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석 에너지 기반의 증기, 내연기관을 바탕으로 한 1, 2차 산업혁명은 생산성, 효율성에 기반한 소유와 소비에 집중했다면 3차 산업혁명은 신재생 에너지와 이를 활용한 기술, 협력적 이해관계, 연결성, 상호 의존에 기반을 둔 지속가능한 환경, 사회, 경제, 문화적 변화의 현재 진행형이다.

 

 

[본문발췌]

 

 

나는 2008년 7월에 일어난 이 일련의 사건을 세계화의 정점으로 정의한다. 우리는 이미 화석 연료와 석유에 의존하는 경제 시스템 내에서 글로벌 경제성장을 확대할 수 있는 최댓값, 즉 그 외곽 한계에 도달해 있다. 현재 우리는 석유 시대와 그에 기반한 2차 산업혁명의 종반전에 접어들었다. 이것이 바로 받아들여야 할 냉정한 현실이다. 인류의 모든 구성원은 이 현실을 받아들이고 서둘러 전혀 새로운 에너지 체제와 새로운 산업 모델로 옮겨 가야 한다. 만약 그렇지 하지 않으면 문명의 종말까지 감수해야 할 것이다.

 

 

경제는 언제나 신뢰의 게임이다. 우리는 상업과 교역을 금이나 은이 뒷받침하는 것으로 간주했지만 실제로는 언제나 그보다 더 중요한 예비 자원인 '대중의 신뢰'가 뒷받침해 왔다. 이 믿음이 강건할 때 경제는 번영하고 미래에 대한 전망도 밝다. 대중의 믿음이 깨지면 경제는 추락하고 미래는 어둡다.

 

 

역사상 위대한 경제적 변혁은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새로운 에너지 체계와 만날 때 발생한다. 새로운 형태의 커뮤니케이션은 새로운 에너지원을 이용해 전보다 복잡한 문명을 체계화하고 관리하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새로이 부상하는 인프라는 시간을 줄이고 공간을 좁혀 사람과 시장이 보다 다양한 경제적 관계를 형성하도록 돕는다. ... 커뮤니케이션 기술은 경제적 유기체를 감독하고 조정하고 관리하는 중추신경계 역할을 하며, 에너지는 정치적 통일체를 순화하며 경제가 살아서 성장하도록 자연의 산물을 재화와 용역으로 전환하는 데 필요한 자양분을 공급하는 혈액 역할을 한다. 결국 인프라는 갈수록 많은 수의 사람이 보다 복잡한 경제적, 사회적 관계를 맺도록 돕는 살아 있는 시스템과 유사하다. 

 

 

인쇄에 도입한 증기력 기술은 인쇄물이라는 매개체를 1차 산업혁명을 관리하는 주요 커뮤니케이션 도구로 변형시켰다. .... 20세기 첫 10년 동안, 전기 커뮤니케이션(전화, TV, 라디오)은 석유 동력의 내연기관과 조우해 2차 산업혁명을 일으켰다.  ... 인터넷 커뮤니케이션 기술과 재생 가능한 에너지의 결합이 3차 산업혁명을 일으키고 있다. 21세기에는 수억 명의 사람이 자신의 가정과 직장, 공장에서 직접 녹색 에너지를 생산하여 지능적인 분산형 전력 네트워크, 즉 인터그리드로 서로 공유할 것이다.

 

 

3차 산업혁명은 1차 산업혁명이 19세기에, 2차 산업혁명이 20세기에 영향을 끼친 것처럼 21세기에 크나큰 영향을 끼칠 것이다. 나아가 앞선 두 차례의 혁명이 그랬듯이 우리가 일하고 살아가는 방식의 모든 측면을 근본적으로 바꿔 놓을 것이다. 화석연료에 기반한 산업혁명의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생활 대부분을 특정지었던 상의하달식 사회구조는 물러가고 분산 및 협력 관계가 주를 이루는 녹색 산업 시대가 부상할 것이다. 우리는 현재 사회구조가 계층적 권력에서 수평적 권력으로 이동하는 심오한 변화의 시기를 목도하고 있다. 

 

 

3차 산업혁명의 다섯 가지 핵심 요소

  • 탄소에 기초한 화석연료 에너지 체제에서 새로운 재생 가능 에너지 체계로 전환한다.

  • 모든 대륙의 건물을 현장에서 재생 가능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는 미니 발전소로 변형한다.

  • 모든 건물과 인프라 전체에 수소 저장 기술 및 여타의 저장 기술을 보급하여 불규칙적으로 생성되는 에너지를 보존한다. 모든 건물과 사회 인프라 전체에 수소 또는 여타의 저장 기술을 보급하고 불규칙적으로 생산되는 재생 가능 에너지를 저장하여 지속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녹색 전력의 공급 체계를 확보한다.

  • 인터넷 기술을 활용하여 모든 대륙의 동력 그리드를 인터넷과 동일한 원리로 작동하는 에너지 공유 인터그리드로 전환한다. (수백만 개의 빌딩이 소량의 에너지를 생성하면 잉여 에너지는 그리드로 되팔아 대륙 내 이웃들이 사용할 수도 있다.)  인터넷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이용하여 전기 그리드를 지능형 공익사업 네트워크로 전환함으로써(인터넷 상에서 정보가 생산되고 공유되듯이) 수백만 명이 주거지나 건물에서 직접 생산한 녹색 전력 그리드로 보내 오픈 소스 공유 공간에서 다른 사람과 나눠 쓰도록 한다.

  • 교통수단을 전원 연결 및 연료전지 차량으로 교체하고 대륙별 양방향 스마트 동력 그리드상에서 전기를 사고팔 수 있게 한다.

 

1차, 2차 산업혁명 시대의 화석연료로 대표되는 에너지는 수직적 규모의 경제를 선호했고, 공급 사슬 전반에 걸쳐 중앙집중화된 거대 기업을 양성했다. 이런 거대 기업들은 적대적 분위기가 만연한 시장에서 경쟁하며 위계질서를 합리화한 경영진이 관리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3차 산업혁명 시대가 지향하는 풍부한 재생 가능 에너지는 분산된 수많은 기업을 시장이라기보다는 생태계에 가까운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비즈니스 협력 관계를 맺어 준다. 이 새로운 시대에 경쟁적 시장은 협력적 네트워크에 점차 밀려날 것이며, 수직적 자본주의는 분산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힘에 점점 자리를 내어줄 것이다.

