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은 사진보다 완성되는 시간이 더 길고 구체적, 현실감이 떨어질 수 있지만 겉으로 드러난 이미지 묘사 뿐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담고 있고 추상을 통해 숨겨진 의미를 담을 수 있다. 그리고 동일한 것을 보더라도 작가에게 받아들여지는, 표현되어지는 이미지의 형태는 다르다.  

 

 

[본문발췌]

 

 

모든 픽쳐는, 뭔가를 관찰하고 그것을 설명한 것이다.

 

 

픽처를 논할 땐 그것을 만드는 방법에 근거해서 범주를 나누곤 한다. 회화, 드로잉, 모자이크, 사진, 영화, 애니메이션, 카툰, 코믹 스트립, 콜라주, 게임 등으로 말이다. 혹은 바로크, 고전주의, 모더니즘 하는 식으로, 스타일이나 시기에 따라 그것을 구분하기도 한다. 이들 중 일부는 미술로 간주되고, 일부는 그러지 못한다. ... 픽쳐의 역사는 미술사와 겹치지만, 그 둘이 완전히 동일한 것은 아니다. 미술은 묘사라고 간주될 수 없는 많은 것(예컨대, 장식이나 추상 같은 것들)을 포함하는 한편, 다른 종류의 이미지들은 배제한다.

 

 

모든 묘사는 하나의 사물을 그와는 다른 것으로 보는 인간의 능력에 기반을 둔다.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에서 셰익스피어는 다음과 같이 썼다. "어떨 때 우리는 용처럼 생긴 구름을 발견하기도 하고, 또 어떨 때는 비행운이나 곰이나 사자처럼 보인다."

 

 

플라톤이 볼 때, 회화와 시는 둘 다 일종의 모방(mimesis), 혹은 재현이었다. 철학자의 입장에서 이것은 논리와 수학, 그리고 기하학에 비해 대단히 저급한 수준의 지식이었다. <국가>에서, 본래는 플라톤의 스승이지만 그의 저서에서는 플라톤의 대변자 역할을 하는 소크라테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러한 재현 작업들은 진실에서 세 단계 멀리 떨어져 있는 것들을 다룬다." ... 그림은 실제 대상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외양만을 묘사하는 것이다. 물에 비친 막대기는 우리 눈엔 굽어 보인다. 하지만 굽은 막대기는 진실이 아니다.

 

 

하나의 사진 속 모든 요소는 동시에 촬영된 것이다. 하지만 회화는 그렇지 않다. ... 그렇기에, 대개는 사진 하나를 그렇게 오래 바라보지 않게 되는 것이다. 사진은 1초에 훨씬 못 미치는 순간을 보여 주며, 그러므로 사진을 통해서는 대상을 복층적으로 바라볼 수 없다. ... 그림에서는 겹겹이 쌓인 시간이 드러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사진보다 회화가 훨씬 흥미롭다.

 

 

우리는 기억을 통해 세계를 바라본다. 같은 사람을 보더라도, 만약 내가 그를 잘 알고 있다면, 그를 처음 만났을 때와는 다른 방식으로 그를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내 기억은 당신의 기억과 다르다. 우리가 같은 시간, 같은 곳에 있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동일한 것을 동일하게 바라보지 않는 것이다.

 

 

시간이 없으면 공간도 없다는 사실을 오늘날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불과 백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사람들은 시간과 공간이 별개로 존재하며, 절대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현재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는, 시간과 공간은 서로 같은 대상의 다른 측면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시간과 공간은 하나다. 하지만 우리는 공간이 전혀 없다는 게 무엇을 뜻하는지 상상하지 못한다. 그것은 우리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시간이나 공간을 벗어날 수 없다. 우리는 모두 시간이 한정되어 이다는 사실을 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시간에 신축성이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회화는 시간과 공간의 예술이다.

 

 

사진은 그 모든 것을 (단일 시점의 렌즈를 통해, 짧은 찰칵 소리로) 한 번에 포착한다. 하지만 인간은 그렇지 않다. 인간에게는 장면을 관찰하고 그것을 통해 공간을 만들어 내는 데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르네상스 유럽의 원근법에는 소실점이 있지만, 일본이나 중국 회화에는 소실점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가만히 앉아서, 한 지점에서만 바라보는 관점은, 실제로 우리가 풍경을 감상하는 방식과 다소 차이가 있다. 풍경을 감상할 때 우리는 계속 움직인다. 그런데 만약 그림에 소실점을 넣게 된다면, 우리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멈춰 버린다. 그렇게 되면, 그 풍경을 감상하는 것이라고 하기 힘들다. 

 

 

그림을 볼 때 우리는 우리의 시간을 그림에 대입하지만, 영화와 비디오 아트를 볼 때는 영화와 비디오 아트의 시간이 우리에게 대입된다.

 

 

존 로크의 <인간지성론>(1690)은 18세기 앵글로색슨계 철학의 기초 문헌이다. 이 책에서 로크는 "관념들(ideas)"과 캄라 옵스큐라(로크의 표현에 따르면, 암실)를 통해서 본 이미지들(images)을 탁월하게 비교했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관념이란 생각을 구성하는 벽돌이다). "그처럼 그림들이 암실로 들어와서 거기 남아, 필요할 때 언제든 찾을 수 있도록 정리될 수 있다면, 그 방은, 모든 시각 대상과 그것들에 대한 관념에 관련된, 인간의 지성과 매우 비슷한 모습을 갖추게 될 것이다."

 

로크의 철학에 따르면, 마음 속에는 "관념들"이 쌓여 나가며, 이 관념들은 사진(즉, "외부 현실과 시각적으로 유사한 것")과 거의 같다. 그렇기 때문에, 카메라 이미지는 현실의 지표라고 할 수 있으며, 우리가 세계를 파악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픽처들(특정 종류의 픽처들, 즉 광학적으로 투영된 픽처들)을 봄으로써 세계에 대해 배워 나갈 수 있다. 이 픽처들은 "외부 물질에 대한 관념들(ideas of things without)"을 제공해 준다. 즉, 그들은 현실을 묘사해 준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0945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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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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