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의는 고사하고 국가 시스템과 법은 무시하며 상식과 염치 마저 없는 자들이 판치는 사람의 정치, 침팬지 무리도 권력을 얻고 유지하기위한 시스템이 작동한다.
 

[본문발췌]

'모든 인간의 일반적 경향 중에 하나가 
죽음에 이르러서야 멈추는
그들의 끝없고 쉼 없는
권력에 대한 욕망이다.' - 토마스 홉스


침팬지 사회에는 권력탈취, 계급구조, 권력투쟁, 동맹, 분할 지배 전략, 연합, 조정, 특권, 거래 등이 만연해 있다. 인간 사회의 권력 주변에서 벌어지는 현상들은 거의 모두 침팬지 사회에 그 연원을 두고 있다. 


'마키아벨리적 지능(권모술수에 능한 지능)'


미래의 새로운 리더는 스스로 그 길을 개척해 나가지만 혼자서는 그렇게 할 수 없다. 단독으로 자기의 리더십을 집단에 강요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의 지위는 부분적으로 다른 침팬지에 의해 주어진다. 리더, 즉 우두머리 수놈도 다른 구성원들과 마찬가지로 역시 감시망에 걸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처음에 우리는 인식하는 것만 볼 수 있다. 장기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도 장기판 위에서 벌어지는 긴장감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 그 사람이 곁에서 한 시간 동안 지켜보더라도 게임 상황을 다른 판에 복기해 보라고 하면 정확히 재현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만약 장기에 뛰어난 사람이라면 몇초 동안만 바라봐도 말들의 배치를 모두 파악해서 기억할 수 있다. 이는 기억력의 차이가 아니라 지각력의 차이에 의한 것이다. 문외한에게 체스 말의 위치는 각각 아무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용을 아는 사람은 말의 위치에 커다란 의미가 있으며 그들 상호 간에 서로 위협하거나 지원하는 관계가 성립한다는 것을 이해한다. 무질서한 것의 집합보다는 어떤 유기적인 구조를 가진 편이 훨씬 기억될 수 있는 원리이다.
이것이 이른바 게슈탈트 지각(Gestalt perception)의 종합 원리이다. 즉, 게슈탈트(전체)란 단순한 부분들의 합 이상이며 지각을 학습한다는 것은 구성 부분들이 규칙적으로 전개되는 여러 가지 패턴을 인식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침팬지들 사이에 일어나는 상호작용의 여러 패턴에 익숙해지면 그것들이 너무나 인상적이고 명확해지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지엽적인 문제에 구애받거나 상황의 기본적인 논리를 놓치는 것을 상상도 할 수 없게 된다.


우리는 하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과거의 경험을 새롭게 조합시키는 능력을 표현하는 데 '추리력' 혹은 '사고력'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달리 적합한 단어는 없을 것이다. 실제로 시행착오를 통해 특별한 행동을 시험해보지 않고서도 침팬지들은 그들 머릿속에서 선택의 결과를 가름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신중하고 합리적인 행동을 보인다. 영장류들은 수많은 사회적 정보를 고려하며 상대방의 의도와 기분에 민감하게 잘 조율되어 있따. 그래서 그들이 가진 높은 지능이 복잡한 집단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진화되어 왔다고 추측한다. '사회적 지능 가설(Social Intelligence Hypothesis)'로 알려진 이 개념은 우리 자신의 계통에서 벌어진 막대한 뇌 용량의 팽창에도 적용될지 모른다. 이런 견해에 따르면 기술적인 창의성은 부차적인 발전이다. 영장류 지능의 진화는 꾀로 상대방을 이기고, 속임수 전략을 감지하고, 상호 이익이되는 타협을 이루며, 자신의 삶에 이득이 되는 사회적 연대를 증진시키기 위한 필요성에서 출발했다. 침팬지들은 이런 영역에서 분명히 뛰어나다. 그들이 가진 기술적인 재주는 인간보다 떨어지는 것이 확실하지만, 그들의 사회적인 능력도 그렇다고는 쉽게 단정하지 못하겠다.


