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잠깐동안 머물다 스쳐지나가기에 온 힘으로 현재를 살아야 한다.
자신의 삶을 가득 채우지 못한 사람은 불행하다.
법정 스님의 말씀처럼....
"살 때는 삶에 철저하게 그 전부를 살아야 하고
죽을 때는 죽음에 철저해 그 전부가 죽어야 한다.
삶에 철저할 때는 털끝만치도 죽음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또한 일단 죽게 되면 조금도 삶에 미련을 두어서는 안 된다.
사는 것도 내 자신의 일이고
죽음 또한 내 자신의 일이니
살 때는 철저히 살고
죽을 때 또한 철저히 죽을 수 있어야 한다.
꽃은 필 때도 아름다워야 하지만,
질 때도 아름다워야 한다.
모란처럼 뚝뚝 무너져 내릴 수 있는 게
얼마나 산뜻한 낙화인가.
새잎이 파랗게 돋아나도록 질 줄 모르고 매달려 있는 꽃은
필 때만큼 아름답지가 않다.
생과 사를 물을 것 없이
그때그때의 자기 삶에 최선을 다하는 것.
이것이 불교의 생사관이다.
우리가 순간순간 산다는 것은
한편으론 순간순간 죽어 간다는 소식이다.
현자는 삶에 대해서 생각하지
죽음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본문발췌]
<지상의 양식>
우리의 나아갈 길들이 확실치 않아서 우리는 일생동안 괴로워했다. 그대에게 뭐라고 말해야 좋을까? 생각해보면 선택이란 어떤 것이든 무서운 것이다. 의무를 인도해 주지 않는 자유란 무서운 길이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낯설기만 한 고장에서 하나의 길을 택해야 하는 것이니. 사람은 저마다 거기서 '자신만의' 발견을 하게 되는 것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그 발견이란 오직 자기 자신만을 위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대의 시선 속에 있을 뿐 바라보이는 사물 속에 있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빛을 발광체와 분리할 수 없듯이 우리의 행위들은 우리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그 행위들이 우리를 소진시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또한 우리의 찬란함을 이루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영혼이 어떤 가치를 지니는 것은 그것이 다른 무엇보다 더 뜨겁게 불탔기 때문이다.
어떤 인간에게나 기이한 가능성들이 있는 것이니, 과거가 벌써 현재 속에 하나의 역사를 투영하지 않는다면 현재는 모든 미래로 충만할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하나밖에 없는 과거가 하나밖에 없는 미래를 제시하고 - 공간위에 찍힌 무한한 점처럼 우리 앞에 하나밖에 없는 미래를 투사하는 것이다.
사람은 오직 자기가 이해할 수 있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고 자신할 수 있다. 이해한다는 것은 곧 스스로 행할 수 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최대한으로 많은 인간성을 수용할 것. 이것이야말로 훌륭한 공식이다. 삶의 다양한 형태들이여, 너희 모두가 다 나에게는 아름답게 보였다.
저녁을 바라볼 때는 마치 하루가 거기서 죽어가듯이 바라보라. 그리고 아침을 바라볼 때는 마치 만물이 거기서 태어나듯이 바라보라. 그대의 눈에 비치는 것이 순간마다 새롭기를. 현자란 모든 것에 경탄하는 자이다.
우리는 언제 모든 책들을 다 불태워 버리게 될 것인가! 바닷가의 모래가 부드럽다는 것을 책에서 읽기만 하면 다 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내 맨발로 그것을 느끼고 싶은 것이다. 감각으로 먼저 느껴보지 못한 일체의 지식이 내겐 무용할 뿐이다.
모든 행복은 우연히 마주치는 것이어서 그대가 길을 가다가 만나는 거지처럼 순간마다 그대 앞에 나타난다는 것을 어찌하여 깨닫지 못했단 말인가. 그대가 꿈꾸던 행복이 '그런 것'이 아니었다고 해서 그대의 행복은 사라져버렸다고 생각한다면 - 그리고 오직 그대의 원칙과 소망에 일치하는 행복만을 인정한다면 그대에게 불행이 있으리라.
