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가 살던 시대나 현재나 삶의 지혜는 비슷하다. 평범한 그 것을 단지 실천하기 어려울 뿐!

 

 

[본문발췌]

 

 

'예절'이란 말을 구성하고 있는 두 글자의 뜻을 살펴보자. '예(禮)'는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를 적절히 조절하기 위한 사회적인 질서와 규범'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절(節)'은 대나무에 있는 하나하나의 마디처럼 그 '예'를 실제 생활에 적용하기 위해 상황별로 펼친 세부적인 실천 지침들을 가리킨다. 결국 예절은 함께 사는 사회에서 인간이 서로 배려해야 한다는 정신과 그 실행 방식을 담고 있는 것이다.

 

 

가난하면서도 즐길 줄 알고, 부유하면서도 어떤 사람이든 존중하고 배려하기를 좋아하는 것!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 것을 걱정하지 말고, 내가 남을 몰라줄까 그것을 걱정해야 합니다.

 

 

법으로 이끌고 형벌로 통제하면, 사람들은 어떻게든 법망을 빠져나가 형벌만 면하면 그뿐이라고 생각하지 잘못된 행동을 부끄러워할 줄은 모르게 됩니다. 그러나 올바른 가치와 철학으로 이끌고 예의로 통제하면, 사람들이 부끄러움도 알고 스스로 마음을 올바르게 할 줄도 알게 되지요.

 

 

아는 것은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는 것, 이게 진짜로 아는 것.

 

 

말에 허물이 적고 행동에 후회가 적으면 성공은 따라오게 돼 있다.

 

 

사람이면서 사람답지 못하면 넘치는 매너가 다 무슨 소용이겠나? 사람이면서 사람답지 못하면 높은 문화 수준이 다 무슨 소용이겠나?

 

 

내가 즐거움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즐거움이 나를 통제하고 있다면 그것은 '즐긴다'라고 말할 수 없다. '즐긴다'는 표현은 내가 시작하고 내가 맺을 수 있을 때에만 사용할 수 있는 것.

 

 

세상과 삶의 이치를 깨우친 지성인은 세상의 모든 것, 모든 일에 대해서 꼭 이래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없고, 절대 이래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도 없습니다. 그저 오직 정의를 기준으로 거기에 따라 갈 뿐이죠.

 

 

높은 자리로 올라가지 못할까봐 걱정하지 말고, 거기에 올라가게 됐을 때 그 일을 제대로 해낼 수 있는 능력이 나에게 있는지를 걱정해야 합니다. 왜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는가를 신경쓰지 말고 남이 알아줄만한 것이 내 안에 있는지를 찾아야 하지요.

 

 

공자가 추구했던 '온전한 사람다움'의 길을 증자는 '내 진심을 다해 너를 대하고(忠), 내 마음을 미루어 네 마음을 헤아리는 것, 즉 내가 당하지 않았으면 하는 일을 너에게 하지 않는 것(恕)'이라고 이해했다.

 

 

욕심이 사나우면 굳건하고 강해 보인다. 가져야 하고 이루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른 가치를 깨달아 그것에 대해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외부에 맞서는 것과 제 욕심 하나 이루자고 세상에 눈을 부릅뜨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욕심으로 강해 보이는 사람은 실은 강한 게 아니다. 욕심을 충족시켜줄 대상에게 언제나 깃털보다 가볍게 무릎을 꿇을 수 있기 때문이다.

 

 

중간에 그만두게 되더라도 일단 걸으면 그 걸은 만큼은 내 것이다. 또 그 길에서 엎어지게 되더라도 그 길 안에 있으면 언제 일어나더라도 일어나는 곳은 바로 그 길이 아니겠는가? 이거다 싶은 걸 찾으면 내가 그 길을 걸을 수 없는 백만 가지 이유를 찾기 전에 일단 한 걸음부터 떼고 볼 일이다.

 

 

번지가 지혜로움이란 어떤 것이냐고 물었다. 공자가 답해주었다. "사람으로서 해야 할 도리에 힘쓰고 귀신이나 신에 대해서 경외하는 마음은 갖지만 의지하지는 않고 거리를 둘 줄 안다면 지혜롭다고 할 수 있을 것이네." 그러자 이번에는 사람다움이란 어떤 것이냐고 물었다. "진짜 사람다움이란 것은 어려운 일을 먼저 해내고 나서 결과를 기대하는 것이지. 그렇게 하면 제대로 사람답다고 할 수 있네."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사람다움을 이룬 사람은 산을 좋아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상황을 파악하니까 상황에 따라 계속 움직이게 되고, 사람다움을 이룬 사람은 자기가 해야 하는 것을 할 뿐이니까 가만히 제자리에 있는 것이죠.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은 막힘없이 흘러가며 살아 즐겁고, 사람다움을 이룬 사람은 듬직하게 자기를 지키며 살아 장수합니다. 

