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결정하는 것은 자유이고, 자유를 결정하는 것은 용기" - 페리클레스
자유를 위한 용기를 내려면 우선, 정신이 깨어 있어야 한다.
[본문발췌]
인류의 위대한 모험은 나머지 인류와 다른 길을 간 소수의 단호한 사람들의 몫이었다. 역사는 호기심으로 세상에 저항한 이들의 기록이다.
생각은 혼자 두면 외롭고 무력하다. 생각은 소통을 통해 수정되어야만 남들에게도 의미 있는 생각이 된다. ... 모든 개인은 각자의 감성과 기억을 토대로 새로 흡수한 정보를 생각으로 형성한다. 그리고 생각은 다른 사람의 생각을 접하기 전에는 그 나름의 가치를 모른다.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의 생각과 접목하여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는 것은 창조성이 아니라 감성이다.
진보는 항상 번영과 함께 빈곤을 낳았다. 대다수가 가난하지 않던 시대가 언제였는가? 일부 사람들이 전보다 덜 가난해졌다고 해도 가난을 종식시키려는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돈이 발명된 이래로 모두가 만족할 만큼 풍족한 적은 없었다. 돈이 충분한 날은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인권과 민주주의에 관한 많은 논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세계 인구의 10분의 1이 부의 85퍼센트를 소유하는 현실을 막지는 못했다. 식민주의가 끝났다고 해도 해마다 수천억 달러가 빈곤국에서 부유한 나라로 흘러들어가는 현상은 멈추지 않았다. 미국에서도 인구의 5분의 4가 여전히 부의 15퍼센트만 소유한 반면에 1퍼센트의 부자가 부의 3분의 1을 소유한다.
자선 사업의 목표는 물질적인 결핍을 메우는 것 이상으로 더욱 폭넓게 확장할 필요가 있다. 인간의 소외감에 대응하고 단순히 무엇을 주고받는 것을 넘어서 호혜적인 '관계'를 만들어내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제안하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다.
권력자는 더 이상 스스로를 믿지 않고 아무도 자기를 믿어주지 않는다고 느끼며 약속을 지키지 못할 때 자살한다. 권위자는 자신의 예측이 실현되지 않을 때 자살한다. 전문가는 다른 전문가들이 하는 말을 더 이상 이해하지 못할 때 자살한다. 친절한 사람은 친절이 개입할 여지가 없는 직업에 종사할 때 자살한다. 가장 흔한 형태의 자살은 희망을 잃는 것이다. 가장 우울한 자살은 고마워하는 마음의 자살이다. 시기와 탐욕과 오만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만성질환이지만 그나마 고마워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억제되었다. 고마워하는 마음은 한때 사회를 융화시키거나 적어도 혐오감을 줄옂는 끈이었다. 이를테면 신, 조상, 부모, 스승, 이웃, 자연에 고마워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사회가 평등을 염원할수록 권리가 기반을 이루고, 상업화될수록 고마워하는 마음이 들어설 자리가 줄어든다. 고마워하는 마음은 독립에 대한 모독이자 자존심을 거부하는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역사 속에서면 인간은 위협받은 때보다는 이해받을 때 외부 세계에 호기심을 가져왔다. 관심이야말로 우리가 타인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찬사다. 우리를 풍요롭게 만드는 최선의 방법은 남의 생각을 배우는 것이다. 인간이 항상 아주 작은 위험 신호에도 껍데기 속으로 숨어버리는 달팽이처럼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 이해받으려면 입장이 다른 사람들의 관심사를 알아보고 그들의 생각과 공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해한다고 해서 불일치가 다 해소되는 것은 아니지만 불일치를 풍부한 경험으로 만들어준다.
시간의 엄수와 효율성은 노예와 주인의 관계가 되어 사람들에게 하루에 더 많은 활동과 성취를 이루도록 채찍질해서 개인의 리듬을 개성 없는 정해진 시간표에 맞추도록 강요한다. 인류는 점차 특권에 의해서만 분류되는 것이 아니라, 기질적으로도 규칙적이고 질서정연한 삶을 인정하고 사회가 정해준 생활에 기꺼이 적응해서 스스로 결정하지 않아도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과, 자기가 하는 일과 그 일을 언제 할지를 통제해서 모든 활동을 자기 나름의 속도로 수행하고 예상 밖의 사건과 다양성, 놀라움과 즉흥성에서 큰 즐거움을 얻는 사람들로 나뉜다. 이로써 사람들이 원하는 미래상도 크게 달라진다.
자유는 단지 권리가 아니라 획득해야 할 기술이다. 나만의 렌즈가 아니라 다양한 렌즈를 통해 세상을 보는 기술이자 아무도 상상한 적 없는 무언가를 상상해서 아름다움이나 의미나 영감을 찾는 기술이다. 각자의 삶은 이런 자유에 관한 우화다.
사람은 관계 안에서 형성되는 존재다. 인간은 타인과 개인적으로 결합하지 않으면 발전하지 못한다. 관계가 호혜적인 관계이고 동시대인이나 선조들과의 공동체 의식으로 풍성해질 때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최근에 농촌에서 도시로, 가난한 나라에서 부자 나라로 대규모로 이주하는 현상은 자연의 다채로운 변화에 대응하는 인류의 변함없는 특징이다. 국가는 오래전부터 이렇게 떠돌아다니는 사람들을 국경 안에 붙잡아두기 위해 다양한 장벽을 세워왔지만 최근에는 기술과 통신과 교육이 모든 사람을 연결해서 새로운 세대를 다시 유목민으로 만들고 있다.
