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 욕망을 위해 소비하는 삶보다 작고 적은 것 속에서도 행복을 찾으며 소박한 삶을 추구하는 사람이 많아지기를!
[본문발췌]
"역사상 전례 없는 인류의 자연 침범. 그리고 바이러스에게 역대 최고의 전성기를 제공하는 공장식 축산과 인구 밀집, 지구 온난화. 이 모든 것은 인간이 만들어냈다. 이를 반성하고 고치는 것이 생태백신이다. 그리고 코로나19 사태 앞에서 지금까지 삶의 자세를 성찰하고 자연과 공존하며, 기후 변화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행동백신이다. 생태백신과 행동백신 없이는 어떤 방역체계와 화학백신도 바이러스 팬데믹의 재발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없다." - 최채천
"현 사태는 주객이 전도된 경제체제의 모순을 폭로하고 있다. 무한 이윤 추구와 성장이라는 수단이 모든 국민을 잘 살게 하자는 목표, 즉 공공, 복지, 생명을 앞질러서는 안 된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시민권에 기반한 보편적 복지국가라는 것. 이 두 가지이다. 선진 자본주의 국가로 분류되면서도 국민의,료보험이 없는 비효율적 의료복지 시스템의 미국, 보수 정권과 극우파 등장에 따른 복지 축소와 재정 긴축으로 의료서비스가 부실화된 유럽 국가들의 코로나19 재앙이 그러한 모순을 여실히 보여준다." - 장하준
"생존율 높은 길을 선택하는 인간의 DNA는 코로나19 사태로 결국 언택트 문화를 본격화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4차 산업혁명이 가속 페달을 밟게 되는 이유다. 결과는 '포노 사피엔스' 문명으로의 전환이다. 온라인을 통한 초연결 사회에서 포노사피엔스는 영역과 경계 없이 만난다. 팬데믹쇼크에서도 살아남고, 그 안에서 더 넓은 관계를 형성하는 포노 사피엔스가 몰려올 것이다." - 최재붕
"현 세계를 떠받치던 체제, 즉 산업의 지구화, 생활의 도시화, 가치의 금융화, 환경의 시장화라는 네 개의 기둥이 무너져내리고 있다. 이제 어떤 변화를 선택할 것인가. 새로운 길은 선명하다. 시장근본주의의 극복, 포용적이고 효율적인 민주주의 구축, 약자에 대한 사회적 방역, 욕망에 대한 질서 부여, 인간 서식지 무한 확대의 방지, 도시적 공간집약화 해소가 그 이정표다. 그 길 위에서 포스트 코로나 문명을 만들어내야 한다. 인류가 붕괴하지 않으려면." - 홍기빈
"원트want에서 라이크like로 행복의 척도가 바뀐다. 코로나19 사태를 낳은 지금의 문명은 사회가 주입한 경쟁, 비교의 원트want를 기반으로 한다. 원트에는 만족감이 없고 무한 욕망만이 있을 뿐이다. 이런 원트를 정당화하고 제도화한 문명은 원트를 더 갖기 위해 찌르고 파괴했다. 인류는 사회가 심은 원트가 아닌 내가 정말 좋아하는 라이크like로, 새로운 행복의 척도를 향해 나아갈 것이다. 라이크는 만족감을 낳는다.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에 에너지를 쏟고, 더 적은 것으로 함께 공존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을 만든다." - 김경일
새삼 깨닫는다. 지식과 정보는 나날이 새롭지만 지헤는 변함이 없다. 몰라서 못 한 것이 아니라 아는데 안 한 것이다. 예기치 않게 찾아온 불청객 탓에 인류가 신음한다? 아니다. 이런 사태가 오리란 걸 우리는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막지 않았다. 오히려 재촉했고, 그래서 더 아프다.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런데 지금도 그렇게 살지 않는다. 왜일까? 어리석은 자들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과 인간이, 인간과 인간이 서로 도우며 공존하는 것을 싫어하는 자들. 혼자서만, 자기들끼리만 더 많은 것을 탐하는 자들. 지구의 아픔, 타인의 고통 위에 권력과 부의 철옹성을 쌓은 자들. 한 줌도 안 되는 어리석은 자들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나서야 한다. 한 사람 한 사람 제대로 살겠다고 다짐하자. 다짐한 사람끼리 손잡자. 어깨 걸고 뚜벅뚜벅 걸어가자. 평화, 민주, 복지, 생태, 공감의 절대 가치를 내걸고 인류적 실천에 나서자. 어리석은 이들이 더 이상 모두를 괴롭히지 못하도록 맞서 싸우자. 우리는 코로나 사피엔스다. - 정관용