 

 

조화로운 균형감각과 평범성의 가치란 그지없이 대단한 것이지. 그러나 사람들이 이 가치를 잊고 외면하고 산 지가 참 오래되었네요. 

 

 

인품을 잘 갈고닦지 못한 것, 배운 것을 완전히 내 것으로 익히지 못한 것, 옳은 것이 무엇인지 알고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 것, 단점을 고치지 못한 것, 내 걱정거리는 이런 것들이라네. 

 

 

사람으로서 걸어야 할 길에 뜻을 두고, 내면의 바른 가치를 확고하게 지키고, 사랑의 정신을 중심으로 삼고, 일상생활 속에 필수 교양이 익숙하게 녹아 있어야 한다. 

 

 

부자라는 게 인력으로 되는 거라면 아무리 천하다고 하는 직업이라도 나는 그 일을 꼭 할 거네. 그러나 인력으로 되는 게 아니라면 나는 그냥 나 좋은 일을 하면서 살겠어!

 

 

세 사람이 함께 길을 가다보면 그중에 반드시 내 스승이 있어. 그의 장점을 통해서 내가 본받을 것을 배우고, 단점을 통해서는 내가 고쳐야 할 부분을 배우는 거지. 

 

 

풍속이 아주 안 좋아서 함께 이야기할 종자들이 못 된다고 소문이 난 동네인 '호향'에서 한 소년이 공자를 만나러 왔다. 공자가 그를 만나주자 제자들이 갸우뚱했다. 이에 공자가 말했다. "나를 만나러 온 것을 인정할 뿐 돌아가서 잘못하는 것이야 미리 생각할 거 없으니 뭣 때문에 심하게 대하겠나? 사람이 자기를 반성하고 지금 새사람이 되어 내게 왔으면 그 새사람만 인정하면 되는 거야. 뭐하러 과거를 물고 늘어져?"

 

 

사치하다보면 어느새 거만해지고, 검소하다보면 어느새 쫀쫀하고 답답한 사람이 됩니다. 하지만 거만해지는 것보다야 쫀쫀하고 답답해지는 게 낫지요. 

 

 

성숙한 인간은 늘 시원시원, 좀팽이들은 언제나 조마조마. 인간됨을 잘 수양한 지성인은 마음에 거칠 것이 없어 너그럽고 여유가 있는데 인간됨을 몰라 그저 태어났으니 살아가는 사람들은 세상만사 걱정 아닌 게 없어 늘 죽을상이다.

 

 

능력이 있으면서 능력이 없는 이에게 배울 줄 알고, 많이 알고 있으면서 적게 알고 있는 사람에게 배울 줄 알고, 가지고 있으면서도 없는 것 같고, 꽉 차 있으면서도 텅 빈 것 같으며, 누가 시비를 걸어도 맞대응하지 않는 자세.

 

 

민중은 옳은 길로 따라오게 할 수는 있지만 그 길이 왜 옳은 길인지를 이해시키기는 어렵네.

 

 

그 직책에 있지 않다면, 그 직무에 대한 참견은 금물. 그 자리에 있어봐야 그 자리의 무게를 안다. 내가 실행할 것이 아니라 그가 실행할 것이고 내가 책임질 것이 아니라 그가 책임진다. 그러니 섣부른 훈수는 종종 부끄러움이 되어 돌아오곤 한다.

 

 

공자는 네 가지를 절대 하지 않았다. 근거 없이 미리 억측하지 않았고, 내가 절대 옳다고 하지 않았고, 고집을 부리지 않았고, 자기부터 앞 세우는 일을 하지 않았다.

 

 

지금 세상은 깊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재주 많은 사람, 인품을 갖춘 사람이 아니라 기술을 갖춘 사람이 되라 한다. 진정 위대한 사람은 큰 가치를 지향하는 마음, 올바른 철학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지도자는 그런 사람이어야 하는데, "내가 해봐서 아는데" 하면서 자잘한 것들만 붙들고 시시콜콜 지시하고 고집 부리는 지도자를 많이 본다.

 

 

제가 뭘 좀 안다고요? 천만에요, 저는 아는 게 없습니다. 가령 지식 수준이 낮은 사람의 질문에조차도 막막해지는걸요. 다만 저는 그 질문의 처음과 끝, 양쪽 방향에서 따져 들어가 모든 측면을 샅샅이 다 짚어 보일 뿐이에요.

