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끌만한 시간을 사는 인간의 눈과 상상력으로 태초의 역사 가운데 생명체의 발생과 변화를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다.

 

눈에 보이는 변화, 빠른 변화에 익숙한 인간에게 '우연을 길들이는 진화 - 가능성이 극히 희박한 일을 그보다는 가능성이 덜 희박한 작은 구성 요소로 잘게 나누어 잘 배열하는 것', 긴 시간의 호흡으로 느린 변화는 믿을 수 없을지도....

 

 

[본문발췌]

 

 

풀밭을 걸어가다가 '돌' 하나가 발에 채였다고 상상해 보자. 그리고 그 돌이 어떻게 거기에 있게 되었는지 의문을 품었다고 가정해 보자. 내가 알고 있는 것과는 반대로 그것은 항상 거기에 놓여 있었다고 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답의 어리석음을 입증하기란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돌이 아니라 '시계'를 발견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리고 어떻게 그것이 그 장소에 있게 되었는지 답해야 한다면, 앞에서 했던 것 같은 대답, 즉 잘은 모르지만 그 시계는 항상 거기에 있었다는 대답은 거의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 시계는 제작자가 있어야 한다. 즉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선가 한 사람, 또는 여러 사람의 제작자들이 존재해야 한다. 그는 의도적으로 그것을 만들었다. 그는 시계의 제작법을 알고 있으며 그것의 용도에 맞게 설계했다. .... 시계 속에 존재하는 설계의 증거, 그것이 설계되었다는 모든 증거는 자연의 작품에도 존재한다. 그런데 차이점은 자연의 작품 쪽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또는 그 이상으로 훨씬 더 복잡하다는 것이다. - 윌리엄 페일리, <자연 신학>. 

 

 

자연 선택은 마음도, 마음의 눈도 갖고 있지 않으며 미래를 내다보며 계획하지 않는다. 전망을 갖고 있지 않으며 통찰력도 없고 전혀 앞을 보지 못한다. 만약 자연선택이 자연의 시계공 노릇을 한다면, 그것은 '눈먼' 시계공이다.

 

 

복잡한 물건은 사전에 규정된 어떤 성질, 즉 단순한 우연만으로는 매우 얻기 힘든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생물의 경우 사전에 규정된 그 성질이란 일종의 '능숙함'이다. 그것은 항공 기술자가 가진 감탄할 만한 비행 기술과 같은 고도의 능력뿐 아니라, 더 일반적인 능력, 즉 죽음을 모면하는 능력이나 생식을 통해 유전자를 보전하는 능력 따위를 말하는 것이다.

 

 

자연선택은 눈먼 시계공이다. 눈이 멀었다고 말하는 것은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절차를 계획하지 않고 목적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연선택의 결과인 생물은 마치 숙련된 시계공이 있어서 그가 설계하고 고안한 것 같은 인상을 준다. ... 살아 있는 생물이나 그것의 기관을 보면 마치 풍부한 지식과 지능을 갖춘 기술자가 어떤 뚜렷한 목적, 이를테면 날고, 수영하고, 보고, 먹고, 번식하는 것, 더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면 유전자의 보존과 증식을 위해 정교하게 설계해 놓은 것 같다.

 

 

