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자유 시장 경제가 균형을 잃으면 세상은 발전이 아니라 퇴보할 수 있다. 배려와 공동체 차원의 효율적인 조직과 제도가 기반이 된다면 모두가 잘 사는 세상은 꿈이 아니다.
[본문발췌]
자유 시장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시장에는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는 모종의 규칙과 한계가 있다. 시장이 자유로워 보이는 것은 단지 우리가 그 시장의 바탕에 깔려 있는 여러 규제를 당연한 것으로 여겨 규제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장이 얼마나 자유로운지를 규정할 수 있는 객관적인 방법도 없다. 자유 시장은 정치적으로 정의되는 것이다. 자유 시장 경제학자들은 자신들이 정부의 정치적 개입으로부터 시장을 보호하려고 하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정부는 언제나 시장에 개입하고 있고, 자유 시장론자들도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정치적이다. 객관적으로 규정된 자유 시장이 존재한다는 신화에서 벗어나는 것이야말로 자본주의를 이해하는 첫걸음이다.
잘사는 나라와 못사는 나라의 임금 격차는 개인의 생산성이 달라서가 아니라 각 정부의 이민 정책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나라 간의 이주가 자유롭다면 잘 사는 나라의 일자리는 대부분 못사는 나라에서 온 노동자들이 차지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임금이라는 것은 정치적 결정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을 뒤집어 보면, 가난한 나라가 가난한 것은 가난한 계층의 국민들 때문이 아니라 부유한 계층의 국민들 때문이라는 말도 가능하다. 사실 가난한 나라의 가난한 사람들은 잘사는 나라의 가난한 사람들과 경쟁에서 이길 수 있지만, 가난한 나라의 부자들은 부자 나라의 부자들에 비해 경쟁력이 높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부자 나라의 부자들이 개인적으로 특별히 잘나서 그런 것이 아니다. 이들의 높은 생산성은 단지 역사적으로 축척해 온 다양한 제도들 덕분일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공평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개인의 가치에 맞는 임금을 받고 있다는 잘못된 신화를 깨뜨려야만 한다.
변화를 인식할 때 우리는 가장 최근의 것을 가장 혁신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사실과 다르다. 예를 들어 최근의 전자 통신 기술상의 발전은 상대적인 관점에서 볼 때 19세기 후반의 전보만큼 혁명적이라고 할 수 없다. 인터넷 혁명의 경제적, 사회적 영향은 최소한 지금까지는 세탁기를 비롯한 가전제품만큼 크지 않았다. 가전제품은 집안일에 들이는 노동 시간을 대폭 줄여 줌으로써 여성들의 노동 시장 진출을 촉진했고, 가사 노동자 같은 직업을 거의 사라지게 만들었다. 과거를 돌아볼 때 망원경을 거꾸로 들고 보아서는 안 된다. 옛것을 과소평가해서도 안되고 새것을 과대평가해서도 안되는 것이다. 그렇게 할 경우 국가의 경제 정책이나 기업의 정책은 물론이고 우리 자신의 직업과 관련해서도 여러 가지 잘못된 결정을 내리게 된다.