 

 

일을 할 때는 마음을 다해서 충실하고 신의 있게 하고, 친구를 사귈 때는 만만한 사람 말고 보고 배울 게 많은 사람을 선택하도록 하세요. 그리고 실수하거든 곧장 고쳐야 합니다.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어요. 다만 주저 없이 고치는 걸 아무나 못하는 거죠. 

 

 

군사가 수만이라도 그 장군을 빼앗을 수 있다. 그러나 평범한 한 사람이라도 그 생각은 빼앗을 수 없다. 

 

 

겨울이 온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오래도록 푸르다는 것을 알게 되는 법이지요.

 

 

지혜로운 사람은 현혹되지 않고, 온전한 사람다움을 이룬 사람은 근심하지 않고, 용감한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진짜 선택은 반드시 나 스스로 해야 하는 정말 고독한 작업.

 

 

'못'하는 것과 '안'하는 것의 차이는 다만 내 의지의 문제.

 

 

과유불급, 지나친 건 도달하지 못한 거나 같네.

 

 

제대로 배운 지성인은 차이 속에서 조화를 이루지만 차이가 없이 마냥 똑같아지는 방향으로는 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생각이 짧은 사람들은 똑같아지려고 하지 차이 속에서 조화를 이루려 하지는 않죠. 

 

 

강직하고, 의지가 굳고, 꾸밈없이 소박하고 , 말이 어눌하다면 사람다움을 위한 기본 품성은 거의 갖춘 것이다. 

 

 

인간다움에 뜻을 둔 지성인은 위로 세상과 인생의 도리와 이치에 환하고, 먹고사는 일만 걱정하는 그저 그런 인간은 아래로 눈앞의 이익에만 빤하죠. 

 

 

참된 지성인은 의로움을 마음 바탕으로 삼고, 배려와 존중을 갖춰 행동하며, 공손한 자세로 자기를 표현하고, 신뢰를 통해 일을 이루어냅니다. 이렇게 하는 자가 진정한 지성인이지요. 

 

 

잘못하고서 고치지 않는 것, 그게 진짜 잘못입니다. 

 

 

나라를 다스리고 조직을 이끄는 사람은 경제 규모가 작은 것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물자가 고르게 나눠지지 않을까 걱정해야 하고, 전반적인 가난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이 안정되지 못할까 걱정한다고 말이요. 고르게 나눠지면 가난이 없어지지. 사람들이 서로 화목하게 지내면 경제 규모가 작은 게 문제 안 돼. 그리고 사람들의 삶이 안정되면 그 나라나 조직은 무너질 수가 없어. 다스림의 원리는 이런 거야. 통제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먼 곳에 있는 이들이 먼 거리를 핑계로 명령에 따르지 않거든 지도자는 바른 윤리와 아름다운 문화로 그들의 마음을 감동시켜서 그들이 스스로 오게 만들어야 하는 법이야. 그렇게 해서 그들이 실제로 오면 그들의 삶을 안정시켜주어야 하는 거고.

 

 

경제는 그 첫발을 부의 총량 이라는 관점에서가 아니라 분배의 관점에서 떼어야 한다. 분배는 사회적인 안정과 직결된다. 분배의 정의가 확립되어야만 국민들은 마음으로부터 자기 나라 지도자를 신뢰하고 좋아하게 된다.

 

 

윗사람과 함께 대화할 때 저지를 수 있는 실수로 세 가지쯤을 꼽을 수 있어요. 윗사람이 말을 마치지도 않았는데 불쑥 끼어들어 내 말을 하는 걸 경솔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내가 말을 할 순서가 되었는데도 말하지 않는 걸 숨긴다고 하지요. 마지막으로 윗사람의 표정도 살피지 않고 그냥 냅다 말하는 걸 '장님'이라고 해요.

 

 

잘 배우려는 사람은 세 가지 시기별로 자기를 주의해서 살펴야 해요. 첫째, 젊었을 때는 혈기가 안정되질 않아 끓어오르는 혈기를 어쩔줄 몰라 하죠. 그땐 성욕을 조심해야 해요. 둘째, 장년이 되면 혈기가 뭔가 이룰 수 있을 만큼 짱짱하고 강해져요. 그땐 승부욕 때문에 싸움이 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죠. 마지막으로 노년이 되면 혈기가 쇠하면서 뭔가 손에 쥐고 싶어져요. 욕심이 생기는 거죠. 노년에는 노욕을 조심해야 합니다.

 

 

공자가 말한, 바른 지성인이 생활에서 항상 생각해야 할 것 아홉가지

  • 눈, 분명하게 보았는가?

  • 귀, 확실하게 들었는가?

  • 표정, 온화한가?

  • 자세, 공손한가?

  • 말, 진심인가?

  • 업무, 신중하게 처리했는가?

  • 헛갈리는 일, 분명하게 알 때까지 질문했는가?

