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호흡, 감당할 수 있는 범위에서 위험감수와 행동, 그리고 여유...
[본문발췌]
돈의 가치는 시간과 연동된다.
선택의 순간, 인간의 비합리성이 고개를 든다. 비합리적인 심리적 편향들...
Framing effect, https://en.wikipedia.org/wiki/Framing_(social_sciences)
즉시성 효과, immediacy effect, https://en.wikipedia.org/wiki/Dynamic_inconsistency
사람마다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돈의 크기가 있다. 이를 늘리려면 내공을 키워야 하는데, 대개의 경우 그렇게 하지 못한다. 그런 내공은 나이가 든다고 저절로 생기는 것도 아니다. 벼락 재산은 사람을 망치는 경우가 많다. 부와 명예를 거머쥔 연예인 중 자살로 삶을 마감하는 경우가 빈번한 것을 보면 돈의 많고 적음이 삶의 전부는 아닌 듯하다. 자신의 내공 크기를 넘어선 돈은 독약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하자.
재산 극대화 전략이 삶에 주는 시사점은 투자의 영역만큼이나 분명하다.
첫째, 삶은 단기적인 관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재산 극대화 전략은 굉장히 긴 시간 관념을 가지고 살아갈 것을 요구한다. 당장 눈앞의 이익을 좇기보다는 긴 호흡을 가지고 살아갈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주식회사는 대부분 실적을 3개월마다 발표하고 이를 바탕으로 경영진의 성과에 대한 보상이 이뤄진다. 이러한 이유로 경영진이 장기적인 성장이나 지속 가능성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단기적인 변동성은 높을지라도 3년 이상의 기간을 놓고 보면 가족 기업이나 상장되지 않은 기업이 상장 기업을 앞서는 성과를 보인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기도 하다. 환경 문제 또한 장기적인 관점을 가질 수 있다면 그 해결책을 좀 더 쉽게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삶은 우리에게 리스크를 회피하지 말고 항상 본인이 감당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리스크를 질 것을 요구한다. 리스크를 회피하고 확실한 길로만 가겠다는 것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거의 확실하게 실패하는 방법이다. 왜냐하면 세상에는 리스크를 두려워하지 않고 껴안으며 발전해 나가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퇴보하고 있다는 의미다. 살면서 겪는 한 두 번의 실패는 오히려 한평생을 놓고 보면 오점이기보다는 인생의 귀중한 경험이자 자산이다. ... 내가 어떤 분야에 우위가 있는지 없는지 미리 확실하게 알 수 있는 방법은 투자에서와 마찬가지로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직접 시도해 보고 실패해 보는 방법밖에 없다. 일종의 통제된 실험을 통해 그 가능성을 타진하는 방법이 있긴 하다. 이는 벤처 회사를 설립해 성장시킬 때 매우 유효한 방식으로 알려져 있다. 이론만으로는 아무런 변화를 가져올 수 없다. 오직 실행만이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개체와 사회의 학습에 대한 이론으로서 탐험(exploration)과 활용(exploitation)을 대입해 비교하는 경우가 있다. 탐험이 어떤 분야에 우위가 있는지 알아보기 위한 시간들이라면, 활용은 탐험을 통해 파악된 우위가 있는 분야에 집중해 그로부터 복리의 성장을 구가하는 것으로 이해해 볼 수 있다.
셋째, 생존을 위협할 수 있는 리스크는 지지 말아야 한다. 재산 극대화 전략의 관점으로 보면 일생일대의 기회 같은 것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성공하기만 하면 그 한번으로 인생의 모든 문제가 풀리는 일따위도 존재하지 않는다. 운이 나쁘면 실패를 거듭하게 될 수도 있지만, 재산 극대화 전략을 꾸준히 따르다 보면 결국은 성공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아예 존재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는 (그래서 삶의 재산 극대화 전략을 계속해서 구사할 수 없게 만드는) 리스크는 절대로 지면 안 되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경제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부채를 지는 것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 이 외에도 이런 범주에 속하는 일들이 여럿 있다. 완전한 파산에 이르렀다고 행운의 여신을 탓하지 말라. 재산 극대화 전략을 따르지 않은 당신 탓이 더 크다.
마지막으로, 살다 보면 우위가 없음에도 한판 붙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재산 극대화 전략은 이런 경우 절대로 리스크를 지지 말라고 말한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원하지 않아도 피치 못하게 리스크를 져야 할 때가 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재산 극대화 전략은 아니지만 수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을 한 가지 알려 주겠다. 피해 갈 수 없다면, 그리고 우위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당신이 택할 수 있는 최선의 전략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한꺼번에 거는 것이다. 조금씩 찔끔찔끔 나눠 걸어 봐야 큰수의 법칙에 의해 좀 더 확실히 지기 때문이다. 물론 우위가 없기 때문에 질 가능성이 더 크다. 그렇더라도 이러한 상황에서는 여전히 이른바 '올인'이 최선의 전략이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수적 열세에 있는 휘하의 장졸들에게 왜군과 싸워서 이길 수 있는 방법으로 구사한 생즉사 사즉생 전략이라고도 볼 수 있다. 즉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고,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계량화가 곤란한 불확실성이 이익에 핵심적인 요소"
투자와 투기, 헤징은 어떻게 다른가?
투자는 다음의 2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거래다. 둘 중 하나라도 위배되면 투자라고 판단할 수 없다.
100퍼센트 자기 소유의 돈이어야 하며, 이 돈이 내 손을 떠나 줄어들지도 모르는 위험 상태에 빠져 있어야 한다.
처음에 투입한 돈을 다 잃을 수는 있지만 그 이상 잃는 경우는 없어야 한다.
