우리 인간에게 이렇듯 위대한 사유의 힘을 주시고 앞뒤를 살필 수 있도록 해주신 것은, 그 능력과 신 같은 이성을 쓰지 않고 곰팡이가 피도록 내버려두가로 하신 것은 아닐 터. 그렇다면 짐승처럼 잘 잊어버리기 때문인가, 아니면 일의 결과를 너무 세밀하게 생각하는 좁은 마음의 망설임 탓인가. (제4막 제4장)
참새 한 마리 떨어지는 것도 신의 특별한 섭리야. 지금 오면 나중에 오지 않고, 나중에 오지 않으면 지금 오네. 올 것은 지금 안 와도 나중에 오고야 마는 거야. 요는 각오야. 언제 버려야 좋은지. 그 시기는 어차피 아무도 모르는 목숨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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