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망경(梵網經)에서는 선근 인연(善根 因緣)을 심은 사람끼리 만남을 겁(劫)으로 표현하며 인연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1천겁은 한 나라에 태어난다.

2천겁은 하루 동안 길을 동행한다.

3천겁은 하룻밤을 한 집에서 잔다.

4천겁은 한 민족으로 태어난다.

5천겁은 한 동네에 태어난다.

6천겁은 하룻밤을 같이 동침을 한다.

7천겁은 부부가 된다.

8천겁은 부모와 자식이 된다

9천겁은 형제 자매가 된다.

1만겁은 스승과 제자가 된다.

 

 

[본문발췌]

 

열정이란 말에는 한 철 태양이 머물다 지나간 들판의 냄새가 있고, 이른 새벽 푸석푸석한 이마를 쓸어올리며 무언가를 끼적이는 청년의 눈빛이 스며 있고, 언제인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타고 떠날 수 있는 보너스 항공권 한 장에 들어 있는 울렁거림이 있다. 열정은 그런 것이다. 그걸 모르면 숨이 막힐 것 같은 어둠에 놓여 있는 상태가 되고, 그걸 갖지 아니하면 신발을 신지 않은 채 낯선 도시에 떨어진 그 암담함과 다르지 않다.

사랑의 열정이 그러했고 청춘의 열정이 그러했고 먼 곳을 향한 열정이 그러했듯 가지고 있는 자와 가지고 있지 않은 자가 확연히 구분되는 그런 것, 이를테면 열정은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건넌 자와 건너지 않은 자로 비유되고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강물에 몸을 던져 물살을 타고 먼 길을 떠난 자와 아직 채 강물에 발을 담그지 않은 자, 그 둘로 비유된다. 열정은 건너는 것이 아니라, 몸을 맡겨 흐르는 것이다.

 

 

청춘을 가만 두라. 흘러가는 대로. 혹은 그냥 닥치는 그대로. 청춘에 있어서만큼 사용법이란 없다. 파도처럼 닥치면 온 몸으로 받을 것이며 비갠 뒤의 푸른 하늘처럼 눈이 시리면 그냥 거기다 온 몸을 푹 담그면 그만이다. 주저하면 청춘이 아니다. 생각의 벽 안쪽에 갇혀 지내는 것도 청춘이 아니다. 괜히 자기 자신을 탓하거나 그도 아니면 남을 탓하는 것도 청춘의 임무가 아니다. 청춘은 운동장이다. 눈길 줄 데가 많은 번화가이며 마음 들떠 어쩔 줄 모르는 소풍날이다. 가끔, 나의 청춘을 돌아볼 때마다 여전히 가슴 두근거리는 이유는 아무거나 낙서를 해도 괜찮은 도화지, 그것도 끝도 없이 펼쳐진 거대한 도화지가 떠올려져서다. 누군들 그렇지 않을까. 어디서부터 어떻게 어질러야 할지를 모르는 하얀 도화지 앞에서의 두근거림이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순결한 감정이며 동시에 인생에 있어 몇 번 안 되는 기회일 테니 말이다.

 

 

"잘못하면 스텝이 엉키죠. 하지만 그대로 추면 되요. 스텝이 엉키면 그게 바로 탱고지요." - 영화, <여인의 향기>

 

 

역사가 길지 않은 믿음은 가볍다. 그 관계엔 부딪침만 있고 따분함만 있을 뿐이며 혼자인 채로 열등할 뿐이며 가벼울뿐더러 균형마저 잃는다. 심연은 깊은 못이나 바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그 한가운데 존재한다. 사람을 믿지 않으면 끝이다. 그렇게 되면 세상은 끝이고 더 이상 아름다워질 것도 이 땅위에는 없다.

 

 

상상력은 한 뼘의 사고를 한 품의 사고로 확장시키며 사람을 단단하게 한다. 상상력만으로 아픈 사람 앞에 바다를 데려다 보여 줄 수도 있으며, 힘겨운 하루하루의 창 밖에 소나무 한 그루씩을 심을 수 있다.

 

 

사방이 십오 킬로미터가 되는 널따란 돌이 있어. 그 돌을 백 년마다 한 번씩 빗자루로 쓸지. 그렇게 해서 그 돌이 다 닳아 없어지면 그게 '겁'인 거야. 근데 이 생에서 옷깃이 한 번 스치는 것도 전생에 오백 '겁'의 인연이었던 사람들이나 스칠 수 있는 거거든...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319625

반응형
Posted by 소요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