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에 대한 환상, 삶은 현실이다.
[본문발췌]
홀로서기 정신의 부족.
- 부모에게 의존하고, 학력에 의존하고, 직장에 의존하고, 사회에 의존하고, 국가에 의존하고, 가정에 의존하고, 술에 의존하고, 경제적 번영의 시대에 의존하면서 이럭저럭 수십년을 살아온 삶. 홀로 설 기회를 그때마다 잃고, 그저 공부나 일을 하면서 겪은 혹독함 정도를 인식하고 있을 뿐입니다. 사실 당신은 자신에게서, 세상으로부터 도피하고 또 도피해 온 것은 아닐까요.
- 한 사람의 성인이 몸으로 익혀 두지 않으면 안 될 조건을 그저 지식으로만 머릿속에 채워 둔 것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 '인생 2막'은 전반생에서 얻지 못한 홀로서기 정신을 되찾기 위한 시련의 장으로 준비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요. 또한 그래야만 되는 것이 아닐까요.
- 만약 당신이 능력을 남김없이 발휘하면서 살아왔다면, 그리고 홀로서기를 한 어른으로 60세를 맞이했다면, 이후의 인생 목적이나 삶의 보람 등을 마음에 명확하게 품고 있을 것입니다.
- 새장에서 풀려나 자유의 몸이 되었을 때, 생애에 걸쳐 추구하고 전력할 일이나 취미가 있어서 곧바로 그것들로 옮겨 갈 수 없다면 지금껏 헛되고 무의미하게 살아왔다고밖에 할 수 없습니다.
자연이 아름답다는 것은 뒤집어 말하면 생활 환경으로는 가혹하다는 의미입니다. 여행자가 아닌 도시에서 이주한 당신은 더는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처지에 있지 않습니다.
농민들이 오랜 시간 물 흐르듯이 척척 일을 해낼 수 있는 것은, 어릴 적부터 육체 노동으로 단련해 온 강인한 다리와 허리로 힘을 잘 배분해 전혀 무리를 하지 않는, 실로 효율적인 일머리를 몸에 익혔기 때문입니다. 좋아하는 야채를 길러 먹으려고 재미 삼아 괭이를 드는 수준이라면 괜찮습니다. 하지만 60세가 넘어 처음으로 농사일을 시작해 보겠다는 것은 너무나 위험한 발상입니다.
물론 농약을 쓰지 않는 유기농법 등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누구나 야채를 기를 수 있습니다. 당신이 처음에 각오했던 만큼 어렵지는 않습니다. 처음 수확한 야채를 식탁에 올렸을 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거의 느껴 본 적 없는 감동에 젖습니다. 농경민족으로서 본능이 깨어나 피가 꿈틀거리고 환희에 찰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감동과 마찬가지로 그것도 그리 오래가지는 않습니다. 농작물의 이모저모를 얼추 이해하게 된 단계에서 순식간에 빛이 바랩니다.
우선 너무 많이 거둔 야채가 고민거리가 됩니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수확해야 하는 일에 진절머리가 나고 말 것입니다. 소금에 절이고 된장찌개에 넣고 다른 것에 곁들여도 다 먹어 치울 수가 없습니다. 도시라면 가까운 이웃에게 나눠 줄 수라도 있을 텐데 주변이 죄다 농가이다 보니 아까워도 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먼 곳에 사는 친구나 아는 사람에게 떠넘겨 버리는 방법도 있습니다만 운송비가 장난이 아니어서 이것 또한 좌절됩니다.
이왕이면 여러 야채를 먹고 싶다는 생각에 다양한 품종을 소량으로 기르기로 마음먹습니다. 실제로 해 보면 너무 힘듭니다. 야채마다 성질이 달라 기르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물의 양이며 잘 맞는 흙이며 일조량 등이 모두 달라 한 밭에서 기를 수가 없습니다.
간신히 출하 단계에 이르더라도 수입으로 연결하려는 생각은 꿈에도 해서는 안 됩니다. 야채의 형태를 띠었을 뿐 맛, 크기, 양 등에서는 시장이 요구하는 수준에 한참 못 미칩니다.