인플레이션을 길들였는지는 모르지만 세계 경제는 상당히 더 불안해졌다. 지난 30년 사이에 물가 변동을 잡았다는 사실에 지나치게 흥분해서 우리는 같은 기간 동안 전 세계 여러 나라가 겪어 온 극도로 불안정한 경제 상황을 못본 척했다. 그 사이 수많은 금융 위기가 발생했다. 과도한 개인 채무, 파산, 실업 등으로 많은 사람의 삶을 파괴했던 2008년 금융 위기도 그 한 예이다. 인플레이션에만 지나치게 집착하면서 우리는 완전 고용이나 경제 성장 같은 중요한 문제에 충분히 신경 쓰지 못했다. '노동 시장 유연성'이라는 미명 아래 고용이 불안정해지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불안해졌다. 물가 안정이 성장의 전제 조건이라고들 주장하지만, 1990년대 이후 인플레이션에 고삐를 매었음에도 성장률은 미미했다. 바로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한 정책들이 성장을 둔화시켰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를 종합해 볼 때 적당히 낮은 수준의 인플레이션은 자유시장 경제학자들이 걱정하는 것처럼 그렇게 위험하지 않다. 인플레이션이 낮아져 경제가 안정되면 투자를 불러일으켜 결과적으로 경제 성장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주장과는 정반대로, 인플레이션을 아주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려는 시도는 투자와 성장을 위축시켰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플레이션이 낮아졌어도 우리는 대부분 진정한 경제적 안정을 맞보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인플레이션 억제 정책을 주요 목표로 하는 자유 시장 정책 패키지의 근간을 이루는 자본과 노동 시장의 자유화는 금융 불안과 고용 불안정을 초래해서 불안정한 세상을 만들었고, 설상가상으로 이 정책이 약속했던 이른바 '성장 촉진'마저 실현하지 못했다. 인플레이션에 대한 강박관념은 이제 잊어버리자. 인플레이션은 장기적 안정, 경제 성장, 그리고 인류의 행복을 희생해서 금융 자산 보유자들에게나 유리한 정책을 추진하려는 사람들이 대중을 겁주기 위해 사용해 온 '무서운 망태 할아범' 같은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자유 무역, 자유 시장 정책은 제대로 작동한 적이 거의 없다. 대부분의 부자 나라들은 자신이 개발도상국이었을 때에는 그런 정책들을 사용하지 않았다. 지난 30년 동안 이 정책을 도입한 개발도상국들은 성장률 둔화와 수입 불균형 등의 부작용을 떠안아야 했다. 자유 무역, 자유 시장 정책을 사용해서 부자가 된 나라는 과거에도 거의 없었고, 앞으로도 거의 없을 것이다.
부자 나라들도 이른바 탈산업 사회로 접어들었는지가 아직 확실하지 않다. 이제 부자 나라들의 대다수 국민은 공장에서 일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동안 상대 가격의 변화(제조업 제품의 가격은 내린 반면 서비스 가격은 그렇지 않음)를 감안하면 부자 나라들의 생산과 소비에서 제조업 부문의 중요성은 그리 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탈산업화 현상이 꼭 제조업의 쇠퇴를 뜻하는 것은 아니지만(물론 그런 경우가 많기는 하지만) 이 현상이 장기적인 생산성 증가와 국제수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세계 각국의 상당수 정부들이 탈산업 사회라는 신화에 세뇌되어 탈산업화 현상에 따른 부정적 결과들을 무시하고 있기에 하는 말이다. 특히 개발도상국이 산업화 단계를 건너뛴 다음 서비스 산업으로 번영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환상에 불과하다. 대다수의 서비스는 생산성이 느리게 성장한다. 그리고 생산성 증가 속도가 빠르다는 첨단 지식 기반 서비스 산업들은 강력한 제조업 없이 발전할 수 없다. 더욱이 서비스는 국제 교역이 어렵다. 그래서 개발도상국이 서비스 산업에 특화하는 경우 심각한 국제수지 적자에 직면할 수 있고, 이렇게 되면 경제를 고도화시킬 능력 또한 떨어지게 된다. 이렇듯 탈산업 사회라는 환상은 선진국에도 좋지 않지만 특히 개발도상국에는 대단히 해롭다.
미국식 경제 모델을 지지하는 주장은 미국인의 생활수준이 전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사실'에 기반을 두고 있다. 미국이 세계에서 생활 수준이 가장 높은 나라 중의 하나라는 데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지만, 한 나라의 평균 소득으로 구매할 수 있는 재화와 서비스의 양을 따지는 것보다 더 넓은 의미에서 생활수준을 측정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나면 소위 말하는 미국의 우월성은 상당히 빛을 잃고 만다. 미국은 소득 불균형이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에 미국인들의 생활수준을 짐작하는 데 평균 소득을 사용하는 것이 부적절하다. 이 사실은 다른 부자 나라들에 비해 훨씬 열등한 미국의 보건 및 범죄 관련 지표에 잘 드러난다. 다른 선진국들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높은 미국인들의 구매력은 또 다른 미국인들, 특히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미국인들의 빈곤과 불안정 덕분에 가능한 것이다. 미국인들은 또 비슷한 경제 수준의 다른 나라 노동자들에 비해 노동 시간이 상당히 더 길다. 같은 시간을 일해서 생기는 돈은 구매력을 기준으로 해도 유럽 여러 나라에 뒤진다. 이런데도 미국이 다른 나라보다 생활수준이 더 높다는 주장을 한다면 반론의 여자기 많다.