내일의 꿈은 하나의 기쁨이다. 그러나 내일의 기쁨은 그와는 다른 또 하나의 기쁨인 것이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자기가 품었던 꿈과 비슷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왜냐하면 사물마다 제각기 '다르게' 가치가 있는 것이니까.
"잘됐군." 하고 말할 수 없는 경우에는 "할 수 없지." 하고 말하라. 거기에 행복의 커다란 약속이 있다.
행복의 순간들을 신이 내려주신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 그럼 다른 순간들은 신이 아닌 누가 주었다는 말인가. 나타나엘이여, 신과 그대의 행복을 구별하지 말라. 만약에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신을 원망할 수도 없는 것처럼 나를 만들어주셨다고 신에게 감사할 수도 없는 일이다.
만사에는 때가 있기 마련이다, 사물은 어느 것이나 제 필요에서 태어나는 것이므로, 말하자면 외부로 나타난 하나의 필요에 불과하다.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하며 사색하는 사람, 그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강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각자의 불행은 항상 저마다 자기 나름으로 바라보며, 자기가 보는 것을 자기에게 종속시키는 데에서 오는 것이다. 사물들 하나하나는 우리에게가 아니라 그 사물 자체에게 중요한 것이다. 그대의 눈은 바라보이는 사물 바로 그것이어야 할 것이다.
시간이 달아나 버리는 것이 나는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선택을 해야만 한다는 것이 나에게는 언제나 견딜 수 없는 일이었다. 선택이 내게는 고르는 것이라기보다는 고르지 않은 걸 버리는 것으로만 보였다. 시간이 좁다는 것과 시간이 하나의 차원밖에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끔찍한 마음으로 깨달았던 것이다. 폭이 널다란 어떤 것이었으면 하고 바랐지만 그것은 한낱 선(線)에 지나지 않았고, 나의 욕망들은 그 선 위를 달리면서 어쩔 수 없이 서로 짓밟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나는 '이것' 아니면 '저것' 밖에 할 수 없었다. 만약에 이것을 하면 곧 저것이 아쉬워져서 번번이 애타는 마음으로 두 팔을 벌린 채 아무것도 할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 잡으려고 팔을 웅크리면 무엇이든 '하나' 밖에 잡히지 않을까 봐 겁이 났던 것이다. 그때부터 다른 많은 공부를 단념할 결심이 서질 않았기 때문에 무슨 공부든 한 가지를 오래 계속하지 못하는 것이 나의 일생의 과오가 되고 말았다. 무엇이든지 그러한 대가를 치러야만 살 수 있다는 것은 너무 값비싸게 생각되었고, 이론으로 나의 고민은 해결될 수 없었다. 휘황찬란한 것들이 가득한 시장에 들어섰지만 쓸 수 있는 돈이라고는 (누구의 덕분인가?) 너무나 적은 액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쓸 수 있는 돈! 선택이란 영원히, 언제까지나,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해 버리는 걸 의미했다. 수많은 그 '다른 것들'이 어떠한 하나보다도 여전히 더 좋아보였다.
사실 지상에서의 '소유'가 어느 것이든 내게 반감만 자아내는 까닭은 바로 거기에 있었다. 그것밖에 소유할 수 없게 된다는 사실이 나는 두려운 것이다.
책들은 나에게, 모든 자유란 잠정적인 것임을, 자유는 자기의 노예 상태, 아니면 적어도 자기 헌신을 선택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가르쳐주었다. 마치 엉겅퀴 씨가 뿌리를 내릴 기름진 땅을 찾아서 날며 헤매는 것과 같이 - 자유는 한곳에 고정되어서야 비로소 꽃을 피우는 것이라고 가르쳐주었다. 그러나 이론이 사람들을 인도할 수는 없는 것이며, 어느 이론에나 반대 이론이 성립할 수 있고 그것을 발견하기만 하면 된다는 사실 또한 학교 교실에서 배워 알고 있었기에, 나는 먼 길을 걸으며 그러한 반대 이론을 찾아보려고 애쓰기도 했다.
