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는 남도여행이 최고다! 동백이 지고 벚꽃이 필 시기 비오는 날이면 더 좋다. 백련사 동백, 다산초당 옆으로 돌아간 석문공원 벚꽃~~~ 내년 봄에는 예전처럼 꽃구경 할 수 있을까?
[본문발췌]
모든 순간이 여행이며 우리의 모든 추억은 찬란하다.
그래, 하루키가 이렇게 말했었지. 아르마니 정장에 재규어를 몰고 다녀도 결국 개미와 다를 바 없다고. 일하고 또 일하다가 의미도 없이 죽는 거지. 때로는 이렇게 멈춰 서서 심호흡을 하고 머릿속을 나무와 나비, 바람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채워보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 아닐까.... 횡성 미술관 자작나무 숲
커피는 복잡하다. 콩의 종류에 따라, 볶는 시간에 따라, 볶는 방법에 따라, 콩을 분쇄하는 방법에 따라, 물의 종류에 따라, 물의 온도에 따라, 불의 세기에 따라, 날씨에 따라, 장소에 따라, 커피른 내리는 사람의 기분에 따라, 그의 마음에 따라, 함께 마시는 사람에 따라, 함께 마시는 사람이 누구인지에 따라, 그의 기분에 따라, 커피 맛은 달라진다. 그러니까, 커피 맛은 수만 가지 경우의 수가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는 죽는 날까지 같은 맛의 커피는 결코 맛보지 못할 수도 있다.... 강릉 보헤미안, 박이추
나는 풍경이 사람을 위로해 준다고 믿는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나 누군가의 거짓말 때문에 마음을 다쳤을 때, 우리를 위로하는 건 풍경이다. 힘들고 지쳤을 때 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풍경이 지닌 이런 힘을 알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는 일은 좋은 음악을 듣는 것과 다르지 않다. ... 태안 꽃지 해변, 따스한 노을. 일몰... 전북 태안 채석강, 인천 강화 석모도 낙조
기차가 서지 않는 오래된 역의 벤치에 앉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야 뻔하지 않을까. 겨우 세월을 탓하고 추억이나 곱씹을 수밖에.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고맙고 소중한 일일 줄이야. 간이역이 아니라면 언제 우리가 그런 시간을 마음 놓고 가질 수 있겠는가. 추억이란 어쩌면 간이역 같은 것일 수도 있겠다. 쓸모 없는 것들. 왜 빨리 사라져주지 않는 거지? 이렇게 생각하지만 어느날 문득 그것들이 남아 있다는 것 자체가 고맙게 느껴지는 것. 가을 햇빛속의 함백역은 추억처럼 찬란하다. 10월 중순지나 11월 중순까지...
이백의 시 <산중문답>. 누가 나에게 묻기를, 무슨 일로 푸른 산에서 사는가? / 웃고는 대답하지 않으니 마음은 저절로 한가롭네 / 복사꽃은 흐르는 물에 아득히 떠내려가니 / 별천지일쎄, 이곳은 사람 세상이 아니로세. ... 4월말에서 5월초에 복사꽃이 피는 황장재 고개.. (안동~영덕)
횡성 숲체원. 나는 자유롭게 살기 위해 숲속에 왔다. / 삶의 정수를 빨아들이기 위해 사려 깊게 살고 싶다. / 삶이 아닌 것을 모두 떨치고 / 삶이 다했을 때 삶에 대해 후회하지 말라.
백련사는 7,000여 그루의 동백나무가 군락을 이루어 자생하는 곳. 천연기념물 제151호로 지정되어 있다. 11월부터 동백꽃이 피기 시작해 4월 중순에 만개한다. 4월말이 되면 떨어지기 시작해 바닥을 물들인다. 예로부터 동백꽃은 세 번 핀다고 한다. 나무에서 한 번, 땅에 떨어져서 한 번, 그리고 당신의 마음 속에서 또 한 번.