국가 간의 생활수준 격차를 간단히 비교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중 1인당 소득, 특히 구매력 평가지수로 표시한 1인당 소득이 그나마 가장 신뢰할 만한 지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소득으로 얼마나 많은 재화와 서비스를 살 수 있는지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면 여가 시간의 질과 양, 직업의 안정성, 범죄의 공포로부터 해방, 의료 혜택, 사회 복지 등 '질 좋은 삶'을 구성하는 여러 가지 다른 요소들을 간과하기 쉽다. 개인마다, 그리고 나라마다 이런 요소들 중 어떤 것이 가장 중요하고, 이런 것들과 소득 수준 사이의 균형을 어떤 식으로 맞추는 것이 좋을지는 각자 정하기 나름이지만 모두가 진정으로 '잘사는' 사회를 건설하려면 소득 이외의 요소를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아프리카가 늘 정체 상태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위에서 열거한 모든 구조적 문제가 그대로 있었고 경우에 따라 더 심했던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아프리카는 상당한 수준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그뿐 아니라 아프리카의 발목을 잡는다고 간주되는 구조적 문제들 중 대부분은 오늘날 부자가 된 나라들도 가지고 있던 문제들이다. 나쁜 기후(극지 기후, 열대성 기후), 내륙 국가, 풍부한 천연자원, 민족 분쟁 바람직하지 않은 문화 등 그야말로 빠진 것 없이 다 갖추고 있었다. 이런 구조적 문제가 아프리카의 발전을 가로막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다만 이런 장애 요인들이 낳는 문제를 처리할 만한 기술적, 제도적, 조직적 기술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 30년 동안 아프리카의 정체를 불러온 진짜 요인은 이 지역 국가들이 추진하도록 강요받았던 자유 시장 경제 정책이다. 역사나 지리적 요건과는 달리 정책은 변화시킬 수 있다. 아프리카의 저개발은 숙명이 아니다.
단순히 부자들을 더 부자로 만들어 준다고 해서 나머지 사람들이 더 부유해지는 것은 아니다. 만약 부자들에게 주어지는 더 많은 부가 사회 전체의 혜택으로 파급되게 하려면 국가는 각종 정책 수단(예를 들어 부자와 기업의 감세를 허용하는 대신 투자를 조건으로 제시)을 통해 부자들로 하여금 더 많이 투자하도록 해서 더 높은 경제 성장을 이루어 낼 수 있도록 하며, 복지 국가 같은 메커니즘을 통해 전 사회 구성원들과 성장의 과실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 나라가 번영하기 위해서는 국민 개개인의 노력이나 재능보다 공동체 차원에서 효율적인 조직과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영웅적인 기업가들이 등장하는 신화를 거부하고 집단 차원의 공동체적 기업가 정신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조직과 제도를 마련하도록 돕지 않으면 가난한 나라들이 빈곤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란 불가능하다.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이 늘 최선의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 직접 관련된 일들조차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이를 전문 용어로는 '제한적 합리성'이라고 한다. 세상은 너무도 복잡하고, 우리가 그런 세상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은 극도로 제한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가 처리해야 하는 문제들의 복잡성을 줄이려면 일부러 선택의 자유를 제한해야 하고, 실제로 많은 경우에 그렇게 하고 있다. 