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경제적 가치, 시장논리로 세상이 모두 설명되거나 작동하지 않는다.

 

어떤 이는 남들이 규정해 놓은 가치와 꿈을 쫒아 사회가 만들어 놓은 매트릭스에 갖혀 개인의 삶의 가치와 꿈을 돌아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어떤 이는 가난, 질병, 그리고 환경적 이유 탓에 삶의 가치와 꿈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어떤 이는 세상의 중심에 서 있다는 착각에 포장된 삶의 가치와 꿈으로 위안을 삼기도 한다.

 

무엇이 삶의 가치를 결정하는가?
내 인생에 어떤 삶의 가치를 부여할 것인가?

 

 

[본문발췌]

 

 

시장논리는 그 나름의 방식으로 공공생활에서 도덕적 논쟁을 결여시킨다.

시장이 지닌 매력 중 하나는 스스로 만족하는 선택에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장을 포용하면서 도덕적/정신적 논쟁을 꺼리는 태도 때문에 우리는 무거운 대가를 치르고 있다.

 

 

Gary Becker "인간행동의 경제학적 접근, The Economic Approach to Human Behavior"에서 경제학이 물적 재화의 분배를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구식 개념을 거부하고, 인간행동에 경제학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의 핵심으로 "사람들은 어떤 활동을 하든지 자기 행복을 극대화할 목적으로 행동한다"는 경제학이 단순히 물적 재화의 생산과 소비를 파악하는 통찰력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인간행동을 설명하는 과학이라고 주장한다.

 

 

벌금과 요금의 차이는 무엇일까?

벌금은 도덕적으로 승인 받지 못하는 행동에 대한 비용이고 요금은 도덕적 판단이 배제된 단순한 가격이다.

벌금과 요금, 기타 금전적 인센티브가 규범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확실하게 예측할 수 없고 상황마다 다르다. 요점은 시장이 특정 규범, 즉 거래 재화의 가치를 평가하는 방식을 반영하고 조장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재화를 상품화할지 말지 결정할 때는 효율성과 분배 정의 이상의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 또한 시장 규범이 비시장 규범을 밀어낼 것인지 물어봐야 하고, 만약 그러하다면 그것이 우려할 만한 상실인지도 판단해야 한다.

시장과 시장지향적 사고가 건강, 교육, 출산, 난민정책, 환경보호 등 전통적으로 비시장 규범의 지배를 받았던 삶의 영역으로 영향력을 뻗어가면서 이러한 딜레마가 더욱 자주 발생한다.

 

 

도덕적 논리가 없이는 시장논리도 불완전하다.

 

 

시장논리가 물질 재화의 영역을 넘어서는 경우에, 사람들의 선호에 담긴 도덕적 가치에 대해 고려하지 않은 채, 사회적 효용을 맹목적으로 극대화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도덕적으로 거래'해야 한다.

시장의 팽창으로 시장논리와 도덕논리, 세상을 설명하는 논리와 세상을 향상시키는 논리를 구별하기가 복잡해지는 이유는 또 있다. 경제학의 중심 원리 중 하나는 가격 효과다. 가격이 올라가면 사람들은 재화의 구입량을 줄이고, 가격이 내려가면 재화 구입량을 늘린다. 이러한 원칙은 일반적인 상품 시장에 대해 논할 때에는 신뢰할 만하다. 하지만 어린이집에 맡겨놓은 아이를 제시간에 데리러 오는 사례처럼 비시장 규범의 지배를 받는 사회적 관행에 가격 효과 원칙이 적용될 때에는 신뢰성이 떨어진다. 벌금이 없다가 아이를 늦게 찾으러 올 때의 가격이 올라가자, 오히려 어린이집에 늦게 도착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러한 결과는 일반적인 가격 효과를 거스른다. 하지만 재화를 상품화하면 그 의미가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이해할 만하다. 아이를 늦게 찾으러 오는 행위에 가격을 부과하니 규범이 바뀌었다. 제 시간에 어린이집에 도착하는 것이 교사에게 불편을 끼치지 않기 위한 도덕적 의무로 여겨졌지만, 이제 부모들은 이를 시장논리로 이해해서 어린이집에 늦게 도착해도 아이를 좀 오랫동안 맡길 수 있는 서비스에 대한 비용을 교사에게 지불하면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인센티브의 의도가 역풍을 맞은 것이다.