"싸움 능력이 아무리 탁월한 젊은 수놈이라 해도 상당히 많은 구성원의 지지를 얻어내지 못하면 결코 권력을 탈취할 수 없다." - 어윈 번슈타인


강자의 보안관 역할과 그 강자가 위협에 직면했을 때 약자로부터 받는 지원 사이에 어떤 관련이 있을지는 뻔하다. 암놈과 그 새끼들을 지켜주지 못하는 1인자 수놈은 장차 라이벌과의 권력투쟁에서 어떠한 지원도 기대할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1인자 수놈의 보안과 역할은 호의라기보다 의무에 가깝다. 


리더는 질서를 유지해주는 대가로 집단 구성원들로부터 지원과 존경을 받는데, 이와 동일한 현상이 두 번째 정권 교체에서도 일어났다. 하지만 이번의 경우 크게 달라진 점은 이런 자질이 지도자에게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평화를 수호한 대가로 광범위한 존경을 얻은 것은 니키가 아니라 그의 연대 파트너인 이에룬이었다. 이런 상황 전개가 무엇보다 나를 놀라게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한 마리의 개체가 공식적인 지배와 이런 역할을 동시에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에룬과 라윗은 단독 지도자였던 데 반해, 니키는 다른 수놈과 지도력을 '공유'했던 것이다.


니키의 지도력과 구질서와의 중요한 차이는, 니키가 야심 많은 타인의 어깨 위에 서 있다는 점이다. 그로 인해 생기는 문제는 인간 세계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이런 유의 리더가 갖는 상대적 무력감에 대해 설명한 적이 있다. 아래 <군주론> 인용문에서 '귀족'을 '서열 높은 수놈'으로, '평민'을 '암놈과 새끼들'로 고쳐서 읽어보라. 그러면, 우리는 니키의 '군주권'이 두 전임자의 '군주권'과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귀족의 원조를 받아 군주권을 얻는 것은 평민들의 지원을 받아 군주가 되는 것보다 더 어렵다. 왜냐하면 귀족들은 스스로를 군주와 동등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군주는 원하는 대로 그들을 지배하거나 통제할 수 없다."


서열을 결정짓는 원리는 성별에 따라 다르다. 수놈 사이에서는 연합이 우열을 결정한다. 수놈이 암놈에 비해 우위에 있는 것은 주로 육체적 우월성에 기인한다. 한편, 암놈끼리의 서열을 결정하는 결정적인 요인은 무엇보다 '성격'과 '나이'다. 


아르험 침팬지 집단에 속한 암놈들의 서열은 위로부터의 위협과 과시에 의한 것이라기보다 오히려 아래로부터의 존경에 바탕을 둔 것처럼 여겨진다. 


우리는 남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길 원하고 그걸 위한 전술도 개발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목표라는 사실을 스스로 깨닫지 못할 수도 있다. 그것에 대해 생각하거나 이야기하는 것조차 회피할지도 모른다. 네덜란드의 사회심리학자 마우크 뮐더는 '인간은 권력을 행사함으로써 만족을 얻으며 타인에 대한 영향력을 키우려고 노력한다'는 사실을 일련의 실험을 통해 밝혔다. 그러나 동시에 '권력'이라는 단어의 주변에는 일종의 터부가 존재한다는 사실도 지적한다. "우리가 권력에 대해 말할 때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 대해 말하고 있다. ...." 하지만 우리 자신에 대해 말할 때는 '책임을 지고 있다', '권위 있는 지위에 있다'거나 혹은 '힘겨운 결단을 통해 남을 돕고 있다'는 따위의 표현을 즐겨 쓴다. 