특히 극도로 복잡한 현대 금융 시장과 같은 분야에서 정부의 규제가 효력을 발휘하는 이유는 정부가 보유한 지식이나 정보가 더 우월해서가 아니라 정부 규제를 통해 선택의 범위를 제한하여 문제의 복잡성을 줄임으로써 결과적으로 일이 잘못될 가능성을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높은 교육 수준이 국가 번영으로 이어진다는 증거는 사실 놀라울 정도로 빈약하다. 교육을 통해 얻은 지식은 사람들이 더 만족스럽고 독립적인 생활을 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만 대부분의 경우 생산성 향상과는 직접 관련이 없다. 또 지식 경제 시대에 접어들면서 교육이 경제 발전에 필수 요소가 되었다는 주장도 옳지 않다. 우선 지식 경제라는 개념 자체에 문제가 있다. 역사적으로 지식은 언제나 부의 원천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탈산업화와 기계화가 진행되면서 선진국의 대다수 일자리에서 꼭 필요로 하는 지식 요건은 오히려 낮아지고 있다. 지식 경제에 더 중요하다는 고등 교육도 그것이 경제 성장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는 증거는 찾아보기 힘들다. 한 나라의 번영을 결정하는 것은 개인의 교육 수준이 아니라 생산성 높은 산업 활동에 개인들을 조직적으로 참여시킬 수 있는 사회 전체의 능력이다.
초중등 교육의 생산성 향상 효과가 낮은 것은 이 시기의 교육이 자아실현, 모범 시민 양성, 민족 정체성과 같은 것을 함양하는 데 더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라면, 고등 교육의 생산성 향상 효과가 낮은 것은 고등 교육의 기능 중 경제학에서 '분류'라 일컫는 기능이 강하기 때문이다. 물론 고등 교육은 피교육자들에게 생산성과 관련된 지식을 상당 정도 전수해 주지만, 그것의 또 하나의 중요한 기능은 그 피교육자들이 얼마나 고용에 적합한지 순위를 매기는 것이다. 많은 직종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능력은 일을 하면서 배워 갈 수 있는 전문 지식보다는 전반적인 지능, 의지, 조직 사고력 등이다. 따라서 대학에서 역사나 화학을 전공하면서 배운 지식은 보험 회사나 교통부 공문원으로 근무할 때에는 거의 쓸모가 없겠지만, 대학을 나왔다는 사실 자체가 대학을 가지 않은 사람들보다 똑똑하고, 의지가 강하며, 조직적 사고력이 있다는 신호가 된다. 대졸자를 모집하는 회사는 각 직원의 전문지식 보다는 이런 일반적 능력을 보고 직원을 채용하는 것이다. 대학에서 얻은 전문 지식은 대부분 직장에서 수행할 업무와 별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부자 나라와 가난한 나라의 가장 큰 차이는 구성원 개인의 교육 수준이 얼마나 높은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각 개인을 잘 아울러서 높은 생산성을 지닌 집단으로 조직화할 수 있느냐에 있다. 이런 조직화의 결과는 보잉이나 폭스바겐과 같은 거대 기업일 수도 있고, 스위스와 이탈리아에 많은 세계적 수준의 제품을 생산하는 중소기업일 수도 있다. 이런 기업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투자와 리스크 감수를 장려하는 일련의 제도가 필요하다. 유치 산업을 보호 육성하는 교역 정책, 장기적인 생산성 향상을 위해 '참고 기다릴 줄 아는 자본'을 제공하는 금융 시스템, 제대로 된 파산법으로 자본가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고 좋은 복지 정책으로 노동자들에게도 새로운 기회를 주는 제도, 연구개발과 노동자 훈련에 관한 공공 보조금과 규제 정책 등이 필요한 것이다.
교육은 소중하다. 그러나 교육의 진정한 가치는 생산성을 높이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잠재력을 발휘하고 더 만족스럽고 독립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 경제를 발전시킬 것이라는 기대를 안고 교육을 확장하면 큰 실망을 겪게 될 것이다. 교육과 국민 생산성 사이의 연관성이 약하고 복잡하기 때문이다. 교육에 대한 과도한 열의는 가라앉힐 필요가 있다. 특히 개발도상국에서는 생산적인 기업과 그런 기업을 지원할 제도를 확립하는 데 더 신경 쓸 필요가 있다.