 

 

시장논리를 출산, 육아, 교육, 건강, 범죄처벌, 이민정책, 환경보호 같은 문제에 적용하면, 모든 사람의 선호가 똑같이 가치 있다고 추측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처럼 도덕적 책임이 따르는 영역에서는 재화의 가치를 평가하는 어떤 방식이 다른 방식보다 더 수준 높고 더 적절할 수 있다.

 

 

상품화 효과(commercialization effect), 시장의 비시장 규범에 대한 잠식효과를 강조 (프레드 허시)

상품화 효과는 비공식적 교환, 상호 의무, 이타주의나 사랑, 봉사정신이나 의무감 같은 기준보다는 대부분 상업적 조건에만 의존해서 제품의 성질이나 제품의 공급활동에 미치는 영향이다. 시장 인센티브와 메커니즘을 도입하면 사람들의 태도를 바꾸고 비시장가치가 밀려날 가능성이 있다.

 

 

어떤 일을 해주는 대가로 돈을 받으면, 특히 요청 받은 일이 좋은 일일 경우에는, 차라리 무료로 해달라고 요청받을 때보다 노력을 기울이지 않을 수 있다. -   행동주의 경제학자 댄 에리얼리(Dan Ariely)

 

 

"우리는 정당하게 행동함으로써 정당해지고, 절제함으로써 절제하는 사람이 되고, 용감하게 행동함으로써 용감해 진다" - 아리스토텔레스

 

이타주의, 관용, 결속, 시민 정신은 사용할수록 고갈되는 상품이 아니다. 오히려 운동하면 발달하고 더욱 강해지는 근육에 가깝다.

 

시장 지향 사회의 결함 중 하나는 이러한 미덕이 쇠약해지게 방치하는 것이다. 우리의 공공 삶을 회복하려면 좀 더 부지런히 미덕을 행사해야 한다.

 

 

학교에 범람하는 상업화는 두 가지 면에서 부패했다. 

1) 기업의 후원으로 제작된 교육 자료는 편견과 왜곡, 피상적인 내용으로 가득하다. 

2) 기업이 객과적인 자료를 제공한다 해도 상업적 광고는 학교의 목적에 어긋나기 때문에 여전히 유해하다.

 

광고는 사람들에 무언가를 원하고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라고 부추긴다. 하지만 교육은 자신의 욕구를 비판적으로 돌아본 후에 욕구를 자제하거나 향상시키라고 가르친다. 광고의 목적은 소비자를 끌어들이는 것인 반면. 공립학교의 목적은 시민을 양성하는 것이다.

 

 

가정생활, 우정, 성, 출산 , 건강, 교육, 자연, 예술, 시민정신, 스포츠 등 시장이 침입해온 많은 영역에 어떤 규범이 합당한지를 놓고 서로 의견이 다르다. 그러나 시장과 상업이 재화의 성질을 바꾸는 상황을 목격했다면 시장에 속한 영역은 무엇이고 시장에 속하지 않은 영역은 무엇인지 의문을 던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재화의 의미와 목적, 재화를 지배해야 하는 가치를 놓고 깊이 사고하지 않고서는 이러한 질문에 대답할 수 없다. 그러다 보면 불가피하게 좋은 삶에 상충되는 개념에 관해 깊이 생각하기 마련이다. 이는 우리가 가끔은 발을 들여놓기를 두려워하는 영역이다. 우리는 반대에 부딪힐까봐 두려워서 자신의 도덕적, 정신적 확신을 공공의 장에 내보이기를 두려워한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에 맞서지 않고 뒷걸음질 친다고 해서 문제가 미해결 상태로 머물러 있지는 않는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시장이 우리 대신 결정을 내리도록 허용하게 되는 셈이다. 시장지상주의 시대는 공공 담론에 도덕적, 정신적 실체가 상당히 부족했던 시대와 일치한다. 시장을 제자리에 놓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우리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회 관행과 재화의 의미에 관해 솔직하게 공개적으로 숙고하는 것이다.

