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데 정말 소중한 것들은 좀처럼 그 존재와 가치를 인식하기 어렵다.

공기, 물, 그리고 시간!

 

 

[본문발췌]

 

 

꼬마 모모는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재주를 갖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 주는 재주였다.

진정으로 귀를 기울여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 줄 줄 아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모모는 어리석은 사람이 갑자기 아주 사려 깊은 생각을 할 수 있게끔 귀기울여 들을 줄 알았다. 상대방이 그런 생각을 하게끔 무슨 말이나 질문을 해서가 아니었다. 모모는 가만히 앉아서 따뜻한 관심을 갖고 온 마음으로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사람을 커다랗고 까만 눈으로 말끄러미 바라보았을 뿐이다. 그러면 그 사람은 자신도 깜짝 놀랄 만큼 지혜로운 생각을 떠올리는 것이었다.

모모는, 결정을 내리지 못하거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이 문득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게끔, 그렇게 귀기울여 들을 줄 알았다. 모모에게 말을 하다 보면 수줍음이 많은 사람도 어느덧 거침이 없는 대담한 사람이 되었다. 불행한 사람, 억눌린 사람은 마음이 밝아지고 희망을 갖게 되었다. 내 인생은 실패했고 아무 의미도 없다, 나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다, 마치 망가진 냄비처럼 언제라도 다른 사람으로 대치될 수 있는 그저 그런 수백만의 평범한 사람 가운데 한 사람에 불과하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모모를 찾아와 속마음을 털어 놓았다. 그러면 그 사람은 말을 하는 중에 벌써 어느새 자기가 근본적으로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나와 같은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사람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나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이 세상에서 소중한 존재. 이런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모모는 그렇게 귀기울여 들을 줄 알았다.

 

 

많은 일들을 해결하려면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그리고 모모가 얼마든지 가지고 있는 유일한 재산, 그것은 바로 시간이었다.

 

 

모모는 베포가 대답할 때까지 오랫동안 기다릴 수 있었고, 또 그의 말을 이해할 수도 있었다. 모모는 베포가 진실이 아닌 이야기를 하지 않기 위해서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베포는, 모든 불행은 의도적인, 혹은 의도하지 않은 수많은 거짓말, 그러니까 단지 급하게 서두르거나 철저하지 못해서 저지르게 되는 수많은 거짓말에서 생겨난다고 믿고 있었다.

 

 

때론 우리 앞에 아주 긴 도로가 있어. 너무 길어. 도저히 해 낼 수 없을 것 같아. 이런 생각이 들지.

그러면 서두르게 되지. 그리고 점점 더 빨리 서두르는 거야. 허리를 펴고 앞을 보면 조금도 줄어들지 않은 것 같지. 그러면 더욱 긴장되고 불안한 거야. 나중에는 숨이 탁탁 막혀서 더 이상 비질을 할 수가 없어. 앞에는 여전히 길이 아득하고 말이야.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거야.

한꺼번에 도로 전체를 생각해서는 안 돼, 알겠니? 다음에 딛게 될 걸음, 다음에 쉬게 될 호흡, 다음에 하게 될 비질만 생각해야 하는 거야. 계속해서 바로 다음 일만 생각해야 하는 거야. ... 그러면 일을 하는 게 즐겁지. 그게 중요한 거야. 그러면 일을 잘 해 낼 수 있어. 그래야 하는 거야. ... 한 걸음 한 걸 음 나가다 보면 어느새 그 긴 길을 다 쓸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지. 어떻게 그렇게 했는지는 모르겠고, 숨이 차지도 않아. ... 그게 중요한 거야.

 

 

시간을 재기 위해서 달력과 시계가 있지만, 그것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 사실 누구나 잘 알고 있듯이 한 시간은 한없이 계속되는 영겁과 같을 수도 있고, 한 순간의 찰나와 같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 한 시간 동안 우리가 무슨 일을 겪는가에 달려 있다. 시간은 삶이며, 삶은 우리 마음 속에 있는 것이니까. 