페일리의 가설은 살아 있는 시계들은 글자 그대로 숙련된 시계 제작자가 설계하고 만들었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채택한 가설은 그 작업은 자연선택을 통해 점진적인 진화 단계 속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다윈이 극도의 완벽함과 복잡성을 갖춘 기관이라고 부른 것들을 우리 모두가 불신하는 밑바탕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자리 잡고 있다. 첫 번째는 우리는 진화가 일어날 수 있는 거대한 시간을 즉각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 ... 눈은 화석으로 남지 않는다. 그래서 무에서 시작하여 지금과 같은 복잡성과 완벽함을 갖춘 눈으로 진화하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는지 알아낼 방도가 없다. ... 우리가 눈이나 박쥐의 귀 같은 매우 복잡한 기관의 진화에 대해 쉽게 의심하는 두 번째 이유는 확률 이론을 직관적으로 적용하는 데 있다. ... '개개의 과정이 전체의 성공에 필수적임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각각은 그 자체만으로 쓸모가 없다. '완벽한 작품'은 전체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가능하다. 무작위적인 조합에 따라 그러한 일련의 과정들이 동시 발생할 경우의 수는 이미 언급했던 것처럼 천문학적이다.' - 레이븐, 이런 식의 주장은 원칙적으로 단순한 불신에 기초한 주장보다는 존중해 줄 만하다. 어떠한 주장이 들어맞을 통계적인 확률을 계산하는 것은 그 주장을 믿지 못하는 사람이 자신의 생각을 뒷받침하기 위해 취해야 할 정당한 방법이다. ... 문제는 바르게 사용하는 것이다! 레이븐의 주장에는 두 가지 잘못이 있다. 첫째, 그 주장에는 나를 다소 짜증나게 하는 자연선택과 무작위성을 혼동하는 경향이 있다. 돌연변이는 무작위적이다. 그러나 자연선택은 무작위성의 정반대편에 있다. 둘째, '각 부분은 그것만으로는 쓸모가 없다.'라는 말도 '진실'이 아니다. 전체로서의 완벽함이 동시에 달성되어야 한다는 말은 거짓이다. 모든 부분이 전체의 성공에 필수적이라는 말도 사실이 아니다. 단순하고 덜 발달되었으며 반만 완성된 눈이나 귀, 음향 탐지 체계, 뻐꾸기의 기생 생활 방식 등은 전혀 없는 것보다는 낫다. 눈이 없다면 전혀 볼 수 없다. 눈이 절반만이라도 있으면 비록 초점이 맞는 정확한 영상을 얻지는 못하더라도 천적이 움직이는 대강의 방향이나마 탐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삶과 죽음의 차이를 만들어 낼 것이다.

 

 

이렇듯 (비록 작기는 하지만 매번의 개선이 미래를 건설하는 기초가 되는) 누적적인 선택과 (매번 전혀 새로운 시도를 하는) 1단계 선택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만약 1단계 선택에 의존해야 했다면 진화는 아예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자연의 눈먼 힘이 누적적인 선택의 필요조건을 충족시켜 주었다면 진화 과정은 실현 가능한 것이다. 그것이 실제로 바로 이 지구라는 행성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리고 우리 자신은 그러한 과정이 가장 최근에 낳은 가장 기이하고 놀라운 결과물이다.

 

 

진화에는 장기적인 목표 따위는 없다. 먼 미래의 목표, 선택의 기준이 될 궁극적인 완벽함 따위는 없다. 진화의 궁극적인 목표가 우리 인간이라는 믿음은 터무니없는 인간 허영심의 산물에 불과하다. 실제 상황에서 선택의 기준은 항상 단기적인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개체의 생존이거나 아니면 더 일반적으로 말해서 성공적인 번식이다. 수백만 년이 흐른 뒤에 뒤돌아보았을 때 그 과정이 어떤 머나먼 목표를 향해 조금씩 앞으로 나간 것처럼 보이더라도, 그것은 언제나 단기간의 선택으로 이루어진 여러 세대에 걸친 우연적인 결과이다. '시계공', 즉 누적적인 자연선택은 미래를 알지 못하며 장기적인 목표 따위는 갖고 있지 않다.

