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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11.19 텅빈충만 - 법정스님

비워야 채울 수 있다. 가득찬 공간은 유한하고 빈 공간은 무한을 상징한다.

모순적 표현에 담긴 교훈, "텅빈충만"

 

 

[본문발췌]

 

생명을 수단으로 여기는 것은 그 어떤 세상에서일지라도 돌이킬 수 없는 악이다.

 

 

아름다운 빛깔은 본래 자연 속에 두루 갖추어져 있다. 그 빛깔을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내려면 먼저 욕심을 버리고 자연처럼 무심해져야 한다. - 「빈 방에 홀로 앉아」, <'86.11>

 

 

사람은 어디서 무슨 일에 종사하면서 어떤 방식으로 살건 간에 자기 삶 속에 꽃을 피우고 물이 흐르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루하루 사는 일이 무료하고 지겹고 시들해지고 만다. 자기 자신이 서 있는 그 자리를 두고 딴 데서 찾으려고 한다면 그것은 헛수고일 뿐. 그러기 때문에 저마다 지금 바로 그 자리가 자기 삶의 현장이 되어야 한다. - 「水流花開」, <'86.12>

 

 

해가 바뀌면 우리는 원하건 원하지 않건 이 육신의 나이를 하나씩 더 보태게 된다. 어린이나 젊은이는 나이가 하나씩 늘어가는 것이고 한창때를 지난 사람들에게는 한 해씩 빠져 나가는 일이 된다. 이것은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자연현상이다. 빠져 나가는 세월을 아쉬워하고 허무하게 생각할게 아니라 주어진 삶을 순간순간 어떻게 쓰고 있느냐에 보다 관심을 가져야 한다. - 「파블로 카잘스」, <'87.1>

 

 

현재의 자를 가지고 우리 미래를 재서는 안될 것이다. - 「연기와 재를 보면서」, <'87.3>

 

 

과속은 무감각 상태를 가져온다. 그것은 맹목적인 행동과 같다. 너무 조급히 서둘다 보면 조그만 일에서 오는 삶의 잔잔한 기쁨과 고마움을 놓쳐버리기 쉽다. 등산의 기쁨은 산을 오르는 일에 못지 않게 산을 이만치서 바라보는 여유에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 「우리는 너무 서두른다」, <'87.12>

 

 

우리는 이것저것 가진 것이 많다. 연장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 옷을 너무 많이 걸치고 있다. 또 가리지 않고 마구 과식하고 있다. 분별이 많고 생각이 너무 복잡하다. 그래서 본래의 건강을 잃어 가면서도 뉘우칠 줄을 모른다. - 「禪이란 무엇인가」, <'88.9>

 

 

어떤 결함도 없는 완전한 인간이란 완전이라고 하는 데에도 머물지 않는 사람이다. 완전이란 이미 이루어진 상태가 아니라, 시시각각 새로운 창조이기 때문이다. - 「禪이란 무엇인가」, <'88.9>

 

 

빈 방에 홀로 앉아 있으면 모든 것이 넉넉하고 충만하다. 텅 비어 있기 때문에 오히려 가득 찼을 때보다도 더 충만한 것이다. - 「텅 빈 충만」, <'89.3>

 

 

자연은 이렇듯 우리에게 많은 선물을 무상으로 열어보이고 있는데, 일상에 찌든 사람들은 그런 선물을 받아들일 줄을 모른다. 받아들이기는 그만두고 얼마나 많이 허물며 더럽히고 있는가. 받아들이려면 먼저 입을 다물어야 한다. 그리고 귀를 기울이며 지켜보아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상에 찌든 버릇 때문에 모처럼 자연의 품안에 안겨 있으면서도 입다물고 귀기울이며 지켜보려고 하지 않는다. 안타까운 일이다. - 「입다물고 귀를 기울이라」, <'89.6>

 

 

한잔의 향기로운 차를 대할 대 나는 살아가는 고마움과 잔잔한 기쁨을 함께 누린다. 행복의 조건은 결코 거창한 데에 있지 않다. 맑고 향기로운 일상 속에 있음을 한잔의 차를 통해서도 우리는 얼마든지 터득할 수 있다. - 「눈이 번쩍 뜨인 茶」, <'89.3>

 

 