농촌의 인구가 왜 그렇게 줄어드는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당신이 멋지게 생각하는 삶을 왜 젊은이들이 저버리고, 당신이 기피하는 도시로 떠나선 정년퇴직해서도 돌아오지 않을까요. 그것은 농사일이 고되고, 채산에는 맞지 않으며, 고령자의 체력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는 현실을 익히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완전히 초보자인 당신의 안이한 생각만으로 성공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지쳐 있을 때 결단하지 마라.
오랜 세월을 거쳐 축적해 온 그 귀한 지식과 경험과 기술과 인간관계를 몽땅 하수구에 버리고 마는 식의 삶은 순수함과는 분명 다릅니다.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합니다. 실로 아까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애석합니다.
시골로 거처를 옮겨 지치고 지친 심신을 충분히 쉬게 하고픈 마음은 압니다만 그런 피로야 반년쯤 쉬면 바로 사라집니다. 다시금 일하고픈 의욕이 솟구칩니다. 그때 당신이 아직 도시에 있다면 재기할 기회는 시골에 비해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도 가장 지쳐 있을 시기에 중대한 결단을 내리는 일은 피해야만 합니다.
설사 급하게 시골로 이주했다 치더라도, 의지와 지혜만 있다면 도시인다운 발상으로 새로운 일을 개척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시골로 왔다고 해서 당신이 그 전까지 가졌던 전부를 버리고 무리를 해서까지 모든 것을 시골 상황에 맞출 것은 아닙니다.
그런 점을 깨닫고, 퇴직 전에 하던 일을 혼자 그대로 꾸려 가는 직접적인 방식이 아니라 좀 더 간접적이고 유연한 아이디어로 시골에 적합한 작은 사업을 벌여 궤도에 올린 똑똑한 사람도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인생 2막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품격이란 어떠한 달콤함에도 어떠한 회초리에도 결코 굴하지 않고, 자신이 비록 틀렸더라도 권위나 권력에 아양을 떨지않는 의연함 그 자체입니다. 내 생각으로 판단하고, 혼자일지라도 행동할 때에는 행동한다는 독립된 한 인간에게만 적합한 말입니다.
시골 생활을 시작할 때 그 지역 주민들과 접촉하는 정도를 미리 정해 두는 일은 아주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 아주 중요한 문제에는 단호한 양자택일밖에 없습니다. 말하자면 긴밀히 할 것인지, 거부할 것인지 둘 중 하나만 있습니다. '적당히'와 같은 중간적이고 회색적인 답이 도시에서는 있을 수 있어도 시골에서는 있을 수 없습니다.
한 가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어울리지 않고 미움을 사는 편이 어울리고 나서 미움을 사는 편보다 원망이 훨씬 더 적다는 점입니다. 후자의 경우 일방적인 원한을 사고 말아 회복 불가능한 상태에 빠질 수 있습니다. 결국 그곳에서 생활할 수 없어 야반도주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처지로 내몰리기도 합니다.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지역 주민들에게 어떻게 해서라도 인정받고 싶어 적극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피하는 쪽이 좋습니다. 주민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라면 어떤 타협도 사양치 않겠다는 식의 비굴한 태도는, 양쪽이 대등해야 한다는 교제의 기본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인구가 극히 적은 지역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려고 할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은, 그곳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가 아니라 무엇을 하기 위해 그곳으로 가는지 처음부터 확실한 목표를 세우는 일입니다. 확실한 목표가 있느냐 없느냐가 시골 생활의 성패를 좌우할 것입니다.
유유자적하며 조용히 살고 싶다는 식의 추상적인 바람이어서는 안 됩니다. ... 하면 할수록 심오함이 느껴지고 정신을 차리고 나면 하루가 다 지나갔을 정도로 모든 것을 잊고 몰두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도시에서 이주애 온 사람들이라고 해서 모든 것을 안심하고 어울릴 수 있을까요. 대답은 당연히 '아니오'입니다.
시골로 온 무리에는 어딘가 수상쩍은, 사기꾼 비슷한 이가 섞여 있기 때문에 늘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시골에서 살 길을 찾지 않으면 안 되는 생계가 막막한 사람, 빚 갚기가 힘들어 도망쳐 온 사람, 도시에서 신용을 잃어 대접을 못 받게 된 사람, 감추고 싶은 과거가 있는 사람 등 아주 다양합니다.
