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에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가지고 있는 것을 버리거나, 크고 화려함보다 작고 소박한 것을 선택하거나, 어렵고 힘든 일에 앞장서서 나가거나, 절제와 침묵을 위해서도 용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용기에는 행동이 수반됩니다.
용기(勇氣), 명사 씩씩하고 굳센 기운. 또는 사물을 겁내지 아니하는 기개.
[비슷한 말] 용, 의기, 기백
[반대어] 비겁, 겁
(네이버 영어사전) courage, nerve, (informal) guts, (Am, inf) spunk; (용기 있는 행동) bravery
용기가 있다 have the courage
[글과 책 속에 쓰인 '용기'에 대한 다양한 표현들]
최갑수, <우리는 사랑 아니면 여행이겠지>
여행은 언제나 돈의 문제가 아니라 용기의 문제다. - 파울로 코엘료
이정우 외, <철학으로 매트릭스 읽기>
진리란 모든 것들을 품고 용납하며 사랑의 눈으로 바라봐야 보인다는 것이다. 진실을 마주하기 어려운 이유는 어쩌면 우리가 자신의 세계에 갇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로부터의 탈출은 타인을 용납하는 용기를 필요로 하며, 결국 사랑을 품을 때에야 가능하다.
김홍신, <인생사용설명서>
색안경을 쓰고 보면 세상이 검거나 푸르거나 붉을 수밖에 없습니다. 진정한 세상을 보려면 색안경을 벗어던지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김승호, <알면서도 알지 못하는 것들>
두려움은 나의 가치를 훼손할 수 있는 모든 것에 대한 공포에서 오기에 순응하고 따르며 복종하게 된다. 아직도 많은 국가들에서는 두려움을 국가 통치의 기술로 사용한다. 종교 역시 지옥 등의 공포를 팔고 있다. 회사 역시 노조에게는 공멸이란 공포를, 개인에게는 해고란 공포를 경영 기술로 이용하고 있다. 이처럼 낙오되면 죽는다는 두려움은 사람을 움직이는 거대한 힘이다. 누구도 죽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또 다른 거대한 힘이 있다. 그것은 사랑이다. 두려움이 스스로를 위한 이기심의 표상이라면 사랑은 남을 위한 이타심의 표상이다. 자신에 대한 사랑보다 남에 대한 사랑의 발현은 오히려 두려움을 이겨낸다. 내가 누군가를 진정 사랑한다면 나를 바칠 수 있기 때문이다. ... 사랑이란 외투를 입으면 두려움은 허상이란 것을 알게 된다. 용기가 두려움을 이기는 순간, 두려움은 실재하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사실 두려움이란 불확실성이 증가되고 내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발생한다. 그러나 불확실성과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 자체를 통제하겠다는 용기를 가지면 두려움은 실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사람들은 사랑하다 헤어질까봐 두려워하고 꿈에서 추락할까봐 두려워하며 비난과 조롱에 휩싸일까 두려워한다. 이 모두는 사랑과 용기만 있으면 무엇이든 헤쳐나갈 수 있다. 사는 것도 두려워할 이유가 없고 죽는 것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면 모든 것에 용기를 가질 수 있다. 두려움을 버리지 못한다면 두려움과 맞설 용기를 키우면 된다.
성공하면 추억이 되는 것이고 실패하면 경험이 될 뿐이다. 사람은 능력이 없어 실패하는 것이 아니라 용기가 없어 실패하는 것이다.
두려움을 다스릴 줄 알면 나는 내 인생의 주인이 된다. 자신감이 가득하고 걸음이 꼿꼿하며 생각과 말에 힘이 생긴다. 두려움이 다시 몰려오더라도 사랑의 힘을 믿고 당당하면 언제든 두려움과 공포를 발아래 둘 수 있다. 매일매일 성실함과 열정적인 노력을 통해 계속 나아가야 한다. 사랑과 용기는 이 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열쇠다.