우리 마음의 젊은이여! 그 어떤 영광도 너희만 한 가치는 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모든 것을 달콤한 기분으로 갈망하는 우리는 아무리 욕망을 지치게 하려고 해도 소용없었다. 우리는 생각 하나하나가 모두 열정이었다. 느낀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그지없이 유별나게 톡 쏘는 맛을 가진 것이었다. 우리는 아름다운 미래를 기다리며 찬란한 청춘을 소모하였다.
우리에게 생(生)은
야성적인 것, 돌연한 맛
그리고 나는 여기서 행복이
죽음 위에 피는 꽃과 같음을 사랑한다.
빛을 발광체와 분리할 수 없듯이 우리의 행위들은 우리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그 행위들이 우리를 찬란하게 빛내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오직 우리들 자신의 소진에 의하여 가능한 것이다.
아! 청춘 - 사람이 그것을 가지는 것은 한때뿐, 나머지 시간은 그것을 회상하는 것.
<새로운 양식>
인간이 행복해지기 위하여 태어났음을 물론 자연의 모든 것이 가르쳐주고 있거늘. 식물이 싹 트게 하고 벌집에 꿀을 채우고 인간의, 마음에 선의를 채워놓는 것은 모두가 쾌락을 향한 노력인 것이다.
변덕스러운 영혼이여, 서둘러라! 가장 아름다운 꽃은 또한 가장 빨리 시든다는 사실을 알라. 그 꽃의, 향기를 어서 빨리 허리 굽혀 맡아보라. 영원불멸인 것에는 향기가 없는 법.
매일 나로 하여금 신을 발견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감사하는 내 마음이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나는 존재한다는 사실에 놀라고 끊임없이 경탄을 금치 못한다. 고통의 끝이 가져다주는 기쁨은 왜 기쁨의 끝에 오는 아픔보다 더 크지 못한 것인가? 그 까닭은, 슬플 때는 그 슬픔 때문에 누리지 못하는 행복을 생각하지만, 행복에 잠겨 있을 때는 그 행복 덕분에 면하게 되는 고통들을 조금도 머리에 떠올리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대에게 행복하다는 것이 당연하게만 느껴지기 때문인 것이다.
각자에게는 자신의 감각과 마음이 감당할 수 있는 정도에 따라 행복의 양이 할당되어 있는 것. 아무리 소량이라도 그것을 빼앗기면 그것을 도둑맞은 것이 된다. 내가 존재하기 전에는 내가 생명을 요구했는지 어떤지 알 수 없지만 내가 태어나 살고 있는 지금은 모든 것이 나의 몫으로 주어진 것이다. 그러나 감사하는 마음은 너무나도 감미롭고 사랑한다는 것이 내겐 너무나도 당연하게 감미로워서 지나가는 바람의 조그만 애무도 내 마음속에 감사하는 마음을 불러일으켜 준다. 감사하는 마음의 필요성은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라고 가르쳐준다.
저마다의 긍정은 자기희생 속에서 완결된다. 그대가 자신 속에서 포기하는 모든 것은 생명을 가지게 될 것이다. 자기 긍정을 모색하는 모든 것은 스스로를 부정한다. 자기를 버리는 모든 것은 자기를 긍정한다. 완전한 소유는 오직 증여에 의하여 비로소 입증된다. 그대가 줄 줄 모르는 것이면 무엇이나 다 그대를 구속한다. 희생이 없는 부활은 없다. 기꺼이 바치는 일 없이는 아무것도 꽃피지 않는다. 그대가 자신 속에서 보호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위축된다. 무엇을 보고 그대는 과일이 익었다는 것을 아는가? - 과일이 나뭇가지를 떠나는 것을 보고 아는 것이다. 모든 것은 증여를 위하여 익고 기꺼이 줌으로써 완성된다. 미덕은 어느 것이나 다 자기희생에 의하여 비로소 완성된다. 과일이 더할 수 없는 단맛은 오직 싹이 트는 것을 지향할 따름이다.
