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워야 채울 수 있다. '비워내고, 기다릴 줄 알아야만 자연이 연출하는 소리와 색깔과 향기가 만들어내는 다양한 아름다움도 맛볼 수 있는 셈이다.'
[본문발췌]
현대 문명이 자연과 유리된 삶을 강요하면 할수록 현대인은 본능적으로 자연과 생태에 대한 욕구 충족을 더욱 갈구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많은 이가 자연의 아름다움과 생태의 진면목을 더 많이 즐기며 누리기를 원한다. 물질 소비 대신에 생태 소비와 자연 소비에 더 큰 관심을 갖는 이유도, 삶의 질이란 물질적 욕망으로는 결코 충족되지 않고 마음의 풍요로 충족된다는 것을 깨닫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시간과 공간의 합일에 의해 만들어진 풍광 속에 놓인 나 자신에 집중함으로써, 일어날 수 있는 잡념을 떨쳐버리고, 다른 일을 벌이고 싶은 욕망을 내려 놓는다. 이런 마음으로 숲(자연)에 몰입하면, '욕심과 기대와 집착'이 잦아들기 시작하며, 작은 것에도 마음의 풍요를 느낄 수 있다.
장자는 바람을 '대지가 뿜어내는 숨결' 이라고 했던가.
육법공양. 부처님께 바치는 초, 향, 차, 꽃, 과일, 쌀 등 6가지 공양물과 함께 깨달음과 관련된 6가지 법을 의미. 초는 자신을 태워(자비) 세상을 밝혀(지헤) 주기 때문에 '지혜의 등불'을 뜻하고, 향은 어둡고 가려진 곳까지 두루 향기를 나누어주는 공덕이 있기 때문에 '해탈의 향기'를 의미한다. 차, 특히 감로차는 괴로움에 빠진 중생에게는 부처의 가르침이 마치 감로수와 같기 때문에 '열반의 맛'을 뜻한다고 한다. 오랜 노력으로 만들어진 결과물인 과일은 개개인의 지극한 수행이 열매를 맺기 바라며 올리는 공양물로 '깨달음의 열매'를 뜻하고, 쌀은 봄부터 여든여덟 번의 노력으로 추수할 수 있기 때문에 '깨달음의 기쁨'을 나타낸다고 한다. 꽃은 열매를 맺기 위해 꼭 피어야 할 존재이며, 울긋불긋 피어나는 꽃의 아름다움은 세상을 아름답게 가꾸겠다는 보살행의 서원으로 여기기 때문에 '보살행의 아름다움'을 의미한다고 알려져 있다.
나의 남녘 봄맞이 절집 숲 순례는 보통 개심사에서 수양벚꽃을 감상하는 것으로 끝난다. 쌍계사의 십리벚꽃과 선암사의 무우전 고매를 만난 후, 북상하는 화신을 따라 화엄사의 홍매와 백매에 취하고, 다시 백양사의 벚꽃과 고불매를 즐긴 후, 수양벚꽃의 멋진 모습까지 즐기면 그 해의 상춘행사는 최상인 셈이다.
삼보일배는 '불보, 법보, 승보의 삼보에 귀의한다는 뜻을 담고 있으며, 흔히 첫걸음에 이기심과 탐욕을 멸하고 두 번째 걸음에 속세에 더럽혀진 진심을 멸하며, 세 번째 걸음에 어리석은 치심을 멸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인적 드문 깊은 산속에서 찬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세상을 관조하는 탁족은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도락이 아니다. 자연을 즐기고, 자연의 가치를 아는 이들만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다. 흐르는 물속에 발을 담근 시간에 비례해 몸이 상쾌해지고, 기분이 깨끗해지는 쇄락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순간 도시의 온갖 욕망과 스트레스는 사라지고, 마음의 평화와 고요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프레데릭엠 허드슨 박사는 "노화는 육체는 쇠락해도 정신은 성장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던가. 나이듦을 두려워하고 거부하기보다 자연에서 찾는 작은 즐거움에도 늘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긍정의 힘이 정신을 성장시킨다는 것을 새삼 확인했던 걸음이었다.
600년의 역사를 묵묵히 지켜본 은행나무가 경험했던 일들을 풀어놓고 보니, 절집 한 모퉁이에 서 있는 나무라는 생명체가 지닌 역사적 무게에 다시금 경이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명상은 나의 삶에 녹아 있는 욕심, 존재, 욕망 같은 것들을 거두어내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본래 '나'가 없는데, 우리는 '내 가족', '내 명예', '내 재산'과 같이 끊임없이 나를 붙들고 있습니다. '나'라는 존재는 사대四大 지수화풍地水火風과 오온五蘊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이 인연의 법칙에 따라 시시각각 변해서 나타나는 한시적인 생명체이기에 본래 없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불교를 무의 종교라 할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숲은 인연의 법칙이 재현되는 좋은 현장입니다. 숲은 일년 사시사철 시시각각 한 순간도 똑같은 모습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싹이 돋고 꽃이 피고 단풍이 들고 낙엽이 지는 숲의 모습은 사대오온에 따라 변해 가는 우리의 삶이 담겨 있는 또 다른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숲이 바로 거울에 비친 우리의 모습을 담고 있는 현장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절집 숲의 숨은 의미를 찾고자 했던 나의 시도는 스님의 설명으로 보다 명료해졌다. '나'를 벗어버리는 과정, '나'를 놓아버리는 과정이 명상이며, 항상 변화하는 숲을 통해서 '나'라는 존재의 참 모습도 반추할 수 있다는 비유는 신선했다. 절집 숲과 명상의 관계란 바로 절집 숲의 정신적 기능에 대한 답변 아니겠는가?