  • 화가 치민 순간, 기분대로 저질렀을 때 뒷감당이 되겠는가?

  • 이득이 될 것을 본 순간, 내가 얻어도 되는 합당한 이득인가?

 

본성 자체는 사람마다 별 차이가 없습니다. 습관이 완전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놓는 거지요.

 

 

천박하고 욕심 사나운 사람과 함께 중요한 나랏일을 할 수 있을까요? 그런 사람들은 관직을 얻기 전에는 얻지 못할까 전전긍긍하고 얻고 나서는 잃을까봐 전전긍긍하죠. 자리를 잃을까봐 전전긍긍하기 시작하잖아요? 그럼 그들은 못하는 짓이 없게 되지요.

 

 

폭넓게 배우고 뜻을 굳건하고 진실하게 하며, 절실한 마음으로 질문을 던지고 현실적인 것부터 구체적으로 생각하도록 하세요. 진짜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 경지는 바로 그 안에 있는 겁니다. 

 

 

바른 리더는 아랫사람들에게 신뢰부터 얻은 뒤에 그들에게 일을 시킵니다. 아직 신뢰도 얻지 못했는데 일부터 시키잖아요? 그럼 아랫사람들은 그가 자기들을 괴롭힌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또 자기 상사에 대해서도 그에게 신뢰부터 얻은 뒤에 문제점을 지적해야 합니다. 신뢰도 아직 얻지 못했는데 지적부터 하잖아요? 그럼 상사는 그가 자기를 욕한다고 생각하죠.

 

 

지도자가 너그러우면 백성의 마음을 얻고, 지도자가 성실하게 일하면 백성들이 나라 살림을 믿고 맡기고, 지도자가 부지런하면 많은 업적을 이루고, 지도자가 공정하면 백성들이 그에게 열광한다. 

 

 

다섯 가지 미덕을 존중하고 네 가지 악덕을 끊어버리면 정치를 잘한다고 할 수 있지

  • 백성들을 넉넉히 도와주지만 그렇다고 낭비하지 않는것, 백성들에게 일을 시키지만 원성을 사지는 않는것, 야망은 있지만 탐욕은 부리지 않는 것, 늘 어떤 상황에서든 태연하지만 거만하지는 않은 것, 위엄이 넘치지만 사납지는 않은 것이네.

  • 해도 안되는 것과 하면 안 되는 것을 미리 다 가르쳐주지도 않고서 법을 어겼다고 잡아죽이는 것, 그런 걸 '학대'라고 하지. 미리 어떻게 하라고 방향도 가르쳐주지 않고 대뜸 성과를 요구하는 거, 그런 걸 '횡포'라고 하지. 자기 게으름 때문에 일을 늦게 주고서 기한 안에 마쳐야 한다며 다그치는 거, 그런 걸 '도둑놈 심보'라고 하지. 사람들에게 당연히 줘야 할 걸 주는 것인데도 괜히 인색하게 구는 거, 그런 걸 '관료주의'라고 하지. 이것이 네 가지 악덕이네.

 

공자는 시대를 거듭해서 내려온 제도와 질서 자체가 부조리하다고 보지 않았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의 위치에 합당하고 진실하게 사는 삶을 살면서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있다면 세상은 평화로워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회는 나와 타인으로 구성된다. 타인과 관계를 맺기 전에 중요한 것은 내가 나에 대해 솔직한가이다. 내 속마음과 나의 행동이 어긋나면 타인과의 관계가 혼란스러워진다. 내가 '아'라고 말한 것이 '아'일 수도 있지만 실은 '어'의 뜻이라든가 '오' 혹은 '유'일 수도 있으면 심지어 '가'일 수도 있다면, 게다가 그렇게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라면 우리는 과연 무엇을 믿을 수 있겠는가? 신뢰(信)가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내 말(言)과 행동(行)을 일치시키는 것이 타인과 관계를 맺기 전 내가 갖추어야 할 덕목이다. 그렇게 하고 나서야 내 마음을 타인에게 확장시킬 수 있다. 내 마음을 미루어 타인을 대할 수 있고(恕), 더 나아가 내 진심을 다해 타인을 위할 수 있는(忠)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관계에는 사적인 감정이나 이해를 뛰어넘어 인간이면 해야할 옳음(義)에 대한 판단(知)과 더 큰 틀에서 세상의 조화를 살피는 사회적 규범에 대한 이해(禮)가 필요하다. 사람으로 태어나 나와 타인, 그리고 사회에 대해 총체적으로 이해하고 필요한 기능을 숙지하고 숙련해서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는 인재로 공헌할 수 있는 덕목이 인(仁), 즉 온전한 사람다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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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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