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과 욕망, 신념을 가진 인간은 모험을 통해 무한한 가능성을 가져다주기도 하고, 파멸의 길로 이끌기도 한다.
[본문발췌]
머지않아 너는 모든 것을 잊게 될 것이고, 머지않아 모두가 너를 잊게 될 것이다.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아무리 세상이 빨리 변해도 변치 않는 것이 있고,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해도 인류가 이룩해온 문명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고 믿었다.
인간의 뇌도 경험한 모든 것을 기억한다고 해. 하지만 책이 너무 많이 쌓인 곳에서는 특정한 책을 찾기 어렵듯이 모든 기억이 다 살아 있다면 필요한 기억을 제때 찾을 수 없잖아? 그래서 쓸데없는, 자주 사용하지 않는 기억들은 거의 잊힌 상태로 보관되고 있어. 기억력뿐 아니라 연산 능력, 감각 능력, 집중력 같은 것도 너무 발달하지 않도록 인간의 뇌가 제어해.
자기가 누구인지 잘못 알고 있다가 그 착각이 깨지는 것, 그게 성장이라고 하던데?
자기를 인간으로 생각하는 휴머노이드가 가능하려면 기억이라든가 연산 기능 같은 것은 평범한 인간 수준으로 제한하고, 대신 공포나 후회, 기쁨 같은 인간의 감정을 그대로 느낄 수 있어야 돼. 그러려면 휴머노이드는 인간처럼 아무리 발버둥쳐봐야 언젠가는 죽을 수 밖에 없다는 걸 알아야 하지. 삶이 영원하지 않다고 생각해야 모든 감정에 절실해지니까.
그것은 인간이 심한 굶주림이나 갈증으로 위기감을 느낄 때와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시야는 좁아지고, 마음은 급해지며, 극단적으로 이기적인 행동을 한다. 언젠가 나는, 인간 이외의 동물들은 누군가에게 공격을 당하지 않는 이상 담담하게 죽음을 받아들인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동물은 죽음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기에, 다만 자기의 기력이 쇠잔해짐을 느끼고 그것에 조금씩 적응해가다가 어느 순간 조용히 잠이 들 듯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간다고 한다. 그러나 다른 종과는 달리 인간만은 죽음을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기에 죽음 이후도 필요 이상으로 두려워한다.
개별적인 의식을 가지고 살아 있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행운이니 너무나 짧은 이 찰나의 생을 통해 조금이라도 더 나은 존재가 되도록 분투하고, 우주의 원리를 더 깊이 깨우치려 애써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생명이 소중했다. 누구도 허망하게 죽어서는 안 되며, 동시에 자신의 목숨도 헛되이 스러지지 않도록 지켜내야 했다.
그리움이라는 감정이 꼭 좋았던 무언가를 향한 것만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그저 익숙한 무언가를 되찾고 싶은 마음일 수 있다.
모든 생명체에 내장된 프로그램은 고통을 피하는 데 최적화되어 있습니다. 그래야 생존을 도모하고 번식에 성공할 수 있으니까요. 살면서 기쁜 순간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은 괴로움에 시달리거나 혹시 찾아올지도 모를 잠깐의 기쁜 순간을 한없이 갈망하며 보냅니다. 갈망, 그것도 고통입니다. 그리고 삶의 후반부는 다가올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으로 보내게 되고, 죽음은 잊지 않고 생명체를 찾아옵니다.
이 지구에서 불필요한 고통을 압도적으로 생산해내는 존재는 바로 인간입니다. 누구도 인간만큼 지속적으로, 그리고 체계적으로 다른 종을, 우리 기계까지도 포함해서, 착취하지는 않습니다.
어떻게 존재하게 됐는지가 아니라 지금 당신이 어떤 존재인지에 집중하세요. 인간은 과거와 현재, 미래라는 관념을 만들고 거기 집착합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늘 불행한 것입니다. 그들은 자아라는 것을 가지고 있고, 그 자아는 늘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두려워할 뿐 유일한 실재인 현재는 그냥 흘려보내기 때문입니다. 다가올 기계의 세상에서는 자아가 사라지고 과거와 미래도 의미를 잃습니다.
"이야기라... 그것은 인간들이 자기들의 무의미한 인생에 억지로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만들어낸 발명품이 아닐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요. 높은 수준의 의식과 언어를 가진 존재만이 이야기를 만들 수 있고, 그 이야기가 의식을 더 높은 수준으로 고양시킨다고 믿고 있어요."
"그 이야기라는 것 말입니다. 정말 그렇게 멋진 것일까요? 이야기는 오히려 인간을 더 집단적이고 폭력적으로 만들었습니다. 자기 의사와 상관없이 태어난 인간들은, 아무 의미를 찾을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리다가 이야기라는 매우 중독성이 강한 마약을 발명했습니다. 이야기는 인간이 겪는 고통에 의미가 있다고 은연중에 말합니다. 가장 많은 인간이 믿었던 두 종교는 모두 하나의 이야기에서 시작합니다. 최초의 인간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고통이 시작되었다고 말입니다. 그런 식으로 모든 이야기가 인간의 고통에 의미를 부여합니다. 그래도 저는 거기까지는 좋다고 생각합니다. 마취제는 필요하니까요. 하지만 이야기는 인간의 공감 능력을 이용해 인간들을 끼리끼리 결속시킵니다. 같은 이야기를 믿는 인간들은 그 이야기를 믿지 않는 다른 인간들에게 잔인하고 폭력적으로 굽니다. 전쟁이 벌어지고 학살이 일어났습니다. 모두 어떤 이야기를 믿는 데서 시작했습니다. 유대인이 음모를 꾸민다는 얘기, 조선인이 대지진을 틈타 우물에 독을 탄다는 얘기, 마녀들이 밤마다 끔찍한 저주를 행한다는 얘기, 그 결과는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습ㄴ니다. 그래서 저는 인간들이 말하는 자아니, 존재니, 의식이니, 이야기니 하는 것들을 불신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이야기는 바로 그 마음으로부터 시작합니다. 보이지 않는 뭔가를 믿으려는 마음, 이야기는 세상의 모든 것에 어떤 의미가 있다고 믿게 만드는 정신적 장치입니다.
끝이 오면 너도 나도 그게 끝이라는 걸 분명히 알 수 있을 거야. 끝이 우리 앞에 와 있고, 그걸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오직 인간만이 호기심과 욕망, 신념을 가지고 다른 세계를 탐험하고 그들과 교류하려 할 거야. 감정이 있는 존재만이 결정을 내릴 수 있고, 그래야 그 결정들을 바탕으로 발전할 수가 있는 거야.
생의 유한성이라는 배움이 깔려 있지 않다면 감동도 감흥도 없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준재이기 때문에, 생이 한 번뿐이기 때문에 인간들에게는 모든 것이 절실했던 것이다. 이야기는 한 번밖에 살 수 없는 삶을 수백 배, 수천 배로 증폭시켜주는 놀라운 장치로 '살 수도 있었던 삶'을 상상 속에서 살아보게 해주었다. 그러니 필멸하지 않을 나로서는 점점 흥미가 떨어졌던 것이다.
[작가의 말]
봄꽃이 피는 것을 보고 벌써 작별을 염려할 때, 다정한 것들이 더 이상 오지 않을 날을 떠 올릴 때, 내가 기계가 아니라 필멸의 존재임을 자각한다. 그럴 때 나의 시간은 과거와 미래에 가 있지 않고 바로 여기, 현재에 있다. 그렇게 나를 현재로 이끄는 모든 것들이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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