가장 중요한 발명들은 아직 이루어지지 못한 채 남아 있다는 바로 그 시점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발명들도 다만 극히 간단한 착상의 해명일 뿐이지요. 자연의 모든 비밀들은 어느 것이나 다 인간의 눈에 발견되지 않은 채 매일같이 우리의 시선에 비치지만 우리는 그것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훗날의 사람들은 태양으로부터 빛과 열을 채취하여 활용하게 될 때 지금처럼 땅속에서 힘들게 빛과 연료를 채굴하여 뒤에 올 후손들의 걱정은 할 줄도 모르고 그저 낭비만 하고 있는 우리를 동정하게 될 것입니다. 그저 사업적인 시각에서 절약하는 것밖에 모르는 인간이 언제쯤이면 지구상의 온도가 가장 높은 지점들에서 불필요한 여분의 열을 끌어다가 사용하는 법을 발견하게 될까요? 그런 날이 오겠지요. 그런 날이 올 겁니다. 지구의 열이 식기 시작하면 그런 일에 성공을 거두게 될 테지요. 바로 그때쯤이면 석탄도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할 테니까요.
이 땅 위에는 너무나 많은 가난과 비탄과 어려움과 끔찍한 일들이 가득해서 행복한 사람은 자기의 행복을 부끄러워하지 않고는 행복을 생각할 수 없다. 그러나 행복해질 수 없는 자는 남의 행복을 위하여 그 어떤 일도 할 수 없다. 나는 나 자신 속에 행복해야 할 절박한 의무를 느낀다. 그러나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남에게서 빼앗아야 비로소 얻을 수 있는 행복은 가증스럽게 여겨질 뿐이다.
나의 행복은 남들의 행복을 증가시키는 데 있다. 나 자신이 행복하려면 만인이 행복해질 필요가 있다.
언어는 실제 삶에서 보다 더 많은 논리를 우리에게 요구하는 경우가 잦고, 또 우리들 내면의 가장 귀중한 것은 표현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는 부분이니 말이다.
오! 우리가 하지 못한 모든 것, 그러나 우리가 할 수도 있었을 모든 것.... 하고 이승을 떠나려는 순간 그들은 생각할 것이다. 우리가 했어야 마땅한 모든 것, 그러나 우리가 하지 못한 모든 것! 체면 걱정 때문에, 기회를 기다리려다가, 게을러서, 그리고 "제길! 시간이 좀먹나." 하는 생각만 줄곧 하고 있다가.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매일 매일, 두 번 다시 잡을 수 없을 때 순간을 놓쳐버렸기 때문에. 결심, 노력, 포옹을 뒤로 미루었기 때문에... 지나가는 시간은 지나가 버리고 만다. 오! 뒤에 올 그대는 보다 민첩해져서 순간을 놓치지 말라! 하고 그대들은 생각할 것이다.
남에게 우스꽝스럽게 보이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우리는 최악의 비겁한 짓들을 하게 된다. 얼마나 많은 청년들이 용기로 충만해 있다고 자신하다가 그들의 굳은 믿음이 한갓 '유토피아'라는 말 한마디와 양식 있는 사람들의 눈에 헛된 꿈에 팔린 사람으로 비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갑자기 기가 꺽이고 말았던가. 마치 인류의 모든 위대한 발전이 실현된 유토피아에 힘입은 것이 아닌 것처럼! 마치 내일의 현실은 어제와 오늘의 유토피아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 아닌 것처럼 - 만약 미래가 과거의 단순한 반복(그것이야말로 나에게서 삶의 기쁨을 송두리째 다 앗아갈 가능성이 가장 큰 이유가 되겠지만)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렇다, 발전이 가능하다는 생각이 없다면 내게 삶이란 더 이상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이다 - 그래서 나의 소설 <좁은 문>에서 알리사의 입을 통해 "제 아무리 행복한 것일지라도 발전이 없는 상태란 나로서는 바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발전이 없는 기쁨이라면 경멸할 것입니다."라고 한 말은 바로 내 마음의 표현이다.
변화시켜야 할 것은 이 세계뿐만이 아니라 인간도 마찬가지다. 그 새로운 인간이 어디서 솟아날 것인가? 분명 밖에서 솟아나지는 않을 것이다. 동지여, 그대 자신 속에서 그를 발견해 내도록 하라. 그리하여 광석에서 찌꺼기가 없는 순수한 금속을 추출해 내듯이 그대에게 대망의 새로운 인간을 요구하라. 그 새로운 인간을 그대 자신에게서 얻어내라. 대담하게 그대 자신이 되라. 적당히 넘어가지 말라. 저마다의 존재 속에는 놀라운 가능성들이 잠재해 있다. 그대의 힘과 그대의 젊음을 굳게 믿어라.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다짐할 줄 알아야 한다. "오로지 나 자신에 달린 일이다."라고.
