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우침 없이 세상을 보고 듣고, 받아들이고, 외부가 아니라 내 안에서 행복을 찾으며 마음과 감정을 다스리는 삶....

 

 

[본문발췌]

 

 

사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는 말은 돈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 기초하고 있다. 돈이 얼마나 있으면 행복하느냐는 관점이 아니라 '돈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대한 관점으로 바꿔야 맞는 질문이다.

 

 

부는 우리에게 많은 재화를 소비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지만, 동시에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감정을 감소시킨다. - 조르디 쿼드바흐

 

 

돈으로 무엇을 사고 싶다면 상품이나 물건보다 경험이나 지식을 사라.

 

 

인간은 사회적 관계를 통해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좋게 만들면 행복해진다.

 

 

세상에서 가장 값진 것은 언제나 '공짜'다. 공기, 시간, 삶.....

 

 

행복은 현재 우리의 상황이나 환경 때문이 아니라 이미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다. 돈은 이것을 보완할 뿐이다. 돈이 행복을 주진 않지만 돈이 행복을 도울 수는 있다. 내가 돈을 주인으로 모시지 않고 돈이 나를 주인으로 모시게 만든다면 돈은 얼마든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

 

 

내일부터 새로운 소망을 가지고 그 결심을 이루기 위해 도전한다면 결과는 두 가지뿐이다. 성공하거나 실패하는 것이다. 성공하면 그 길로 계속 가면 된다. 만약 실패해도 좀 더 현명한 사람이 되어 다시 도전하면 된다. 손해 볼 것은 아무것도 없다. 성공했거나 더 현명해졌을 분이다. 단지 행동하지 않을 때만 손해가 있을뿐이다. 지금 즉시 목표를 정하고 행동으로 옮기기 바란다. 오늘 하지 않는 사람은 앞으로도 하지 않을 가능성이 90퍼센트다. 즉시 해야 한다.

 

 

심리학자 어니 젤린스키가 말했듯 걱정의 40퍼센트는 절대 현실로 일어나지 않고, 걱정의 30퍼센트는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것이다. 걱정의 22퍼센트는 안 해도 그만인 사소한 것이고, 걱정의 4퍼센트는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이다. 나머지 4퍼센트는우리 힘으로도 어쩔 도리가 없는 거리다. 불과 4퍼센트 때문에 나머지 96퍼센트까지 걱정을 더 하며 사는 것이다.

 

 

나는 줄기차게 그 사람의 크기는 그 사람의 생각의 크기라고 말해왔다.그런데 이 크기를 실제로 현실에서 만들어내는 도구는 끈기와 기개다. 이 두 가지가 없으면 생각을 현실화할 수 없다. 평범한 사람도 끈기가 있으면 비범해지고 비범한 사람도 끈기가 없으면 평범한 사람이 된다. 끈기는 모든 것을 이겨낸다. 세상은 기다릴 줄 아는 사람에게 보상한다. 기회는 항상 다시 돌아오는데 끈기가 없으면 돌아오는 것을 보기 전에 그만두게 된다. 이외수의 존버 정신은 존중받을 만한다. 어떤 분야에 있는 사람일지라도 성공과 가장 큰 상관관계가 있는 개인적 품성이라면 나는 당연히 끈기를 첫 번째로 본다.

 

 

위험이란 칼과 같아서 날을 잡으면 다치지만 손잡이를 잡으면 멋진 도구가 된다. 하지만 위험하다고 피하기만 하면 상처가 날 수밖에 없다. 인생에 두려운 것도 없고 배신도 없었고 모욕을 당하거나 굴욕적인 날들도 없었다면 그는 한 번도 위험을 감수해본 적이 없다는 뜻이다. 내가 위험을 감수하거나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는 위험 속에 보물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나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 내 눈에 보이는 것들 중에 나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은 단 한 개도 찾을 수 없다. 인간은 언제나 주위의 모든 것과 어울려 살아야 한다. 생명이 있는 것이든 생명이 없는 것이든, 나와 상관이 있는 사람이든 아니든, 사물이든 물건이든 건물이든 모두 한 하늘 아래 있고 한 공간 안에 있다. 가까운 것은 가까운 이유로 더 많은 영향을 주고받을 것이고 멀면 먼대로 다른 영향을 줄 것이다. 이 공감은 다른 사람의 입장이나 다른 상황에서 존중을 만든다. 이런 상호 공감의 확장이 나를 성장시키고 공동체 전체를 안전하게 하며 전체가 성장하는 틀을 만든다. 남을 지게 만든다고 내가 이기는 것이 아니다. 상식이야말로 최고의 지성이다.