실험 심리학자인 닉 험프리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사회적 동물의 이기성은, 다른 용어가 마땅치 않기 때문에 내가 '공감'이라고 부르는 것에 의해 전형적으로 완화된다. 이때 '공감'이란 상대를 자신과 동일시하면서 상대의 목표를 어느 정도 자신의 목표로 인정하는 성향을 말한다." 이런 직관적인 해석을 증명하려면 공감의 정도를 측정할 수 있는 독립적인 수단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공감이 친밀함이나 친숙함과 연관되어 있다고 보고 이것들이 두 개체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느냐로 측정할 수 있다고 해보자. 


사회심리학자인 존 본드와 애드가 비나크는 여성들 간의 연합을 '협조적'이라 부르고 남자의 연합을 '착취적'이라고 지칭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이와 비슷한 연구들은 상당히 많다. 그리고 그 결론들은 한결같다. 즉, 남성은 승리에 집착하고 전략적 고려에 사로잡혀 있는 반면 여성은 개인간 접촉에 더 큰 흥미를 느끼며 주로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과 인간적인 연합을 이룬다는 것이다. 


착취적 연합과 기회주의는 정치 무대에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난다. 인류학, 정치학적 연구에 따르면 여성은 자신과 멀리 떨어진 정치적 사건보다는 주변의 사건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반면, 남성은 '거대' 정치에 참여하려 하고 권력의 핵심에 더 큰 매력을 느낀다. 이런식의 성차는 보편적인 것이기 때문에 이 문제를 종합적으로 검토한 디아든은 사회, 문화적 요인보다는 생물학적 요인을 더욱 강조했다. 하지만 성차는 언제나 통계적인 성질을 띠고 있다.예를 들어 인간의 정치 무대에서 이 규칙에 들어맞지 않은 사례들은 얼마든지 있으며 침팬지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친밀한 파트너와 협력함으로써 성공의 기회를 높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수놈들은 분명 그렇게 할 것이다.


사람들 사이에서도 물질적인 인심과 사회적인 관용의 경계는 아주 모호하다. 심리학자인 하비 긴스버그와 셜리 밀러가 어린이들을 관찰한 바에 따르면 가장 우위에 있는 아이는 싸움에 개입해서 약자를 지켜줄 뿐만 아니라 친구들에게 기꺼이 자신의 물건을 나눠주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이런 행위가 동년배들 사이에서 높은 지위를 누리는 데 도움을 준다고 연구자들은 밝히고 있다. 인류학자들의 원시부족 연구에서도 유사한 모습이 발견된다. 거기서 추장은 통제적 역할에 필적하는 경제적 역할을 수행한다. 즉, 추장은 주면서 받는 것이다. 추장은 부유하지만 부족 사람들을 착취하지 않는다. 오히려 거대한 축제를 베풀고 가난한 자들을 돕는다. 그가 받은 선물이나 물자를 공동체로 되돌리는 것이다. 모든 것을 독점하려믄 추장은 위험에 빠지기 마련이다. '노블리스 오블리제', 즉 높은 신분에는 더 많은 도덕적 의무가 따르는 것이다. 살린즈는 "인간은 존경 받기 위해서 너그럽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이런 보편적인 인간 체계, 즉 재산 획득과 재분배의 체계는 그것이 원시부족 사회의 추장에 의해서건 아니면 현대 사회의 정부에 의해서건 간에 침팬지들이 사용하는 체계와 다를 바 없다. 단지 '재산'이란 말을 '지원과 사회적 베풂'이라는 말로 바꾸기만 하면 된다.


균형(balance), 서로 라이벌 관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놈들은 강한 사회적 연대를 형성한다. 그들은 상호간의 연합, 각자의 싸움 능력, 암놈의 지지 등에 기반을 둔 세력균형 체계를 발전시키는 경향이 있다.


안정(stability), 암놈들 사이의 관계는 수놈들에 비해 덜 계층적이며 훨씬 안정적이다. 암놈들이 안정을 희구한다는 사실은 수놈드르이 지위 경쟁에 대한 그들의 태도에서도 엿볼 수 있다. 암놈은 수놈들을 중재하기도 한다.