기업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들에게 최대한의 자유를 허용하는 것은 국민 경제에는 말할 것도 없고 기업 자신에게도 좋지 않을 수 있다. 모든 규제가 기업에 해로운 것은 아니다. 때로는 천연자원이나 노동력과 같이 기업들 모두가 필요로 하는 공동의 자원이 파괴되지 않도록 개별 기업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기업 부문 전체에 장기적으로 이익이 되기도 한다. 또 각 개별 기업에 단기적으로는 손해를 끼칠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기업 부문 전체의 생산성을 높이는 규제도 있을 수 있다. 노동자 교육 규정 같은 것이 그런 예이다. 결국 문제가 되는 것은 기업 규제의 내용이지 양이 아니다.
지나치게 결과를 균등하게 하려는 것은 해롭지만, 이 '지나치다'는 것의 한계를 어디로 정해야 하는지는 논의를 거쳐야 한다. 기회의 균등을 보장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최소한의 소득, 교육, 의료 혜택 등을 보장함으로써 최소한의 역량을 갖출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지 않으면 공정한 경쟁을 한다고 말할 수 없다. 기회의 균등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지만 진정으로 공정하고 효율적인 사회를 건설하기를 바란다면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현대 금융 시장의 문제는 그것이 너무 효율적이라는 데에 있다. 최근의 금융 '혁신'을 통해 만들어진 수없이 많은 새 금융 상품들 덕에 금융 부문은 금융 자산 보유자들을 위한 단기 이윤 창출에는 더 효율적이 되었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때에도 보았듯이 이 새로운 금융 자산들은 금융 시스템뿐 아니라 경제 전반을 더불안하게 만들고 말았다. 게다가 금융 자산의 유동성을 이용해 자산 보유자들은 작은 변화에도 빨리 반응을 하기 때문에 실물 경제 부문의 기업들은 장기적 발전에 필요한 '기다려 줄 줄 아는' 자본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금융 부문과 실물 부문 사이에 존재하는 속도의 차이를 줄여야 한다. 즉 금융 시장의 효율성을 의도적으로 줄여야 한다는 의미이다.
자유 시장 경제학과 다른 종류의 경제학.
존 메이너드 케인스, 찰스 킨들버거(광기, 패닉, 붕괴), 하이먼 민스키, 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리스트, 조지프 슘페터, 니컬러스 칼도, 앨버트 허시먼.... 그들의 공통점은 자본주의 경제를 발전시키는 것은 장기투자와 생산 구조를 바꾸는 기술 혁신이지, 풍선을 부풀리듯 이미 존재하는 구조를 팽창시키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유치 산업을 보호하고, 기술적으로 정체된 농업과 같은 산업 분야에서 보다 역동적인 산업 분야로 자원을 강제 이전하는 한편, 허시먼이 강조하던 서로 다른 부문 간의 연계 효과를 활용하는 등 기적의 성장 기간 동안 동아시아 경제 관료들이 택했던 많은 경제 정책들은 바로 위에서 언급한 경제학자들의 가르침에서 배워 온 것이지 자유 시장 경제학에서 따온 것이 아니었다.
세계 경제를 어떻게 재건할 것인가?
예금 보험을 확대해서 집단적인 예금 인출 사태를 막고 엄청난 금융 구제 자금을 제공하고 경기가 악화되면 자동으적으로 복지 지출이 증가하는 시스템이 없었다면 우리는 아마 1930년대 보다 훨씬 더 극심한 경제 위기를 맞이했을 것이다. 엄청난 세계 경제 위기를 자초한 자유시장 주의 경제학을 적당히 수리하면서 사용한다면 또 다시 위기는 찾아올 것이다. 그냥 수정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새롭게 재구성해야 한다. 재구성을 위한 여덞 가지 원칙을 제공한다.
