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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10.30 국가란 무엇인가 - 유시민

표현의 자유와 관련해 "침묵을 강요당하는 의견이 틀렸다고 해도 일부 진리를 담고 있을 수 있으며 실제로 그런 일이 흔하다. 통설이나 다수 의견이 전적으로 옳은 경우는 드물거나 아예 없다. 대립하는 의견들을 서로 부딪치게 해야만 나머지 진리를 찾을 수 있다"는 이야기에 비추어 최근 조국 전 장관 이슈를 되새겨 본다. 서로의 주장이 대립하는 가운데 의심만으로 야당, 검찰과 언론의 무차별 폭력과 같은 일방적인 뉴스가 정상적인가?

 

진보와 보수, 자유와 평등, 서로 상충되는 다른 생각들..... 다른 이념과 주장이 상존하면서 적절한 균형을 이루어야 사회가 건전하게 발전한다.

 

 

[본문 발췌]

 

인간사회에서 누구든, 개인이든 집단이든, 다른 사람의 행동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경우는 오직 한 가지, 자기보호를 위해 필요할 때뿐이다.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면, 국가가 그 사람의 의지에 반해서 권력을 사용하는 것도 정당하다. 이 단 하나의 경우 말고는, 문명사회에서 구성원의 자유를 침해하는 그 어떤 권력행사도 정당화할 수 없다. - 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

 

 

밀은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가 인간의 정신적 복리를 위해 가장 중요하다고 특별히 강조했다.  어떤 의견에 대해서든 침묵을 강요하면 인간과 사회를 해치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그는 네 가지로 그 이유를 정리했다. 첫째, 자신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근본적으로 틀린 전제가 없는 한 침묵을 강요당하는 어떤 의견이 진리일 가능성을 부정할  수 없다. 둘째, 침묵을 강요당하는 의견이 틀렸다고 해도 일부 진리를 담고 있을 수 있으며 실제로 그런 일이 흔하다. 통설이나 다수 의견이 전적으로 옳은 경우는 드물거나 아예 없다. 대립하는 의견들을 서로 부딪치게 해야만 나머지 진리를 찾을 수 있다. 셋째, 통설이 진리일 뿐만 아니라 전적으로 옳은 것이라고 해도 제대로 검증을 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그 근거를 이해하지도 못한 채 하나의 편견으로 간직하게 된다. 넷째, 소수 의견에 침묵을 강요하면 다수 의견 또는 통설이 독단적 구호로 전락해 이성이나 개인적 경험에서 강력하고 진심 어린 확산이 자라나는 것을 가로막게 된다.

 

 

프롤레타리아트는 부르주아에 대항하여 투쟁하는 가운데 하나의 계급으로 단결하고, 혁명을 통해 스스로 지배계급이 되며, 새로운 지배계급으로서 낡은 생산관계를 폐지한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이 생산관계와 함께 계급대립의 존립조건과 계급 그 자체를 폐지하고 종국적으로 자기 자신의 계급지배도 폐지한다. 이렇게 해서 계급과 계급대립이 있던 낡은 부르주아사회 대신에, 각자의 자유로운 발전이 만인의 자유로운 발전을 위한 조건이 되는 연합체가 들어선다. - 카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공산당선언>

 

 

우리의 민주주의는 여전히 중우정치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미디어 왜곡과 여론조작으로 인한 중우정치의 위험은 우리의 발밑에 똬리를 틀고 다음 기회를 기다리고 있다. 시민들이 자기 머리로 생각하고 대안미디어를 활용해 언론권력의 여론조작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그 위험에 또 발뒤꿈치를 물리게 될 것이다.

 

 

새는 좌우 두 날개로 난다. 보수주의는 생물학적 본능이고 진보주의는 목적의식적 지향이다. 보수가 구심력이라면 진보는 원심력이다. 사회는 진보와 보수가 있기에 유지되고 발전한다. 진보주의자만 있는 사회는 안정성이 없을 것이다. 생활환경의 사소한 변화조차도 통제할 수 없는 사회적 혼란과 정치적 혁명으로 번져나갈지 모른다. 반면 보수주의자만 사는 세상에서는 혁신이 불가능할 것이다. 그 사회는 존립을 위협하는 심각한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몰락할 것이다. 사회가 건전하게 발전하려면 둘이 적절한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진보주의자들이 생각하는진보는 무엇인가? 대표적인 견해를 몇 가지 살펴보자. 가장 좁은 의미의 진보는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것이다. 가장 넓은 의미의 진보는 인간 능력의 지속적 발전을 이루는 것이다. 둘 사이 어디엔가, 인간을 자유롭게 만드는 것이 진보라는 견해가 있다.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된다면, 자기 책임 아래 전개하는 자유로운 경쟁이 만들어낸 소득과 부의 분배는 정의롭다고 인정할 수 있다. 그 조건이란 무엇인가? 첫째, 모든 사람이 동등한 참여의 기회를 가져야 한다. 누군가 처음부터 아예 기회를 얻지 못하거나 출발선이 현저하게 다르다면 이러한 방식으로 부와 소득을 분배하는 것은 정의롭다고 할 수 없다. 둘째, 경쟁은 공정해야 한다. 경쟁의 규칙이 합리적이어야 하고 반칙하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 경쟁의 규칙 그 자체가 불합리하거나 반칙으로 승리를 거둘 수 있다면 그 결과는 정의롭다고 할 수 없다. 셋째, 만인이 자유롭고 독립적이며 동등한 주체로서 경쟁할 수 있어야 한다. 계약과 거래의 어느 한 당사자가 상대방의 시혜 또는 선의에 의존해야 하거나 진정 자유롭게 판단할 수 없을 때, 경쟁이 만들어낸 분배의 격차는 정의로울 수 없다. 모든 시민이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받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진보정치는 국가로 하여금 최고의 도덕적 이상인 정의를 실현하도록 하기 위해 국가를 직접 운영하거나 국가운영에 영향을 미치려고 하는 활동이다. 국가의 정의는 시민들로 하여금 각자가 마땅히 가져야 할 것을 받게 만드는 것이다.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똑같이 누릴 자격이 있는 것을 만인으로 하여금 누리게 하고, 각자가 마땅히 받을 자격이 있는 것을 저마다 받게 만드는 것이 국가가 사람들 사이에 세워야 할 정의이다. 국가가 최고의 도덕적 이상인 정의를 완벽하게 실현한다면, 우리는 자유롭고 풍요로우며, 평등하고 안전하며, 평화롭고 환경이 깨끗한 사회에서 살게 될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이 규정한 국가공동체의 최고 목표 또는 최고 가치는 자유, 복지, 평등, 안전, 평화, 환경 등이다. 자유는 자유권적 기본권에 대한 침해가 완전히 사라진 상태를 말한다. 복지는 1인당 국민소득으로 표현되는 좁은 의미의 물질적 후생을 넘어 국민의 삶의 질을 가리킨다. 안전은 범죄뿐만 아니라 각종 재해와 실업, 질병, 노령 등 사회의 위험으로부터 보호받는 것을 의미한다. 평화는 군사적 위협에 대한 단순한 방어를 넘어 한반도에서 무력충돌과 전쟁의 위험이 항구적으로 제거된 상태를 가리킨다. 환경은 단순한 주거환경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자연생태와 생활환경의 정착을 의미한다.