한 인간으로 태어나 이 세상에 흔적을 남기길 원한다면 노을을 보기 위해 이미 해가 진 서쪽으로 달려나가서라도 바라볼 용기를 가져야 한다. 내 안의 거인은 나만 깨울 수 있다. 그 아무리 위대한 선생도 내 안에 거인이 있음을 알려줄 뿐, 그를 깨어낼 수 없다. 돈키호테는 말했다. '이룩할 수 없는 꿈을 꾸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싸워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움을 하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저 하늘의 별을 잡자.' 그렇다. 돈키호테를 따르라. 그것이 거인을 불러내는 최고의 방법이다.
왕가리 마타이, <지구를 가꾼다는 것에 대하여>
공정해지려면, 우리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것과 맞설 용기와 힘을 얻기 위해 필요한 영적 자원이 무엇인지 물어야 한다. 그것은 바로 불합리한 일이 저질러졌을 때 마음 편히 지내지 못할 정도로 높은 의식 수준을 갖는 게 아닐까. 그 의식은 우리에게 어디에도 압도당하지 않을 의지를 줄 수 있다. 우리는 강인하게 행동에 나설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점점 더 분명히 깨달을 수 있다. ... 문제가 있음을 인식하는 것 자체가 깨어나는 과정의 중요한 부분이다.
인간에게 반드시 실패를 승인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 이소룡
법인 스님, <검색의 시대, 사유의 회복>
우리는 이제 이런 것들과 용기 있게 이별해야 한다. 작지만 삶의 변화와 혁명은 일상에서 '익숙함'과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부디 익숙한 생각과 습관에서 탈출하라. 그리고 자연적이고 원초적인 것들에 눈을 돌리고 집중하라. 감각의 회복은 거기에서 시작한다. 흰 구름 걷히면 그대로가 청산이다. 오염된 생각과 습관의 힘을 걷어 내면 그대로가 생생한 감각의 꽃이 피어난다.
길은 내 삶을, 우리가 사는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결단과 노력에서 열린다. 진정한 출가는 용기 있는 '거부'에서 출발한다.
그리하여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더 많이 쌓기만 하다가 내 삶이 한번 다 꽃피지도 못하고 시들어 버리기 전에. 쓸모 있는 상품으로 '간택'되지 않고 쓸모없는 인간의 길을 '선택'하기 위해. 이제 나에게는 이것들을 가질 자유보다는 이것들로부터의 자유가 더 필요하다. 생각한 대로 말하고 말한 대로 행동하고 행동한 대로 살아내겠다는 용기를 내린다. - 2010년 3월 10일 김예슬. <김예슬 선언>,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 둔다. 아니 거부한다.'
레이 커즈와일, <마음의 탄생>
지적인 바보는 어떤 것이든 더 크고 복잡하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작고 단순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 - 아인슈타인
오구리 히로시, <수학의 언어로 세상을 본다면>
진보란 경험을 쌓는 것으로, 보다 정확한 지식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새로운 정보를 얻었을 때 이제까지의 판단을 바꿀 수 있는 용기와 유연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베이즈의 정리는 이런 사실을 우리들에게 알려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법>
끊임없이 새로운 유행과 흐름을 쫓아다니는 사람은 많은 돈을 낭비해가며 아주 긴장되고 획일적인 삶을 영위하게 된다. 그와 반대로 흐름에 휩쓸리지 않는 용기를 가진 사람은 돈을 절약하고 자주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이 규격화되고 동질화된 시대에 사치가 아니겠는가.
라 로슈푸코, <잠언과 성찰>
완벽한 용기란, 모든 사람들이 지켜 보는 가운데 할 수 있는 일을, 아무도 보고 있지 않는 데서 해치우는 것을 말한다.
빈센트 반 고흐, <영혼의 편지>
우리에게 뭔가 시도할 용기가 없다면 삶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니?
김연수, <소설가의 일>
어쩌면 우리가 원하는 그런 세계는 절대로 찾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지 못할지도 모르고, 이 병은 낫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나는 물러서지 않고 이 불안을 모두 떠안겠다. 그리고 정말 우리가 원하는 세계가 오지 않는 것인지 한 번 더 알아보겠다. 이게 현대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윤리가 아닐까. 자신의 불안을 온몸으로 껴안을 수 있는 용기, 미래에 대한 헛된 약속에 지금을 희생하지 않는 마음, 다시 말해서 성공이냐 실패냐를 떠나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태도.