첫째, 자본주의는 나쁜 경제 시스템이다. 특히 더 나쁜 자유시장주의 자본주의가 모든 종류의 자본주의는 아니라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다. 모두에게 맞는 하나의 경제 모델은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식 자본주의는 스칸디나비아식 자본주의와 다르고 스칸디나비아식 자본주의는 독일식 혹은 프랑스식과 다르다. 일본식은 말할 것도 없다. 이윤 동기는 여전히 경제를 돌아가게 하는 원료이지만 이윤 동기에 아무런 규제도 하지 않는 다면 엄청난 피해가 돌아온다는 것을 배웠다. 시장 메커니즘은 다른 기계와 마찬가지로 세심한 규제와 조정을 필요로 한다. 더 잘 규제된 다른 종류의 자본주의를 해야 한다. 다른 종류가 어떤 것인지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목표, 가치, 믿음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둘째, 인간의 합리성은 어디까지나 한계가 있다는 인식 위에서 새로운 경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2008년 경제 위기는 우리가 이해하고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훨씬 넘어서는 복잡한 세상을 만들어 버린 탓에 벌어진 일이다. 우리의 경제 시스템이 붕괴한 것은 복잡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이 근본적으로 무한하다고 믿는 경제학자들의 조언에 따라 시스템이 재구성되었기 때문이다. 금융혁신이 계속 무제한적으로 허용된다면 우리의 규제 능력은 끝까지 우리의 혁신 능력을 따라 잡지 못할 것이다. 복잡한 금융상품의 발행을 금지해야 한다. 식품이나 약품 자동차 비행기 상품은 출시전에 엄격한 안전 기준을 통과해야 한다. 그런데 왜 경제에 엄청난 혼란을 야기할 수 있는 금융상품은 쉽게 시장에 발행이 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 '로켓 사이언티스트'들이 새로운 금융 상품을 개발하면 그 상품이 금융 회사의 단기적 이윤이 아니라 경제 시스템 전체에 장기적으로 어떤 위험과 이익을 미치는지 평가한 뒤에 출시를 허용하는 승인 절차를 만들 필요가 있다.
셋째, 인간은 이기심 없는 천사는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의 나쁜 면보다 좋은 면을 발휘하게 하는 경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인간은 물질적 자기 이익추구를 하는 존재이지만 그것이 행동동기의 전부는 아니다. 자유시장 주의자들은 개인과 기업이 물질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을 미화했다. 그래서 이익만 창출 할 수 있다면 사회적 책임을 무시해도 되는 세상을 만들었다. 이런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려면 우리는 물질적 부를 중요시하되 유일한 목표가 되지 않는 경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단기적인 자기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면 우리는 전체 시스템을 파괴할 것이다. 이는 장기적으로 누구에게도 이롭지 않다.
넷째, 사람들이 항상 받아 마땅한 만큼 보수를 받고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가난한 나라 사람들은 개개인으로 따지면 부자 나라 사람들 보다 더 생산적이고 기업가 정신이 더 뛰어난 경구가 흔하다. 이들은 개인의 자질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자기 나라의 경제시스템과 선진국의 이민 정책 때문이다. 또한 기회의 평등만 보장되면 가난한 사람은 가난해 마땅하다는 말은 아니다. 어느 정도 결과의 평등이 보장되어야 한다. 특히 모든 아이들이 최소한의 영양과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한다면 시장이 제공하는 기회의 평등 정도로는 진정으로 공정한 경쟁을 보장 할 수 없다. 우리가 시장의 결과에 대해 과감하게 문제를 제기할 때만이 더욱 공정한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시장의 결과는 자연적 현상이 아니다. 우리는 그것을 바꿀 수 있다.
다섯째, 물건 만들기를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석유위에 떠다니는 브루나이, 쿠웨이트가 아닌 다음에야 제조업을 발전시키지 않고서는 생활 수준을 향상 시킬 수 없다. 흔히 탈산업화의 성공 사례로 간주되는 스위스나 싱가포르 등은 사실 세계에서 가장 산업화된 나라다. 더욱이 대다수의 고부가가치 서비스들(금융, 기술컨설팅 등)은 제조업 부문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산업정책 역시 핵심 제조업 부문을 활성화시키는 방향으로 재설계되어야 한다.
