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본성은 빈 서판, 자연 앞에 만인이 평등하게 시작한다는 것!

 

 

[본문발췌]

 

 

버트런트 러셀은 이렇게 썼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편안하게 해 주는 확신의 구름에 둘러싸인 채 살아간다. 그 구름은 여름날의 파리 떼처럼 그를 따라 이동한다." 오늘날 지식인들의 경우 그 확신의 많은 부분이 심리학 그리고 사회적 관계와 관련되어 있다. 나는 그 확신들을 '빈 서판'이라 지칭하고자 한다. 그것은 인간의 마음은 어떤 고유한 구조와도 무관하며, 사회나 그 자신이 그 위에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새겨 넣을 수 있다는 개념이다. 인간 본성에 대한 이 이론, 즉 인간 본성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론이 바로 이 책의 주제이다.

 

 

이제 마음이 가령 아무 글자도 적혀 있지 않고 아무 개념도 담겨 있지 않은 흰 종이라고 가정해 보자. 그것은 어떻게 채워지는가? 그 종이는 어떻게 인간의 분주하고 무한한 공상에 의해 거의 무한할 정도로 다양하게 그려지는 광대한 내용을 획득하게 되는가? 그것은 어떻게 이성과 지식의 모든 재료를 갖게 되는가? 이에 대한 내 대답은 한마디로, '경험으로부터'라는 것이다. - 존 로크, <인간 오성론>

 

 

빈 서판은 또한 정치적, 윤리적 신념을 위한 신성한 경전으로서의 기능을 한다. 그 학설에 따르면 인종, 인종 집단, 성, 개인들 간의 어떤 차이도 선천적 체질 차이가 아니라 경험상의 차이에서 발생한다. 육아, 교육, 대중 매체, 사회적 보상을 개혁함으로써 개인의 경험을 바꾸면, 그 개인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학업 부진, 가난, 반사회적 행동은 개선될 수 있으며, 사실 개선되지 않는 것에는 책임이 없다. 그리고 성이나 인종 집단 등 이른바 선천적 특성들을 근거로 삼아 차별하는 것은 전적으로 불합리한 일이다.

 

 

나는 자연이 빚어 낸 최초의 인간처럼 자유롭다. / 예속을 강요하는 비천한 법이 생겨나기 전처럼, / 고상한 야만인이 거칠게 숲 속을 뛰어다니던 때처럼. - 존 드라이든, <그라나다 정복>

 

 

수많은 저자들이 인간은 선천적으로 잔인하며 따라서 이를 교정하려면 상시적 경찰 제도가 필요하다고 성급한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인간이 짐승의 우둔함과 문명인의 유해한 양식으로부터 똑같이 먼 곳에 놓인다면, 원시 상태의 그보다 더 온화한 존재는 없을 것이다. ... 우리는 그 상태에 대해 깊이 숙고할수록 더욱 확신하게 되는 것은, 그 원시 상태야말로 어떤 혁명도 필요치 않았던 상태, 즉 인간에게 가장 좋은 상태였다는 사실과, 만인의 이익을 위해서는 결코 일어나지 말았어야 했던 어떤 치명적 사건이 아니었다면 어떤 것도 인간을 그 상태에서 끌어내지 못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실제로 이런 상태로 발견된 야만인들의 예는 인간이 영원히 그런 상태로 남도록 만들어졌다는 사실과, 그 상태가 세계의 진정한 유년이라는 사실, 그리고 지금까지의 모든 진보가 겉으로는 개인의 완성을 향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인류의 노쇠를 향한 걸음이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 - 루소

 

 

인간이 그 자신을 두려운 존재로 만들 공동의 힘을 갖지 못하고 사는 동안에는 이른바 전쟁이라는 상황이 인간을 지배하게 된다. 그것은 만인이 만인에 대해 벌이는 싸움이다. .... 그런 조건 아래에서는 노동을 위한 여지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 성과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문화도 없고, 항해나, 해상을 통해 수입될 수 있는 상품의 사용도 없고, 널찍한 건물도 없고, 큰 힘을 필요로 하는 물건의, 이동과 운송 수단도 없고, 지형에 대한 지식도 없고, 시간 계산도 없고, 예술도 없고, 문학도 없고, 사회도 없다. 가장 끔찍한 것은 끝없는 두려움과 폭력적인 죽음의 위험이다. 인간의 삶은 외롭고, 가난하고, 더럽고, 짧다. - 토머스 홉스

