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이크처럼 파편화된 이야기 전개에 쉽게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고 읽는데 시간도 오래 걸렸지만 궁금증 때문에 마지막 장까지 가보지 않을 수 없다. 지친 마음의 안식처든, 깨달음의 길이든, 정처없이 떠난 나그네의 호기심이든 누가나 영산을 찾아 떠나고 싶은 마음이 어느 한 구석에 자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1권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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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진작 내가 몸담고 있던 오염된 환경을 떠나 진정한 삶을 찾아 자연으로 되돌아갔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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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변 사람들은 나에게 삶이 문학의 원천이라고, 문학은 삶에, 삶의 진리에 충실해야만 한다고 가르쳤다. 그리고 내 잘못은 바로 삶에서 멀어지고 삶의 진리에 역행하는 데에 있었다. 삶의 진리 다시 말해 삶의 본성은 다름아닌 바로 있는 그대로의 것이어야만 한다. 내가 이러한 진리에서 멀어진 것은 삶을 있는 그대로 반영할 수 없는 삶의 현상들만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나는 현실을 왜곡하는 잘못된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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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구불구불한 산길을 앞만 보고 걸어간다. 당신은 살아오는 동안 정확한 목표를 세운 적이 없었다. 당신이 새운 목표들은 시간이 지나면 변했다. 그것들은 끊임없이 변했다. 그래서 당신은 결국 목표를 갖지 않게 되었다. 잘 생각해보면 인간 삶의 궁극적인 목표는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벌집과 같은 것이다. 그것을 그냥 내버려두는 것은 아쉽지만 그것을 건드리는 것은 별들에게 큰 혼란을 가져다줄 것이다. 원래 있던 곳에 그냥 두고 건드리지 않은 채 관찰만 하는 편이 낫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자 당신은 기분이 훨씬 가벼워진다. 경치가 아름답기만 하다면 당신이 어딜 가는지는 그리 중요치 않다.
[2권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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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최초의 관념은 문양으로부터 나와 나중에 소리와 결합했고, 그 다음에 언어와 의미가 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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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역시 결국은 하나의 정신적 유희다, 그것은 수학이나 엄밀한 과학들이 도달할 수 없는 변경에 위치한다. 그것으 온갖 종류의 복잡한 구조와 틀들을 제공한다. 구조들이 완성되면 놀이는 끝난다. 소설은 감수성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철학과는 다르다, 소설은 자의적으로 만들어진 기호의 코드들을 욕망의 혼합물 속에 삼투시킨다, 어느 특별한 순간에 그 체계가 와해되어 살아 있는 세포들로 변하면 생명이 출현한다. 그러면 독자들은 그 생명의 탄생과 성장을 관찰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정신적 유희보다 훨씬 더 흥미로운 것이다. 하지만 그 행위는 삶처럼 어떠한 목적도 지향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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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이란 재미있거나 듣기 좋은 것일 수 없다, 그것은 분명 어느 정도는 귀에 거슬린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자신의 운명을 심각하게 고려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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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를 가지지 않는 것, 그것 역시 하나의 목표다. 그 대상이 무엇이든 간에 찾아 헤매는 행위 역시 하나의 목표다, 원래 삶에는 아무런 목적도 없다, 그냥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된다, 그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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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인정하지 않을 때에만 소리를 지른다, 소리를 지르는 자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 자이다. 인간은 스스로 고통을 만들어내는 이상한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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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 어린애가 블록을 쌓으며 놀듯, 당신은 언어를 가지고 논다, 하지만 블록으로는 정해진 형태들밖에 만들 수 없다, 모든 구조들은 이미 블록 속에 내포되어 있다, 그것들을 어떻게 배열하든 새로운 어떤 것을 만들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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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문장이 지나가는 반죽덩어리와 같다. 문장은 버리게 되면 그 즉시 당신은 마치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수렁 속에 빠져버린 듯한 상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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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를 잃는 것은 공간을 잃는 것이고, 소리를 잃는 것은 언어를 잃는 것이다. 입술을 움직여도 소리가 나지 않고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게 되어도 의식의 한가운데에는 아직 욕망이 남아 있다. 그 약간의 욕망조차 사라지면 그땐 열반에 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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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율보다 더 고상하고, 어법과 문법의 한계 너머에 있고 주어와 술어 사이의 구별이 없는, 인칭을 초월하고 논리를 깨뜨리며 느낌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이미지에도, 비유에도, 생각들의 연상이나 상징에도 의존하지 않는, 순수하고, 맑고, 음악적이고, 파괴될 수 없는 언어를 어떻게 하면 찾을 수 있을까? 사람의 고통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슬픔과 기쁨을, 고독과 위안을, 난처함과 기대를, 망설임과 결단을, 약함과 용기를, 질투와 후회를, 평온함을, 초조와 자신감을, 관대함과 옹졸함을, 자비와 증오를, 연민과 실의를, 담백함과 평화를, 비열함과 악의를, 고귀함과 악독함을, 연민과 실의를, 담백함과 평화를, 비열함과 악의를, 고귀함과 악독함을, 잔혹함과 선량함을, 열정과 냉담을, 동요하지 않음을, 솔직함과 무례함을, 허영과 탐욕을, 멸시와 존경을, 자만과 의심을, 겸손과 거만을, 고집과 분개를, 노함과 치욕을, 회의와 경악을, 권태와 혼미와 갑작스런 깨달음을, 그리고 끝내는 다시 모호해지고 아무리 명백히 하려 해도 명백해지지 않는, 이 모든 것으로 인한 출발을 완전히 표현할 수 있을 그런 언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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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계속 산들을 오른다. 지칠 대로 지쳐 정상에 다가갈 때마다 당신은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한다. 정상에 도착해 흥분이 좀 가라앉으면 당신은 또다시 뭔가 미진함을 느낀다. 피로가 풀리면 풀릴수록 당신의 불만은 점점 더 커져만간다. 당신은 끝없이 이어져 출렁이는 산들을 바라본다. 산을 오르고 싶은 욕망이 또다시 슬그머니 고개를 쳐든다. 당신은 이미 오른 산에는 아무런 흥미도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당신은 그너머 산에는 당신이 아직 그 존재를 모르는 또 다른 진풍경들이 숨겨져 있으리라고 확신한다. 하지만 그 산에 올라봤자 당신은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다, 당신을 맞이하는 건 쓸쓸한 바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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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항상 옳아. 잘못된 건 그 길로 접어든 사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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