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여행에 푹 빠져, 다니던 대기업을 뒤로하고 여행 작가겸 가이드가 된 사람,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고향으로 돌아가 "올레길"을 만들었던 서명숙 이사장,
같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순례길'이라는 책을 펴내고 40살에 본격적인 작가의 길로 들어선 파울로 코엘료!
누구나 자신만의 여행의 이유가 있고 여행 이후에는 어떤 형태로든 삶의 변화가 시작된다.
[본문발췌]
"남들이 이미 간 길을 따라서 정상에 오르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내 자유의지에 따라,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는 것. 그것만이 의미가 있다.", 알버트 머메리.
누구나 가는 곳을 누구나 가는 길을 택해 누군가의 뒤를 따라가는 것. 이건 여행이 아니다. 아무런 정보도 지식도 없이, 지도도 가이드도 없이 현지에서 묻고 오해하고 잘못된 길로 들어섰을 때 진정한 여행은 시작된다.
여행을 떠날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만이 자기를 묶고 있는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 - 헤르만 헤세
커피나무는 열대지방 고산지대에서 자란다. 뜨거운 태양 볕을 태양 가장 가까운 데서 받으며 자라는 것이다. 그리고 고결하고 하얀 꽃을 피워낸다. 배꽃같이 하얀 꽃으로 붉은 열매를 맺는다. 앵두 같은 붉은 열매가 열정적인 커피체리다. 그래서 커피여행이 나를 이렇게 열정과 설렘으로 이끄는 것일지도... 떠나오길 잘했다. 떠나와서 내 심장을 더욱 뜨겁게 채운다. 논밭의 흰 눈과 하늘의 붉은 기운을 지나 검으스레한 노을이 보이는 전경을 창밖으로 흘러 보내며, 온몸과 맘에 커피꽃 향을 묻히고 떠난다.
본래 산속에서는 산의 본 모습을 볼 수 없고 산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야 본 모습을 볼 수가 있는 법이다. 가끔은 나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나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가장 위대한 여행은 지구를 열 바퀴 도는 여행이 아니라 단 한 차례라도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여행이다. - 마하트마 간디
Camino De Santiago, 카미노에서의 동행은 본인의 고통은 스스로 감당하면서 서로의 길에 깊이 간섭하지 않고 최대한 상대의 호흡과 보폭을 허용하며 같이 또 따로 걷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 카미노를 다녀와서 나의 생활은 많이 바뀌었다. 느리게 걷는 즐거움과 나를 비움으로 넉넉해지는 삶의 기쁨을 알게 되었다. 가까이 있는 사람의 소중함도 알게 되었다. 전보다 더 나 자신을 사랑하게 되었다. 한 달을 걸어 나는 온전한 모습으로 나에게로 돌아왔다.
자연은 결코 서두르지도 시간을 재촉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나는 자연을 만나러 가는 여행에 욕심을 내지 않으려 한다. 내가 있는 그 자리, 그 시간에 멋진 풍경을 만날 수 있다면 더욱 좋겠지만 주어진 그 자연만이라도 제대로 보고 느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사제들은 1대 1만이 가능했을 아날로그적인 생각을 하며 현재의 우리들은 1대 다수가 가능한 디지털 사고를 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하지만 오래된 아날로그가 1대 1만 가능하다고 해서 단편적이고 제약적인 사고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나무, 꽃, 하늘, 바다, 곤충, 돌 등 단 하나에 집착해 사고하거나 결론을 낼지 않는다.
오래된 고성과 회랑을 천천히 걸으며 그들은 그 개별적인 것들에서 뒤에 숨은 깊은 한 가지 본질이나 깨달음을 찾아내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는 매우 다양한 디지털 사고를 하고 있음에도 그 다수의 조각들이 우리의 지식과 경험에서 우러난 단편적인 시각들일 뿐이다. 사물을 편협하게 이미지화시키거나 각각 개별의 사물들에 집착하며 이미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틀 속에 가둬둔 채 그것들의 의미와 본질을 정보로서 평가한다. 어찌 보면 다양한 지식과 정의는 찾을 수 있겠지만 그 뒤에 숨은 넓고 진실된 본질 한 가지는 놓치고 살고 있지는 않은지. 나는 진정으로 아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사제들의 동선을 따라 그들의 사색을 따라 고성을 느릿느릿 돌아보기로 했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가치 있는 것'과 '가치 없는 것'의 경계와 틀 속에서 모든 것을 규정짓는다. 의식 속에서 살아남은 것들만이 진실로 기억되고, 명료한 기승전결을 따르지 못하면 실패로 치부되어 잊혀지고 소외되기 십상이다. 연속되어 보이지만 인식의 뒤편으로 버려진 것들은 존재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단절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 정확히 떨어지는 숫자와 단절된 찰나의 시간, 단편적인 시각의 이미지들에 집착하는 우리는 많은 것들을 인식의 뒤편으로 보내어 잊고, 잃고 살기에 그래서 외롭다. 미분의 시간 속에서 쉽게 잊혀진 찰나의 존재와 의미들은 갈 곳을 잃고 우리를 더더욱 허전하고 외롭게 만든다. 하지만 긴 시간을 인고하며 서 있는 내밀한 옛것들은 오랫동안 쌓아온 연속성과 쉽게 드러나지 않는 포용을 지니고 있다. 그리하여 결코 혼자 있어도 허무하거나 외롭지 않을 수 있다. 오랜 적분의 시간들 속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들도 놓치지 않는 여유로움과 풍만하고 의미 있는 이야깃거리들이 있기 때문이다. 가치가 없는 인식의 저편으로 묻혀버릴지라도 그것이 없어져버리는 것은 아닐테니까 말이다. ... 때로는 오래된 곳들을 고즈넉이 걸으면서, 내가 속해 있지 않은 다른 곳을 찾아 여행하고 눈에 담으면서, 넓은 물속에서 노를 젓다가 고개를 들었을 때, 내가 일상에서 정의내렸던 사물들과 의미에서 벗어날 때, 내가 알고 있는 장소와 물건들에서 자유를 얻었을 때 우리는 그동안 보이지 않던 본질을 보게 되고 비로소 깨닫게 된다. 그리하면 우리의 일상은 의미 있고 소중하며 더욱 충만해지고 허무하거나 외롭지 않을 수 있다. - 정아영, 프랑스 몽생미셸, '홀로 있어도 외롭지 않을 수 있다.'