경제 발전이라는 건 수단이고 목표는 복지, 안전, 건강인데 우리가 지난 몇십 년 동안 최소한 주객이 전도된 시스템을 살았습니다. 이번 기회에 그 가치를 재정립할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지금은 국민을 안전하게 지키고 건강을 유지하는 게 제일 중요합니다. 그리고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성장이라는 건 수단이잖아요. 모든 국민을 잘 살게 하는 게 결국 목표인데 말입니다.
"현대경제, 자본주의경제는 곧 쓰레기가 될 문건을 계속 생산해온 경제다.", 무한한 욕망을 충족시키라고 부추기면서 과잉 생산, 과잉 소비, 과잉 쓰레기를 만들어왔던 게 아닐까요. 생태 파괴도 그렇고요.
지금 경제가 어떤 막다른 골목에 와 있는 상황을 잘 활용해서 새로운 담론과 운동을 강하게 일으켜야 합니다. 무한한 경제 성장이 아닌 인간과 자연과 사회 모두가 좋은 삶. 이러한 방향으로 경제를 전환하자는 거지요.
인간은 발전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고, 인간의 역사는 발전해온 것이고, 앞으로도 발전은 지속될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당연시해온 발전 이데올로기인데요. 사실은 근대사회에서, 특히 68혁명 이후에는 발전 이데올로기가 당연하지 않거든요. 물적 발전, 물질주의적 발전이라는 성장지상주의가 대단히 위험할 수 있고 오래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지구 생태계 자체의 붕괴를 초래할 수 있다는 인식이 동시에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자본주의를 생산을 중단하는 순간 넘어지는 자전거에 비유합니다. 수요가 없어 불필요할 때도 계속 생산을 해야 한다는 거죠. 그런데 이 생산이라는 게 뭔가요? 모든 생산은 자연을 변형하거나 자연을 파괴하는 거잖아요. 끝없이 자연을 훼손한다는 거예요. 그럴 필요가 없을 때도 말이죠.
우리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봅니다. 첫 번째는 자본주의를 폐기하거나, 두 번째는 자본주의를 인간화하는 겁니다. 지금과 같은 형태로 자본주의가 작동한다면 저는 22세기는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자본주의의 인간화, 여기서 인간화라고 하는 것은 세 가지 측면이 있는데요. 첫째, 자본주의라는 게 인간을 소외시키거든요. 소외시킨다는 말은 사실은 인간 삶을 전도시킨다는 거죠. 자본주의에서는 사물이 인간을 지배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소외시킨다는 거고요. 둘째, 자본주의는 사회를 파괴합니다. 사회적 공동체를 파괴하고 일종의 정글로 만듭니다. 셋째, 말씀드린 대로 자본주의는 무한히 자연을 침탈하고 파괴합니다. 이 세 가지 요소를 인간과 자연이 화해하면서 살 수 있는 방식으로 인간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준비하기 위한 3가지
-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거대한 인식의 전환, 패러다임 전환 시대가 되어야 합니다. 한국사회를 지배해온 수월성meritocracy 사고는 이제 존엄성dignocracy 사고로 바뀌어야 합니다. 중요한 건 경쟁에서 승리하는 게 아니라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겁니다. 수월성 사고는 실력주의, 그러니까 능력을 평가의 기준으로 삼는 것이고요. 존엄성 사고는 말 그대로 모든 인간의 존엄성을 동등하게 보는 관점입니다.