 

 

지식의 풍경에는 하나의 벽, 20세기 사회과학자들이 대단한 경계심을 가지고 방어했던 그 성벽이 남게 된다. 그것은 물질과 마음, 물질과 영혼, 육체와 정신, 생물학과 문화, 자연과 사회, 과학과 사회과학, 인문학, 예술을 구분한다. 이 구분은 공식적 이론의 모든 학설에 스며들었다. 생물학적으로 부여된 빈 서판 대 경험과 문화가 새겨넣은 내용물, 자연 상태의 고상한 야만인 대 사회 제도의 타락, 피할 수 없는 법칙을 따르는 기계 대 자유롭게 선택하고 인간의 조건을 개선하는 유령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 벽도 무너지고 있다. 지식의 네 경계 - 마음, 뇌, 유전자, 진화를 연구하는 과학들 - 로부터 밀려드는 새로운 지식들이 인간 본성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앞세워 그 성벽을 돌파하고 있다. 이 장에서는 그 지식들이 어떻게 빈 서판을 채우고 있으며 고상한 야만인의 지위를 낮추고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기계 속의 유령을 몰아내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생물학과 문화를 연결하는 최초의 다리는 마음의 과학인 인지과학이다. 마음과 물질을 잇는 두 번째 다리는 신경학, 특히 인지와 감정이 뇌에서 어떻게 실행되는가를 연구하는 인지 신경학이다. 생물학과 정신을 잇는 세 번째 다리는 유전자가 행동에 어따떻게 영향을 미치는가를 연구하는 행동 유전학이다. 생물학과 문화를 잇는 네 번째 다리는 마음의 계통 발생적 역사와 적응 기능을 연구하는 진화 심리확이다.

 

 

심리학자들은 인간의 성격이 다섯 가지 주요 측면으로 나뉜다는 것을 발견했다. 인간의 성격은 내성적인가 외향적인가, 신경이 과민한가 안정적인가, 경험에 무관심한가 적극적인가, 우호적인가 적대적인가, 양심적인가 아니면 도덕적으로 쉽게 흔들리는가 하는 기준 사이에 다양하게 분포된다. 

 

 

빈 서판은 마지막 항전을 벌였지만, 지금까지 본 것처럼 최근의 과학적 성벽들은 환상에 불과하다. 인간 게놈의 유전자 수는 생물학자들이 추정했던 것보다 더 적을 수 있지만, 그것은 게놈 속의 유전자 수가 유기체의 복잡성과 거의 무관하다는 것을 보여 줄 뿐이다.

연결주의 신경망은 인지의 블록이 완성되는 과정의 일부를 설명할 수는 있지만, 사고와 언어를 독자적으로 설명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신경망은 선천적으로 설계되어야 하고 주어진 과제에 맞게 조립되어야 한다.

신경 가소성은 마법의 만능 열쇠가 아니라 수 메가바이트의 게놈을 수 테라바이트의 뇌로 전환하는 데 사용되는 도구 상자이다. 신경 가소성은 감각 피질을 입력물에 맞추고, 학습이라 불리는 과정을 실행하는 데 필요하다. 따라서 게놈의 특성, 신경망, 신경 가소성은 모두 복잡한 인간 본성에 관한 최근 몇 십년의 연구에서 제시하는 설명과 잘 들어맞는다.

물론 그것은 엄격하게 미리 설정되어 있거나, 입력물에 무감각하거나, 모든 개념과 감성이 상세하게 부여된 본성은 아니다. 그러나 시각, 이동, 계획, 대화, 생명 유지, 환경 이해, 타인과의 협상에 필요한 요구 사항들을 무리없이 소화할 만큼 풍부한 본성이다.