특히 젊은 사람들에게는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자연이 너무 좋아서. 자연 속에서 사람답게 살고 싶어서. .... 지방의 토착 문화나 예술을 세계로 알리고 싶어서. ...
질문한 것도 아닌데 상대편에게 이런 이유를 늘어놓는다면 일단 그 사람은 상대하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그들은 그 지역에서 뚜렷한 직업도 없이 말만으로 세상살이를 하려는, 그런 주제에 대의명분만은 찾고자 하는 교활한 철면피들입니다.
또한 마을을 일으키고 면을 부흥시키기 위해 지역 사회끼리 활발히 교류해야 한다고 거의 반강제적으로 부추기는 이들도 조심해야 합니다. 이들은 이대로 두면 마을과 면이 소멸해 버린다고 위기감을 조장하며 광고 이미지 비슷한 꿈같은 제안을 합니다. 그러다 예산이 내려오거나 후원자가 생긴 시점에서 활동의 주도권을 잡아 쥐고는 너무나 그럴싸하게 행동하면서 반은 놀면서 먹고살아 가려고 합니다.
맑디맑은 공기와 물 그리고 신선한 먹을거리에 둘러싸인 대자연 속에서 도시 생활에서 완전히 망가져 버린 건강을 되찾을 거야 하는 이기적은 바람을 간절히 품고 이주하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분명 도시를 뒤덮고 있는 공기는 너무나 좋지 않고, 수돗물은 끓이더라도 마시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마셔야 하는 것입니다. 쉴 새 없이 들리는 소음과, 눈이 핑핑 돌아갈 정도의 잦은 변화와 이로 인한 스트레스가 병에 걸리는 한 원인임은 전문가들도 모두 인정하는 바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시골로 거처를 옮김으로써 곧바로 건강을 되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분명히 잘못입니다. 애써 환경을 바꾸더라도 생활 자체를 바꾸지 않고서는 맑은 물도 공기도 고요함도 그저 잠시 위안을 주는 정도의 조건에 지나지 않습니다. 요컨대 술과 담배, 폭음과 폭식, 밤샘 등을 완전히 그만두지 않는 한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담배와 비교하면 자도차 배기가스는 이렇다 할 독성을 가진 것이 아닙니다. 또한 매일 안 마시면 배기지 못하는 술을 끊지 않고서는 당신 몸은 나이보다 더 빨리 늙어 가고 말 것입니다. 원흉은 담배와 술에 있습니다. 그리고 좋아하는 것을 실컷 먹는다는, 동물적인 식사 태도도 큰 문제입니다.
자연에서 배우지 않으면 안 될 것은 무엇보다 스스로를 다스리는 일입니다. 그리고 홀로서기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몸에 나쁜 것을 그만두지 못하는 야생동물은 곧 죽음을 통해 사라질 운명에 있습니다. 다른 것들에 의지하려 하거나 주의를 게을리하자마자 소리도 없이 슬며시 몸이 파멸되기 시작합니다.
사회적 지위를 만족시켰는지 아닌지로 승리자와 패배자를 가르는 것은 큰 잘못입니다. 진정한 패배자란 자신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거나 다스릴 방향을 잡지 못한 사람을 이를 때 써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적이라는 표현은 어디까지나 지성과 이성에 부합하게 사는 것을 의미하지 결코 그 반대는 아닙니다. 동물로 태어나 동물인 채로 일생을 보낸 인간이야말로 진짜 패배자입니다.
은퇴 전에 당신은 꿈꾸던 인생 2막에 대해 열심히 늘어놓았습니다. 우선 오붓하게 해외여행을 가자로 시작해서, 같은 취미 생활을 하고....
하지만 은퇴하자마자 당신은 마치 혼이 나가 버린 것처럼 집에만 틀어박혀 생각하는 일도 움직이는 일도 하지 않습니다. 먹고 마시고 자기만 하는,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의 중간 같은 성가신 존재로 변해 배우자를 하루 종일 압박합니다.
도대체 어떻게 되어 버린 것일까요.