사람의 나이를 살아온 햇수로만 세지 않고 그 사람이 살아온 시간의 강도와 그 사람이 흡수한 경험의 다양성으로 헤아린 다음 다시 멍하니 절반만 존재하면서 흘려보낸 시간을 모두 빼서 계산하듯이, 각 개인의 조국도 고마워하는 마음, 신의, 영감의 다양한 파편과 등급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페리클레스는 행복을 결정하는 것은 자유이고, 자유를 결정하는 것은 용기라고 말했다. 하지만 사회는 사람들을 용기 있게 만들도록 조직되지 않았다. 사람들의 정신과 에너지를 쥐어짜는 일이 너무나 많다. 사람들을 생기 넘치고 흥미를 느끼게 하고 온전히 깨어 있게 하는 일은 너무 적다. 더 생생히 살아 있음을 느끼고 싶다면 일을 통해서 사회에 기여하는 노력을 인정받고 재능과 예술적 기교로 돈 많은 사람들의 변덕에 복종하는 것 이상의 일을 해야 한다. 이런 요구에 대한 자각은 조직의 스트레스를 최소화하기 위한 진정제로만 조직에 투입되었다. 고대 아테네에서 고용은 노예를 위한 것으로 자유인은 남에게 굽실거리며 일을 해서 임금을 받는 것을 불명예로 여겼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거꾸로다. 고용되지 않으면 부끄러운 일이고 자기를 팔아서 시간제 임금을 받는 것을 성공으로 여긴다. 깨어 있는 시간의 절반을 자유롭지 않은 상태로 지내야 하는데도 그것을 자연스러운 상태라고 여긴다. 그럼에도 국가가 번창할수록 국민은 자유로운 인간으로 일하기를 꿈꾸면서 굽실거리고 아첨하지 않고도 자신의 재능과 시간을 활용할 방법을 찾아나선다. 스스로 일을 통제하고 창조력을 발휘하고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되고 인정받는 방법을 찾기 위한 넓은 탐색의 영역이 열려 있다. 그러나 이런 기회를 허락하는 일은 많지 않다. 굳이 이런 기회를 요구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 일이란 본래 그런 것이라고 체념하고 일을 하고 얻는 알량한 보상에 만족하거나 일 밖에서 만족을 찾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삶은 아무리 힘들어도 희망을 놓지 않는다는 뜻이고 그것이 삶의 의미이고 목적이다. - 도스토엡스키
일본에 강하게 남아 있는 다비 전통은 남을 발견하기보다 자기를 발견할 것을 장려한다. 다비란 속세의 경쟁과 질시를 멀리하고 자연과 교감하며 황야로 나가서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발견하는 도보 여행을 뜻한다. 현대의 여행객들은 료칸에 머물며 과거로 걸어 들어가 성공에 대한 욕망을 떨치고, 조상들의 고행과 불확실성을 인정하던 마음, 덧없음의 미학, 사람이나 장소와 헤어지는 슬픔을 되찾으려는 막연한 욕망을 실현한다. '획일화된 단체여행을 피하라'는 조언은 혼자 여행하는 사람과 다츠사라(탈샐러리맨이라는 뜻으로 월급에 얽매인 생활에서 벗어나 독립한 사람)가 좋아하는 여행서 <걸어서 세계를 여행하는 법The way to walk the world>에서 전하는 메시지이지만 사실 자기 자신과 고된 현실에서 벗어나봤자 아무 데로도 가지 못한다.
의사소통은 메시지를 전송하고 상대가 발신자의 의도대로 해석하고 이해하게 만드는 단순한 과정이 아니다. 사람마다 지식의 배경이 제한적이고 메시지의 함의를 파악하려는 의지나 에너지의 양이 다르기 때문에 수신자가 메시지에서 얼마나 많은 관련성을 발견하는가에 따라 메시지를 이해하고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게 된다. 메시지의 함의가 많고 함의를 파악하는 데 필요한 노력이 적을수록 관련성이 커진다. 남들이 우리에게 알아내도록 의도한 함의를 이해하려면 어쩔 수 없이 추측이 개입한다. 의사소통은 불확실성과의 싸움이다. 따라서 나는 내가 다루는 지식의 상당 부분이 가변적이거나 희석되어 있다는 사실을 안다.
가장 영향력 있는 발견은 예기치 않게 나타나고, 사전에 정해진 목표로부터의 자유와, 사물이 있는 그대로 존재한다는 불가피성을 지나치게 확신하는 태도로부터의 자유에 의존한다.
살아 있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연결되어야 한다. ... 살아 있다는 것은 그저 심장이 뛰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고 다른 심장은 어떻게 뛰고 다른 정신은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아채는 일이다. 삶을 공격하는 치명적인 질병은 '생전 경직rigor vitae', 곧 호기심을 다 태워버리고 반복적이고 무감각한 일상에 안주하는 정신의 경직 상태다. 이런 상태는 살아 있다는 착각을 주기 때문에 '사후 경직rigor mortis'보다 더 위험하다. 전에는 생각해본 적 없는 생각을 하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서 영감을 얻지 못한다면 그저 명목상으로만 살아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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