 

 

시간을 아끼는 사이에 실제로는 전혀 다른 것을 아끼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챈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아무도 자신의 삶이 점점 빈곤해지고, 획일화되고, 차가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 점을 절실하게 느끼는 것, 그것은 아이들 몫이었다. 사람들은 이제 아이들을 위해서도 시간을 낼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시간은 삶이며, 삶은 가슴 속에 깃들여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시간을 아끼면 아낄수록 가진 것이 점점 줄어들었다.

 

 

난 돈만 벌면 그많이잖아. 그래, 시대가 변하고 있어. 전에는 나도 달랐지. 남들에게 떳떳이 내놓을 수 있는 걸 지으면서 내 일에 대해 긍지를 느꼈어. 하지만 지금은..... 돈을 많이 벌면 미장일을 때려치우고 딴 일을 할 거야. - 미장이 니콜라

 

 

인생에서 중요한 건 딱 한 가지야. 뭔가를 이루고, 뭔가 중요한 인물이 되고, 뭔가를 손에 쥐는 거지. 남보다 더 많은 걸 이룬 사람, 더 중요한 인물이 된 사람, 더 많은 걸 가진 사람한테 다른 모든 것은 저절로 주어지는 거야. 이를테면 우정, 사랑, 명예 따위가 다 그렇지. - 회색 신사의 말

 

 

왜 얼굴이 잿빛이에요?

죽은 것으로 목숨을 이어 가기 때문이지. 너도 알다시피 그들은 인간의 일생을 먹고 살아 간단다. 허나 진짜 주인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시간은 말 그대로 죽은 시간이 되는 게야. 모든 사람은 저마다 자신의 시간을 갖고 있거든. 시간은 진짜 주인의 시간일때만 살아 있지. - 호라 박사

 

 

세 형제가 한 집에 살고 있어.

그들은 정말 다르게 생겼어.

그런데도 구별해서 보려고 하면,

하나는 다른 둘과 똑같아 보이는 거야.

첫째는 없어. 이제 집으로 돌아오는 참이야.

둘째도 없어. 벌써 집을 나갔지.

셋 가운데 막내, 셋째만 있어.

셋째가 없으면, 다른 두 형도 있을 수 없으니까.

하지만 문제가 되는 셋째는 정작

첫째가 둘째로 변해야만 있을 수 있어.

셋째를 보려고 하면,

다른 두 형 중의 하나를 보게 되기 때문이지!

말해 보렴. 세 형제는 하나일까?

아니면 둘일까? 아니면 아무도 없는 것일까?

꼬마야, 그들의 이름을 알아맞힐 수 있으면,

넌 세 명의 막강한 지배자 이름을 알아맞히는 셈이야.

그들은 함께 커다른 왕국을 다스린단다.

또 왕국 자체이기도 하지! 그 점에서 그들은 똑같아.

첫째는 미래, 둘째는 과거, 셋째는 현재... 셋이 함께 다스리는 커다란 왕국은 시간...

세 형제가 함께 사는 집은 세상....

 

 

자신의 시간을 가지고 무엇을 하느냐는 문제는 전적으로 스스로 결정해야 할 문제니까. 또 자기 시간을 지키는 것도 사람들 몫이지. 나는 사람들에게 시간을 나누어 줄 뿐이다. 

 

 

죽음이 뭐라는 걸 알게 되면, 사람들은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게다. 그리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아무도 사람들의 인생을 훔칠 수 없지. 

 

 

인생에서 가장 위험한 건 꿈이 이루어지는 거야. 적어도 나처럼 되면그렇지. 나는 더 이상 꿈꿀 게 없거든. 아마 너희들한테서도 다시는 꿈꾸는 걸 배울 수 없을 거야. 난 이 세상 모든 것에 신물이 났어. ... 지금 내가 아직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건 입을 다물고, 더 이상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고, 묵묵히 사는 것뿐일 거야. 아마 남은 여생 동안 그래야겠지. 아니면 적어도 사람들이다시 나를 잊어 버리고, 그래서 내가 다시 이름 없는 가난한 놈이 될 때까지는 그래야 할 거야. 하지만 꿈도 없이 가난하다는 것..... 아니, 모모, 그건 지옥이야. 그래서 나는 차라리 지금 그대로 머물고 있는 거야. 이것 역시 지옥이지만, 적어도 편안한 지옥이거든. - 기기의 말

 

 

차라리 음악을 듣지 않고, 색채들을 보지 않았으면 하고 바랐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막상 선택을 하라고 했다면, 이 세상 어떤 것을 준다고 해도 음악과 색채에 대한 기억과 바꾸진 않았으리라. 그 기억 때문에 목숨을 잃는다 해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모모는 깨닫게 되었다. 이 세상에는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없으면, 그것을 소유함으로써 파멸에 이르는 그런 보물이 있다는 사실을.