- 한국이 코로나 대응에서 보여준 대응 모델을 사회개혁과 한반도 평화 문제에도 적극 적용해야 한다는 겁니다. 한국의 민주주의적 대응 모델은 중국의 전체주의적 대응 모델, 미국의 자유방임적 대응 모델, 일본의 관료주의적 대응 모델, 그 어느 것보다 더 효율적이고 인간적인 방식임을 확인했습니다. 이런 모델을 사회 개혁과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해 창조적으로 활용해야 합니다.
- 재난 자본주의의 위험을 경계해야 합니자. 자본주의는 언제나 사회적, 자연적 재난 상황을 자본 지배를 강화하는 절호의 기회로 활용해왔습니다. 최근 한국의 몇몇 재벌과 대기업이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보인 일련의 행태, 기획재정부 관료들이 보인 자본친화적 조치들은 재난 자본주의의 악폐가 재현될 가능성을 경고합니다. 분명 우리의 국민적 대응은 훌륭했고 의식도 높았습니다만, 이런 악폐에 대한 자각도 절대 놓쳐선 안 되는 거죠.
분노가 아니라 불안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우리의 감정은 정확하게 정의되어야 한다. 김경일 교수는 불안은 정확한 사실로 잠재울 수 있으며,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오직 투명한 공개시스템뿐이라 말한다. 인간은 무한 욕망을 추구하는 사이클에 갇혀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 이후, 행복의 척도는 바뀔 것이다. 적정한 기술이 최고의 기술보다 중요하듯, 적정한 행복이 무한한 욕망보다 우선시될 것이다. 사회적으로 강요된 원트가 아닌 진짜 좋아하는 것들을 알아가면서, 더 적은 것을 가지고 적정 기술로 공존하는, 그런 삶을 살 것이다. 이것은 이번 사태의 결과임과 동시에, 넥스트 코로나가 또다시 찾아왔을 때 인류가 함께 살아남기 위한 생존책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경쟁력보다 공존력이 더 강하다. 지난 수만 년, 수십만 년 인류 역사를 되짚어보면 경쟁에서 남을 이기려는 능력을 가진 자보다 공존하고 포용하면서 윈윈하는 역량을 가진 사람이나 문화가 오래 살아남았습니다. 그래서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개발하고 빼앗고, 착취하고 장악하려고 하는 강자중심주의나 패권이기주의에서 벗어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잘 공존해봐, 그런 과정에서 너희 인류들이 더 지혜롭고 효율적이고 스마트해질 거야. 그런 걸 그르쳐주는 거죠.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에도 나오죠. 인간은 기본적으로 동물처럼 반응하지만 그보다는 조금 더 이타적으로 행동해야 나의 이기심이 잘 충족될 수 있다는, 아주 차원 높은 문화를 만들어냈다.
사실과 진실은 어떻게 다른가. 사실은 '실제로 있었던 일이나 현재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제 있었떤 일을 사실대로 말했다'는 식의 표현을 쓰지요. 진실은 좀 다릅니다. 진실은 '거짓이 없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진실은 '감춘다' 혹은 '밝힌다'같이 보다 더 드러냄을 의미하는 동사적 표현과 결부시켜 사용합니다. 사실fact이란 건 눈앞에 보이는 그대로이기 때문에 정확한 면이 있는 겁니다. 진실은, 그러니까 truth는 진짜 원인을 얘기하는 겁니다. 심리학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불안은 사실을 알려달라는 감정이고, 분노는 진실을 말하라는 감정이다. 그런데 우리가 광장에 나갈 때는 어떤 상태일까요? 분노해서 나가죠. 광장에 나간 시민들은 진실을 말하라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그때 '아니야, 이거 별문제 없는 거야.'라고 사실관계만 얘기하면 분노가 사라지지 않죠. 심리학자들이 대표적인 예로 언급하는 것이 2008년 촛불시위를 촉발한 광우병 사태입니다.
