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TV에 눈을 떼지 못하고 있을 때, 부모님은 '바보상자' 적당히 보라고 타박하셨다.
지금 세계는 '바보상자'의 종류뿐 아니라 콘텐츠(내용)도 다양하고 언제 어디서든 접속할 수 있다. 디스플레이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고 해야 할까? 그러면서 우리는 기계에 기억을 아웃소싱하며 생각이나 지성, 정체성의 가장 중요한 부분 역시 아웃소싱하고 있다.
[본문발췌]
책 속의 단어들은 추상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만 강화시킨 것이 아니라 책 밖에 있는 물리적 세상에 대한 경험을 풍부하게 했다. 화가나 작곡가와 마찬가지로 작가들은 외부 자극을 차단하기보다는 오히려 풍부하게 해주는 방식으로, 인간의 다양한 경험에 대한 공감을 축소하기보다는 확장시키는 방식으로 의식을 변화시킨다.
신경가소성에 대한 연구에서 얻은 가장 중요한 교훈 중 하나는 특정한 목적을 위해 형성하는 정신적 능력, 즉 신경 회로가 다른 목적으로도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뇌는 새로운 기술을 배우거나 새로운 능력을 발전시킬 때마다 물리적으로, 기능적으로 상당한 수준으로 수정된다. 강도 높게 연습한 특별한 과정을 강화시키며 문화가 뇌가 관여하는 부분의 변화를 이끌 때 이는 다른 뇌를 만들어 낸다.
웹 페이지를 훑어보는 데 시간을 보내느라 책 읽을 시간이 사라졌듯이, 작은 글자로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는 시간 때문에 문장과 절을 지어내는 데 투자하는 시간이 사라졌듯이, 링크들 사이를 이리저리 옮겨 다니느라 보내는 시간이 조용한 명상과 사색의 시간을 몰아냈듯이 오래된 지적 기능과 활동에 사용되던 회로들은 약해지고 해체되기 시작했다. 뇌는 사용하지 않는 뉴런과 시냅스를 더욱 긴급한 업무 수행을 위해 재활용한다. 우리는 새로운 기술과 시각을 얻지만 오래된 것은 잃어버린다.
온라인상에서 끊임없이 주의력을 분산시키는 것은 우리 뇌를 멀티태스킹에 맞도록 더욱 민첩하게 만들지만 멀티태스킹을 가능케하는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은 깊이, 창조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을 사실상 저해하고 있다. ... 멀티태스킹을 위해 최적화하는 것이 더 나은 기능, 즉 창의성, 독창성, 생산성을 가져올까? 대답은 대부분의 경우 그렇지 않다. 멀티태스킹을 더 많이 할수록 덜 신중해지고, 문제에 대해 덜 생각하고, 덜 판단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독창적인 사고로 도전하기보다는 관습적인 생각과 해결책에 의존할 가능성이 더 크다.
"모든 곳에 있는 것은 아무 곳에도 없는 것이다" - 세네카
인터넷은 우리를 시공간적 능력(지능)에 대한 광범위하고 섬세한 발달로 이어졌다. 하지만, 의식적 지식습득, 귀납적 분석, 비판적 사고, 상상, 심사숙고를 뒷받침하는 진중한 처리 과정에 대한 능력은 약화시킨다. 훑어보고, 건너뛰고, 멀티태스킹을 하는 데 사용되는 신경 회로는 확장되고 강해지는 반면 깊고 지속적인 집중력을 가지고 읽고 사고하는 데 사용되는 부분은 약화되거나 또는 사라지고 있다.
균형잡힌 사고의 발달은 광범위한 정보를 찾고 재빨리 분석하는 능력과 함께 폭넓은 성찰의 능력도 요구한다.
기계에 기억을 아웃소싱할 때 우리는 지성이나 정체성의 가장 중요한 부분 역시 아웃소싱하는 것이다. 기억을 아웃소싱하면 문화는 시들어간다.
조용한 시골에서 자연과 가까이 하며 일정 시간을 보낸 후 사람들은 더 높은 집중력과 강력한 기억력, 그리고 보편적으로 향상된 인식을 보인다. 외부적인 자극의 폭격을 받고 있지 않을 때 뇌가 실제로 휴식을 취하기 때문이다. 사색은 그들의 사고를 통제하는 능력을 강화시킨다. 자연과의 단순하고 짧은 교류만으로도 인지 통제에 대한 눈에 띄는 진전을 가져올 수 있다. 자연 속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효과적인 인지 기능에 있어 필수적으로 중요한 일이다.
뇌가 신체의 직접적인 연관을 뛰어넘어 심리학적 도덕적인 상황을 이해하고 느끼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린다. 더욱 산만해질수록 인간의 가장 섬세하고 고유한 특성인 공감, 열정 등과 같은 감정의 경험은 더욱 줄어든다. ... 인터넷이 우리의 살아 있는 통로의 경로를 바꾸고 사색 능력을 감소시키고, 우리의 생각뿐 아니라 감정의 깊이도 바꿔놓는다.
소프트웨어는 규칙을 따를 뿐이다. 소프트웨어는 판단하지 않는다. 주관성 대신 공식을 제공한다. 따라서, 소프트웨어를 통해 관습을 깨는, 창의적 사고를 판단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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