 

 

제품 생산과 유통의 합리화를 위해서는 노동력의 합리화도 필요했다. 그 시점에 등장한 최초의 전문 경영인이 바로 프레더릭 테일러였다. 그의 과학적 경영 이론은 노동자의 페르소나를 새로운 중앙집권형 관료제 기업을 유지하기 위해 이용하는 운영 표준에 맞춰 재구성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테일러는 공학자들이 개발한 효율성 원칙을 차용, 노동자에게 적용하며 그들이 '살아 있는 기계'로 전환되길 기대했다. 그래야 표준화한 제품을 쏟아 내는 지속적인 생산공정과 동일한 형태로 그들의 작업을 최적화할 수 있었다. 테일러는 노동자의 효율성을 높이는 최상의 방법은 행동에서 생각을 제거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어떤 과업을 어떻게 완수할 것인지에 대한 모든 결정권은 경영진에게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만약 노동자가 나름의 생각에 준거해 노력을 기울인다면 방법론적 효율성이나 자본이 원하는 작업 속도를 강요하기가 불가능하다." 테일러는 중앙집권형 하향식 경영 체계에 합리적 권한 집행이라는 핵심 개념을 도입하여 모든 노동자에게 부과했다.

 

 

3D 프린팅... 3D 사업가들이 특히 첨삭식 제조(additive manufacturing)에 고무된 이유는 전통적 제조 방식에 비해 원재료가 10퍼센트밖에 들지 않을 뿐 아니라 공장 제조에 비해 에너지 소모도 적어 제조 비용을 대폭 절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새로운 기술을 더 많이 보급하면 현장에서 적시에 맞춤 제작품을 3D 프린터로 제작함으로써 물류 비용을 대폭 절감하는 한편 에너지 소비 또한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글로벌 경제 전체에 적용된다고 가정할 때, 원재료 절감과 제조 과정의 에너지 절약, 운송 비용의 감소 등 디지털 제조 과정의 전 단계에서 절약되는 에너지를 모두 합치면 1차, 2차 산업혁명에서는 감히 상상도 못한 에너지 효율의 질적 개선이 이뤄질 것이다. 여기에 더해 제조 과정에서 사용되는 에너지가 현장 생산 재생 가능 에너지로 대체되면 수평적인 3차 산업혁명의 완전한 영향이 극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인터넷 소통으로 사회성의 많은 부분을 형성한 최근의 두 세대는 세상을 나눌 때, 하향식이며 폐쇄적이고 소유권 중심의 사고방식을 이용하는 사람 및 기관 그리고 수평적이며 투명하고 개방된 사고방식을 이용하는 사람 및 기관으로 구분하는 경향이 있다.

 

 

3차 산업혁명의 통신 및 에너지 체계는 본질적으로 분산 및 협업 프로세스이기 때문에 노드 사이트(nodal site, 교점지역)마다 협동조합 비즈니스 모델을 적용하는 게 유리하다.

 

 

엘리트 화석연료에서 분산형 재생 가능 에너지로의 에너지 체제 변화는, 생태학적 사고에 맞는 방향으로 국제 관계에 대한 개념 자체를 다시 정의할 것이다. 3차 산업혁명의 재생 가능 에너지는 그 양이 풍부하고 모든 곳에 존재하며 쉽게 공유할 수 있다. 하지만 지구 생태계에 대한 공동의 협력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따라서 에너지 접근성을 둘러싸고 적대적 행위나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낮으며 오히려 전 세계적으로 협력할 가능성이 더 크다. 다가오는 새로운 시대에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경쟁하기보다는 협력할 것이고 각자의 자립권보다는 소속감을 추구할 것이다. 지구가 상호 의존적인 생태 관계가 겹겹이 쌓여 이루어진 살아 있는 유기체처럼 작동하는 것이라면, 우리의 생존은 우리 모두가 속한 지구 생태계의 안녕을 지키는 데에 달려 있다. 이것이 바로 지속 가능한 발전의 진정한 의미이며 생물권 정치학의 핵심이다.

 

 

열역학 제1법칙과 제2법칙은 "우주의 총에너지 합은 일정하며 총엔트로피는 지속적으로 증가한다."고 선언한다. 제1법칙인 '에너지 보존법칙'에 따르면 에너지는 창조되거나 소멸될 수 없다. 즉, 우주의 에너지 총량은 태초부터 변함없이 유지되었으며 우주의 종말이 올 때까지도 계속 그러하다는 얘기다. 에너지의 양은 고정되어 있지만 에너지의 형태는 계속해서 바뀌는데 언제나 한 방향으로만, 즉 사용 가능한 형태에서 사용 불가능한 형태로 바뀐다. 이쯤에서 열역학 제2법칙이 등장한다. 제2법칙에 따르면 에너지는 언제나 뜨거운 쪽에서 차가운 쪽으로, 고농도에서 저농도로, 질서 있는 상태에서 무질서한 상태로 흐른다. 열역학 제1법칙과 제2법칙이 실제 세계에서 작용하는 방식을 이해하기 위해 석탄 덩어리를 태우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석탄을 태우면 그 안에 있던 에너지는 하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그 에너지는 이산화탄소, 이산화황 등 여러 기체로 변해서 공중으로 흩어진다. 석탄 연소로 생겨난 에너지는 소멸되지 않지만 흩어진 에너지를 다시 모은 다음 원래의 석탄 덩어리로 만들어 재사용할 수는 없다. 독일의 과학자 루돌프 클라우지우스는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된 에너지를 설명하기 위해 1868년에 '엔트로피(entropy)'라는 용어를 만들어 냈다.

 

 

열역학법칙에 따른 관점에서 보면 경제활동이란 저 엔트로피 에너지 투입물을 자연에서 빌려 와 그것을 가치 있는 일시적 상품 및 서비스로 변형시키는 활동일 뿐이다. 그 변형 과정에서 생산한 특정 재화나 서비스에 포함되는 에너지보다 더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고 주변으로 상실되는 경우가 빈번한다. ... 모든 생물은 비평형상태다. 다시 말해, 모든 생물체는 평형상태와 거리가 멀며 이는 주변 환경으로부터 이용 가능한 에너지를 끊임없이 먹어 치우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결과 항상 환경 전체의 엔트로피가 증가한다. 예컨대 식물은 광합성 과정에서 태양에너지를 흡수하고, 그 집중된 에너지는 다른 동물이 직접 소비하거나 또는 동물이 다른 동물을 잡아먹을 때 간접적으로 소비한다. 대체로 더 진화한 종일수록 비평형상태에서 스스로를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며 생명유지 과정에서 소비된 에너지를 주변 환경에 더 많이 토해 낸다. 노벨상을 수상한 물리학자 에어빈 슈뢰딩거는 열역학 과정의 핵심을 잘 포착해 냈다. 그는 "유기체는 음의 엔트로피를 먹고 살아간다. 유기체는 환경으로부터 계속해서 질서를 빨아먹는다."라고 말했다. 생물학자들의 설명은 생명유지 방식에 대해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바와 일치한다. 우리는 무언가를 먹을 때마다 끊임없이 에너지를 몸속에 흡수하고, 생명을 유지하는 과정에서 계속해서 에너지를 고갈시키며 엔트로피 쓰레기의 축적에 기여한다. 에너지 흡수를 멈추거나 또는 질병 때문에 신체가 에너지 대사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 우리는 죽는다. 신체는 죽음에 이르면 빠르게 분해되어 환경으로 돌아간다. 삶과 죽음은 모두 엔트로피 흐름의 일부이다. 