 

진화는 기본적으로 번식의 끝없는 반복으로 이루어진다. 모든 세대에서 번식은 앞 세대로부터 유전자들을 받아 무작위적이며 조그만 실수인 돌연변이와 함께 다음 세대로 물려준다. 돌연변이는 무작위적으로 선택된 하나의 유전자가 원래 가지고 있던 값에 단순히 +1 또는 -1을 더하는 것이다. 이 말은 세대가 거듭됨에 따라 한 번에 하나씩 작은 변화들이 쌓이게 되고 결국 유전적 변이의 총량이 원래 조상과 비교하여 엄청나게 커질 수 있다는 말이다. 비록 돌연변이가 무작위적이기는 하지만, 세대가 거듭됨에 따라 축적되는 변화는 무작위적이지 않다. 한 세대의 자손은 무작위적인 방향으로 부모와 달라진다. 그러나 그 자손들 중 어느 것이 선택되어 다음 세대로 이어질 것인지는 무작위적이지 않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는 9개의 유전자를 가진 바이오모프가 아닌, 각각 수만 개의 유전자를 가진 세포 수십억 개로 이루어진,  살과 피를 가진 동물들로 가득 찬 수학적인 공간이 있다. 이것은 바이오모프의 공간이 아니라 실제의 유전자 공간이다. 지구에서 과거에 살았거나 현재 살고 있는 동물들은 이론적으로 존재가 가능한 수많은 동물들 중 작은 소집단에 불과하다. 이 실제 동물들은 유전자 공간을 통과하는 아주 적은 수의 진화 경로에서 비롯된 산물이다. ... 이 거대한 수학적인 공간의 어느 곳에 인간과 하이에나, 아메바와 개미핥기, 편형동물과 오징어, 도도새와 공룡이 자리 잡고 있다. 만약 유전공학이 고도로 발달하여 우리가 생물의 유전자를 마음대로 다룰 수 있다면, 이론적으로는 동물 공간의 한 점에서 다른 어떤 점으로든 자유롭게 옮겨 갈 수 있다. 시작하는 점이 어디든 우리는 미로를 찾아 헤매어 도도새, 티라노사우루스, 삼엽충 등을 다시 만들 수 있다. 단지 어떤 유전자를 수선해야 하는지, 그리고 염색체의 어떤 부분을 복제하고 뒤집고 삭제해야 하는지 알기만 한다면 말이다. 인류가 그 정도로 충분히 유전공학에 능통하게 될지는 의심스럽다. 그러나 이 친애하는 멸종된 동물들은 그 거대한 유전자 초공간 속에 있는 그들만의 고유한 장소에 언제까지나 잠복해 있으면서 (우리가 미로 속에 있는 정확한 경로를 찾아 항해할 수 있는 지식을 갖게 되었을 때) 발견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조그만 변화가 여러 번에 걸쳐 단계적으로 축적된다는 개념은 강력한 힘을 가진 생각이다. 그것은 다른 방법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큰 규모의 변화를 설명할 수 있다. 

 

 

작은 개조가 수없이 거듭되는 것으로도 결코 만들어질 수 없는 어떤 복잡한 기관이 있다는 것이 증명이 된다면 나의 이론은 붕괴될 것이다. - 다윈, <종의 기원> 

 

 

유전자에서 일어난 어떤 변화가 그 자신의 복제 가능성에 어떤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자연선택의 게임에서 공정한 규칙이다. 그것은 매우 단순하고 자동적이며 미리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처럼 거의 불가피한, 누적적인 자연선택에 필요한 기본적인 요소(복제, 실수 그리고 위력)가 태초에 저절로 생겨나게 되었다.

 

 