오키나와, 도카시키 섬, 게라마 블루, 아하렌 비치.... 관광객의 눈은 보이는 대로 본다. 그러나 여행자의 눈은 어린아이처럼 그 대상이 무엇이든 난생 처음 보는 것처럼 새롭고 신기하게 보는 능력이 있지 않는가. 그 눈을 장착하고 무심코 지나친 섬마을의 풍경을 돌이켜보니,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인다. 평소에는 아무리 쫓아가도 붙잡을 수 없었던 녀석, 때로는 나를 정신없이 쫓기게 만들었던 녀석, 그 괘씸한 시간이라는 녀석이 느릿느릿 마을을 걸어 다니고 있다. 언제 그랬냐는 듯 시치미를 뚝 떼고, 세상 밖 시간의 속도 따위는 아무 상관없다는 듯. ... 그날 오후처럼 '여행자의 눈'으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너무 익숙해져서 습관적으로 살아가는 오늘 하루가 온통 설렘과 떨림으로 가득하지 않을까. 여행을 떠나면 나도 모르게 오감을 활짝 열고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어린아이처럼 신기해하고 즐거워한다. 또한 아무것도 아닌 일상의 모든 것을 새롭고 생생하게 받아들인다. 그렇게 살아있는 순간만큼은, 별 볼일 없이 평범한 내 인생도 행복감으로 충만해져서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 '일상을 여행처럼' 살지 못하기 때문에, 나는 그저 그런 평범한 사람이기 때문에, 부지런히 여행을 떠날 수밖에 없다. - 정윤주, 오키나와, '한없이 투명한 게라마 블루를 찾아서'
자의든 타의든 여행은 변화를 동반한다.
문 닫고 시구 찾는 것 옳은 시법 아니니, 길을 나서보면 시가 절로 생긴다네. - 양만리, ... 떠나야 영감이 떠오른다. 시인을 포함한 예술가들에게 여행은 창조적 영감의 원천이다.
여행은 1막 밖에 없는 인생의 제2막이다. ... 책을 읽는 이유, 여행을 하는 까닭은 둘 다 세상을 알고 싶어하는 원초적 욕망 때문이다. 여행은 자아와 타인의 비교와 조화 그리고 미지의 세계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의 시도다. 여행에서는 단순한 지식의 축적이 아닌 깊은 체험을 통한 변화의 힘이 나온다. 길을 떠나면 보이지 않던 세계가 펼쳐진다. ... 평범한 일상에서 느끼는 예지는 여행을 통해서 얻을 수 있다. 여행은 일상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낮은 수준의 기쁨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과정이기도 하다. 낯선 여행은 일상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 일시적으로 일상을 접고 여행을 한다는 것은 자기를 변화시킨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평소와는 색다른 환경에서 자연과 문화 혹은 사람들과 만남은 자기 확인과 발견의 새로운 기회가 된다. 온 감각이 열리는 미지의 신세계로 다가간다. 여행은 지적 호기심 충족과 영혼의 충만감으로 사람을 변화시킨다. 여행은 새로운 세계에 대한 긴장감과 해방감이 교차되는 무대다. 여행에는 교양 제고의 목적이 있고 즐거움을 얻는 위안형도 있다. 여행은 미지의 세계와의 조우, 현실 탈피, 마음의 정화, 경계를 넘나드는 자유, 편견을 너그럽게 해주는 자유와의 만남, 어디에도 속할 수 있는 자유, 호기심과 일상의 탈출이다. 여행은 일상에서 당한 굴욕을 씻을 절호의 기회다. 저곳은 기회의 땅이자 자유의 땅이다. 누구도 나를 계급적으로 이해하지 않는다. 국적은 물어도 계급은 묻지 않는다. ... 수렵채집 시절부터 유전자에 각인되어 있는 생존을 위한 유량벽은 오늘날 새로운 버전의 낭만주의적 경험 소비인 생존 여행으로 이어지고 있다. 인간은 신체의 생존 요령을 터득한 후 다른 차원의 생존 비결인 영혼의 행복을 위해 길을 떠나 근원도 모를 그리움을 여행길에서 긁고 다닌다. 인간은 이유도 모르고 태어나 고민하고 늙어가면서 죽음을 맛이한다. 여행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노자의 말처럼 "좋은 여행은 궤도나 정도가 없다"일지 모른다. 여행이나 인생에 어디 객관적인 이유가 있을까. 성숙이란 긍정적 변화를 만들면서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우리가 떠나온 곳으로 서서히 걸어 들어갈 뿐이다. 인생이나 여행에서 무엇을 얻어서 들고 갈까. 그것은 여행길에서 만났던 황홀이라는 추억은 아닐까. 여행이 끝나는 시점 그러니까 죽음의 시점에서 지금을 바라보라. 텅 빈 사막의 모래바람 속으로 떠나지 못할 까닭이 어디에 있겠는가? - 최치헌, '모래바람 속으로 사라진 사내'
인간은 사랑과 죽음, 그리고 여행을 통해서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실감한다. - 전규태, <단테처럼 여행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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