지나친 것은 모자람만 못하고, 넘치는 것은 덜 참만 못하다. 적은 것일수록 더욱 사랑할 수 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고 말한 영국의 경제학자 E.F. 슈마허가 지적했듯이, 무한한 성장은 유한한 세계에 적합하지 않다. - 「인간과 自然」, <'88.8.>

 

 

어떤 높은 자리를 차지하느냐에 인생의 목적이 있지 않고, 자기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을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살아가는 데에 삶의 의미를 두어야 할 것이다. - 「인간과 自然」, <'88.8.>

 

 

시끄럽고 어지러운 세상살이이기 때문에 때로는 맑고 고요하고 한적한 삶의 여백이 필요한 것이다. 이런 여백을 통해서 시들해지기 쉬운 일상을 비춰봄으로써 우리들의 삶을 되돌아보고 개선할 수 있다. 개선과 개혁이 없는 삶은 한낱 타성이고 습관에 지나지 않는다. 타성과 습관은 사람을 찌들게 하고 시들게 한다. - 흐린 業, 맑은 業, <'86.9>

 

 

사람의 얼굴에는 눈이 두 개 있고 귀도 양쪽에 달려 있는데 입은 하나밖에 없다. 많이 보고 두루 듣고 적게 말하라는 뜻에서일 것이다. 만약 입이 두 개라면 세상은 얼마나 더 시끄러울 것인가. - 불란서 여배우, <'86.11>

 

 

그 열반(곧 깨달음)에 이르려면 다음 네 가지 즉 몸(身)과 느낌(受)과 마음(心)과 현상(法)에 대해서 똑바로 관찰하고 끊임없이 꾸준히 정진하여 바른 생각과 지혜로써 세상의 허욕과 번뇌를 끊어버려야 한다. 관찰이란 안으로 면밀히 살피는 일이다. - 「집착에서 벗어나려면」, <'88.1>

 

 

하루 한때라도 우리는 우리가 들이쉬고 내쉬는 호흡을 자세히 살피고, 몸이 움직이고 멎을 때 몸에 그림자 따르듯이 생각이 거기에서 떠나지 않는 훈련을 익혀야 한다. 정진(精進)이란 잡념을 떨쳐버리고 일념으로 꾸준히 나아간다는 뜻. 이런 정진 없이는 내가 내 인생을 살면서도 알짜로 산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 「집착에서 벗어나려면」, <'88.1>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과 건강을 어떻게 쓰고 있느냐에 따라 그 인생의 우열을 가릴 수 있다. 시간과 건강을 보다 값있는 일에 쓰고 있다면 그 삶은 노소간에 창조적인 삶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한번 지나가면 다시 되찾을 길 없는 소중한 시간과 건강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부질없는 일에 탕진하고 있다면, 그 인생 자체가 소모요, 타락이 아니겠는가. -  「시간과 건강에 감사를」, <'88.3>

 

 

가난하고 배고픈 데서 도심(道心)이 우러나는 것이지, 풍족하고 배부르면 번뇌와 망상이 뒤끓게 마련이다. - 「사막의 교부들」, <'88.8>

 

 

'과거와 현실이 싸움을 하면 미래가 손해를 본다'고 처칠이 말한 바 있다. 한 나라와 사회의 온갖 잠재력을 과거사에만 집중 투자하고 오늘을 허술하게 지나치면, 미래를 위해서는 투자를 할 수가 없다. 구질서의 파괴에 보인 그 열기가 새로운 질서를 세우는 데에도 지혜롭게 작용되어야 한다. 우리는 오늘만 살고 말 그런 존재가 아니다. - 「'魔의 문턱' 앞에서」, <89. 2. 15>

 

 

"먹(墨) 이라는 한 가지 색은 빛깔 없는 빛깔이 아니라, 모든 빛깔을 포함한 색을 의미한다. 단순이란 단지 단조롭다는 의미는 아니다. 부질없는 요소를 모조리 생략하고 반드시 필요한 요소만으로 구성된 결정을 의미한다. 그것은 본질적인 것이 집약된 모습이다." - 유종열, <공예문화>, 「某年 某月 某日」

 

 

수행자란 어떤 사람인가. 절대고독의 한가운데 우뚝 선 자, 날마다 새롭게 태어나는 자. - 「某年 某月 某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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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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