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고갱의 <우리는 어디서 왔고, 우리는 무엇이며,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은 삶의 철학적 질문을 그림으로 담아내듯이, 니체를 읽으며 다음과 같은 질문에 스스로 답을 찾아 간다.
-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 내가 가진 모든 것이 나를 행복하게 해 주는가?
- 나는 내 삶을 제대로 누려 본 적이 한 번이라도 있는가?
- 나는 과연 내 인생의 주인인가 아니면 노예인가?
- 나는 어떻게 이 삶을 사랑할 것인가?
[본문발췌]
행복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달려 있다. 행복이나 불행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며, 현재 가진 것에 얼마나 만족하며 감사하는가에 달려 있다.
익숙한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경험할 때 비로소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낯선 세계로 나아갈 때 내가 누구인지, 내가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내면의 목소리에 집중할 수 있다. 그래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한다. “나를 버리고 그대들 자신을 찾도록 하라. 그리하여 그대들 모두가 나를 부정하게 된다면 그때 내가 다시 그대들에게 돌아오리라.”
오랫동안 나를 지탱해 왔던 것들이 흔들릴 때 진정한 나로 살아가겠다고 선언해야 한다.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현실적인 조건과 상황 때문에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렇게 사람들 대부분은 익숙한 삶에서 벗어나는 것을 어려워한다. 또한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볼 때면 한편으로 현실에 안주하고 싶다는 저항감이 들기도 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용기는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직면하고 행동할 수 있는 마음이다. 삶을 힘들게 하는 것들을 쉽게 외면하지 마라. 그럴 때일수록 새로운 일을 시도하라. 판에 박힌 낡은 삶을 새로운 것으로 채워보라. 진정으로 변화하고 싶다면 지금까지 나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내려놓아야 한다. 때로는 목숨보다 더 사랑했고 나의 모든 것을 걸었다고 맹세했던 것까지도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
권태기는 위기가 아니라 전환기이다. 자기 삶의 진정한 목표를 향해 나아갈 동력을 얻는 때이다.
자신을 극복한다는 것은 진정으로 나답게 사는 것이다. 나답게 살려면 먼저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스스로를 사랑하려면 먼저 자기 자신을 존중해야 한다.
자신을 타인과 비교하지 말고 타인을 부러워하지도 말자. 내 몸도 나의 것이고, 내 영혼도 나의 것이다. 자신을 소중한 사람이라고 여길 때 비로소 인생이 온전히 나의 것이 된다. 어떻게 인생을 살 것인지를 스스로 결정해야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다.
자기 자신을 하나의 프레임에 가두지 말고 다양한 모습의 나를 인정하는 것이 진정으로 나다워지는 길이다.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을 배우고 익히는 것이 인생의 중반기를 의미 있게 보내는 방법이다.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지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평가해 보라. 힘에의 의지는 현재의 삶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삶에 맞추어 스스로 자기의 존재에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 그 자체이다.
나는 사물에 있어 필연적인 것을 아름다운 것으로 보는 법을 더 배우고자 한다. 그렇게 하여 사물을 아름답게 만드는 사람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네 운명을 사랑하라. 이것이 지금부터 나의 사랑이 될 것이다! 나는 추한 것과 전쟁을 벌이지 않으련다. 나는 비난하지 않으련다. 나는 비난하는 자도 비난하지 않으련다. 눈길을 돌리는 것이 나의 유일한 부정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나는 언젠가 긍정하는 자가 될 것이다! - <즐거운 학문>
삶을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게 만드는 것은 바로 감사의 힘이다.
세상에 이미 결정된 일은 없듯이 이미 정해진 나의 모습도 없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나의 모습이 변해 갈 뿐이다. 운명의 여신은 항상 자신의 바람직한 모습을 적극적으로 꿈꾸는 사람에게 더 많은 선택권을 선사한다.