어떤 사람을 둘러싼 세계에서 원인과 결과의 연결고리를 제거하면 그는 무기력해진다. 그렇다면 이건 우리 인생에 대한 은유가 아닐까. 사춘기가 지나면서 우리 인생도 조금씩 인과의 사슬에서 벗어나니까.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해서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는 건 아니라거나 착하다는 이유만으로 잘 살지는 못한다는 걸 우리는 깨달아간다. 해서 무기력은 현대인의 기본적 소양이다. 그런 무기력의 양대 산맥이 바로 현대 연애와 암 선고다. 내 뜻과 무관하게 느닷없이 찾아오는 질병과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없는 연인을 견디는 일이 현대소설의 본질이 되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결국 현대소설의 윤리는 불안을 이겨내고 타자와 공존하는 그 용기에 있는 셈이다. 이 용기는 두번째 그룹의 개들과 마찬가지의 처지이면서도, 그러니까 모두들 안 된다고 말하고, 또 자신부터가 여러 번 실패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뭐라도 해보겠다고 나설 때 비롯한다. 용기는 동사와 결합할 때만 유효하다. 제아무리 사소하다고 해도 어떤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그건 용기가 될 수 없다.
야마시타 히데코, 오노코로 신페이, <소중한 것은 모두 일상 속에 있다>
미지의 세계로 뛰어드는 것, 미지의 체험을 추구하는 것. 여기에는 당연히 용기가 필요합니다. 용기의 원천은 대체 무엇일까요? 바로 호기심입니다. 알고 싶다, 보고 싶다, 맛보고 싶다... 이런 본능과도 비슷한 욕구가 호기심입니다. 용기란 호기심, 호기심은 생명의 목소리입니다. 그러므로 호기심이 넘칠수록, 호기심으로 가득할수록, 당신은 앞으로 또 앞으로 나아가는 용기를 갖게 됩니다.
아름답게 살기 위해서는 놓아버려야 합니다. 전부 끌어안고 이것도 저것도 다 가둬두고 있으면 당신의 존재는 추해집니다. 존재의 빛이 탁해집니다. 지금 선택하고 골라야 합니다. 반드시 버려야만 하는 것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용기가 있어야 비로소 스스로 아름답고 빛나는 존재가 됩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 <대변동>
개인이든 국가든 압력을 받으면 자신의 능력과 가치를 정직하고 자세하게 조사해야 한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어떤 부분이 새로운 환경에서 제대로 기능하며 적정성을 유지하는지 알아낼 수 있다. 그런 부분은 당연히 보존하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면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지 찾아내는 용기도 필요하다.
최인철, <굿 라이프>
일(Work)을 통해 의미 있는 성취를 경험하려는 행위는 실존적 용기를 필요로 한다. 의미 있는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정진하느느 삶, 목표를 이루는 과정에서 맞닥뜨리는 수많은 도전 앞에서 실망하고 좌절하지만 결국에는 이겨내려는 용기와 기백, 그리고 그 일이 자신만의 영달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든다는 소명을 발견하는 기쁨. 이런 목표가 우리를 굿 라이프로 인도한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자각은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의 범위를 대폭 축소하게 만든다. 스스로에게 의미 있는 아주 친밀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인적 네트워크를 재구성하는 것이다. 만나는 사람의 수는 줄이는 대신 소수의 사람과의 깊이와 빈도를 늘린다. 굳이 만날 필요가 없는 사람들은 과감히 포기한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 만나면 기분 나쁜 사람들, 꼭 나갈 필요가 없는 모임들에 대한 의무감이 사라진다. 이런 사람들에게 미움받는 것이 인생에 큰 의미가 없다는 깨달음이 생겨나는 것이다. 무릇 미움받을 용기란 나이 들면 누구에게나 생기는 법이다.
