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약자를 이해하고 보호하기 위해 양심과 용기가 필요하다.
[본문발췌]
두려움 그 자체 말고는 아무것도 두려워할 것이 없다. - 프랭클린 루즈벨트
죽은 뒤의 세계를 지나치게 걱정하느라고 지금 이 세상에서 사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어.
수백 년 동안 졌다고 해서 시작하기도 전에 이기려는 노력도 하지 말아야 할 까닭은 없으니까.
앵무새들은 인간을 위해 노래를 불러 줄 뿐이지. 사람들의 채소밭에서 뭘 따 먹지도 않고, 옥수수 창고에 둥지를 틀지도 않고, 우리를 위해 마음을 열어 놓고 노래를 부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는 게 없어. 그래서 앵무새를 죽이는 건 죄가 되는 거야.
난 다른 사람들과 같이 살아가기 전에 나 자신과 같이 살아야만 해. 다수결에 따르지 않는 것이 한 가지 있다면 그건 바로 한 인간의 양심이다.
손에 총을 쥐고 있는 사람이 용기 있다는 생각 말고 진정한 용기가 무엇인지 말이다. 시작도 하기 전에 패배한 것을 깨닫고 있으면서도 어쨌든 시작하고, 그것이 무엇이든 끝까지 해내는 것이 바로 용기 있는 모습이란다. 승리하기란 아주 힘든 일이지만 때론 승리할 때도 있는 법이거든.
아직 저 애의 양심은 세상 물정에 물들지 않았어. 하지만 조금만 나이를 먹어 봐. 그러면 저 앤 구역질을 느끼지도 않고 울지도 않을 거야. 어쩌면 세상에서 옳지 않은 일을 봐도 울먹이지 않을 거야. 앞으로 몇 년만 나이를 더 먹어봐, 그렇게 될 테니
"그래, 맞아. 광대가 되는 거야. 웃는 것 말고는 사람들에 대해 이 세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을 거야. 그래서 서커스단에 들어가 허파가 터지도록 실컷 웃을 거야." 딜이 말했습니다. "딜, 넌 지금 반대로 알고 있는 거야. 광대들은 언제나 슬퍼. 그들을 보고 웃는 건 관객이란 말이야."
"그럼 난 새로운 종류의 광대가 될래. 무대 한가운데 서서 관객들을 쳐다보고 웃을 거야."
아냐. 누구나 다 배워서 아는 거야. 날 때부터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어. 월터도 자기 나름대로 똑똑한 거야. 집에 남아서 아빠 일을 도와줘야 하기 때문에 종종 뒤처질 뿐이지. 그 애한테 잘못된 것은 없어. 내 생각으로는 오직 한 종류의 인간만이 있을 뿐이야. 그냥 사람들 말이지. ...
오직 한 종류의 인간만 있다면, 왜 서로 사이좋게 지내지 못할까? 그들이 서로 비슷하다면, 왜 그렇게 서로를 경멸하는 거지? 스카웃, 이제 뭔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왜 부 래들리가 지금까지 내내 집 안에만 틀어박혀 지내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아..... 그건 말이야, 아저씨가 집 안에 있고 싶어 하기 때문이야.
스카웃이 고통과 좌절을 겪으며 얻는 삶의 교훈이란 과연 무엇인가? 한마디로 그것은 남에 대한 배려와 관용 그리고 사랑이다. 스카웃은 말하자면 <타자>, 즉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게 된다. 자신의 입장에서 남을 생각하고 판단하기보다는 이와 반대로 남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판단해야 한다는 사실을 배운다. 이 작품의 마지막 장면에서 스카웃은 그토록 무서워하던 래들리 집 현관에 서서 자신의 집과 이웃을 바라다본다. 늘 자신의 집에서 래들리 집을 바라보던 태도에서, 이제는 방향을 완전히 바꾸어 래들리 집에서 자신의 집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달라진 입장에서 스카웃은 비로소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보지 않고서는 그 사람을 정말로 이해할 수 없다>라는 아버지의 말의 참다운 의미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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