빈 서판의 마지막 항전이 끝났으므로 그 대안이 될 만한 사례를 조사해 볼 때가 되었다. 다음은 복잡한 인간 본성에 대한 증거를 요약한 것으로, 그 일부는 이전 장들의 논의와 중복되고 또 일부는 이후의 장에서 논의할 내용과 중복된다. 단순한 논리로 말하자면, 학습을 위한 선천적 메커니즘 없이 학습은 존재할 수 없다. 그 메커니즘은 인간이 성취하는 모든 종류의 학습을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강력하다. 학습력 이론 - 학습의 수행 원리에 대한 수학적 분석 - 에 따르면, 학습자가 유한한 입력물로부터 이끌어 낼 수 있는 일반화의 수는 무한하다고 한다. 가령 어린이가 들은 문장들은 그것을 그대로 반복하는 토대이기도 하지만, 명사와 동사의 비율이 무한한 단어 조합을 생산하거나, 그 기초에 놓인 문법을 분석하고 문법에 맞는 문장들을 생산할 수 있는 토대이기도 하다. 이와 똑같은 논리적 정당화로서, 누군가가 설거지를 하는 광경은 학습자로 하여금 똑같이 설거지를 하게 학서나 따뜻한 물을 손가락 사이로 흘려 보내도록 자극한다. 그러면 성공적인 학습자는 입력 정보로부터 반드시 몇 가지 결론을 이끌어 내게 되어 있다. 인공 지능 분야가 이 점을 강하게 입증한다. 인간과 똑같은 작업을 하도록 설정된 컴퓨터와 로봇에게는 항상 다수의 복잡한 모듈이 부여된다.

진화 생물학은, 생물의 세계에는 복잡한 적응 능력들이 편재하고 자연 선택이 그것들을 진화시키는데 여기에는 복잡한 인지, 행동 적응 능력이 포함된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자연 서식지에 사는 동물의 행동 연구에서 입증한 바에 따르면, 생물 종들은 충동과 능력이 선천적으로 서로 다르고 어떤 능력들(가령 비행술과 먹이 은닉)은 복잡하고 고도로 분화된 신경계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진화적 관점에서 인간을 연구해온 과학자들은 많은 심리 능력들(가령 기름진 음식, 사회적 지위, 모험적인 성관계 등)이 현재 환경의 실질적 요구보다는 조상들이 살던 환경의 진화적 요구에 더 적합한 것임을 입증했다.

인류학 연구에서는 경험의 모든 측면과 관련된 수많은 보편적 능력이 전 세계 문화의, 경계를 초월해 존재함을 보여 주고 있다. 인지과학들은 개별적인 표현과 과정들이 지식의 서로 다른 영역 - 가령 언어를 위한 말과 규칙, 물리적 세계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영구적 사물의 개념, 타인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마음 이론 - 에 사용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발달 심리학에서는 경험을 해석하는 이 개별 형식들이 생애 초기에 정렬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유아기에 이미 사물, 수, 얼굴, 도구, 언어, 그리고 그 밖의 인지 영역들을 기본적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인간 게놈의 유전자와 비암호화 부위 모두에는 엄청난 양이 정보가 담겨 있고, 그 정보가 복잡한 유기체의 완성을 이끈다. 특정 유전자가 인지, 언어, 개성의 여러 측면에 구체적으로 연결된다는 것을 보여 주는 사례가 갈수록 늘고 있다. 심리적 특성이 다양할 때 그 다양성의 많은 부분은 유전자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함께 성장했든 떨어져 성장했든 일란성 쌍둥이는 이란성 쌍둥이보다 더 비슷하고, 생물학적 형제는 입양된 형제들보다 더 비슷하다. 개인의 기질과 성격은 생애 초기에 출현해서 일생 동안 상당히 일관되게 유지된다. 그리고 성격과 지능 모두 어린이의 가정 환경으로부터 거의 또는 어떤 영향도 받지 않는다. 한 가정에서 양육된 아이들이 비슷한 것은 대개 그들의 공통된 유전자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신경학에서는 뇌의 기본 구조가 유전적 통제 하에 발달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학습과 가소성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뇌의 체계들은 선천적으로 분화한다는 증거뿐 아니라 임의적으로 서로의 기능을 대체하지 못한다는 증거까지 보여 준다.

 

 

인간의 조건에서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사회 구성원들이 무의미한 세계에서 무의미한 삶을 영위한다고 믿으면 어떤 사회도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지구가 이토록 고귀하고 훌륭한 것은 바로 그 안에서 다양한 변경, 변화, 생성 등이 끊임없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만약 어떤 변화도 없어서 지구가 광대한 모래 사막이나 벽옥의 산으로 남았거나, 대홍수가 일어났을 때 지구를 덮었던 물이 얼어붙어 거대한 얼음 덩어리로 남았다면, 내 눈에는 그저 이 우주 속에서 아무 운동도 하지 않는, 한마디로 불필요하고 존재 가치가 없는 무의미한 덩어리로만 보일 것이다. 이것은 살아 있는 동물과 죽은 동물의 차이인데, 나는 달과 목성과 그 밖의 모든 천체들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 사람들이 완벽함, 영원성 등을 높여 찬양한다면 내 생각에 그것은 계속 살고자 하는 욕구 때문이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인간 본성에 대한 걱정은 네 가지 두려움으로 요약된다.