일 자체나 대인관계에서 오는 긴장을 느낄 필요가 없어지고 시간에 구속당하지 않게 되어 마음이 완전히 풀어졌기 때문일까요. 분명히 그런 면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진정한 원인은 아닙니다.
그것은 당신이 홀로서기를 한 성인 남성이 되지 못했고 되려고도 하지 않았으며 어린애의 혼을 가진 채 60년을 지내 왔기 때문입니다. 명령을 받아야만 움직이고 자신의 의지로는 움직일 수 없는 목각 인형, 타율적인 빈껍데기 인생밖에 살아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당신은 다시금 어린애 시절로 돌아가고 만 것입니다. 어른아이로.
겉만 보고 시골살이의 결단을 내린다. 그때 당신들의 눈길은 바로, 낯선 땅에서 좋은 부분에만 마음을 빼앗기며 지나가는 여행자의 시선이었습니다. 하지만 여행하는 사람과 정착해서 사는 사람의 입장은 크게 다릅니다. 요컨대 당신들은 인생에서 최대이자 최악의 충동구매를 하고 만 것입니다. 실패했을 때의 후회가 흔한 후회의 범위를 넘어서는 너무나 어리석은 짓을 한 것입니다.
당신의 시골 생활의 정점은 땅을 사고, 집을 짓고, 그 지역으로 이주했을 때입니다. 신축 기념, 이사 기념, 새 출발 기념을 하려고 도시에서 사귄 친구들을 초대해 마당에서 바비큐 파티를 연 날이 행복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당신들이 친구나 지인들의 시선을 행복의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이나 가까운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것을 보면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고 확신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빠르면 수개월, 늦어도 몇 년 후에는 권태감과 고독감과 좌절감에 휩싸이는 처지가 될 것입니다. 낮에는 그다지도 눈부시던 광경이 해가 지기 무섭게 깊이를 알 수 없는 암흑에 휩싸이고 맙니다. 어둠의 깊이에는 시간이 흘러도 익숙해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들짐승에게 잡아먹히는 약한 동물로서의 방어 본능이 밤마다 살아나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시달립니다.
어느 사이에 도시 친구들도 들르지 않게 되고, 지역 주민들과 삶의 방식이 달라 지칠 대로 지쳐 갑니다. 자연에서 받는 감동은 점점 줄어들고, 자연이 주는 위협에 겁을 먹게 됩니다. 자연은 결코 이미지가 아니라, 삶과 죽음이라는 절실한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하는 현실 그 자체라는 당연한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시골에서는 내 일은 내 힘으로 한다는 강한 마음가짐과 체력이 필요합니다. 이주하고 나서 도시의 편리함과 비교하며 불평을 해 본들 소용이 없습니다. 어떤 것이든 스스로 해내는 것을 즐거워하지 않으면 굳이 불편한 곳에서 살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불편함이, 너무 편리한 도시 생활로 흐늘흐늘해진 당신 심신을 단련시켜 줍니다.
불편함이, 당신 뇌를 계속 지배해 온 싸구려 이미지를 말끔히 제거하고 가혹한 현실과 대치하는 묘미를 알게 해 줍니다.
불편함이, 당신 정신을 본래로 돌려줍니다.
불편함이, 당신 모습을 본래로 돌려줍니다.
이렇게 발상을 전환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시골 생활을 단념하는 편이 좋습니다. 아무리 오기로 버텨 보려 한들 소용이 없습니다.
진정한 빛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만 빛납니다.
진정한 감동은 현실의 고단함 속에서만 만날 수 있습니다.
어디에서 살고자 하든 한결같이 진지하게 살고, 바깥 세계와(현실과) 대치할 각오를 해야 합니다.
귀촌에 앞서 알아 두어야 할 것들
- 어딜 가든 삶은 따라온다
- 풍경이 아름답다는 건 환경이 열악하다는 뜻이다
- 농부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 구급차 기다리다 숨 끊어진다
- 고독은 시골에도 따라온다
- 고요해서 더 시끄럽다
- 돌잔치에 빠지면 찍힌다
- 친해지지 말고 그냥 욕먹어라
- 엎질러진 시골 생활은 되돌릴 수 없다
- 시골에 간다고 곤강해지는 건 아니다
- 불편함이 치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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