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사회 구성원으로서 약속이 지켜지고 공동선을 추구하는 것!
[본문발췌]
고대의 정의론은 미덕에서 출발하는 반면 근현대의 정의론은 자유에서 출발한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식의 대조는 오해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자. 왜냐하면 오늘날의 정치를 움직이는 정의에 관한 주장들, 특히 철학자들이 아닌 일반인들의 주장을 가만히 살펴보면, 더욱 복잡한 그림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우리가 내세우는 주장은 언뜻 보기에는 경제적 풍요를 지지하고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만 같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한 주장에 찬성하거나 맞서면서, 어떤 미덕이 영광과 포상을 누릴 자격이 있는지, 좋은 사회가 장려해야 하는 생활방식은 무엇인지에 관해 은근슬쩍 다른 신념을 넘보기 일쑤다. 다시 말해 풍요로움과 자유를 굳건히 지지하면서도 정의에서 심판이라는 한 가닥 끈을 완전히 끊어버리지 못한다. 정의에는 선택뿐 아니라 미덕도 포함된다는 생각은 뿌리가 깊다. 정의를 고민하는 것은 곧 최선의 삶을 고민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회가 정의로운지 묻는 것은,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 이를테면 소득과 부, 의무와 권리, 권력과 기회, 공직과 영광 등을 어떻게 분배하는지 묻는 것이다. 정의로운 사회는 이것들을 올바르게 분배한다.
재화 분배를 이해하는 세 가지 방식을 찾아냈다. 행복, 자유, 미덕이 그것이다.
도덕적 사고란 혼자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여럿이 함께 노력해 얻는 것이라고 대답할 수 있다. 거기에는 친구, 이웃, 전우, 시민 등의 대화 상대가 필요하다. 더러는 그 대화 상대가 실존 인물이 아닌 상상의 존재일 수도 있다. 자기 자신과 논쟁을 벌일 때가 그러하다. 그러나 자기성찰만으로는 정의의 의미나 최선의 삶의 방식을 발견할 수 없다.
"어느 누구도 나더러 타인의 기준에 맞춰서 행복하라고 강요할 수 없다.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한, 저마다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행복을 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동선을 추구하는 새로운 정치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예상되는 몇 가지 주제를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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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의식, 희생, 봉사. 정의로운 시회에는 강한 공동체 의식이 필요하다면, 사회는 시민들이 사회 전체를 걱정하고 공동선에 헌신하는 태도를 키울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러자면 공적인 삶에서 시민이 드러내는 자세와 기질인 "마음의 습관"에 무관심할 수 없다. 사회는 좋은 삶에 관한 지극히 사적인 견해를 배격하고, 시민의 미덕을 키울 길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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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의 도덕적 한계. 군 복무, 출산, 가르침과 배움, 범죄자 처벌, 새 시민을 받아들이는 일 같은 중요한 사회적 행위를 시장에 맡기면 그 행위를 규정하는 규범이 타락하거나 질이 떨어질 수 있기에, 시장이 침입하지 못하도록 보호하고 싶은 비시장 규범이 무엇인지 물을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선의 가치를 측정하는 올바른 방법을 놓고 공개 토론을 벌어야 한다. 시장은 생산활동을 조직하는 데 유용한 도구다. 그러나 사회제도를 지배하는 규범을 시장이 고쳐 쓰기를 원치 않는다면, 시장의 도덕적 한계를 공론에 부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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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 연대, 시민의 미덕. 빈부 격차가 지나치면 민주 시민에게 요구되는 연대 의식을 약화시킨다. ... 공적 영역이 비어버리면 민주 시민 의식의 토대가 되는 연대와 공동체 의식을 키우기가 어려워진다. 결국 불평등은 공리나 합의에 미치는 영향과는 별개로 시민의 미덕을 좀먹는다. 시장에 매료된 보수주의자들과 재분배에 주목하는 자유주의자들은 이러한 손실을 간과한다. ... 불평등이 시민에게 미치는 결과와 그것을 바로잡을 방법에 초점을 맞춘다면, 비슷한 소득 재분배 주장으로는 불가능한 바람직한 정책을 찾아내 사람들의 호응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분배정의와 공동선의 연관성을 강조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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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에 기초하는 정치. 도덕적 이견에 좀더 적극적으로 개입한다면 상호 존중의 토대를 약화시키기는커녕 오히려 더 강화시킬 수 있다. 우리는, 동료 시민이 공적 삶에서 드러내는 도덕적 종교적 신념을 피하기보다는 때로는 그것에 도전하고 경쟁하면서, 때로는 그것을 경청하고 학습하면서, 더욱 직접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어려운 도덕 질문을 공개적으로 고민한다고 해서 어느 상황에서든 합의를 끌어낼 수 있다거나, 심지어 타인의 도덕적 종교적 견해를 평가할 수 있다고 장담하긴 어렵다. 도덕적, 종교적 교리를 더 많이 알수록 그것이 더 싫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일단 해보기 전까지는 어찌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도덕에 기초하는 정치는 회피하는 정치보다 시민의 사기 진작에 더 도움이 된다. 더불어 정의로운 사회 건설에 더 희망찬 기반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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