 

 

화학자 타일러 밀러는 생태계 안의 모든 포식 단계마다 이용 가능한 에너지가 소비되고 엔트로피가 발생하는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단순화한 먹이사슬을 사용한다. 먼저 그는 포식자가 먹잇감을 집어 삼키는 과정에서 "80~90퍼센트의 에너지가 단순히 낭비되거나 열의 형태로 손실되어 주변 환경으로 빠져나간다."는 점을 지적한다. 먹잇감의 에너지 중 10~20퍼센트만이 포식자에게 흡수된다는 얘기다. 한 생물에서 다른 생물로 에너지가 변환되려면 에너지 소비가 필요하고 그 결과 에너지 손실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 그렇다면 복잡한 산업사회에서 인간이 자연의 자원을 소비할 식량으로 변환하는 과정에 수반되는 열역학적 결과를,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국가의 부를 인식하는 방법과 관련하여 무엇을 암시하는가를 알아보자. 다음은 비프스테이크 한 접시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다.

  • 450그램의 스테이크를 만들려면 사료용 곡물이 약 4킬로그램 필요하다. 사료의 11퍼센트만이 소고기를 만드는 데 쓰인다는 뜻이다. 나머지 사료는 변환 과정에서 에너지로 태워지거나, 정상적인 신체 기능 유지를 위해 사용되거나, 털이나 뼈처럼 먹을 수 없는 부위로 간다. 흔히 우리는 기름을 잔뜩 먹어 대는 차량의 에너지 비효율과 거기에 수반되는 낭비를 탄식하지만, 이는 곡물로 키우는 육류를 먹는 식습관에 수반되는 에너지 비효율과 낭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프랜시스 무어 라페는 <작은 행성을 위한 식단 Diet for a Small Planet>에서 곡류 생산에 사용되는 땅 1에이커는 육류 생산에 사용하는 땅 1에이커보다 다섯 배나 많은 단백질을 만든다고 설명했다. 1에이커를 소고기 생산에 사용하는 경우와 비교할 때 같은 면적에서 나오는 콩류는 열 배나 많은 단백질을, 잎 채소는 15배나 많은 단백질을 제공한다. 오늘날 전 세계에서 재배하는 곡류의 거의 3분의 1은 인간이 직접 소비하는 식량이 아니라 가축용 사료다. 따라서 먹이사슬의 꼭대기에 있는 소수의 부유한 소비자들이 사치스러운 생활을 만끽하는 동안 다른 수억 명의 사람들은 영양실조, 기아, 죽음에 직면하는 것이다.

  • 농부들은 사료용 곡물을 재배하기 위해 화석연료 기반의 석유화학 비료, 살충제, 제초제를 다량 사용해야 한다. 또 농장 시설을 운영하기 위해 화석연료를 소비한다. 그리고 그 곡물을 소비할 가축들이 기다리는 기계화된 거대한 가축 사육장으로 운반하려면 더 많은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트럭, 기차, 선박을 동원해야 한다.

  • 사육장에서는 동물에게 온갖 종류의 약품을 투여한다. 성장 촉진 호르몬, 사료 첨가제, 때때로 처방되는 항생제 등을 사용하는데 이 역시 추가적인 에너지가 드는 일이다. 소들은 비좁은 축사에서 사육되는데(심지어 5만 마리 이상이 들어가기도 한다.) 이곳에서는 들끓는 파리가 홍안병이나 전염성 비기관염 같은 것들을 옮긴다. 이러한 질병을 막기 위해 화석연료로 만든 고독성 살충제를 고압 호스로 분사해서 축사를 독성 구름으로 채운다.

  • 충분히 살 찐 소들은 가축 운반용 트럭으로 몇 시간 혹은 며칠 동안 고속도로를 통과해 도축장으로 간다. 물론 이 과정에서도 화석연료 에너지를 추가로 사용한다.

  • 도축장에 도착한 동물을 도축대 위에 일렬로 세운 다음 공기총으로 기절시켜 땅바닥에 쓰러뜨린다. 일꾼은 뒷발굽에 체인을 걸어 동물을 거꾸로 들어 올린 후 목을 따고 피를 뺀다.

  • 죽은 동물은 전기로 구동되는 분해 라인을 따라 이동하며 이 과정에서 기계가 가죽을 벗기고 내장을 제거한다.

  • 이제 전기톱으로 도체를 부위별로 자른다. 목심, 갈비, 사태, 살코기가 된다.

  • 잘린 조각은 전기 구동 컨베이어 위에서 수십 명의 일꾼이 뼈를 바르고 다듬고 자른다. 그리고 최종 제품을 박스에 담는다.

  • 진공 포장한 소고기를 냉장 트럭에 실어 전국의 슈퍼마켓으로 배송한다.

  • 슈퍼마켓에 도착한 소고기 제품을 화석연료로 만든 비닐로 재포장하여 밝은 조명이 비치는 냉장 선반에 진열한다.

  • 소비자는 차를 몰고 식품점에 가서 고기를 산 다음 냉장고에 보관한다. 그 후 가스레인지나 전기스토브로 조리하여 먹는다.

 

우리는 변환의 속도와 제품 생산 속도에 대한 집착 때문에 추가 에너지 소모라는 대가를 지불한다.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한다는 말은 더 많은 에너지를 낭비하고 환경에는 더 많은 엔트로피가 쌓인다는 말과 같다.

 

 

열역학적 효율의 관점에서 볼 때, 생산성이란 단위 산출물당 속도일 뿐만 아니라 단위 산출물당 발생한 엔트로피이기도 하다.