 

 

인간은 가치와 명분에 따라 움직인다. 그 일에 가치를 부여하지 않으면 조직 내에서 한 부품 같은 구성원으로 추락하며 동기도 의욕도 욕구도 사멸된다. 이럴 때 이런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도구는 급여와 더 많은 급여뿐이다. 하지만 <왜>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들어가는 순간 이 조직은 위대한 조직이 된다. ... <무엇은> 단순한 정보다. 듣고 기억하면 그만이다. <어떻게>는 기능이다. 손과 몸의 훈련으로도 가능하다. 그러나 <왜>는 우리가 감정을 다스릴 열쇠다. 충성, 믿음, 정직 등 인간 본연의 가치를 갖게 하며 인간의 행동과 의사결정을 유도하고 이끈다. 우리는 안다고 행동하지 않는다. 아는 것은 아는 것일 뿐이다.

 

 

인간이 바뀌는 두 가지 계기는 새로운 곳에 살게 되거나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이다. 이 두 가지가 한 번에 바뀌는 경우가 외국으로 이주하거나 이직할 때다. 이런 경우라면 누구든 순식간에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 환경이 바뀌거나 최근에 만난 사람이 나를 바꾸고 성장시키며 삶을 윤택하게 혹은 거칠게 만든다. 새로운 사람과의 관계는 이렇게 한 개인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

 

 

상대가 말을 하고 내가 듣는 것이 대화다. 상대가 말을 하고 내가 그것을 이해하려 하면 그것이 교류다. 상대가 말을 하고 내가 공감하는 순간, 한 인간이 내게 들어오는 것이다. 귀를 열고 상대의 이야기를 듣는 일의 가치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지속적인 행복은 기대와 더불어 이기적인 집착을 기꺼이 포기했을 때 찾아온다.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이 없고 상실의 고통을 느낄 이유도 없다. 모든 것은 언젠가 당신을 떠나게 된다.

 

 

"그릇은 진흙으로 만들지만, 쓰이는 것은 그릇 속에 담긴 비움이다." - <도덕경>

 

 

세상이 힘든 이유는 욕심과 부러움 때문이다. 만족은 내가 가진 것이 많아서 느끼는 감정이 아니다. 아무리 많은 재산과 권력이 있어도 만족할 수 없는 것이 있다. ... 만족하지 못하면 아무리 돈이 많고 권력이 높아도 행복할 수 없다. 나보다 부자는 여전히 많고, 나보다 현명한 사람 또한 많으며, 나보다 건강하거나 젊은 사람은 계속 늘기 때문이다. 부러워만 하면 자존감도 없어진다. 자신을 자책하기 바쁠 뿐이다. 비교를 중단하고 욕심을 버리는 순간, 만족과 행복이 손을 잡고 들어온다.

 

 

가진 것과 갖고 싶은 것의 차이를 크게 느끼면 불행을 느끼기 마련이다. 꿈은 그를 행복하게 하지만 꿈에 이끌려 가면 꿈도 불행을 초래할 수 있다. 지나친 바람이나 걱정이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행복을 사라지게 만든다. 행복은 스스로 내부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니 결코 외부의 조건을 행복의 기준으로 삼지 않기 바란다. 내가 지금 충분히 행복을 만끽하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내가 가진 것이 행복의 근원이 아니라는 지각을 얻고 난 후에 생긴 자유 덕분이다.

 

 

결국 행복과 건강, 기쁨은 외적인 소유가 아니라 내적인 자각의 결과다. 내가 생각을 옳게 쓰면 나는 생각을 다스리는 자가 되는 것이고, 내가 생각을 옳지 못하게 쓰면 생각이 나를 다스리게 되는 것이다. 내가 선인이 되거나 악인이 되는 것도 모두 이 생각의 쓰임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성공하면 추억이 되는 것이고 실패하면 경험이 될 뿐이다. 사람은 능력이 없어 실패하는 것이 아니라 용기가 없어 실패하는 것이다.

 

 

두려움을 다스릴 줄 알면 나는 내 인생의 주인이 된다. 자신감이 가득하고 걸음이 꼿꼿하며 생각과 말에 힘이 생긴다. 두려움이 다시 몰려오더라도 사랑의 힘을 믿고 당당하면 언제든 두려움과 공포를 발아래 둘 수 있다. 매일매일 성실함과 열정적인 노력을 통해 계속 나아가야 한다. 사랑과 용기는 이 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열쇠다.

 

 

마음을 자극하는 가장 유혹적인 감정은 진심에서 나오는 친절이다. 인간은 누구든지 언제나 그것에 굴복한다. 당신이 누구에게나 사랑스러운 사람이 될 수 있는 최고로 아름다운 방법은 친절, 배려, 관용으로 선한 사람이 되어 선한 영향력을 갖는 것이다. 나는 분명 이것으로 여러분의 평생 행복을 보장한다.

 

 

한 인간으로 태어나 이 세상에 흔적을 남기길 원한다면 노을을 보기 위해 이미 해가 진 서쪽으로 달려나가서라도 바라볼 용기를 가져야 한다. 내 안의 거인은 나만 깨울 수 있다. 그 아무리 위대한 선생도 내 안에 거인이 있음을 알려줄 뿐, 그를 깨어낼 수 없다. 돈키호테는 말했다. '이룩할 수 없는 꿈을 꾸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싸워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움을 하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저 하늘의 별을 잡자.' 그렇다. 돈키호테를 따르라. 그것이 거인을 불러내는 최고의 방법이다.