"부처님의 원만한 깨달음이 사방에 두루 비추니 고요한 상태는 사라지며 없어지는 것과 둘이 아니며, 보이는 온갖 세상은 관세음보살의 자비요 들리는 소리는 매우 아름답고 훌륭한 소리인지라, 보고 듣는 이밖에 진리가 따로 없으니 여기에 모인 대중들은 알겠는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 성철 큰스님 조계종 제7대 종정 취임법어
자연과 영원으로 가는 길... 태어남은 어디서부터 왔으며 / 죽음은 어디로 향해 가는가? / 산다는 것은 한조각 구름 일어나는 것이요 / 죽는다는 것은 한조각 구름 스러지는 것이라. / 뜬구름 자체는 실체가 없으며 / 나고 죽고 가고 옴도 또한 이와 같음이라. / 그 가운데 한 물건 항상 또렷이 드러나 있으니 / 맑고 맑아서 생사를 따르지 않음이로다.
탐매나 심매 행각은 예부터 격조 높은 봄맞이 행사였다. 혹한의 세월을 견뎌내고, 은은한 향기와 고아한 아름다움으로 누구보다 먼저 봄소식을 전하기에 매화는 선비들의 사랑을 받았다. 탐매에 빠진 애호가들은 취향에 따라 각기 백매, 청매, 홍매의 아름다움을 최고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산속이나 물가에서 자라는 야매, 굽은 가지에 내려 앉은 푸른 이끼가 감싸고 있는 고매, 달밤에 핀 월매는 물론이고 시로 보고 그림으로 읽는 매화를 통해서 봄의 향기를 감상하기도 했다. 오늘날도 산청삼매나 호남오매가 탐매꿈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산청삼매란 지리산 자락의 산청을 중심으로 자라는 세 종류의 매화를 가리킨다. 고려 말의 세도가 원정공이 하즙이 심었다는 원정매, 강희안이 단속사에서 공부하며 심었다는 정당매, 남명 조식의 남명매가 여기에 속한다. 호남오매는 백양사의 고불매, 선암사의 선암매, 가사문학관 뒤편 지실마을의 계당매, 전남대의 대명매, 소록도 중앙공원의 수양매를 일컫는다.
차나무 꽃이 절집과 관련 있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대부분의 초목이 엄동설한에는 꽃을 피우지 않는데, 차나무 꽃은 서리가 내리는 10월부터 12월까지 핀다. 꽃은 불가에서 등, 향, 차, 곡식, 과실과 함께 육법공양물의 하나다. 차나무의 청초한 흰 꽃은 꽃이 없는 동절기에 꽃 공양의 훌륭한 소재가 되기에 이런 주장이 나왔을 것이다. 차나무 꽃잎이 다섯 개인 데서도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다섯 꽃잎이 차나무가 품은 다섯 가지 맛, 고苦, 감甘, 산酸, 신辛, 삽澁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인생을 너무 힘들게(澁), 너무 티를 내면서(酸), 너무 복잡하게(辛), 너무 쉽고 편하게(甘), 그렇다고 너무 어렵게(苦)도 살지 말라는 깊은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선승이 차를 참선수도의 벗으로 삼았던 이유나 차의 경지와 선의 경지가 같다는 다선일미茶禪一味 사상이 싹튼 연유를 어렴풋이나마 헤아릴 수 있는 이야기다.
장구한 수명, 거대한 덩치, 우주의 리듬 재현, 다산성, 재생성 등은 다른 생명체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나무 고유의 특성이다.
백양사의 고불매와 이팝나무와 갈참나무는 더할 수 없는 보물이자 셈할 수 없는 자산이다. 전쟁의 참화로 소중한 문화재가 대부분 소실된 백양사로서는 비자나무 숲과 함께 백양사의 품격을 전하는 귀중한 생명문화유산이다. 나무와 숲이 내뿜는 향기와 색으로 정신이 맑아지고,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것을 경험했으니, 이게 바로 우리가 찾는 열락의 세상 아니겠는가? 절집이 품고 있는 나무 한 그루, 숲 한 자락도 우리의 삶을 맑고 향기롭게 이끄는 부처님 가르침과 다르지 않다고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많이 비워낸 뒤 찾은 절집 숲에서는 많이 채워 넣을 수 있었고, 복잡한 일상을 그대로 마음에 쟁여둔 채 찾은 절집 숲에선 불러내기 어려울 지경으로 당시의 기억이 스러져버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늦게나마 깨달은 사실은 절집을 찾는 시간만이라도 마음속 깊은 곳에 똬리를 틀고 있던 탐욕, 성냄, 어리석음을 놓아버리면 그에 반비례해서 감성의 그릇은 그만큼 더 커지고, 채워 넣을 감동도 더 커진다는 것이다. 비워야 채워 넣을 수 있다는 그 평범한 진리는 자연을 담는 마음의 그릇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셈이다.
겨울과 봄의 경계에 꽃을 피우는 동백꽃은 봄의 전령사다. 그 다음 전령사는 세한삼우의 하나로 사랑을 받는 매화꽃이다. 강진 백련사의 동백꽃이 남녘에서 먼저 화신을 북녘으로 띄우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순천 선암사의 '무우전매無憂殿梅'를 시발로 구례 화엄사의 매화와 장성 백양사의 '고불매古佛梅'가 차례로 화신을 이어간다. 이때쯤이면 남도의 봄은 무르익는다.
"이 문에 들어오거든 안다는 것을 버려라, 비우고 빈 그릇에 큰 도가 가득 차리라" - 김룡사 흥하문의 주련
비워내고, 기다릴 줄 알아야만 자연이 연출하는 소리와 색깔과 향기가 만들어내는 다양한 아름다움도 맛볼 수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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