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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4.09.14 백만 광년의 고독 속에서 한 줄의 시를 읽다 - 류시화 2

삶은 영원을 기대하지만 찰나의 순간,
시는 응축된 표현 속에 수많은 감정과 진리를 경험하게 한다.
 
 
[본문발췌]
 
시의 힘은 세상과 사물에 대해 눈을 뜨게 한다. 삶의 진정한 의미는 새로운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뜨는 데 있다.
 
 
예술은 다음과 같이 이루어지는 인간 활동이다. 한 사람이 어떤 기호를 통해 자신의 삶에서 느낀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거기에 감염된 사람들은 같은 감정을 체험한다. - 톨스토이
 
 
"눈은 생의 아름다움과 삶이 짧다는 느낌을 불러일으켰고, 모든 적의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서로 닮아 있으며, 우주와 시간은 무한하지만 세계는 좁다는 것을 느끼게 했다. 그렇기 때문에 눈이 오면 사람들은 서로를 끌어안는다." - 오르한 파묵 <눈>
 
 
시인은 시간의 정원에서 사색하는 철학자이며 시는 '사라지는 것들에 바침'이다. 새로이 소생하는 것들의 경이로움, 계절과 함께 사라지는 것들의 애잔함, 끝없이 순환하는 시간, 단순하지만 미로처럼 보이는 그것들을 시인은 응시한다. 불가사의하게도 어떤 질문은 답을 찾을 수 없다. 인생이 무엇이냐고 누군가 물으면 이슬과 같은 것이라고 답하라고 잇사는 말한다.
 
 
"한 줄의 시를 쓰기 위해서는 때가 오기를 기다려야 하고 한평생, 되도록이면 오랫동안 의미와 감미를 모아야 한다. 그러면 마지막에 열 줄의 훌륭한 시를 쓸 수 있을 것이다. 새들이 어떻게 나는지 느껴야 하며, 작은 꽃들이 아침에 피어날 때 어떤 몸짓을 하는지 알아야 한다. 시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감정이 아니고 경험이기 때문이다. 시는 알지 못하는 곳에 난길, 뜻밖의 만남이다." - 릴케 <말테의 수기>
 
 
인간은 '호모비아토르' 라고 하는데 '떠도는 사람'. '길 위의 사람'이라는 뜻이다. 한곳에 정착하지 않고 삶의 의미를 찾아 스스로 떠나는 존재를 가리킨다. 호모 비아토르는 길 위에 있을 때 아름답다. 꿈과 열정을 잃고 현실과 타협하며 남들과 똑같이 살아가는 삶은 비루해진다. 집을 떠나 자기 자신과 대면하는 시간을 가진 사람만이 성장해서 돌아온다. 신영복은 '부딪치는 모든 것을 배우고 만나는 모든 것과 소통하며 끝없이 변화하는 것'이 길 가는 사람의 자세라고 했다.
 
 
"자연은 결코 서두르는 법이 없다. 짧은 봄날이 마치 무한히 지속되기라도 하듯, 싹은 서두르거나 허둥대는 일없이 천천히 부풀어 오른다. 귀뚜라미의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라. 언제나 변함없는 고르디 고른 곡조의 그 울음소리는 지금의 시간을 영원으로 여기라는 충고이다." - 소로우, 자연은 순환하며 순환의 과정에 이별이란 없다.
 
 
인간의 궤적은 안에서 밖으로, 밖에서 안으로를 반복한다. 나무가 자라듯이 밖으로 성장하는 고통이 있고, 나이테처럼 안으로 응축되는 고통이 있다. 한 편이 예술 작품을 탄생시킨다는 것은 그만큼 성장했다는 의미이다. 고통을 수반하지 않는 성장은 없다.
 
 
뛰어난 하이쿠는 영원한 것과 순간적인 것을 동시에 표현한다. 어떤 것은 영원처럼 보여 아름답지만 실제로는 순간을 머무는 것이기에 그 아름다움이 절실하다. 설령 영원한 것이라 하지라도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 자신은 찰나를 살 뿐이다.
 
 
"시인은 인간의 본성을 깊이 알고, 예민한 감성을 지닌 사람이다. 그에게는 두드러진 특성이 있다. 그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마치 어떤 것을 보듯 마음을 움직인다." - 윌리엄 워즈워스
 
 
R. H. 블라이스 "하이쿠는 짧은 시 속에 섬광처럼 지나가는 삶의 진실에 대한 깨달음을 담고 있다." 롤랑 바르트는 <기호의 제국>에서 "글쓰기는 깨달음이다."라고 전제한다. 그러면서 하이쿠를 가리켜 '아무것도 말하려 하지 않는 독특한 성격의 문학'이라고 정의한다.그 뒤에 첨언하면 하이쿠는 '아무것도 말하려 하지 않으면서도 모든 것을 말하는 문학이다.'
 