여섯쩨. 금융 부문과 실물 부문이 더 적절하게 균형을 이루도록 노력해야 한다. 금융 부문이 하는 중요한 역활 중의 하나가 투자를 하고 나서부터 그 투자가 결실을 맺을 때까지의 시차를 메워주는 것이다. 금융은 속성상 빨리 움직일 수 없는 실물 자산에 유동성을 부여함으로서 자원을 신속하게 배분할 수 있도록 한다. 하지만 금융 자유화로 국경을 넘어 돈의 이동의 쉬워졌고 투자자들은 더 참을성이 없어져 즉각적인 이윤을 원하게 되었다. 그 결과 정부와 기업은 장기적인 전망 보다는 즉각적인 이윤에 집중하게 되었다. 돈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정부와 기업에 대한 협상 카드로 사용한 투자자들은 국민소득의 더 많은 부문을 금융 소득으로 돌리는데 성공했다. 이것으로 고용불안(고용불안은 이윤을 신속하게 창출하는 데에 필요하다)은 심화되었다. 금융 거래세, 초국적 자본이동에 대한 제한, 기업 인수 합병에 대한 규제 강화 등은 금융 산업의 속도를 늦춰서 금융이 실물 경제를 약화시키거나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도움을 주도록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노키아도 전자산업에서 이윤을 내기까지 17년이 걸렸고 일본 자동차도 시장에서 인정받기 까지 40년이 걸렸다.
일곱째, 더 크고 적극적인 정부가 필요하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정부 개입이 많이 늘었지만 주로 위기관리를 위한 것이다. 정부는 위기관리를 넘어서 풍요롭고 평등하며 안정적인 사회를 건설하는데 더 큰 역활을 해야 한다. 민주주의 정부는 사회의 여러 상충된 요구들을 조정하고 사회 전체적으로 복지 수준을 향상시키는 가장 우수한 장치이다.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경우 거대한 복지국가와 경제 성장률이 공존하고 있는데, 이는 작은 정부가 항상 성장에 이롭다는 믿음에 문제가 있음을 잘 드러내 준다. 그리고 오늘날 부유해진 나라들은 모두 정부가 경제발전을 위해 적극 개입했다. 정부 개입은 제대로 계획되고 추진되기만 하면 경제를 더 역동적으로 만들 수 있다. 정부는 사적인 수익은 적지만 사회적으로 수익이 높은 곳에 투자하고 또 연구개발이나 노동자 훈련등 시장에 제대로 하지 못하는 투입물에 공급을 늘려야 한다.
여덟째, 세계 경제 시스템은 개발도상국들을 불공평하게 우대해야 한다. 아프리카나 남미의 많은 나라들은 자유시장을 맹신하는 국제기구나 부자나라들에서 돈을 빌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자유시장 정책을 채택해야 했다. 이런 나라들에서는 민주주의가 취약했기에 자유시장 정책으로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보더라도 그 정책을 막지 못했다. 그리고 그결과는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따라서 세계 경제 시스템은 개발도상국들이 자국에 적합한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정책 공간을 넓혀 주는 방향으로 완전히 개편되어야 한다. 특히 자국시장 보호, 외국인 투자 규제, 지적 재산권 등에서 개발도상국에 더 관대한 체제가 필요하다. 이 같은 변화가 이루어지려면 WTO를 개혁하고 빈국과 부국간의 다자간 자유 무역 협정 및 투자 협정들을 폐기하거나 개정해야 한다. 물론 이런 모든 제안은 개발도상국들에게 부당하게 유리한 것이다. 그러나 이미 개발도상국은 국제관계에서 부당하게 수많은 불이익을 당했다. 이 정도의 봐주기 시스템은 용납될 수 있다고 본다.
세계를 퇴보 시키고 재앙의 구렁텅이로 내몰았던 원칙들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다시 예전과 비슷한 대참사들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 이제 좀 불편해질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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