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 세계에서는 생존에 필요한 만큼을 사냥하고 자연에서 얻는다. 인간은 돈과 시간을 비생산적으로 소비하고 있음을 과시적 소비와 여가로 증명하고, 그러기 위해 같은 사람을 착취하기까지도 한다. 무엇이 더 진화한 것이고, 자연스러운 삶일까?

 

 

[본문발췌]

 

 

강물은 직선으로 똑바로 건너야 가장 빠르다. 추상적 경제인은 극대화원리에 의거하여 합리적으로 행동하기 때문에 가장 빠른 직선코스로 가고자 할 것이다. 하지만 대개 사람들은 누가 언제 놓았는지는 모르지만 냇물 속에 살짝 잠겨 있는 징검돌을 하나씩 딛느라 꼬불꼬불한 곡선으로 건넌다. 보편적이라 생각되는 호모 에코노미쿠스의 행동은 언젠가부터 놓여 있는 징검돌, 즉 어제의 행위가 누적된 결과와 관습에 의해서 제약된다. 이것을 제한된 합리성(bounded rationality)이라 부른다. 제한된 합리성에서는 직선(보편적 극대화원리)보다는 지금의 신고전학파 경제학이 무시하고 있는 징검돌(관습적 행동, 사회문화적 패턴과 제도)을 중시한다. 오늘의 행동을 어제가 원인이 되고 진화되어 나타난 결과의 축적물로 보기 때문이다. 베블런은 이것을 누적적 인과관계(cumulative causation)라고 부른다. 인간의 현재적 행동은 자신만의 천부적 이성과 합리성에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과거의 누적된 행위와 관습, 또 이것들이 체계화되어 나타난 규칙이나 제도에 의해서 현재의 행동이 결정되는 것이 바로 제한된 합리성이다. 여기서 제도경제학과 진화경제학이 출발한다. 그것은 베블런의 방법론적 문제의식에서 기원하며 <유한계급론>의 고전적 의미를 더욱 보태 준다.

 

 

지식은 절대로 형이상학적이거나 가치중립적이지 않다. 지식은 상대적이다. 어느 시대의 관심, 선입견, 사고관습이 새롭게 바뀌면 우리들의 앎과 지식도 다르게 변화한다. 인간은 세계와 직접 대면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의 세계는 언어, 선입견, 상징 등의 중간세계를 통해서만 우리들에게 인식된다.

 

 

베블런은 미개시대 야만문화에서 유한계급의 계보를 구했다. 야만인은 약탈과 전리품을 명성의 기준으로 삼는다. 유한계급의 성공은 폭력과 술책으로 얼마나 많은 부를 축적하였느냐에 달려있다. 재산을 갖고 있기만 해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명성획득을 위해 과시적으로 소비하고 낭비해야 한다. 유한계급은 일상생활에 유용한 생산노동을 경멸하는 것을 행위규범으로 삼는다. 그래서 모든 돈과 시간을 비생산적으로 소비하고 있음을 과시적 소비와 여가로 증명한다. 젠틀맨의 지팡이 또한 노동하지 않아도 되는 계층이며 권위를 상징하는 의미도구로 사용된다. 베블런은 경제학의 영역을 생산에서 소비문화로 전환시킴으로써 풍요로운 현대 자본주의를 분석하는 준거점을 제공하였다.

 

 

진짜 최상위 유한계층은 한 단계 더 뛰어서 호화요트를 타고 세계일주를 하거나, 한 단계 내려가서 오히려 별장이 딸린 개인농장에서 땀 흘려 일한다. 손에 흙을 묻히고 일한다고 해서 노동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삶을 되돌아보고 노동의 참된 의미와 땀방울의 가치를 되새기는 일(wrork)이다. 노동(labor)은 임금과 대가를 요구하지만 일(work)은 한다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고 개별적이며 창의적 작업에 속한다. 

 

 

진보로 가는 길은 느리고 더디지만 퇴행으로 되돌아가는 길은 쉽고 빠르다고 베블런은 지적한다. 새로워서 낯설기만한 생각으로 가는 진보의 길은 힘들지만, 오래 익숙했던 습관을 갖고 과거 출발점으로 역행하는 퇴보는 쉽다. 유한계층의 본성은 보수적이고 역행적일 수밖에 없다.

 

 

과시적 여가와 과시적 소비를 탐색해 보면 둘 다 똑같이 낭비의 효용성은 명성에 있다는 것이 드러난다. 과시적 여가는 시간과 능력의 낭비이고, 과시적 소비는 재화의 낭비이다. 두 가지 모두 부를 과시하는 방법으로서 관습상 동등한 것으로 인정받는다. 명성의 수단으로써 유용하고 게다가 체면유지를 위한 요소로서 강조되는 과시적 소비는 개인 접촉이 가장 광범위하고 인구이동이 심한 사회에서 최고조를 이룬다. 과시적 소비는 시골보다는 도시사람들의 소득 중에서 상당부분을 지출하도록 만든다. 도시인들은 서로를 능가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면서 과시적 소비수준을 갈수록 높이게 된다. 따라서 소비는 시골보다 도시의 생활수준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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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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