 

 

위키피디아나 페이스북 같은 소셜 공간들은 인간이 본래 이기적인 존재로서 끊임없이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존재가 되고자 한다는 고전 경제이론이 기본 가정에 도전장을 던진다. 3차 산업혁명의 커뮤니케이션 및 에너지는 고전 경제 이론에서 말하는 것과 전혀 다른 생물학적 욕구를 끌어낸다. 바로 사회적 교류의 욕구와 공동체에 대한 추구다. 이러한 사고방식의 전환을 가장 잘 반영하는 부분은 소유권에 대한 우리의 태도 변화다. 과거 소유권 개념에서는 시장에서 물리적 물건을 획득하여 타인을 배제한 채 그것을 즐길 권리를 갖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하지만 이제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소유권 개념, 즉 소셜 네트워크의 정보를 얻고 타인과 공동의 경험을 공유할 권리라는 개념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대개 우리가 생각하는 소유권 개념은 소유와 배제라는 전통적 개념과 긴밀히 엮여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수세기 동안 향유해 온 더 오래된 소유권(즉, 공동 소유물에 대한 접근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떠올리기가 힘들다. 예를 들어 배를 이용해 강을 이동하고, 숲에서 식량을 찾고, 시골길을 걷고, 가까운 냇가에서 물고기를 잡고, 공공 광장에서 회합을 갖는 권리 같은 것 말이다. 근대에 이르자 접근과 포함을 가능케 하는 이러한 오래된 소유권 개념은 점차 옆으로 밀려났다. 시장에서의 관계가 생활을 지배하고 사유재산이 '인간의 기준'을 정의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산과 협업이 특징인 경제에서는 글로벌 소셜 네트워크에 대한 접근 권리가 시장에서 사유재산을 보유할 권리 못지않게 중요하다. 삶의 질과 관련된 가치들, 그중에서도 특히 가상공간에서 글로벌 공동체의 다른 수많은 사람과 사회적 관계를 맺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호 연결된 세상에서는 인터넷 접근권이 강력하고 새로운 재산권 가치를 지닌다. 

 

 

전화, 라디오, 텔레비전 같은 중앙집권적인 통신기술이나 화석연료, 원자력발전소를 시장에서 소유하려면 엄청난 자본비용이 들었다. 하지만 이런 시스템은 이제 새로운 분산 자본주의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 분산 자본주의에서는 수평적 네트워크에 들어가기 위한 진입 비용이 낮기 때문에 개방적인 인터넷과 인터그리드를 이용하여 사실상 누구나 미래의 기업가나 협력자가 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새로운 거대 기업을 시작할 때 적어도 초기 단계에서는 금융자본보다는 사회적 자본이 더 중요한 경우가 많다. 20대 젊은이들이 학교 기숙사 방에서 구글이나 페이스북, 여타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만든 사실을 생각해 보라. 금융 자본이 이제 무의미해졌다는 얘기는 물론 아니다. 하지만 금융자본을 사용하는 방법이 근본적으로 변했다. 경제가 수평적으로 변하고 보다 분산적이 되면 개별적 교환보다는 피어투피어 관계가 더 유리하다. 기업이 수익을 창출하는 방법이 근본적으로 바뀌는 것이다. 소유물을 생산하여 교환하는 것은 자본주의의 주춧돌이었다. 하지만 교환 비용이 점점 더 싸져서 결국은 사실상 제로가 되는 지능형 경제에서는 그러한 소유물 교환 방식으로 수익을 내기가 힘들다. 이러한 과정은 이미 진행 중이고 앞으로 3차 산업혁명이 무르익으면서 더욱 가속화할 것이다. 시장에서 소유물을 교환하는 방식은 점점 사라지고 협업 네트워크 상에서 관계를 맺는 일이 늘어날 것이다. 또 판매를 위해 생산은 필요에 따른 즉각적인 이용을 위한 생산 범주에 포함될 것이다. <뉴욕 타임스> 기자 마크 러바인은 이러한 새로운 사고 변화를 다음과 같이 날카롭게 표현했다. "공유와 소유의 관계는 아이팟과 8트랙 녹음테이프의 관계, 태양광전지판과 탄광의 관계다. 공유는 깨끗하고 신선하며 세련되고 포스트모던하다. 반면 소유는 지루하고 이기적이며 소극적이고 후진적이다."

 

 

이제 새로운 모습의 미래가 삶의 질에 진정한 가치를 부여한다. 바로 협력적 이해관계, 연결성, 상호 의존에 기반을 둔 미래가 그것이다. 진정한 자유란 타인에게 아무런 의무도 지지 않고 고립된 섬과 같은 존재가 될 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에 깊이 참여할 때 얻을 수 있다. 자유가 삶의 최적화라면, 그것은 개인의 경험이 얼마나 풍부하고 다양한가, 또 사람들과 얼마나 강력한 사회적 유대를 맺는가를 토대로 측정해야 마땅하다. 외딴 존재로 살아가는 삶은 딱하고 무의미하다. 삶의 질이라는 꿈은 집단 내에서만 실현할 수 있다. 고립되어 타인을 배제한 채로 높은 삶의 질을 향유하기는 불가능하다. 삶의 질을 획득하려면 모든 사람이 공동체 생활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하며 어느 한 사람 뒤처지지 않도록 모든 구성원이 깊은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계몽주의 경제학자들은 행복과 '훌륭한 삶'이 개인적 부의 축적과 동의어라고 굳게 믿었다. 하지만 3차 산업혁명의 문턱에 있는 오늘날 젊은 세대는 경제적 안정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개인의 행복은 사회적 자본의 축적에 비례하기도 한다고 믿는다. ...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우리가 속한 더욱 커다란 공동체에 대한 구성원 모두가 집단적인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면, 과연 그 공동체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다가오는 새로운 시대에 우리의 시공간적 터전은 임의적인 정치적 경계선을 넘어 생물권 자체를 아우르는 범위까지 확대된다. 

 

 

인류를 우리가 살아가는 더 큰 생명 공동체의 구조 안에 다시 자리 잡도록 만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첫 단계는 바로 우리의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관계를 지구 생태계의 생물학적 관계와 유사하게 만드는 일이다. 새롭게 등장한 과학적 세계관의 전제와 가정은 3차 산업혁명 경제 모델의 기저에 깔린 네트워크적 사고와 조화를 이룬다. 과거의 세계관은 자연을 그저 대상으로 보았지만 새로운 세계관은 자연을 관계의 집합으로 본다. 과거의 관점을 특징짓는 것이 분리, 몰수, 해체, 감축이라면 새로운 관점을 특징짓는 것은 결합, 보충, 통합, 전체론이다. 예전의 과학은 자연에서 생산적인 결과물을 만든는 방법에 몰두했지만 새로운 과학은 자연을 지속 가능하게 만들려고 애쓴다. 과거의 과학은 자연 위에 군림하는 힘을 확보하려고 했지만 새로운 과학은 자연과의 협력을 추구한다. 과거의 과학은 자연으로부터 벗어난 독립을 중시했지만 새로운 과학은 자연에 참여하는 것을 중시한다. 과거에 우리는 자연을 식민주의적 시각으로 바라보았다. 약탈하고 노예로 만들어야 할 대상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과학적 세계관은 자연을 우리가 함께 돌보고 가꾸어야 할 공동체로 인식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연을 소유하여 개간하고 이용하고 소유할 권리를 지양하고, 자연을 돌보고 존중해야 할 의무를 강화해야 한다는 의미다. 자연이 지닌 효용적 가치보다는 자연이 지닌 본질적이고 고유한 가치가 점차 주목받고 있다.