교환(exchanges), 중앙집권적이며 호혜적 거래가 이뤄지고 있는 인간의 경제 시스템은 침팬지의 집단생활에서도 발견된다. 침팬지들은 선물이나 재화보다 사회적 호의를 교환한다. 그들의 지원은 중심적 역할을 수행하는 리더에게 집중되고, 이 리더는 이런 기득권을 사용하여 사회적 안전을 제공한다. 만약 리더가 자신이 받은 구성원들의 지원을 재분배하는 데 실패하면 그의 지위가 위협받는다. 이런 의미에서, 사회의 안녕을 지키는 것은 그의 의무이다.


내가 이 책에서 영향력과 권력이라는 용어로 묘사한 것들을 불완전한 첫 시도일 뿐이다. 내가 봤던 것은 어떤 개체가 최고의 자리를 잃었다고 해서 완전히 잊혀진 존재로 추락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들은 여전히 많은 것을 조종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지위가 상승해서 언뜻 두목처럼 보이는 개체일지라도 매사에 가장 강력한 발언권을 자동적으로 갖지는 못한다는 사실이다. 사회 조직에서 벌어지는 이런 이중성을 인간의 용어로 설명할 수밖에 없다면, 그것은 우리네 인간 사회에서 그들과 아주 비슷한 막후 영향력 때문일 것이다. 


만약 정치를 영향력 있는 지위를 획득하고 유지하는 사회적 술수라고 넓게 정의한다면 정치는 모든 사람과 관계된다. 중앙정부나 지방정부는 말할 것도 없고, 가정, 학교, 직장, 그리고 각종 모임에서 우리는 정치라는 현상과 일상적으로 마주하고 있다. 우리는 매일 갈등을 야기하거나 혹은 다른 이들의 갈등에 개입한다. 우리에게는 지지자와 경쟁자가 있다. 그리고 이들과의 유익한 관계를 매일매일 다져간다. 그러나 이러한 일상적인 정치 행위가 항상 그 자체로서 인식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자신의 의도를 은폐하는 데 달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정치인들은 그들의 이상과 공약에 대해서는 목소리를 높이지만 권력을 향한 개인적 야망을 노출시키지 않도록 애쓴다. 그러한 야망을 비난하려는 것은 아니다. 결국 누구나 똑같은 게임을 벌이기 때문이다. 한 가지 더 흥미로운 사실은 인간들이 자신의 동기를 타인에게 숨기려 할 뿐만 아니라 그러한 동기가 자신의 행동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서도 과소평가 한다는 사실이다. 반면, 침팬지는 '더욱 천박한' 자신의 동기를 아주 뻔뻔스럽게 알린다. 권력에 대한 침팬지의 관심이 인간보다 더 강해서가 아니다. 단지 아주 적나라할 뿐이다. 


모든 파벌들은 일시적인 권력 균형에 이를 때까지 사회적 영향력을 계속해서 찾는다. 그리고 이런 균형은 서열상의 지위를 새롭게 결정한다. 다소 유동적인 지위가 '고정'될 때까지 관계는 계속해서 변한다. 이 같은 서열의 공식화가 어떻게 화해 가운데 일어나는지를 보게 되면, 집단 내의 서열이 경쟁과 충돌을 제한하는 '응집적' 요소임을 이해할 수 있다. 육아, 놀이, 섹스, 협력 등은 그로 인해 찾아오는 안정 상태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수면 아래의 상황은 늘 유동적인 상태이다. 권력의 매일매일 시험되며, 만일 그것이 매우 취약하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도전이 일어나고 새로운 균형이 찾아올 것이다. 결국 침팬지들의 정치도 건설적이다. 인간은 정치적 동물로 분류되는 것을 명예롭게 여겨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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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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