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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10.28 소설가의 일 - 김연수

생각과 말, 그리고 행동!

 

말에 앞서 생각하고, 생각하고 하는 말이라도 입 밖으로 나오면 주워담을 수 없기에 조심해야 하고,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실행하지 않는 삶은 공허하다.

 

읽고, 쓰고 생각하는 일에 대한 김연수 작가의 이야기.....

 

 

[본문 발췌]

 

용기는 동사와 결합할 때만 유효하다. 제아무리 사소하다고 해도 어떤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그건 용기가 될 수 없다.

 

이 삶이 멋진 이야기가 되려면 우리는 무기력에 젖은 세상에 맞서 그렇지 않다고 말해야만 한다. 단순히 다른 삶을 꿈꾸는 욕망만으로는 부족하다. 어떤 행동을 해야만 한다. 불안을 떠안고 타자를 견디고 실패를 감수해야만 한다.

 

소설가로 산다는 건 여러 번 고칠수록 문장이 좋아진다는 걸 안다는 뜻이다. 플롯과 캐릭터 같은 건 처음부터 직관적으로 멋진 것들을 떠올릴 수 있다고 해도 문장만은 제일 먼저 쓴 문장이 제일 안 좋다. 그래서 소설가에게 필요한 동사는 세 가지다. '쓴다' '생각한다' '다시 쓴다'. 소설가는 제일 먼저 '쓴다'. 그다음에 '생각한다'. 그리고 '다시 쓴다'. 소설가란 어떤 사람들인가? 초고를 앞에 놓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 '자기가 쓴 것을 조금 더 좋게 고치기'가 바로 소설가의 주된 일이다. 소설쓰기라는 동사가 있다면, 그런 뜻이어야만 한다. 누군가 '소설쓰고 있습니다'라고 한다면, '먼저 글을 썼고, 지금은 그 글에 대해 생각하면서 다시 쓰고 있습니다'라는 뜻이어야만 한다.

 

작가로서 핍진성이라는 말을 알고 살면 인생살이에 여러모로 도움이 되는데, 특히 반항적인 젊은 학생들을 제압할 때 아주 유용하다. 용법은 앞에서 소개한 대로, 네 소설은 개연성은 있지만, 핍진성이 없어! 이 말이면 다 해결된다. 다들 검색해보면 알겠지만, 이 단어는 한글('핍진성')로도 어렵고, 한자('逼眞性')로도 어렵고, 영어('verisimilitude')로도 어렵다. 이건 그냥 말만으로도 할생들 괴롭히기에 딱 좋은데, 뜻('서사적 허구에 사실적인 개연성을 부여함으로써 그것을 수용하는 관습화된 이해의 수준을 충족시키는 소설 창작의 한 방법으로, 구체적으로는 동기 부여나 세부 묘사 등의 소설적 장치를 들 수 있다')까지 얘기하면 다들 괴로워 죽으려고 한다.

 

핍진성을 이해한다는 건 인간의 본성을 이해한다는 뜻이다. 인간은 일관되게 행동하기 때문에 인과의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긍정적인 사람의 표정과 부정적인 사람의 표정은 무척이나 다르며, 그들이 걸리는 병의 형태도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성격에 따라서 그들의 표정이나 걸리는 병에 대해서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다. 물론 예외적인 경우도 있지만, 핍진성의 관점에서는 예외적인 경우는 제외한다. 인물의 성격뿐만 아니라 사건도 예측 가능한 수준으로 진행한다. 예를 들어 암에 걸린 뒤에 사람들이 하는 행동에도 보편적인 패턴이 있다. 여기에도 물론 예외적인 경우는 있지만, 소설에서는 무의미하다. (예외적이라면 독자들이 비현실적인 것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현실과 마찬가지로 소설 속의 인물들도 인과의 사슬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한다.

 

외부의 사건이 이끄는 삶보다는 자신의 내면이 이끄는 삶이 훨씬 더 행복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심리적 변화의 곡선을 지나온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성장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다면, 상처도 없겠지만 성장도 없다. 하지만 뭔가 하게 되면 나는 어떤 식으로든 성장한다. 심지어 시도했으나 무엇도 제대로 해내지 못했을 때조차도 성장한다. 그러니 일단 써보자. 다리가 불탈 때까지는 써보자. 그러고 나서 계속 쓸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하자. 마찬가지로 어떤 일이 하고 싶다면, 일단 해보자. 해보고 나면 어떤 식으로든 우리는 달라져 있을 테니까. 결과가 아니라 그 변화에 집중하는 것, 여기에 핵심이 있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8315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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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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