 

 

꼬마 모모와 베포 할아버지, ... 관광 안내원 기기(기롤라모), 파올로, 마시모, 프랑코, 꼬마 동생 데데를 데리고 다니는 소녀 마리아, 클라우디오를 비롯하여 옛날에 모모를 늘 찾아왔떤 아이들.... 음식점 주인 니노, 니노의 뚱뚱한 아내 릴리아나와 갓난아기, 미장이 니콜라.... 모모의 친구들.....

 

 

집을 나서면 좁고 지저분한 골목길이 보일 뿐이고, 조금만 더 나가면 차들이 쌩쌩 달리는 커다란 도로가 나오는 곳. 그리고 고층 건물들. 나는 그 앞에만 서면 개미보다 더 작은 하찮은 미물이 된 듯 주눅이 든다. 그 후 나의 삶은 전혀 딴판이 되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대학교, 직장 생활, 대학원, 결혼, 두 아이. 뭔가를 이루고, 뭔가 중요한 인물이 되고, 뭔가를 손에 쥐기 위해 이를 앙다물고 시간을 쪼개며 살다 보면 문득 행복했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왜 이렇게 시간이 빨리 흐르고, 왜 이렇게 항상 시간이 모자랄까? 왜 아직도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 느낌이 드는 걸까?

<모모>를 번역하며 나는 언제나 가슴 한구석에 아리게 자리잡고 있던 이 문제와 마주하는 행복을 맛보았다. "시간은 삶이며, 삶은 우리 마음 속에 깃들여 있다는 것이다." 사실 시간이란 달력과 시계로 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시간 동안 어떤 일을 겪었는가에 따라 다른 의미를 지닌다. 그러기에 시간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각각 다른 모습으로,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 막연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시간이란 소중한 비밀을 너무 소홀히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닐까? 목표를 이루고 나면 행복을 거머쥘 것 같지만 정말 그럴까? 모모와 친구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이 비밀을 알려 준다. 모모의 친구들은 회색 신사의 방문을 받은 후 돈을 벌기 위해, 혹은 뭔가 중요한 인물이 되기 위해 시간을 아끼면서 예전의 따스한 정을 잊고 점차 차갑고 삭막한 사람들이 되어 간다. 모모는 호라 박사와 꼭 반 시간 후의 일을 미리 알고 있는 신기한 거북 카시오페이아의 도움을 받아 시간을 훔치는 회색 신사들을 물리치고, 사람들은 예전처럼 한 순간 한 순간을 즐기는 행복한 삶을 살게 된다. 이 이야기는 이처럼 동화의 형식을 빌어 재미있게 전개되지만, 허황된 이야기가 아니라 시간을 아끼며 아등바등 살아가는 우리네 이야기이기도 하다. 회색 신사들, 그들은 바로 우리가 뭔가를 이루고, 뭔가 중요한 인물이 되고, 뭔가를 손에 쥐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하는 그 순간 우리 마음 속에 생겨나는 존재이다. 그들은 지금 이 순간 우리 마음 속에서 자라날 수도 있다. 그러니가 작가가 "짧은 뒷이야기"에서 말하고 있듯이 모모와 친구들의 이야기는 이미 일어난 일이기도 하지만,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어른은 물론 중-고등학생, 초등학생, 심지어는 유치원생까지 다른 사람보다 앞서 가는 뛰어난 사람이 되기 위해 꽉 짜인 시간표에 따라 바쁘게 일하고 공부하고 있다. 물론 열심히 일하고 공부해야겠지만, 그러는 동안 우리네 삶은 꿈과 따뜻함을 잃고 점점 삭막해져 가는 것은 아닐까? 내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는 무엇일까? 그리고 한 순간 한 순간의 과정을 즐기며 목표에 이르는 길은 어떤 것일까? <모모>는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다.

- 옮긴이 말 중.... (한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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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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