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움직이는 동선은 대개 비슷하다. 동선의 다양성이 부족하다는 것은 경험의 다양성이 부족한 것이고 이는 삶의 단조로움과도 연결되어 있다. 단조로운 삶은 시간의 속도를 가속화 시킨다.

 

 

[본문발췌]

 

 

발레리 줄레조의 <아파트공화국>은 우리나라에 아파트가 유별나게 많다는 사실과 서구 사회와는 달리 절대적 주택부족 현상이 해소된 지금도 여전히 아파트가 재테크의 수단으로 널리 활용되면서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행사하는 현상을 비판적으로 분석한 연구서이다. 이와 유사한 연구서나 글도 많지만 대부분 아파트 평수 늘리기가 인생의 목표이고 아파트 평수로 줄을 세우는 한국 사회를 통탄하거나 아파트 브랜드와 위치, 평수가 구별 짓기의 수단으로 작동하는 현상을 문제 삼아 아파트의 노예가 된 한국인이라고 자학하는 대책 없는 자아비판들이다. 이러한 자아비판은 주택시장에서 벌어지는 모든 문제의 원인이 아파트라고 몰아세우는 과장된 주장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단독주택이 열린사회의 공간 구조를 가지는 것이라면 아파트단지는 갇힌 사회가 될 터이다. 이동 경로가 단순한 아파트단지가 지루하고 심심한 표준적 생활공간이라면 단독주택은 경로의 선택에 따라 풍경이 바뀌고, 다채로운 개인 생활이 밖으로 드러나는 다원적 생활공간이다. 아파트가 획일적이라는 지적은 주거동의 모양이 똑같다는 점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아파트단지에서의 생활이 단조롭고 무료한 것이어서 삶의 활력을 갖지 못함을 가리키는 말이다. 획일적이라는 말을 단순히 모양이 같아 문제라고 이해하는 것은 그 말의 속내를 제대로 읽지 못한 어설픈 진단에 불과하다. ... 우리 사회에서 시급한 일은 아파트단지가 아닌 사회공간에서의 삶을 선택 가능한 것으로 보편화 시키는 일이다. 삶의 형식과 내용을 피동적인 것으로부터 능동적인 것으로 바꾸는 일이며, 표준적이고 균질적인 '단지형' 사회에서 차이를 존중하는 남을 배려하는 '열린' 사회공간으로 전환하는 일이다. 그것은 곧 사회적 담화공간인 길의 회복을 통해 사회적 연대를 붇돋우는 사회운동이 되기도 한다.

 

 

아파트단지 거주자는 주변 도시공간과는 직접적으로 관계를 맺지 않는 공간에서 격리된 채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아파트단지는 사막형 주거단지라고 해야 적당하다. 사막에서는 주변으로부터의 보호를 목적으로 담장을 차폐되고 자족적인 생활환경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니까 말이다. 담장 두른 아파트단지가 늘어난다는 것은 사막 대접을 받는 도시공간이 늘어난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 도시가 점점 삭막해지고 있는 것은 늘어난 아파트단지와 무관하지 않다. 공공공간이 개인들의 삶터로부터 격리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현상은 단독주택과 아파트의 필연적 차이는 아니다. 단독주택이라도 단지로 개발된다면 아파트단지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요즘 타운하우스라는 부적절한 이름으로 개발되는 단독주택단지들은 주변과의 폐쇄성이나 출입 통제 면에서 도시와의 격리 정도가 아파트단지보다 더 하면 더했지 나을 것이 전혀 없다.

 

 

아파트는 각 개인의 생활동선이 정해져 있는 나무구조이고 단독주택은 개인들의 경로 선택이 가능한 그물망구조다. 나무구조에서는 각 동선공간을 사용하는 집들이 정해져 있으니 매일 마주치는 사람들이 일정 범위로 제한될 것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에 비해 그물망구조에서는 길에서 누구라도 마주칠 확률이 있다. 게다가 그물망구조의 길은 누구에게나 통행이 개방된 공공공간이 아닌가.

 

 

건축사는 건축허가를 위한 건축설계를 할 수 있는 법적 자격을 갖춘 사람이고 건축가는 법적 자격과는 별개로 건축설계를 진지한 작업으로 다루는 사람을 말한다. 그 진지함은 예술과 연결된 것일 수도 있고 휴머니즘, 혹은 지구 생태학에 연결된 것일 수도 있다. 건축가와 건축사의 차이는 소설가, 화가, 음악가라는 용어와 의사, 변호사, 회계사라는 용어의 차이를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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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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