양평 세미원, 세미원이라는 이름은 <장자>에 나오는 '관수세심 관화미심'에서 따왔다. 물을 보면 마음을 씻고, 꽃을 보면 마음을 아름답게 한다는 뜻이다. 7월 연꽃이 만발할 무렵
해남에서 시를 썼던 김지하 시인은 땅끝마을의 일출을 '혼자 서서 부르는 / 불러 내 속에서 차츰 크게 열리어 / 저 바다만큼 저 하늘만큼 열리다 이 내 작은 한덩이 검은 돌에 빛나는 한오리 햇빛'이라고 노래한 적이 있다.
대숲에 들어서는 순간, 죽향이 코끝을 자극한다. 심호흡을 하면 싱그러운 대나무향이 폐 속 깊이 스며든다. 온몸이 연록색으로 물들 것만 같은 상쾌함이다. 잘 정비된 산책로를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푹신푹신한 바닥을 밟는 느낌이 좋다. 대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선선한 죽풍이 이마를 간지럽힌다. 대나무숲을 걸으며 잠시 철학자가 되어본다. 산책만큼 사색을 깊게 해주는 것이 없다. 우리가 성찰을 하고, 반성을 하고, 모색을 하고, 설계를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산책이다. 철학자 루소는 '나의 생각은 나의 다리와 함께 작동한다'라고까지 하지 않았던가. 키에르 케고르 역시 '걸으면서 가장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고 했다. 걷기와 산책은 단순히 몸을 위한 운동이 아니라 마음을 열어주고 생각을 깨쳐주는 사색의 한 방법이다. ... 이렇게 걸으며 잡다한 생각을 잠시나마 지운다. 온 몸의 숨구멍을 열어놓고, 지근지근 길을 밟다 보면 한 순간이나마 돈 생각, 집 생각, 공부 생각이 머릿속에서 사라진다. 그러고 보니 프랑스의 철학자 다비드 드 브르통은 <걷기예찬>에서 걷기를 '삶의 불안과 고뇌를 치료하는 약'이라고 했던것 같다. .... 사천 비봉내마을
선암사, 송광사... 봄철 꽃 필때와 가을 단풍 들 무렵... 정호승, <선암사>.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 선암사 해우소에 가서 실컷 울어라 /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다니고 /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 /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 / 새들이 가슴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 /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 선암사 해우소 앞 / 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부안 내소사, '춘변산 추내장'. 봄은 변산이 최고이고 가을은 내장산이 가장 아름답다. 4월 초면 내소사 전나무숲길은 봄빛으로 물들고, 벚꽃도 만발한다.
거문도 봄 트레킹. 김훈, <자전거 여행>.. 동백은 한 송이의 개별자로서 제각기 피어나고, 제각기 떨어진다. 동백은 떨어져 죽을 때 주접스런 꼴을 보이지 않는다. 절정에 도달한 그 꽃은, 마치 백제가 무너지듯이, 절정에서 문득 추락해 버린다.
오래된 골목을 걸으며 슬렁슬렁 한나절을 보내다보니, 눈부신 하늘을 멍하니 바라다보니 어쩌면 이 모든 일이 우리가 잘 살고 있는 증거라도 되는 양 기쁘고 기껍다. 그러면서 우리네 일상이 아무리 다급하더라도 이런 느린 시간을 확보해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넌지시 가져본다. 어느 여행자의 말대로, 우리가 스스로 살아간다는 실감을 얻을 수 있는 곳은 사무실이 아니라 나무 아래인 것이고, 소중한 것을 깨닫는 장소는 언제나 컴퓨터 앞이 아니라 파란 하늘 아래니까.
기차를 타보면 사람에게는 느림을 즐기는 유전자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우리가 그 유전자를 애써 무시하고 억누르는 것이 아닐까. 사실, 돌이켜보면 우리가 행했던 모든 일의 대부분이 하루 이틀쯤 늦었다고 크게 달라질 건 없었던 것들이었다. ... 곡성 섬진강 기차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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