유연한 삶이 곧 타협하는 삶은 아니다. 삶의 복잡성에 대한 겸허한 인식이고, 생각의 다양성에 대한 쿨하 인정이며, 자신의 한계에 대한 용기 있는 고백이다. 확신을 갖되 타인에게 강요하지 안흔 삶을 사는 것이 품격이 있는 삶이다. 아무리 옳은 주장이라고 하더라도 지나친 확신으로 타인을 몰아붙이는 것은 타인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행위이며, 궁극적으로 상대의 행복을 위협하는 행위다.
나루케 마코토, <교양고전>
꾸미지 말고 있는 그대로 자신을 당당하게 드러내라. 그 어떤 것보다 가장 가치 있는 것은 바로 '사실'이다. 용기를 갖고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꾸밈없이 보여주면 주위 사람들도 그가 지닌 그 이상의 매력과 진실을 인정해준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데이비드 케슬러, <인생수업>
'신이시여, 제게 바꿀 수 없는 일을 받아들이는 평화를, 바꿀 수 있는 일을 바꾸는 용기를, 그리고 그 둘을 구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신영복, <처음처럼>
[아픔과 기쁨의 교직] 우리는 아픔과 기쁨으로 뜨개질한 의복을 입고 저마다의 인생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환희와 비탄, 빛과 그림자 이 둘을 동시에 승인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삶을 정면에서 직시하는 용기이고 지혜입니다.
[새해] 세모(歲暮)에 지난 한 해 동안의 고통을 잊어버리는 것은 삶의 지혜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잊지 않고 간직하는 것은 용기입니다. 나는 이 겨울의 한복판에서 무엇을 자르고, 무엇을 잊으며, 무엇을 간직해야 할지 생각해 봅니다.
장 도르메송, <거의 모든 것에 관한 거의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
만물 속에는, 그리고 만물의 각 조각들 속에는 악이 존재한다. 그리고, 다른 어느곳에서보다도, 악은 우선 우리 안에 존재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시간 속에 존재하는 악에 악을 더하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에 있어서, 용기에 있어서, 진리의 추구에 있어서, 선에 있어서 인간보다 더 강한 것은 없다. 그리고 추함과, 죄악과, 거짓과, 악에 있어서 인간보다 더 강한 것은 없다. 인간은 기적이자 동시에 오점이며, 인간은 과오이자 용서이며, 인간은 비천함에 있어서 걸출한 것처럼 위대함에 있어서도 탁월하다.
신영복,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적게 가지고 살기 위해서는 아낌없이 버려야 하는데 작은 것 하나 버리는 데도 매우 큰 용기가 필요합니다.
용기는 선택이며 선택은 골라서 취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한쪽을 버리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유발 하라리,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편견과 억압적인 체제에 맞서 싸우려면 큰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무지를 인정하고 미지의 세계를 모험하는 데는 훨씬 큰 용기가 필요하다. 세속적인 교육은 우리에게 무엇이든 모르는 것이 있으면 우리의 무지를 인정하고 새로운 증거를 찾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심지어 우리가 무엇을 안다고 생각하더라도 우리의 의견을 의심하고 다시 검증하기를 겁내지 말아야 한다. 많은 사람이 미지의 사실을 두려워하고 모든 질문에 명확한 답을 바란다. 미지의 사실에 대한 두려움이 그 어떤 폭군보다 더 우리를 마비시킬 수 있다. 역사를 통틀어 사람들은 우리가 어떤 일련의 절대적인 해답을 믿지 않으면 인간 사회는 와해될 거라고 걱정했다. 하지만 사실은 기꺼이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고 곤란한 질문을 제기한 용기 있는 사람들의 사회가, 모든 구성원이 단일한 해답을 무조건 수용해야만 했던 사회보다 더 번영했을 뿐만 아니라 더 평화로웠다. 자신이 믿는 진실을 잃을까 겁내는 사람은 몇 가지 다른 관점에서 세상을 보는 데 익숙한 사람보다 더 폭력적인 경향이 있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답할 수 없는 질문이 질문을 불허하는 답보다 훨씬 낫다.