코로나19는 불안이지 분노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지금 코로나 때문에 '분노'하는 게 아니라, 코로나 때문에 '불안'한 거잖아요. 그런데 불확실함은 사실을 보여줌으로써 충분히 해소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무한 욕망을 추구하느냐 하면요. 만족감이라는 기제가 뇌에서 거의 발달하지 않은 사람들이에요. 만족을 하면 멈춰야 하잖아요. 그러니까 인간을 멈추게 만드는 가장 안전한 장치가 만족감인 거죠.
정말로 좋아하지도 않는데 사회적으로 원하는 걸 계속 추구하다 보면 훨씬 더 많이 벌어야 합니다. 훨씬 더 많이 가지고 훨씬 더 많이 빼앗아야 합니다. 그런데 내가 진짜 좋아하는 걸 알아가면서 그에 대한 역량을 발전시켜가는 사회나 문화에서는 더 적은 걸 가지고도 공존하면서도 다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겠죠.
코로나19 사태 이전에 우리는 이것도 가져야지, 저것도 가져야지, 하면서 끝없는 만족감의 사이클을 돌았어요. 그러다 이번 사태로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된 사람들이 자기만의 라이크가 생긴 거예요.
남의 감탄을 받는 데 목매는 것, 인정 투쟁을 하는 게 정말 어려운 삶이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그 감탄의 주체를 상대방이 아닌, 타인이 아닌, 나로 바꿔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라이크란 무엇일까요? 내가 좋아하는 거, 진짜 내가 즐기는 그런 거죠. 나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느 것. 그러니까 꽃을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은 꽃의 색깔이 바뀌면 그걸 보면서 감탄을 하죠.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은 맛에 약간의 변화만 있어도 감탄을 하고요. 즉 나의 미학적 경험, 나의 감탄을 만들어내는 것들이 실제로 내 것인 셈입니다.
"모든 세대는 이전 세대보다 좀 더 복잡해지고, 다음 세대보다는 좀 더 단순하다. - 마이클 토마셀로
인정 투쟁에서 벗어나서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즐길 수 있는 예술적 경험, 미학적 경험뿐만 아니라 남에게도 도움이 되는 보람, 그것이 행복의 척도가 되어야 한다.
적정 기술이 인류에게 가장 행복한 기술이라는 말이 있죠. 적정한 삶과 적정한 기술, 적정한 행복감이 어디인지, 그 점근선을 찾아가는 계기를 우리가 이번에 만난 겁니다.
자원은 한정되어 있으니까요. 적정한 삶을 누릴 수 있는 문명과 국가, 개인만이 다른 문명 또는 다른 문화와 공존할 수 있겠죠. 공존력을 갖춰야 가장 안전한 개체가 되잖아요. 그러니까 욕망을 끝없이 추구하는 국가나 문화는 반드시 누군가에 의해서 크게 당하고, 역으로 침략받을 가능성이 커지기도 하고요. 그러니 우리를 잘 지킬 수 있는 최대한의 경쟁력이자 무기가 공존력이고 적정한 행복을 추구하는 마음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 사망자가 적은 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가 더 잘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 내부 동력에 관심을 기울이는 거죠. 다시 말해 다른 나라보다 무엇을 더 잘했다. 더 못했다 하는 개념이 아니라 우리만이 가진 힘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게 굉장히 중요한데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선진국이라는 개념에서 벗어나서 스스로 좋은 나라, 행복한 나라를 규정할 수 있는 거죠. 우리가 무엇을 잘했는지에 대한 논의는 필요하겠지만, 그보다는 우리 안의 힘을 먼저 파악하고 여기에 대한 토론이나 담론을 꺼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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