유전자가 선택되는 것은 유전자의 내적 성질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과의 상호 작용에 따른 것이다. 어느 유전자의 환경으로 특히 중요한 구성 요소는 다른 유전자이다. 다른 유전자가 그토록 중요한 구성 요소를 이루는 일반적인 이유는 다른 유전자 또한 여러 세대를 거치면서 진화적으로 변화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두 가지 귀결이 이루어진다. 하나는 어느 유전자가 유리해지면 그것은 그 유전자가 협동을 선호하는 상황하에서 만날 가능성이 높은 다른 유전자와 '협동'하는 성질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특히, 전적인 것은 아니지만, 동종 내의 유전자의 경우에 해당한다. 그 이유는 동일한 종 내의 유전자는 세포를 공유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것은 협동 관계에 있는 많은 수의 유전자 집단의 진화를 일으키고 나아가서는 협동 사업의 산물로서 몸 자체의 진화로 이어지게 된다. 개체의 몸은 유전자들의 협동조합이 구축한, 각 조합원의 복제를 보존하기 위한 거대한 탈것, 혹은 '생존 기계'인 셈이다. 유전자들이 협동하는 이유는 모든 유전자가 같은 결과, 즉 함께 공유하고 있는 몸의 생존과 번식을 통해 이익을 얻기 때문이다. 또한 그 유전자들이 서로에 대해 자연선택이 작용하는 환경의 중요한 일부를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항상 협동이 선호되는 것은 아니다. 지질학적 규모의 시간을 거치는 동안 대립을 선호하는 상황에서 유전자들이 조우할 때도 있다. 이것은 특히, 물론 거기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다른 종 사이의 유전자의 경우에 해당한다. 다른 종의 개체들 사이에서는 교배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다른 종과는 유전자가 섞일 수 없다는 것이 요점이다. 어느 종 내에서 선택되어 남은 유전자가 다른 종의 유전자가 선택되는 환경을 제공할 때, 흔히 그 결과는 진화적 군비 확장 경쟁이 된다. 군비 확장 경쟁의 한쪽, 예를 들면 포식자에서 선택된 결과 발생한 하나하나의 새로운 유전적 개선은 군비 확장 경쟁의 다른 한쪽, 즉 먹이가 되는 생물의 유전자가 선택되는 환경을 변화시킨다. 진화에서 나타나는 명확한 '진보적인 성질', 예를 들면 달리기 속도, 비행술, 예리한 시각, 발달된 청각 등의 정교한 개선을 낳을 수 있는 원동력은 바로 그러한 군비 확장 경쟁이다. 이 군비 확장 경쟁은 영구적으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며, 가령 그 이상 개선된다면 해당 동물 개체에 있어서 경제적 비용이 지나치게 높아질 경우에 안정화된다.

 

 

느리고 점진적인 '누적적인 자연선택'이야말로 생명이 가지는 복잡한 설계의 존재를 설명할 수 있으며, 더욱이 지금까지 제안된 이론들 중에서 유일하게 적용할 수 있는 설명이다. 

 

 

우연을 '길들인다'는 말은 바꾸어 말하자면 가능성이 극히 희박한 일을 그보다는 가능성이 덜 희박한 작은 구성 요소로 잘게 나누어 잘 배열하는 것을 뜻한다. 가령 X가 단 하나의 단계를 거쳐 Y에서 발생하기는 불가능하더라도 둘 사이를 무한소로 분할할 수 있는 연속된 중간물을 통해 X와 Y를 연결하는 것은 언제나 가능하다. 대규모적인 변화는 불가능할지 모르지만, 작은 변화는 그것보다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충분히 세분된 연속적인 중간형으로 이루어진 충분히 큰 계열을 전제한다면 천문학적인 불가능성을 피해 어떤 것에서 다른 무엇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중간형을 끼워 넣을 수 있는 충분한 시간만 있다면, 우리는 분명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특정한 방향에 따라 매 단계를 인도하는 메커니즘이 있는 경우에 적용되는 이야기이다. 그렇지 않으면 각 단계의 계열은 폭주를 시작하고 끝없는 무작위적인 방황을 계속할 것이다. 

 

 

자연선택은 돌연변이로 만들어진 변이에만 작용할 수 있다. 돌연변이는 '무작위적'인 것으로 묘사되는데, 이 말은 단지 돌연변이가 진보를 향해 체계적으로 일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것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변이들 가운데 고도로 작위적인 것의 부분 집합이다. 돌연변이는 기존의 배 발생 과정을 변화시킴으로써 영향력을 발휘한다. 따라서 문어의 배 발생 과정에 돌연변이가 일어난다고 해도 코끼리가 만들어질 수는 없다. 이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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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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