우리 삶에서 지금 이 순간은 단 한 번밖에 없다. 삶은 순간순간의 조각들이 모인 결과물이다. 니체는 "모든 순간에 존재는 시작한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이 순간을 산단.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순간을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에 커다란 상처를 받은 사람은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해 과거에 사로잡혀 살 수밖에 없다. 또한 커다란 야망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도 미래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으로 이 순간을 제대로 살지 못한다. 과거와 미래를 위해 현재 이 순간을 헛되이 보내는 사람이 많다. 매 순간을 충실히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는다면 삶을 과거로 되돌릴 수는 없지만 바꿀 수는 있다. 다시 말해 나의 운명이 달라질 수 있다. 진정으로 운명을 바꾸고 싶다면 현재 이 순간에 집중하고 충실해야 한다. 당신이 바로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할 때 운명은 진정으로 살아 움직이게 된다.
창조력은 익숙한 과거를 잊고 낯선 곳으로 자기 자신을 던질 때 비로소 발견된다.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신의 영혼을 강력하게 끌어당길 만큼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러니 무엇을 해야 행복할 수 있는지조차 모를 수밖에 없다.
니체는 사태를 바라보는 하나의 눈, 즉 어떤 방향으로든 전혀 치우쳐서는 안 되는 하나의 눈을 가질 것을 요구하는 경우는 경계하라고 한다. 하나의 눈으로만 본다면 사태를 능동적으로 해석하는 힘이 억압되고 결여되기 때문이다. 편견, 선입견,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한 사태를 좀 더 다양한 눈으로 바라보아야만 한다. 대상을 한 가지 각도로만 바라보지 말고 약간의 거리를 두어야 한다. 한쪽으로만 치우쳐 생각하는 편견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다양한 관점으로 생각해 보는 것이다. 세상은 우리가 보는 대로 보이는 법이다.
우리는 명사형의 세계에 갇혀 산다. 명사형의 세계는 고정되어 있고, 안정적이며, 예측과 통제가 가능하다. 명사형의 삶은 성공, 명예, 돈, 사랑, 권력 등 물질적인 것을 소유하는 데 관심이 있는 삶이다. 반면에 동사형의 삶이란 자신이 직접 경험하고 행동을 하는 삶을 말한다. 모든 존재가 생성, 변화, 소멸하므로 고정되어 있지 않다. 니체는 우리 가운데 누가 자신의 삶 자체, 자신의 경험에 관해서 진지하게 관심을 둔 적이 있느냐고 반문한다. 즉 니체 철학은 인간이 지금까지 명사형의 삶을 살아왔을 뿐 동사형의 삶에는 관심이 없다고 지적한다.
우리는 돈이나 명예 같은 것들을 한순간에 실수로 잃어버릴 수 있다. 그럼에도 불안정하고 불안하며 예측하기 힘든 동사형의 삶은 회피하려 한다. 명사형의 세계에 익숙한 나머지 동사형의 세계로 이행을 두려워하며 저항한다. 하지만 변화무쌍한 동사형의 세계에서 경험을 통해 쌓은 지혜는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다. 명사형이 아닌 동사형의 삶을 추구할 때 비로소 "우리는 진정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다. 마음을 다해서 하고 싶은 것을 하라. 누구나 자신의 인생에서 늦은 때란 없다.
우리는 일단 시도해야 하고 그 길 위에서 발생한 문제에 대한 물음, 그리고 물음에 대답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삶에서 최악의 상황은 아무런 시도도 하지 않는 것이다. 시도하는 사람은 언젠가 자신의 질문에 대답을 얻게 될 것이다. 변화를 원한다면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열린 마음으로 스스로에게 질문하라. 꿈꾸는 자만이 삶을 변화할 수 있다.
서두른다고 모든 일이 잘 풀리는 것은 아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하려고 '빨리빨리' 하다가는 빠르게 나동그라질 수가 있다. 번아웃 증후군에 시달리는 중년에게 필요한 것은 '느림과 기다림의 미학'이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기 마련이다. 삶에는 영원한 상승도 영원한 하강도 없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맞는 인생의 속도로 나아가면 된다.
작은 변화가 모여 운명이 된다. 작은 행복에 감사해하는 사람에게 더 큰 행복이 찾아오는 법이다. 일상생활에서 아주 사소하다고 넘겨 버리는 것들이 인생을 아름답게 만든다.