 

 

 

<해제>, 김선욱

 

샌델 사상의 철학적 배경 : 정의 중심의 정치철학과 행복 중심의 정치철학의 종합

 

행복 중심의 정치 철학은 '아리스토텔레스 - 헤겔 - 한스 게오르크 가다머 - 찰스 테일러'로 이어진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인간이 행복을 추구한다고 생각했고, 행복을 어떻게 이룰 것인지가 윤리와 정치의 목표라고 주장. 이때 말하는 행복은 오늘날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심리적 만족감과는 다르다. 그리스어 '유다이모니아(eudamonia)'는 인간의 삶이 가진 내적인 목표를 충실히 실현한 경지로 행복이란 만개한 꽃과 같이 충실하고 온전한 삶의 모습을 일컫는 객관적 성격의 개념이다.

행복한 삶이란 각자가 가진 탁월성을 이룰 때 가능해진다. 개인에게 좋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숙고는 그의 개인적 역량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각각의 삶의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적절하고 올바른 판단, 그리고 그가 속하게 되는 공동체의 가치관 등과 밀접히 ㅇ녀결된다. 이 모든 것은 덕을 행하는 인격 형성의 문제로 나아간다. 이러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구조 가운데 가장 중요하게 작용하는 개념이 '좋음(the good)'이라는 개념이다. 무엇이 좋은 것인가, 개인과 공동체에 좋은 것이 무엇인가가 마땅히 행해야 할 바의  내용을 가름하는 잣대가 된다.

 

헤겔은 개인과 공동체가 가진 특수성이 보편성을 획득하는 과정을 '정신의 변증법적 자기 전개'의 철학을 통해 다소 형이상학적 방식으로 설명한다. 발전과 진보를 숭상했던 시대정신에 부합하여 헤겔은 변증법이라는 방법을 통해 진보가 어떻게 가능한지를 보여주었는데, 그 진보의 출발점은 가장 구체적인 것이고 최종점은 가장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것이었다.

 

한스 게오르크 가다머의 해석학을 통해 헤겔의 철학은 언어철학적인 옷을 입었고 찰스 테일러는 이들의 철학적 영향력 하에서 문화들 간의 대화가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한 논의를 이끌어내었다.

 

이들 모두는 구체적인 것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서로가 인정할 수 있는 보편성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연구해온 학자들.

 

한편 정의에 대한 고민은 좋음의 문제가 아니라 옳음(the right)의 문제에서 출발한다. 좋지만 옳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칸트의 도덕철학은 옳음을 통해서만 보편적인 정당성을 얻을 수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한다. 칸트에 따르면 옳음의 근거는 좋은 것이 무엇인가를 앎으로 확인되는 것이 아니며, 이성을 근거로 옳다고 승인될 수 있는 원리를 발견함으로써 확인된다. 그리고 그 원리는 자기모순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는 데 기반을 두고 있다. 흔히 정언명법으로 알려진 "네 의지의 준칙이 항상 보편적 입법에 타당하도록 행동하라"라는 것이 그 기준이 된다. 준칙이라는 말은 어떤 상황에서 하는 특정 행위를 일반화한 원리를 말한다.

 

롤스는 칸트의 의무론적 도덕철학의 정신을 정의론으로 확대한다. 모든 개별적인 원칙들을 적용하여 정의로운지의 여부를 판별할 수 있는 보편적인 정의의 원리를 발견하려고 한다. 그의 정의론의 기본적인 통찰력은 파이를 공정하게 나누는 방법과 같은 것이다. 배고픈 두 사람이 서로 많은 양의 파이를 먹고 싶어 하는데, 이들이 모두 만족할 만한 공정한 분배 방법은 무엇일까? 우선 한 사람이 파이를 나눈 뒤 다른 사람이 선택하게 한다면, 나눈 사람은 자신에게 손해가 가지 않게 최선을 다해 공정히 나눌 것이고 결국 다른 사람이 남은 것을 취하더라도 손해 볼 것이 없게 될 것이다. 이런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모든 사람이 자기에게 유리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없는 상황을 가정하고 그 상태에서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는 정의의 원칙들을 발견하려 한다고 가정해보자고 롤스는 제안한다.