 
긴 말로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쉽다. 시는 눈에 보이는 것들을 매개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여 주려는 노력이다. '시를 읽는다는 것은 그 시를 창조한 시인의 언어와 그 언어에 담긴 의미를 읽는 것만이 아니라, 독자 스스로 그 언어에 자신의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라는 말이 가장 정확하게 해당하는 장르가 하이쿠이다.
 
 
칠레 시인 빈센테 우이도브로는 <시학>에서 쓴다. '시가 열쇠가 되기를 / 수많은 문을 열 수 있기를 / 나뭇잎이 떨어지는 것은 무언가가 날아가는 것'
 
 
중국의 왕부지는 "작가는 한 가지 생각으로 쓰고, 독자는 각자의 감정에 따라 이해한다."라고 했다. 그리고 사르트르는 말했다. "창조는 독자에게서 완성된다. 예술가는 자신이 시작한 일을 완성하는 배려를 타인에게 맡겨야만 하며, 자기 자신을 작품의 본질적인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떠나는 내게 머무는 그대에게 가을이 두 개 - 시키
 
이 숯도 한때는 흰 눈이 얹힌 나무가지였겠지 - 다다토모
 
오두막의 봄 아무것도 없으나 모든 게 있다 - 소도
 
손바닥 안의 반딧불이 한 마리 그 차가운 빛 - 시키
 
외로움에 꽃을 피웠나 보다 산벚나무 - 부손
 
나의 별은 어디서 노숙하는가 은하수 - 잇사
 
날이 밝으면 반딧불이도 한낱 벌레일 뿐 - 아온
 
손바닥에서 슬프게도 불 꺼진 반딧불이여 - 교라
 
 
문을 나서면 나도 길 떠나는 사람 가을 저물녘
국화 키우는 그대는 국화의 노예여라
가엾은 민들레 꽃대가 부러져서 젖이 흐르네
재 속의 숯불 숨어 있는 내 집도 눈에 파묻혀
쇠못 같은 앙상한 팔다리에 가을 찬 바람 - 잇사
 
 
저녁 제비여 나에게는 내일도 갈 곳 없어라
새끼 참새야 저리 비켜 저리 비켜 말님 지나가신다
나무 아래 나비와 머무는 것도 전생의 인연
고향에는 부처 얼굴을 한 달팽이들
달팽이가 머리를 쳐드니 나를 닮았네 - 시키
 
 
나팔꽃 덩쿨에 두레박줄 빼앗겨 얻어 마신물
손으로 꺾는 이에게 향기를 주는 매화꽃
저 나비 무슨 꿈을 꾸길래 날개를 파닥이나
줍는 것마다 모두 다 움직인다 물 빠진 갯벌
잠자리 잡으러 오늘은 어디에서 헤매고 있니
굴러떨어지면 그저 그런 물일 뿐 잇꽃의 이슬
강물에서만 어둠이 흘러가는 반딧불이여 
가을 밝은 달 아무리 가도 가도 딴 곳의 하늘
모자 멀어져 나비가 될 때까지 그리워하네
동틀 녘이면 어제의 반딧불이 둔 곳을 잊어
썰물에 발끝으로 서 있는 나비여라
백 개의 열매 덩굴 한 줄기의 마음으로부터
보름달 뜬 밤 돌 위에 나가 우는 귀뚜라미
붉은색 바른 입술도 잊어버린 샘물이어라
어찌 되었든 바람에 맡겨 두라 마른 억새꽃
물 시원하고 반딧불이 사라져 아무도 없네
나무 뒤에 숨어 찻잎 따는 이도 듣는가 두견새 울음 - 바쇼
 
 

조만간 죽을 기색 보이지 않는 매미 소리
이 가을에는 어찌 이리 늙는가 구름 속의 새
흰 이슬의 외로운 맛을 잊지 말라
한겨울 칩거 다시 기대려 하네 이 기둥
가는 봄이여 머뭇거리며 피는 철 늦은 벚꽃 - 부손
 
 

이 세상은 지옥 위에서 하는 꽃구경이어라
첫 반딧불이 왜 되돌아가니 나야 나
가지 마 가지 마 모두 거짓 초대야 첫 반딧불이
가을 바람 속 꺽고 싶어 하던 붉은 꽃
이슬의 세상은 이슬의 세상이지만 그렇지만
손을 마구 휘둘러도 나비는 닿을 듯 닿지 않네 - 세이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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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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