 

 

행복의 비결은 내가 포기해야 할 것을 언제 포기해야 하는지 아는 데서 출발한다. 욕심과 욕망을 줄이는 순간, 행복이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그래서 행복을 잡으러 다니는 것을 포기하는 순간, 그 행복이 눈 앞에 보이게 된다. 우리가 태어나서 벌어놓은 모든 것은 소멸된다. 소멸되는 것에는 진정한 행복이 없다. 행복은 영속적인 것을 찾아 인간과 우주에 대한 사랑을 실현함으로써 가능하다. 물질적인 부를 추구하고 이기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은 아무리 부를 가져도 행복할 수 없다.

 

 

세상이 공평하지 않은 것은 이미 명백한 사실이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면 내가 더 열심히 살 이유를 찾게 된다. 세상이 공평하지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결핍을 느끼게 되지만, 냉소적이거나 부정적인 사람이 아닌 매우 현실적인 사람이 된다. 남들보다 가난하게 태어난 것이나, 외모가 부족하거나 재능이 없어도 이 문제로 부모를 탓하거나 남을 탓하기를 그치게 된다. 이 불평등에 순응하는 순간 불평등은 '도전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성공도 없다'는 진리를 확인해줄 뿐이다. 그러나 불평등을 인정하고 현실적인 사람이 되면 누구든 자신의 인생에 주인이 된다. 지금 주어진 환경이나 태어난 여건은 내가 원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지만, 앞으로의 환경과 여건은 내 손으로 직접 만들어갈 수 있다. 세상을 원망하거나 시절을 탓하지 않고 스스로 능동적 주체가 되는 것이다. 축복이라고 생각되는 환경에서 자란 사람이 오히려 사소한 역경이나 시련 앞에서 무너질 때가 많다. 인생이란 험한 세상에서 단 한 번의 예방주사조차 맞지 않아서 인생의 고난에 저항력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달리 보면 흔히 우리가 말하는 축복받은 환경이나 재능이 오히려 단점일 수 있다는 뜻이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어떤 행위를 오래 지속하면 서서히 힘이 쌓여 어느 순간 변화가 일어난다. 변화의 초기는 지루할만큼 천천히 움직이지만 어느 순간 상황이 완전히 역전되는 변곡점에 이른다. 많은 사람들이 성공을 위해 노력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변곡점에 서기 전에 포기한다. 때로 변곡점은 나를 이겨내는 시점에서 시작되기도 한다. 남을 이기고 자신을 이기는 순간을 폭발하듯 맛보게 된다. ... 인생의 변곡점 역시 마찬가지다. 변곡점은 자신이 어디 있다고 알려주지 못한다. 다만 그렇게 쌓이고 모인 힘은 한낱 눈송이 하나, 물방울 하나에 부서지는 눈사태와 댐처럼 우리를 가로막았던 모든 상황을 한순간에 해결해버리는 것이다. 결국 믿는 만큼 성취하는 것이며 나의 주인은 나 자신이다.

 

 

사업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은 선수다. 사업하는 이유를 아는 사람은 고수다. 하지만 선수나 고수도 사업하는 때를 아는 사람을 이기지 못한다. 그런 의미로 사업가는 중용의 의미를 누구보다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중용이란 가운데, 양극단의 중간이 아니다. 중용은 위치상 가운데가 아니라 시간이 포함된 개념이다. ... 중용은 때를 알고 알맞게 행동함을 뜻한다.

 

 

정치적으로 보수든, 진보든 인간 존중과 공생의 의미를 실천하는 쪽에 서겠다는 기준이 중용이다. 그렇게 시대에 따라 사안에 따라 보수도 진보도 될 수 있는 게 중용이다. 모든 일마다 언제나 보수적이거나 진보적이라면 옳지 않은 일도 지지하게 된다. ... 중용을 제대로 이해하면 이렇게 양극단을 자유롭게 오가도 마음에 걸릴게 없다. 위대한 지도자는 이러한 중용적 태도를 깊게 이해해야 한다. 중용을 지킨다는 건 들어갈 때와 나올 때를 이해하며 안다는 말과 동일하다. 중용을 이해하면 칭찬이나 비난이 같은 곳에서 나온 것임을 안다. 그러니 기뻐하고 들뜨거나 해치려 하거나 분노를 표현할 때가 아님을 안다. ... 결국 중용이란 평범한 일상에 대한 평범한 선택이다. 즉 상식으로 돌아간다는 뜻과 같다. 이때야 비로소 모든 일에 무리수가 생기지 않는다. 그러므로 상처를 받거나 주는 일 없이 순리에 따라 움직일 수 있다. 순리를 따라 움직이게 되는 일이야말로 경영자로서는 최고의 경지에 이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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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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