  • 사람들이 선천적으로 다르다면 억압과 차별이 정당화될 것이다.

  • 사람들이 선천적으로 부도덕하다면 인간 조건을 개선할 수 있다는 희망은 무익할 것이다.

  • 사람이 생물학적 법칙의 산물이라면 자유 의지는 신화가 될 것이고 더 이상 사람들에게 행동에 대한 책임을 묻지 못할 것이다.

  • 사람이 생물학적 법칙의 산물이라면 삶의 의미와 목적이 사라질 것이다.

 

 

백지에는 어떤 얼룩도 없기 때문에, 그 위에는 가장 새롭고 가장 아름다운 말들이 써질 수 있고 가장 아름다운 그림이 그려질 수 있다. - 마오쩌둥

 

 

우리의 저녁상에 음식이 차려지는 것은 정육 업자, 양조 업자, 제빵 업자의 자비심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자기 자신의 이익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인류가 아니라 자기 이익을 위해 일한다. - 애덤 스미스

 

 

사후 세계에 대한 믿음이 주는 정서적 위안도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 뇌가 죽을 때 우리의 존재가 끝난다면 삶은 목적을 상실하는가? 오히려 매 순간을 감각하며 사는 것이야말로 인생의 소중한 선물이라는 깨달음보다 인생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없을 것이다. 우리가 순간순간 "인생은 짧다" 라는 사실을 떠올림으로써 얼마나 많은 싸움을 피했고, 얼마나 많은 친구를 사귀었으며, 얼마나 많은 시간을 아꼈고, 얼마나 많은 애정을 표현했는가?

 

 

이타주의는 또한 생물들이 호의를 교환할 때 진화할 수 있다. 한 생물이 다른 생물을 돌보고, 보호하고, 지원하는 식으로 도움을 주고, 또 필요할 때에는 상대방의 도움을 받는 것이다. 이것을 호혜적 이타주의라 부른다. 당사자들이 서로를 알아보고, 반복적으로 상호 작용하고, 적은 비용으로 상대에게 큰 이익을 줄 수 있고, 제공되거나 거부된 호의를 기억하고, 그에 따라 보답을 주게끔 되어 있을 때 호혜적 이타주의가 진화할 수 있다. 호혜적 이타주의가 진화하는 이유는 협력자들이 은둔자나 염세가들보다 더 잘 살아남기 때문이다. 그들은 잉여물을 교환하고, 서로의 털에서 진드기를 잡아 주고, 서로 익사하거나 굶어 죽지 않게 해 주고, 서로의 아기를 돌봐 줌으로써 발생하는 이익을 누린다. 보답자들은 또한 호의를 받기만 하고 돌려주지 않는 사기꾼들보다 최종적으로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 사기꾼들을 알아보고 피하거나 응징하게 되기 때문이다. 호혜적 이타주의의 필요성은 왜 사회적, 도덕적 감정이 진화했는가를 설명한다. 동정과 신뢰는 사람들에게 최초의 호의를 베풀게 만든다. 감사와 충성은 호의에 보답하게 만든다. 죄 의식과 수치는 다른 사람을 해치거나 호의를 배신하지 않게 만든다. 분노와 경멸은 사기꾼을 피하거나 응징하게 만든다. 그리고 인간 사회에서는 어느 개인이 호혜를 베풀거나 사기를 치려는 성향을 조금이라도 보이면 사람들은 그것을 직접 목격하지 않고도 언어로 자세히 말할 수 있다. 사람들은 뒷말과 대중적 인정 또는 비난에 담겨 전달되는 사람들의 평판에 관심을 쏟게 되고 자기 자신의 평판에도 신경을 쓰게 되는 것이다. 협력, 우정, 동맹, 공동체는 이러한 감정과 관심에 의해 형성되고 굳어진다.