 

 

생물권의 영속과 생명체 보존에 알맞은 조건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서 모든 생물 유기체가 끊임없이 지구화학적 과정으로 상호작용한다면, 인류가 오래도록 안녕과 행복을 구가하느냐의 여부는 과연 지구 활동의 배경이 되는 시공간적 제약 내에서 삶을 유지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고전주의 및 신고전주의 경제 이론과 실행 사례들은 자연에 대한 일방적 이용과 소비만을 강조함으로써 지구화학적 작용과 생물학적 작용 사이의 피드백 메커니즘을 훼손했으며 지구 생태계를 피폐하게 만들고 결국 지구의 기온과 기후를 완전히 바꿔 놓았다. 인류가 하나의 종으로 살아남고 번성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개념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 공간을 수동적인 자원이 담긴 용기나 창고로 바라보는 고전 경제학적 관점 대신에, 활발하고 능동적인 관계들이 모여 있는 공동체로 바라보는 관점이 자리 잡아야 한다. 이러한 새로운 틀에서 보면 지구화학적 구조는 단순한 자원이나 소유물이 아니라 지구상의 생명체를 존속시키는 상호작용 관계에 깊이 얽힌 일부분이다. 그렇다면 경제적 우선순위는 생산성이 아니라 생성력에 놓아야 하며 자연을 순전히 실용적으로 이용하려 드는 대신에 생물권을 유지하는 상호관계를 돌보고 지키는 데 힘써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효율성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시간이라는 구조물의 지속 가능성을 생각해야 한다. 공학에 대한 접근법에서도 시장 효율성을 지니는 생산 리듬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자연의 재생 주기와 조화를 이루는 방법도 모색해야 한다. 생산성에서 생성력으로, 효율성에서 지속 가능성으로 초점을 바꾼다면 인류는 우리가 불가분의 일부를 구성하는 보다 큰 생물권 공동체의 조류와 리듬, 주기성과 다시 보조를 맞출 수 있다. 이것이 바로 3차 산업혁명이 지향하는 방향이다.

 

 

인간의 경제활동을 생물권의 리듬 및 주기성과 조화시키려는 시도는 자연으로부터 독립해서 거리를 두고 자연에 힘을 행사하려는 인간의 생물학적 성향과 충돌하기 때문에 그러한 시도는 헛되다고 주장하는 회의주의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시간생물학(chronobiology)에 대해 설명하면 필경 그런 의구심도 잦아들 것이다. 미생물에서 인간에 이르기까지 모든 형태의 생물은 무수히 많은 생체시계로 구성되어 있다. 이 생체시계들은 생물의 생리적 과정이 생물권 및 지구의 보다 커다란 주기와 조화를 이루도록 조절한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는 자신의 내적, 외적 기능을 태양일(일주기 리듬), 태음월(달의 주기), 지구가 태양을 도는 1년 주기(연주기 리듬), 계절의 변화에 맞춰 조절한다. 심리학자 존 옴은 이렇게 말한다. "물리적 우주는 기본적으로 주기를 따른다. 달은 지구의 둘레를 공전하고 지구는 태양 주위를 공전하며 태양계도 적절한 때에 공간적인 위치를 바꾼다. 이 모든 현상은 주기에 따른 규칙적인 변화를 가져오며 생물 종들의 생존은 이러한 주기 리듬을 잘 따라 가느냐 여부에 달려 있다.

 

 

인간도 다른 종과 마찬가지로 지구의 주기에 생물학적으로 반응한다는 사실은 시공간에 대한 우리의 관점을 바꾸어 놓는다. 인간이라는 존재도 지구의 시공간적 좌표 안에 긴밀하게 엮여 있다. 신체의 세포는 매순간 끊임없이 대체된다. 우리 몸은 일정한 활동 패턴을 보인다. 자연으로부터 저엔트로피 에너지가 몸속으로 들어와서 세포를 빠르게 보충해 놓고 빠르게 다시 환경으로 돌아가 재사용된다. 인간 개개인은 생물권 전체를 흐르는 에너지 흐름과 지구화학적, 생물학적 과정을 축약해서 보여주는 구조물이다. 태양계 내에서 생명체와 지구화학적 과정, 지구의 주기성은 정교하게 조정된 관계를 맺으면서 상호작용하며, 이로 인해 각각의 생물체와  생물권 전체가 제대로 기능할 수 있는 것이다. 