긍정은 우연을 필연으로 만드는 강력한 에너지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 위한 의식에 빈자리를 마련한다. 니체는 망각이 없다면 어떠한 행복도, 어떠한 명랑함도, 어떠한 희망도, 어떠한 긍지도 가질 수 없고, 현재라는 이 순간도 있을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따라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약간의 빈자리를 마련해야 한다. 잘 잊어버릴수록 우리의 행복 지수는 높아진다. 부정적 과거의 기억에 얽매인 사람은 현재 이 순간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면서 살지 못한다. 과거의 부정적인 감정들을 버릴 때 비로소 현재의 삶이 들어올 공간이 생긴다. 우리는 망각할 수 있기 때문에 과거의 기억으로 시달리지 않고 현재 이 순간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니체는 망각은 '강한 건강의 한 형식'이라고 말한다.
건강한 삶을 위해서는 망각과 기억의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 제때 기억할 줄 알아야 한다. 제때 잊을 줄 알아야 한다.
불행하고 고통스러운 삶이 우리를 단련한다. 고통에도 곤혹과 불안에 빠져들지 않는 자만이 위대함에 도달할 수 있다.
혼자라는 것은 남들과 다르다는 뜻이고, 남들과 다르다는 것은 혼자라는 뜻이다.
고귀한 인간은 '좋음'이라는 근본 개념을 먼저 자발적으로, 즉 자기 자신에게서 생각해 내고, 거기에서 비로소 '나쁨'이라는 관념을 만들게 된다! 이 고귀한 기원을 지닌 '나쁨'과 끝없는 증오의 도가니에서 나온 저 '악함'을 비교해 보자. 전자가 후에 만들어진 것이며 병렬적으로 나타나는 것이자 일종의 보색이라면, 후자는 이에 반해 원형이며 시원이나 노예 도덕이라는 구상에서 나온 본래의 행위이다. 겉으로 보기에 '좋음'이라는 개념에 대치된 '나쁨'과 '악함'이라는 두 개의 단어는 얼마나 다른가? - <도덕의 계보>
"창조하는 자가 아니라면 그 누구도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를 모른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고귀한 인간은 자신을 가치를 창조하는 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타인을 의식하지 않는다. 또한 타인에게 인정받을 필요가 없기 때문에 자신의 입장에서 모든 것을 평가하고 존중한다. 고귀한 인간은 자기만의 무한한 잠재력과 가능성을 꿈꾸고 주어진 삶을 긍정하는 존재이다.
고귀한 인간은 자신을 존중하며 능동적인 삶을 산다. 비천한 인간은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며 수동적인 삶을 산다. 당신은 삶의 주인으로 살 텐가, 노예로 살 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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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은 기대하지 말고 우연은 환영하라. 운명처럼 생각한 일, 꼭 이루고 말겠다던 목표, 기대했던 경험들보다 큰 의미를 두지 않았던 우연한 일들이 오히려 우리를 기쁘게 한다. 무의미하고 사소한 것들에서 즐거워하고 웃음을 터질 때, 소소한 행복감이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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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 이르는 단 하나의 길이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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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고자 한다면 행복한 삶에 대한 의욕을 가져야 한다. "모든 행복의 공통점은 두 가지, 즉 충만한 감정과 그것에 수반되는 자부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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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시대는 없지만 언제든 지금 이 순간 행복할 수 있다.
죽음은 삶을 끝내는 것이 아니라 삶을 완성하는 것이다. 죽음에 대해서 늘 생각하면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지금 당장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대 지금 자신이 추구하는 것들이 진정한 가치가 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다시 말해 죽음을 염두에 두고 하루하루를 살다 보면 무모한 삶에 대한 욕망을 떨쳐 낼 수 있다. 죽음을 생각하고 기억한다는 것은 비관적인 태도를 의미하지 않는다. 죽음을 생각하면 자신의 삶을 더욱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많은 사람이 바쁘게 돌아가는 현실에만 집중할 뿐 자신의 죽음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한다. 죽음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인생을 낙관적으로 볼 수 있고, 숨이 붙어 있는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깨닫게 된다. 제때에 살고 제때에 죽어라.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좋든 나쁜든, 아름답든 추하든 모두 긍정의 대상이 된다는 뜻이다. 바로 이것이 니체가 말한 삶의 모든 의문스럽고 낯선 것들 자체에 대한 아무런 유보 없는 긍정의 형식인 '디오니소스적 긍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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