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고갱의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를 떠오르게 하는 이야기!
 
[본문발췌]
 
언젠가는 죽게 마련인 인간의 삶을 새삼 확인하면서도 이를 비관적으로 응시하거나 격앙된 슬픔의 감정을 토로하는 대신, 덧없는 인간의 존재를 무한한 애정으로 포용하려는 차분하고 절제된 시각을 획득하는 것이다. 웅대한 자연의 질서와 유구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보면 인간이란 극히 제한된 시간을 할애받은 초라한 존재에 불과하며, 그들이 영위하는 삶은 결국 고독하고 허무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는 필연적 인식...
 
진사시험 당일 뜻하지 않은 실수로 의외의 인생행로를 걷게 되는 조행덕...
저돌적이고 용맹한 성격의 소유자인 주왕례와의 만남으로 인해 서하의 한족 부대에 참가하게 되며, 그와의 인간적 교류는 문인으로서의 삶에 익숙했던 행덕의 가치관을 근저에서 변화시키는 한편, 마지막까지 그의 삶의 버팀목으로 작용한다.
위구르 왕족 여인과의 만남과 죽음을 통해 행덕은 인간의 운명적 요소에 대한 응시를 거쳐, 불교와 같은 종교가 지향하는 어떤 영원한 것에 대한 구도의 자세를 제시하고 있다.
 
'날이 갈수록 행덕에게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한없이 작고, 또한 그들의 인생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그러한 인간의 무력함과 생명의 무의미함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려는 종교가 흥미로웠다.'
 
'재물과 목숨, 권력은 한결같이 그것을 소유하는 자의 것이었으나, 경전은 달랐다. 경전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니었다. 불에 타지 않고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족했다. 아무도 경전을 빼앗아 갈 수 없으며, 그 누구의 소유물도 될 수 없었다. 타지 않고 지금 그 자리에 있어주는 것만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역사의 유구한 흐름에 비하면 인간의 삶의 영위는 너무나 작고 보잘것없다. 그러나 보편적이고 영원한 것을 인간이 노력을 통해 후대에 남기고 전달하려 할 때, 아무리 비정한 역사라 해도 이를 외면하지 않는 법이다.
 
나라가 바뀌고 시대가 변해도 소멸되지 않고 영원히 남는 것은 종교와 민족, 그리고 역사의 결연한 흐름 속에서 시대의 추이와 인간들의 삶을 묵묵히 응시해온 위대하고 유구한 자연이라는 엄연한 진리를 새삼 자각한 것은 아니었을까. 결국 <둔황>을 비롯한 그의 역사소설의 참된 가치는 항상 인간과 역사의 관계를 인식하고, 역사의 흐름에 좌우되는 인간의 운명을 묘사하면서도 단순히 역사 속의 인간을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역사 속을 유유히 흐르고 지탱하는 고독한 '시간'의 의미를 공간적으로 도려내어 응시하는 가운데, 고독과 허무, 방랑으로 채색된 인간의 삶과 죽음의 근원적 의미를 제시하는 점에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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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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