죽음으로 인해서 우리가 갈라지게 되면 그것은 이미 그 뚜렷한 윤곽과 현존과 현실성을 잃어버린 것이야. 너무나도 색채가 흐릿해져 버린 세계여서 그걸 버리고 떠난다는 것은 더 이상 큰 고통이 아니게 되고 더 이상 아쉬울 것이 없어진다네. 그래서 나는 죽는다는 게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 따지고 보면 누구나 다 죽게 되는 것이니까. 결국 그건 길들여야 할 한갓 습관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해. 사람은 단 한 번만 죽은 것이긴 하지만. 그렇지만 자신의 삶을 가득 채우지 못한 사람에게 죽음이란 끔찍한 거야. 그런 사람에게 종교는 때를 만났다는 듯이 이렇게 말하지. "걱정하지 마라. 진짜는 저쪽 세상에서 시작인거야. 넌 거기 가서 보상을 받게 돼." 그러나 살아야 할 곳은 바로 여기 '이승'인 것이다.
고통이란 인간의 발명품이라는 것, 자연 속에서는 모든 것이 그것을 피하도록 되어 있어서 인간이 그것을 발명해 내지만 않는다면 고통은 별것 아닌 것으로 축소될 수 있다.
동물은 오직 현재에만 살고 있어서 후회, 회한과 같이 과거의 재현이나 미래에 대한 두려움 속에 살고 있는 우리 인간의 수많은 상상의 고통들은 느끼지 않는다.
인간을 포함하여 자연계 전체에서 존재의 기쁨이 고통보다 훨씬 더 우선하는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에게 와서 정지되고 만다. 그것도 인간의 잘못 때문에. 인간이 좀 덜 무모할 경우 전쟁으로 야기되는 고통들을 면할 수 있었고, 남에게 좀 덜 잔인하게 굴 경우, 가장 많은 경우인, 빈곤으로 야기되는 고통들을 면할 수 있었다. 이것은 결코 가공적인 유토피아가 아니라 우리 인간들의 고통 대부분은 결코 숙명적인 것도 필연적인 것도 아니며 다만 우리들 자신 탓으로 생긴 것일 뿐이라는 단순한 확인이다. 우리가 피해 갈 수 없는 고통들의 경우에도, 우리가 여러 가지 병에 걸릴 수 있지만 우리에게는 또한 약이라는 것이 있는 것이다. 나는 어느 면으로 보나, 인류가 보다 더 기운차고 건전하고, 그리하여 보다 더 즐거울 수 있으며,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거의 대부분의 고통은 그 책임이 우리 자신에게 있다고 믿는 바이다.
만인의 행복을 증대시키는 것을 그대의 행복으로 삼아라. 일하고 투쟁하며 그대가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면 그 어느 것도 나쁘게 받아들이지 말라. 모든 것이 자기가 하기에 달렸다는 것을 끊임없이 마음에 새겨라 비겁하지 않고서야 인간이 하기에 달려 있는 모든 악의 편을 들 수는 없는 법. 예지가 체념 속에 있다고 단 한 번이라도 생각한 적이 있거든 다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도록 하라.
동지여, 사람들이 그대에게 제안하는 바대로의 삶을 받아들이지 말라. 삶이 더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항상 굳게 믿어라. 그대의 삶도, 다른 사람들의 삶도. 이승의 삶을 위안해주고 이 삶의 가난을 받아들이도록 도와주는 어떤 다른 삶, 미래의 삶이 아니다. 받아들이지 말라. 삶에서 거의 대부분의 고통은 신의 책임이 아니라 인간들의 책임이라는 사실을 그대가 깨닫기 시작하는 날부터 그대는 그 고통들의 편을 더 이상 들지 않게 될 것이다. 우상들에게 제물을 바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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