헤지는 다음의 4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거래들이다. 투자와 마찬가지로 하나라도 위배되면 헤지라고 판단할 수 없다.
헤지하고자 하는 대상이 존재해야 한다.
헤지 대상의 원금보다 헤지거래의 원금이 작거나 같아야 한다.
헤지 대상과 헤지거래의 방향이 서로 정반대여야 한다.
헤지 대상과 헤지거래의 기초 자산이 정확히 일치해야 한다.
투기는 위에서 정의한 투자로도 헤지로도 판명되지 않는 나머지 모든 거래다.
옵션은 협상도 원활하게 이끈다. 영어로 옵션의 동의어에 '얼터너티브(alternative)'라는 단어가 있다. '대안', '선택 가능한 것'이라는 뜻이다. '협상술'에서는 대안의 발굴이 협상에서 가장 중요한 측면 중 하나라고 가르친다. 보통, 협상을 상대로부터 더 많은 이익을 빼앗기 위해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 상대를 굴복시키기 위한 수단을 동원하는 것이라 인식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사실 좁은 의미의 협상이다. 서로 아무런 대안없이 오로지 한 가지 차원으로만 협상을 진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는 협상이라기보다는 투쟁에 불과하다. 이와 같이 협상이 뺏느냐 뺏기느냐의 문제가 돼 버리면, 그다음에는 오직 누구의 힘이 더 강한가에 의해 최종적인 결과가 결정돼 버리는 일만 남는다. 결국 지속적으로 좋은 비즈니스 관계를 유지하기는 어려워진다. 협상의 대가들에 의하면, 한 가지 측면만을 가지고 다투는 협상은 최악의 협상이다.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그 한 가지 외에도 협상할 만한 측면들이 많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비즈니스 관계에서는 가격만 가지고 협상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외에도 물량이나 기간, 품질 등 협상할 수 있는 차원은 얼마든지 개발하기 나름이다. 이와 같이 협상할 수 있는 측면들이 다양해지면 서로 조금씩 주고받을 것이 생기고, 그렇게 되면 쌍방이 어느 정도씩 수긍할 수 있는 협상안을 도출할 수 있다. 이는 비단 비즈니스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리스크는 피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이익이 원천으로 삼아야 한다.
예측을 기반으로 미래 계획을 세우는 것은 회사나 개인이 흔히 행하는 일이다. 하지만 실제 미래의 그 시점이 되면 예측한 대로 계획이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나 경험해 봤을 것이다. 예측에 기반을 둔 계획이 항상 틀리는 것에 대해 심리학자들은 '계획 오류(planning fallacy)'라고 말한다. 여기에는 인간의 오류는 심리적인 문제 말고도 구조적인 원인이 있다. 계획의 개별 구성단위들은 각각 예상 수량이나 예상 소요 시간과 같은 것들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작아지는 데는 0이라고 하는 한계가 있지만 커지는 데는 한계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프로젝트를 완수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예상보다 오래 걸리기 마련이고, 실제 비용도 항상 예상보다 더 들기 마련이며, 실제 불량품은 항상 예상보다 더 많이 나오기 마련이다.
삶이 멱 법칙을 따른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무엇을 시사할까? 미래를 정교하게 전망하거나 예측하는 것은 무의미한 행위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해하기 쉽도록 지진을 예로 들어 설명해 보자. 진도 10의 지진이 발생할 확률은 물론 매우 작은 값이지만 그렇다고 0은 아니다. 진도 15, 진도 20의 지진 또한 마찬가지로 진도 10의 지진보다는 발생할 확률이 작겠지만 여전히 0은 아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 확률들이 작다고 내일 당장 그런 지진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갑자기 그냥 발생할 수도 있다. 그러니 예측은 무의미하다. 좋든 싫든 엄연한 사실이다. 결국 우리에게는 삶이 이와 같이 불확실하다는 것을 눈을 크게 뜨고 받아들이느냐, 아니면 타조처럼 고개를 당에 처박고 그렇지 않다며 헛되이 믿을 것이냐의 선택만 남아 있을 뿐이다.
잘못된 일은 제거해 버리고 잘될 일만 남겨 놓는 것, 세상의 불확실성으로부터 손실을 입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로부터 이익을 보는 것, 그러한 상태를 '반취약성(anti-fragility)이라고 한다. 이것은 강건성(robustness)과도 다르다. 강건성은 예상외의 큰 변동이 발생해도 좋을 것도 없고 나쁠 것도 없는 상태를 말한다. 제일 불리한 상태는 취약성(fragility)이다. 예상외의 큰 변동 앞에 취약한 상태를 속절없이 큰 손실을 입는다. 반면 반취약한 상태는 변동이 큰 만큼 이익도 커진다.
삶을 반취약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뭔가 새로운 것을 더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을 버리는 것이 순리다.
반취약성은 오직 '실행'에 의해서만 달성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론으로는 반취약성을 달성할 수 없다. 실행을 중시하고 그에 따른 결과에 책임을 지는 사람들은 결정을 내릴 때 행동의 결과, 즉 페이오프(payoff)에 집중한다. 반면, 결과에 책임을 지지 않는 책상머리 이론가들은 예측이 맞는지 틀리는지에 집중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취약하다.
취약성과 반취약성의 궁극적인 리트머스 시험지는 시간과 역사라는 점이다. 취약한 것들은 결국 시간이 지나면 여지없이 그 성질을 드러내고 만다. 당신이 리스크를 회피하지 않으면 감내하고 당신의 운명에 대해 위엄을 가지고 맞서면, 그 어떤 것도 당신을 초라하게 만들 수 없다. 반대로 당신이 리스크를 감내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것도 당신을 위대하게 만들 수 없다. 결국 나를 비천하게 만들 수 있는 존재는 남이 아니고 오직 나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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