 

 

홉스의 국가는 좁은 의미의 안전과 평화를 보장하기 위한 생존의 방편이었다. 국가주의 국가론을 신봉하는 '이념형 보수'에게는 여전히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로크와 밀, 스미스, 루소의 국가는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었다. 자유주의 국가론을 따르는 '시장형 보수'에게는 자유와 이를 통해 가장 잘 성취할 수 있다는 물질적 부의 증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국가주의와 시장형 보수가 손을 잡으면, 우리가 박정희-전두환 정권 아래에서 직접 경험했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수많은 신생국가들이 시도했으며, 최근 세계 최고 경제성장률을 자랑하는 중국에서 그 나름 성공적으로 안착한 '개발독재'가 된다. 지금 대한민국 사회를 지배하는 이념도 이것이다. 보수정당 - 국가의 공안기관 - 보수 언론 - 재벌대기업 - 보수지식인들이 반세기에 거려 형성한 소위 주류의 지배 카르텔은 이념으로 보면 국가주의와 보수자유주의가 결합한 것이다.

 

 

나는 자유를 원하는 것과 똑같이 간절하게 정의를 소망한다. 자유주의 국가론이라는 땅을 딛고 정의를 실현하는 국가를 바라보며 나아간다. 그리고 이런 내가 진보자유주의자라고 생각한다. 진보자유주의자는 어떤 가치 하나를 절대화하여 다른 가치를 종속시키거나 무시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믿는다. 진보자유주의는 모든 형태, 모든 종류의 절대주의를 거부한다. 자유, 복지, 안전, 평등, 평화, 환경 등 헌법이 규정한 사회의 최고 목표 또는 최고 가치는 모두 평등한 지위를 가진다. 어떠한 우열관계나 종속관계도 인정하지 않는다. 어떤 하나의 가치를 절대화하여 다른 가치를 종속시키는 순간, 국가는 단일가치가 지배하는 전체주의로 흐를 수 있다고 본다. 전체주의는 필연적으로 국가의 정의를 파괴한다. 진보자유주의자는 민주주의를 통한 사회개량의 길을 선호한다.

 

 

진보의 힘이 '순수'에서 나오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진보의 힘은 '섞임'에서 나온다. 진보를 추동하는 근본적인 힘은 인간의 보편적 이성이다. 사회의 진보는 인간 이성의 발전과 함께 이루어진다. 하나의 이념이 전일적으로 지배하는 사회에서 이성이 성장할 수 없는 것처럼, 하나의 이념이 전일적으로 지배하는 정치조직에서도 이성의 힘이 자라기는 어렵다. 다양성을 내포하지 않고서는 정당도 정치도 국가도 인간도 성장하지 못한다. 이념과 정치문화의 '섞임'을 통해 진보의 힘을 키우는 것이 연합정치이다. 연합정치가 지지를 받는 것은 국민들이 그 속에서 정치인의 책임의식을 보기 때문이다. 신념윤리에 투철한 정치인은 존경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책임윤리에 투철한 정치인은 믿음의 대상이 된다.

 

 

나는사람들 사이에 정의를 수립하는 국가를 원한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대하는 국가, 국민을 국민이기 이전에 인간으로 존중하는 국가, 그런 국가가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부당한 특권과 반칙을 용납하거나 방관하지 않으며 선량한 시민 한 사람도 절망 속에 내버려두지 않는 국가에서 살고 싶다. 그런 국가에서 개인으로서 훌륭한 삶을 살려면 우리들 각자는 "먼저 인간이고 그 다음에 국민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먼저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기르는" 시민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훌륭한 국가를 만들 수 있고 훌륭한 국가에서 살 합당한 자격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그런 나라가 되지 못했다고 해서 대한민국을 비하하거나 사회를 냉담하게 대하지는 않는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15760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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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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