역사 대부분의 기간에 인류는 지구의 리듬에 맞춰서 살았다. 하지만 1차, 2차 산업혁명의 화석연료 에너지 때문에 인류는 처음으로 지구의 주기성과 동떨어진 삶을 살게 되었다. 날마다 24시간 내내 켜진 조명, 끊임없는 인터넷 사용, 비행기 여행, 교대제 근무를 비롯하여 오늘날 이뤄지는 수많은 활동 때문에 우리는 태고부터 지녀온 생체시계와 분리된 삶을 살고 있다. 우리의 생존에서 태양과 계절 변화가 차지하는 중요성이 크게 감소했다. 아니면 적어도 우리는 그렇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탄소 기반 연료라는 형태로 저장된 풍부한 비활성 에너지 저장고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우리는 인류의 번영을 좌우하는 것이 자연의 순환주기가 아니라 인간의 독창적 능력과 기술 발전이라고 믿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그것이 착각이라는 사실을 안다. 인위적인 생산리듬, 특히 기계를 동원한 효율성의 제도화는 수많은 사람에게 막대한 물질적 부를 가져다주었지만, 그 대가로 지구의 생태계가 위태로워졌고 지구 생물권의 안정성이 크게 위협받는 결과가 초래되었다. 3차 산업혁명은 다시 희망의 빛줄기를 보여 준다. 지구 생물권의 에너지 흐름(태양, 바람, 물순환, 바이오매스, 지열, 파도와 조수 등)에 의존하면 우리는 다시 지구의 리듬과 주기성에 연결될 수 있다. 그리고 생물권의 생태 시스템과 다시 조화롭게 어우러지고, 우리 개개인의 생태발자국이 다른 모든 인간과 지구상 모든 생명체의 안녕을 좌우한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GDP를 재고하고 경제적 번영의 측정 방식을 다시 생각해 보는 것, 생산성에 대한 관점을 수정하는 것, 엔트로피 부채를 인식하고 자연의 흐름에 맞도록 생산과 소비 균형을 맞추는 최적의 방법을 찾는 것, 소유관에 대한 개념을 재점검하는 것, 금융자본 대 사회적 자본의 중요성을 재평가하는 것, 시장 대 네트워크의 경제적 가치를 재측정하는 것,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개념을 바꾸는 것, 지구 생물권이 작동하는 방식을 다시 생각해 보는 것, 이러한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전통적인 경제 이론으로는 너무나 부족하다. ... 전통적인 경제 이론 가운데 여전히 가치를 지닌 통찰과 내용을 열역학의 렌즈를 통해 재고하고 수정할 가능성이 크다. 에너지 법칙을 일종의 공용어로 사용한다면 경제학자들도 공학자나 화학자, 생태학자, 생물학자, 건축가, 도시설계 전문가들(특히 이들이 종사하는 분야는 에너지 법칙에 기반을 둔다.)과 함께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실제로 경제활동을 만드는 것은 이런 분야이므로, 진지한 학제 간 토론이 이뤄진다면 경제 이론과 실제 경제활동이 새롭게 통합되고 아울러 3차 산업혁명 패러다임에 동반되는 새로운 경제 모델이 출현할 수 있다. 변화가 필요한 것은 경제학만이 아니다. 경제 이론과 마찬가지로 공교육 시스템도 근대 시장의 시대 초기에 도입된 이래 별로 바뀌지 않았다. 고전주의 및 신고전저의 경제 이론과 마찬가지로 공교육 시스템도 1차, 2차 산업혁명의 시녀 역할을 해 왔으며 1차, 2차 산업혁명 상업 질서의 가정, 정책, 관습 들을 그대로 반영해 왔다. 이제 중앙집권화한 2차 산업혁명에서 수평적인 3차 산업혁명의 시대로 옮겨 가면 교육 시스템도 새로운 단장이 필요하다. 교육을 지배하는 기본 틀과 거기에 맞춰져 있는 교수법을 재검토하는 작업은 물론 쉽지 않다. 전 세계의 많은 교사는 교육 방식을 개조하는 길에 이제 막 들어섰다. 생물권 세상에 속하는 분산적이고 협업적인 경제사회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하는 젊은 세대애 에 맞도록 교육을 변화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수렵채집 사회는 구전 문화를 토대로 했으며 '신화적 의식'에 젖어 있었다. 관계문명은 문자를 중심으로 조직화되었고 세계의 종교와 '신학적 의식'을 낳았다. 200년 전에는 인쇄 기술이 석탄과 증기기관 기반 1차 산업혁명의 수많은 활동을 조직하는 커뮤니케이션 매체로 역할하며 계몽주의 시대와 더불어 신학적 의식에서 '사상적 의식'으로 변혁을 이끌었다. 20세기에는 전기전자통신이 석유 경제 및 자동차에 기반을 둔 2차 산업혁명을 관리하는 지휘 통제 메커니즘이 되었다. 전기전자통신은 새로운 '심리학적 의식'을 낳았다. 이제는 분산형 정보통신기술이 분산형 재생 가능 에너지와 만나 3차 산업혁명에 필요한 인프라를 만드는 동시에 '생물권 의식'을 위한 길을 닦고 있다. 다양성을 지닌 모든 인류를 하나의 가족으로 바라보는 시대, 지구상의 모든 다른 종을 공동 생물권 안에서 서로 의존하며 살아가는 진화론적 의미의 대가족으로 바라보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점차 부각하는 우리의 생물권 의식은 진화생물학, 신경인지과학, 아동발달 연구 분야에서 나온 연구 결과와 부합한다. 이 새로운 연구 결과는 공감하는 성향이 인간에게 생물학적으로 내재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많은 계몽주의 철학자들이 믿었던 바와 달리 인간은 본성적으로 이성적이고 무심하고 욕심 많고 공격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존재가 아니며 자애롭고 사교적이고 협동과 상호 의존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호포 사피엔스(Homo sapiens)는 점차 물러가고 호모 엠파티쿠스(Homo empathicus)가 떠오르고 있다. 사회사학자들은 점점 더 개인화되고 다양성이 커져 가는 세상에서 사람들 사이에 친밀한 유대감을 형성하고, 또 그럼으로써 사회 전체를 결속하는 사회적 접착제가 바로 공감이라고 말한다. 공감 수준이 곧 문명화 수준이라는 것이다.

 

 

공감한다는 것은 살아 남아 번성하려고 애쓰는 다른 생명체의 존재를 긍정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들 생명의 본질적이고 고유한 가치를 마치 우리 자신의 것인 양 인식한다. 공감을 통해 우리는 동료 생명체들에 대한 연대감을 표현한다. 

 

 

교육에 대한 기존의 하향식 접근법에서는 경쟁적이고 자율적인 인간을 만들어 내는 것이 목표였다. 하지만 이제 그러한 접근법은 지식의 사회적 성격이 아이들에게 스며들도록 하는 분산적이고 협업적인 교육 경험에 자리를 내주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새로운 관점에서 볼 때 지식은 전 세대로부터 물려받는 유산이나 축적 가능한 자원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 분산 및 공유되는 경험이다. 교육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은 젊은 세대들이 인터넷의 오픈 소스 교육 공간이나 소셜 미디어 사이트에서 정보와 아이디어, 경험을 공유하고 학습하는 방식과 닮은꼴이다. 또한 분산적이고 협업적인 교육은 21세기 인재들이 분산과 협업을 특징으로 하는 3차 산업혁명 경제에 적응하도록 준비시킬 수 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분산적이고 협업적인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법을 배우면 스스로를 공감적 존재로, 점점 더 포괄적인 성격으로 변해가는 공동체 안에서 공유 관계들의 거미줄에 얽혀 있는 공감적 존재로 본다는 점이다. 그러한 공유 관계들은 결국 생물권 저체로 확장된다. 분산적이고 협업적인 관점은 학습이 언제나 본질적으로 사회적 경험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우리는 참여를 통해서 배우고 학습한다. 전통적인 교육에서는 학습이 사적인 경험이라는 관점을 장려했지만, 실제로 "사고 과정은 사람의 내면뿐만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서도 발생한다." 우리는 누구나 혼자서 숙고하는 시간을 갖지만 결국 생각의 내용은 타인과 공유한 과거의 경험과 어떤 식으로든 연결된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는 공유한 의미를 내면화하여 흡수한다. 새로운 교육 개혁가들은 가상공간에서든 현실에서든 벽을 허물고 보다 분산적이고 협업적인 학습 공동체 안에서 다양한 관계를 맺으라고 강조한다.