롤스의 두개 정의의 원칙, 1) 자유와 관련한 원칙으로 자유는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져야 한다는 평등한 자유의 원칙, 2) 불평등이 인정될 수 있는 조건과 관련한 원칙으로, 일단 공정한 기회가 모두에게 균등하게 주어져야 하며 사회에서 최하층에 위치한 사람들에게 그들의 삶의 편익이 실질적으로 보장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샌델의 입장은 개인과 공동체의 특수성을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점에서 좋음을 강조하는 전통을 따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치와 인권의 보편성을 인정하고 공동체적 가치가 개인의 동의와 무관하게 강요될 수 있으며 개인적 자유의 가치를 존중한다는 점에서 옳음을 강조하는 전통에 닿아 있다. 달리 말하면 샌델은 자유주의가 추구하는 가치에 대해 동의하지만 자유주의자들, 특히 롤스가 말하는 가치 추구 방식에는 의문을 갖는다. 그들 방식으로 가치를 추구할 경우 과연 가치를 획득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파이의 예에서, 대상이 엄마와 아들의 경우 모성애로 한쪽을 더 크게 자를 수 있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이는 자신이 구체적으로 어떤 입장에 있고 어떤 존재인가에 따라 공정성의 원칙도 달라질 수 있지 않은가 라는 질문이 생긴다. 이처럼 개인의 처지와 상대와의 관계, 자신이 속한 공동체가 가치 있게 여겨온 원칙들, 종교적 신념에 따른 가치 등에 비추어 공정성의 내용이 달라질 수 있다면 우리는 단지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원리에 따라 공정성이 실현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더 이상 견지할 수 없게 된다. 나아가 공저성을 실현하려면 적절한 방식으로 개인과 공동체가 추구해온 가치를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된다.

센델의 입장은 한마디로 '옳음에 대한 좋음의 우선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말은 정의를 지향하는 옳음의 관점을 무시하고 좋음의 관점에서만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옳음의 이념을 완성하려면 좋음의 관점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정의를 추구할 때 행복을 도외시하는 것이 아니라 행복도 품는 방식이어야 한다는 말로 옮겨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행복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의미한 자기본성, 덕의 실현에 따른 것이며 단순한 만족감 같은 의미에서의 행복은 아니다.

 

 

"특정 재화가 시장의 대상이 되면 그 재화 속에 내재된 본래적 선이 변질된다"

돈과 시장이 개입되면 발생하는 가치 변동. 각각의 좋은 것들이 지닌 선합이 돈때문에 변질되는 현상.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은 '돈으로 사려 해서는 안 되는 것들', '돈으로 사게 해서는 안 되는 것들'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묻는다. 돈 때문에 우리의 무엇이 변했고 또 지금 변하고 있는지를 묻는다.

 

돈으로 사서는 안되는 것들에는 변하지 말아야 하는 본래적 선이 내재해 있다. 그 과정에 사람이 개입되면 본질적인 윤리의 문제가 되는 것이다.

 

샌델은 우리가 시장의 무한한 확장에 속절없이 당할 것이 아니라 이런 사안들이 공적 담론과 토론의 대상이 되어야 하며, 우리가 그것을 허용할 것인지를 공적 검토를 통해 깊이 고민하고 서로 대화하고 합의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이것은 곧 정치의 문제다. 참된 정치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적 삶의 구조를 다루는 것이며, 경제는 그러한 구조를 이루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정치는 경제를 품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매개체는 윤리다. 이 책은 경제에 윤리적 관점이 본래적으로 개입되어 있음을 분석해 보고, 시장이 개입함으로써 변질시키는 인간적 가치가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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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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