 

 

가족과 친구에 대한 우리의 감정도 이와 똑같다. 우리 마음 속에 풍부하고 강렬한 감정이 존재하는 것은 삶 속에서 그들과의 결속이 얼마나 귀중하고 깨지기 쉬운가를 보여 주는 증거이다. 간단히 말해, 고통의 가능성이 없어진다면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은 조화롭고 완벽한 행복이 아니라 의식의 결핍인 것이다.

 

 

하이트는 최근에 인간의 도덕 관념을 구성하는 감정들을 하나의 계보로 짰다. 그가 분류한 네 가지 주요 집합은 트리버스의 호혜적 이타주의 이론과 그것을 기초로 해 협동의 진화를 실험한 컴퓨터 모델들의 실험 결과와 정확히 일치한다. 타인 비난 감정-경멸, 분로, 혐오-은 사기꾼을 처벌하게 하는 작용을 하고, 타인 칭찬 감정-감사, 고양시키는 감정, 도덕적 경외, 감동-은 이타주의자에게 보상하는 기능을 한다. 타인 고통 감정-동정, 공감, 연민-은 어려운 수혜자를 도와 주는 기능을 하고, 자의식적 감정-죄 의식, 수치, 당혹-은 남을 속이지 않거나 속인 결과를 바로잡는 기능을 한다. 이 감정의 집합들 뒤에는 세 개의 도덕성 영역이 있는데, 각 영역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도덕적 판단의 틀을 형성한다. 자율성 윤리는 개인의 이해와 권리에 관계한다. 그것은 공평함을 기본 미덕으로 강조하며, 서양 문화권에서 비종교적 교육을 받은 사람들 사이에서 도덕성의 핵심으로 이해된다. 공동체 윤리는 집단의 사회적 관습에 관계한다. 여기에 의무, 존경, 인습에 대한 고수, 계급 조직에 대한 복종 같은 가치가 포함된다. 신성 윤리는 숭고한 청렴과 신성의 감정에 관여하며, 오염과 신성 모독의 감정과 대립된다.

 

 

'여기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 진실한 신자가 냉소적인 운영자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본다. 냉소적인 운영자는 패를 버릴 줄 안다. 반면에 진실한 신자는 끝까지 가서 기어코 세상을 무너뜨린다.' - 이안 부루마.

 

 

빈서판(영구적인 인간 본성은 없다.), 고상한 야만인(이기적 본능이나 악한 본능은 없다.), 기계 속의 유령(보다 나은 사회 제도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로운 '우리')

 

 

인간 본성에서 우리는 싸움의 세 가지 주된 요인을 발견한다. 첫째는 경쟁이고, 둘째는 자신감 결여이고, 셋째는 영광이다. 첫 번째는 인간이 이익을 위해 서로를 공격하게 만들고, 두 번째는 안전을 위해 서로를 공격하게 만들고, 세 번째는 가령 말 한마디, 미소, 견해 차이를 비롯하여, 본인이 겪는 것이든 혈연, 친구, 국가, 직업, 이름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겪는 것이든 자신을 무시하는 갖가지 사소한 이유들 때문에 서로를 공격하게 만든다. 홉스, "인간의 삶"

 

 

합리성의 개방적 측면에 대한 강조는, 마음이 조합적, 회귀적 체계라는 인지과학의 발견과 일맥 상통한다. 우리는 생각을 할 뿐 아니라, 생각에 대해 생각하고, 생각에 대한 생각에 대해 생각한다. 우리가 이 장에서 살펴보았던 갈등 해결의 진보적 방법들 - 법치에 복종하는 것, 양편이 체면을 잃지 않고 양보하는 방법을 찾는 것, 자기 기만의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 자신의 이익과 타인의 이익을 평등한 눈으로 보는 것-은 조합적, 회귀적 사고 능력에 달려 있다. 많은 지식인들이 폭력의 진화론적 논리를 외면한다.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그것을 수용하거나 승인하는 것과 동일하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대신 그들은 고상한 야만인이 던져 주는 안락한 망상을 추구하면서, 폭력이 학습의 임의적 산물이거나 외부에서 침투한 병원균이라고 믿어왔다. 그러나 폭력의 논리를 거부하면 폭력이 얼마나 쉽게 고개를 드는지를 잊기 쉽고, 폭력에 불을 붙이는 마음의 기능들을 무시하면 그 불을 끌 수 있는 마음의 기능들을 간과하기 쉽다. 우리의 많은 관심사들처럼 폭력의 경우에도 문제는 인간 본성에 있고, 해결책도 인간 본성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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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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