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뇌, 괴로워하고 번뇌하다.
결국 괴로운 생각으로 스스로를 가두는 것이다. 그것이 인간의 본질이고 인간의 조건이라고?
부처도 고뇌속에 고뇌를 떨쳐버림으로 깨우침을 얻었다고 하지 않는가. 고뇌를 벗어나야 자유로운데 고뇌가 인간의 본질이고 조건이라면 인간의 삶은 불행한 것이 아닌가?
[본문발췌]
모든 인간은 자기가 겪는 그 고뇌를 닮는 것이죠.
고통이란 그것이 죽음으로 끝나지 않을 때에만 의미가 있는 법이야. 그런데 대개 고통은 죽음으로 끝나거든.
그렇군요. 하지만 그것은 아마 남자들의 생각이겠죠. 나로서는, 말하자면 한 여자로서는 고통이란 - 좀 이상하지만 - 죽음보다는 삶을 생각하게 하거든요. 아마 여자는 애를 낳기 때문이지.
남의 소리는 귀로 듣고, 자기 소리는 목구멍으로 듣는다. 그렇다. 자기 생명도 목구멍으로 듣는 것이다. 그렇지만 남의 생명은? 우선 무엇보다도 인간에게는 고독이 있다. 고독은 무수한 인간들의 배후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마치 희망과 증오로 충만된 활량한 도시를 뒤덮고 있는 이 깊은 밤의 배후에 커다란 원시의 밤이 존재하듯이...
인간의 극도로 긴장된 모습은 어딘가 비인간적인 인상을 준다. 그건 우리들이 우리들의 약점을 통해서만 서로 쉽게 접촉한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 아닐까?
인간의 본질은 고뇌이고, 자기 자신의 숙명에 대한 인식이며, 거기서 모든 공포가 생긴다는 거야. 죽음의 공포까지도.
사람은 항상 자기 자신 속에서 공포를 발견하는 거야. 그것은 자기 마음속을 좀 깊숙이 살펴보면 알 수 있어. 다행히 사람은 행동할 수 있거든.
남의 자유를 인정한다는 것은 자기의 고뇌를 희생하며 남의 입장을 인정하는 일이야. 나는 그것을 경험으로 알았어.
노동자는 어디까지나 노동자입니다. 죽지 않는 한 말이지요 인간이 단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어떤 사상을 위해서 버린다는 것은 인류의 독특한 어리석음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인간이, 글쎄요. 어떻게 말하면 좋을까요? 인간으로서의 조건을 견디어낸다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겠지요.
인간이 이해타산을 초월하여 기꺼이 목숨을 내던지는 모든 사상은 이 조건의 바탕을 막연하나마 인간의 존엄 위에 놓고, 그 올바름을 증명하려 하고 있다. 이를테면 옛날의 노예에게는 그리스도교가, 시민에게는 국가가, 그리고 노동자 계급에게는 코뮤니즘이 그것이다.
아무튼 인간은 줄곧 중독되어 있을 필요가 있습니다. 이 나라에는 아편이 있습니다. 이슬람교의 나라에는 마약이 있고, 서양에는 여자가 있습니다. 서양 사람들의 경우는 아마도 연애가 인간의 조건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용되는 수단인지도 모르겠군요.
인간은 아마도 권력에 무관심한지도 모르지요. 권력이라는 생각이 인간을 매혹하는 것은, 말하자면 현실의 권력이 아니라 권력 덕분에 이것저것 즐거운 일을 할 수 있다는 환상 때문입니다. 왕좌의 권력은 다스리는 데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보통 인간에게는 다스린다는 욕망은 없어요. 그야말로 당신이 말씀하신 것처럼 다른 사람을 강제하고 싶어합니다. 인간 세계에서 인간 이상의 것이 되고 싶어하는 것이죠. 앞에서 말했듯이 인간의 조건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것입니다. 단지 권력을 갖는다는 것이 아니라, 전능해지려고 말입니다. 이 가공의 병은 - 권력에의 의지는 지적인 변명에 지나지 않습니다만 - 신이 되고자 하는 의지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신이 되기를 꿈꾸고 있으니까요.
신은 소유할 수 있지요. 하지만 정복하는 힘은 갖고 있지 않아요. 신의 이상은 자기 힘을 나중에 다시 찾을 수 있는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인간의 꿈은 자기의 인격을 잃지 않고 신이 되는 것입니다.
근대 자본주의는 권력에 의지라기보다도 조직에의 의지다.
그의 권력에의 의지는 결코 그 목적에 도달하는 일 없이 부단히 그 목적물을 새롭게 바꿔나가야만 살아 있었던 것이다.
문명을 구성하고 있는 가장 고뇌에 찬 요소 - 이를테면 노예에 있어서의 굴욕이나 현대 노동자에 있어서의 노동 따위 - 가 별안간 하나의 가치가 되었을 때, 즉 이 굴욕에서 벗어나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것에 구원을 기대하는 것이 문제가 될 때, 또 이 노동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서 생존 이유를 찾는 것이 문제가 될 때, 문명의 본질은 변한다. 여태껏 무덤으로 가득 찬 일종의 교회에 지나지 않았던 공장은 지난날의 대성당 같은 것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인간은 그곳에서 여러 신 대신 대지와 싸우고 있는 인간의 힘을 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다. 확실히 인간의 가치는 자기 힘으로 변화시킨 것에 의해서만 측정되는 것이다.
인간은 오랫동안 인생을 속일 수 있어. 하지만 결국에는 인생이 언제나 우리들을 본연의 모습으로 되돌려 주지. 모든 늙은이들이 그것을 증명해주고 있는 셈이야. 그렇지 않니? 많은 노후가 공허하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공허하다는 것이지. 사람들은 그것을 숨기고 있을 뿐이야. 하기야 그런 일도 별로 대단할 건 없지만. 인간은 현실이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해. 있는 것은 관조의 세계라는 것을 알아야 할 거야.
고뇌에 근거를 두지 않은 인간의 존엄이란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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