 

 

"아이들에게 비판적 사고, 창조적 탐구, 문제 해결, 지적 발달을 위한 기회를 자연계만큼 풍부하게 제공하는 영역은 거의 없다." - 스티븐 캘러트

자연은 경외감과 경이로움의 원천이다. 자연이 없다면 인간의 상상력도 존재할 수 없고, 상상력이 없으면 인간 의식도 퇴화할 수밖에 없다. 

 

 

'아이들의 세상은 신선하고 새롭고 아름다우며 경이로움과 흥분으로 가득 차 있다. .... 놀라움과 경이로움을, 인간 존재의 경계를 넘어서는 무언가에 대한 인식을 지켜 주고 키워주는 것은 어떤 가치를 지닐까? 자연계를 탐험하는 것은 단순히 어린 시절이라는 황금기를 즐겁게 보내는 방법일 뿐인가, 아니면 거기엔 보다 더 깊은 의미가 있는 것인가? 나는 거기에 분명히 더 깊은 의미가, 영구적 힘을 가지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확신한다. ... 지구의 아름다움을 마음속에 간직하는 것은 삶을 지속하는 한 사그라지지 않을 강인함을 비축하는 것과 같다.' - 레이첼 카슨. 

 

 

온갖 종류의 전자 매체를 통한 자극이 넘쳐나고 끊임없이 정보가 쏟아지는 세상에서 자란 요즘 청소년들은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연구 결과가 최근 속속 등장했다. 교실에서는 멀티태스킹과 주의력 분산이 일상화되었고, 곰곰이 생각하여 사고를 조리 있게 정리하고 집요하게 생각하여 결론을 이끌어 내는 능력을 아이들에게서 찾아보기가 점점 힘들다.

 

 

생물권 전체로 확장한 사고를 토대로 하는 공감적 경험, 분산적이며 협업적인 학습 과정을 채택하는 쪽으로 교육이 변화한다면, 우리는 역시 분산과 협업, 공감을 기반으로 돌아가는 3차 산업혁명 패러다임에 필요한 비판적 사고 능력과 의식을 아이들에게 키워 줄 수 있다.

 

 

3차 산업혁명은 대산업 시대 전설의 마지막 편이면서 동시에 다가오는 협업 시대의 첫 편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서 3차 산업혁명은 경제사의 두 시대, 근면한 행동 방식이 특징이던 시대와 협력적 행동 방식이 특징인 시대를 잇는 과도기를 의미한다. 산업 시대가 규율과 근면한 노동, 권위의 하향식 흐름, 금융자본의 중요성, 시장의 작용, 소유권 관계를 중시했다면 협업 시대는 창의적인 놀이와 피어투피어 상호작용, 사회적 자본, 개방형 공유체 참여, 글로벌 네트워크 접속 등을 보다 중시한다. 

 

 

일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바꾸는 것이 이번에는 어느 때보다 쉽지 않을 것이다. 농경이 기계적, 화학적 대용물로 인간 노동을 대체하기 시작했을 때 대체된 수백만 명의 인력은 도시로 이주해 공장의 숙련, 비숙련 노동자가 되었다. 그리고 다시 공장들이 자동 생산을 시작했을 때 수백만 명의 블루칼라 인력은 셔츠를 바꿔 입고 기술을 업그레이드해서 급성장하는 서비스산업에서 화이트칼라 노동력에 합류했다. 마찬가지로 서비스산업이 대량 노동을 지능형 기술로 교체하기 시작했을 때 그 인력은 의료사업과 복지사업, 엔터테인먼트, 여행 및 관광 등의 돌봄산업 및 체험 분야로 자리를 옮겼다. 하지만 오늘날 농경, 산업, 서비스, 돌봄 및 체험 등 네 분야 모두가 대량 임금노동을 소규모의 하이테크 노동력과 정교하고 신속한 스마트 기술 시스템으로 대체하고 있다. 그렇다면 세상이 3차 산업혁명의 인프라 단계를 지나 완전한 분산 및 협업 시대에 접어들면 수백만 명이나 되는 산업 시대의 대량 임금노동자들은 어떻게 되느냐 하는 의문이 생긴다. 어떻게 보면 이 경우의 일에 대한 개념 변화는 수백만 명의 농노들이 봉건제도의 고용 관계에서 해방되어 자유계약자가 되도록 강요받으며 시장경제에서 임금노동자가 되었던 시절의 대격변과 유사하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는 단순히 노동력을 어떻게 재교육하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일의 의미를 어떻게 재구상하느냐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일 할 수 있는 영역은 시장, 정부, 비공식 경제, 시민사회로 네 곳이다. 그러나 지능형 기술 시스템 도입으로 시장 부문의 고용은 계속 줄어들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정부도 조세 징수나 국방 서비스와 같은 다양한 분야에서 노동력을 줄이고 지능형 기술을 도입하고 있다. 비공식 경제는 가내 생산이나 물물교환, 극단적으로는 암시장이나 범죄적 경제활동 등을 포함하는데, 전통적 경제가 하이테크 사회로 이행함에 따라 비공식 경제도 줄어들 것이다. 결국 고용 수단으로 우리에게 남는 것은 시민사회뿐이다. 이 영역은 종종 '제3부문'으로 불리는데 이 표현에는 시장이나 정부보다 덜 중요하다는 생각이 담겨 있다. 이 부문의 단체들 또한 '비영리'나 '비정부기구'라는 과소평가된 용어로 불린다. .... 시민 사회는 인간이 사회적 자본을 만들어 내는 곳으로 종교 및 문화 단체, 교육, 연구, 의료, 사회복지, 스포츠, 환경 그룹, 오락 활동, 사회적 연대를 조성키 위한 목적의 지지 단체 등 다양한 범위의 이익 단체로 구성된다. 

 

 

지구상 곳곳의 똑똑한 젊은이들 상당수가 시장이나 정부의 전통적인 일자리를 회피하고 비영리 제3부문에서 일하는 것을 선호한다. 인터넷과 함께 자라고 분산 및 협업 소셜 공간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세대는 제3부문의 분산 및 협업 특성을 보다 매력적인 대안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가상공간의 힘줄을 구성하는 오픈 소스 공유체처럼 제3부문 역시 사람들이 자신의 재능을 공유하고 사회적 연결이라는 순전한 기쁨을 맛보며 함께 살아가는 공유체다. 또한 인터넷과 마찬가지로 시민사회의 핵심 전제도 더 큰 네트워크 공동체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다하는 것이 개별 구성원뿐만 아니라 전체 그룹의 가치를 최적화하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시장에서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대개 도구적이며 목적(각 개인의 물질적 사리를 최적화하는 것)을 위한 수단이다. 이와 달리 제3부문에서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그 자체로 목적이 된다. 그래서 단순한 실용적 가치보다 내재적인 가치로 충만하다.

 

 

19세기와 20세기의 산업혁명이 사람들을 농노 신분과 노예제도, 도제 노동에서 해방한 것과 마찬가지로 3차 산업혁명과 그로 인한 협업 시대는 인간을 기계화한 노동에서 해방하고 심오한 놀이(deep play)에 참여케 할 것이다. 사회성이란 결국 놀이의 문제다. 내가 '심오한 놀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하찮은 오락거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동료 인간과의 공감적 접촉 유지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심오한 놀이는 보편성을 추구하는 공동의 노력 과정에서 우리가 서로를 경험하는 방법이다. 또한 스스로를 초월해서 더 크고 포괄적인 생명 공동체에 연결하는 방식이다. 제3부문은 결국 우리가 우리 존재의 의미 탐구라는 인생 여정의 가장 중요한 부분에 아주 단순한 수준으로라도 참여할 수 있는 영역이다. 프리드리히 실러는 시장 시대의 여명기인 1795년에 작성한 논문 <인간의 미학 교육에 관한 고찰(On the Aesthetic Education of Man)>에 다음과 같이 썼다. "사람은 자신이 인간임을 완전히 느낄 때만 놀이를 한다. 그리고 사람은 놀이를 할 때만 온전히 인간이다."

 

 

19세기와 20세기에는 근면함이 사람의 표지였고 생산적인 노동자가 되는 것이 삶의 목표였다. 물질적인 부를 맹렬하게 추구하면서 수세대의 사람들이 기계로 변했다. "우리는 일하기 위해 살았다." 3차 산업혁명과 협업 시대는 인류를 실용적 세계에 갇힌 기계화된 삶에서 해방시키고 자유를 들이마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우리는 놀기 위해 산다." 프랑스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자유와 놀이 사이의 긴밀한 관계를 포착해 다음과 같이 썼다. "사람이 스스로 자유롭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자유를 사용하고 싶을 때.... 그의 활동은 놀이로 나타난다." 여기에 나는 덧붙이고 싶다. 사람이 놀이에 열중하고 있을 때보다 더 자유롭다고 느낄 때가 있는가?

 

 

향후 40년은 우리에게 소중한 시간이 될 것이다. 밀레니엄 세대와 그 자녀들은 산업 경제와 협업 경제 양쪽 모두에서 일하고 사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자녀들은 갈수록 더 많이 시민사회에 고용되어 사회적 자본을 창조할 것이다. 그러는 동안 상업 영역에서는 인간 노동의 많은 부분(물론 전부는 아닐 것이다.)을 지능형 기술로 대체할 것이다.

 

 

경제적 생존을 확보하기 위한 고되고 단조로운 일에서 인류를 자유롭게 한다는 전망은 오랜 세월 철학자들의 꿈이었다. 인간 영혼이 날아올라 존재의 의미와 거대한 세상 구조 속 자신의 위치를 찾을 수 있다면, 그 오래된 영적 탐구를 하면서 광활한 사회적 미개척지를 배회할 수 있다면, 지구상 모든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선물이 될 것이다. 너무나 오랫동안 우리는 지상의 한정된 시간 중 과도하게 많은 부분을 생존이라는 최소한의 안락을 꾸려가는 데 사용했다. 초월적 영역에서 심오한 놀이를 즐길 시간도, 삶을 반추할 여유도 거의 없었다. 

 

 

시민사회를 발전시키고 사회적 자본을 창조하는 데 우리의 시간과 관심을 더 많이 쏟을 수 있다는 가능성은 당연히 매혹적이므로 전 세계 선진국 곳곳에서 급속히 호응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인류의 40퍼센트가 하루에 2달러 이하를 벌고 있다는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것은 겨우 목숨을 부지할 정도의 돈이다. 이 비극적인 현실은 두 가지 요인으로 더욱 악화되고 있다. 하나는 기본 식량과 건축자재에서 교통비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의 가격이 무서울 정도로 변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른 하나는 더욱 섬뜩한 것으로, 2차 산업혁명이 긴 종반기에 들어서면서 기후변화가 세계 농경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3차 산업혁명은 적어도 1차, 2차 산업혁명에서 사실상 소외되었던 지구상 극빈국들도 다음 50년 동안에는 분산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시대로 도약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사실 나를 포함해 어느 누구도 우리 앞에 놓인 도전의 막대함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시장과 비공식 경제 부문에서 단순 노역과 고된 노동을 하고 있는 인류의 40퍼센트에게 그 고역의 족쇄에서 해방되는 데 필요한 물질적 안위 수준을 확보해 주는 것, 나아가 그들이 자유롭게 사회적 자본을 추구하면서 심오한 놀이에 참여할 수 있게 하는 것 또한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위압을 느낄 정도로 벅찬 과제다. 산업이 유발한 기후변화를 완화할 수 있도록 경제생활을 재조직해야 할 필요성까지 감안하면 더욱더 어려운 과제다. 하지만 역사상 처음으로 우리는 최소한 그 가능성을 상상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래서 나는 우리가 성공할지도 모른다는 조심스런 희망을 갖는다. 

 

 

역사에 등장한 모든 문명은 중요한 심판의 순간을 경험했다. 어떤 문명이든 새로운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 급격히 경로를 변경하거나 아니면 종말의 가능성을 맞이하도록 강요받았다는 얘기다. 일부는 제때에 스스로 변화할 수 있었지만 일부는 그렇지 못했다. 그러나 과거에는 문명의 붕괴가 시공간적으로 한정된 범위에서 일어났고 인류 전체에 영향을 미치지도 못했다. 지금 이 시점이 과거와 다른 까닭은 기후변화로 지구의 온도와 화학 구성의 질적 변화 가능성이 증대하고 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이는 동식물의 대멸종을 불러올 수도 있고 그와 더불어 실제로 우리 인류가 대규모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는 사안이다.

 

 

당면한 중대 과제는 인류의 공적 자본, 시장 자본, 특히 사회적 자본을 활용해서 3차 산업혁명 경제와 탄소 후 시대로 이행하는 것이다. 이런 규모의 변화를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생물권 의식으로 도양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우리 인류뿐만이 아니라 지구 위에서 진화를 겪으며 체류 중인 동료 여행자 모두를 확장된 글로벌 가족으로 생각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가 공유하는 생물권 공동체를 구하고 미래 세대를 위해 이행성을 쇄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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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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