마셜 매클루언, <미디어의 이해>
문자 문화가 보편화되면서 시간은 분할되고 또다시 세분화할 수 있는 닫힌 공간 혹은 회화적 공간의 성격을 지닐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시간도 공간처럼 채울 수 있는 것이 된다. "내 스케줄은 꽉 찼다." 마찬가지로 시간은 텅 빌 수도 있다. "나는 다음 달에는 일주일이 빈다." 그리고 세바스티안 데 그라치아Sebastian de Grazia가 <시간, 일 그리고 여가에 관하여 Of Time, Work and Leisure>에서 보여 준 것처럼, 세상의 모든 자유 시간이 곧 여가는 아니다. 왜냐하면 여가는 "일"을 구성하는 노동의 분할과 "꽉찬 시간"이나 "빈 시간"을 만들어 내는 시간의 분할 그 어느 것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여가란 용기로서의 시간 개념을 배제한다. 시간이 일단 기계적으로 혹은 시각적으로 닫혀서 분할되고 채워지면, 시간을 더욱더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일이 가능해진다. 이때 시간은 파킨슨이 그의 유명한 "파킨슨의 법칙"에서 보여 준 바와 같이, 노동을 절약하는 기계로 변형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롤프 포츠, <Vagabonding, 여행의 기술>
배거본딩을 위해서는 이 세상에서 소위 확실하다는 것을 움켜잡은 손을 살짝 놓겠다는 용기가 필요하다. 배거본딩은 여행을 삶에서 더 적절한 때로 미루지 않는 것이다. 배거본딩은 상황이 운명을 결정해주길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상황을 조절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마시모 피글리우치, <그리고 나는 스토아주의자가 되었다>
스토아주의자들은 덕을 네 측면으로 나눈 소크라테스의 분류 방식을 채택했다. 그들은 그 네 측면들이 네 개의 밀접하게 상호 연결된 품성 특질들이라고 생각했다. 바로 지혜(실천적인), 용기, 절제, 정의다. 실천적 지혜는 에우다이모니아, 다시 말해 (윤리적으로) 선한 삶을 개선하는 결정들을 내릴 수 있게 해준다. 용기는 신체적인 것일 수도 있지만 더 넓게 봐서 도덕적인 측면을 가리킬 수도 있다. 절제는 욕망과 행위를 통제함으로써 과도한 결과를 낳지 않게 해준다. 소크라테스와 스토아주의자들에게 정의란 사회를 어떻게 운영해야 하느냐에 관한 추상적인 이론이 아니라 다른 인간들을 존엄하고 공정하게 대우하는 실천을 가리킨다. 스토아적인(그리고 소크라테스적인) 덕 개념의 한 가지 결정적인 특징은 상이한 덕들이 독자적으로 실천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스토아-소크라테스적인 의미에 따르면 절제하지 않으면서 용감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전투에서는 용기를 발휘하지만 평소에는 수시로 과음을 하거나 부절제한 생활을 하더라고 말해도 우리끼리는 완벽하게 의미가 통하지만, 그래도 스토아주의자들이 볼 때 그 사람은 덕 있는 사람이 아니다. 왜냐하면 덕이란 전부 다가 아니면 하나도 못 가져가는 묶음상품이기 때문이다.
용기: 외적 혹은 내적 반대에 직면하여 목표 성취를 위한 의지 행사에 수반되는 정서적인 힘. 이의 사레들에는 용맹성, 인내력, 진정성(정직성) 등이 포함된다.
일단 선출되고 나면 그 사람은 분명 더 복잡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풍경을 상대해야하고 그 풍경을 성공적으로 헤쳐 나가야 한다. 그러려면 방향성에 관한 일반적인 생각이 아무리 이론적으로 건전하다 하더라도 그 이싱의 것을 요구받을 것이다. 실제로 필요한 것은 바로 그 근본적인 덕들, 즉 어려운 상황에서 올바른 일을 할 수 있는 용기, 과도함의 고삐를 죄는 절제, 자신의 결정이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고려하는 정의감, 그리고 당연히 시시때때로 변덕을 부리는 불확실한 바다를 항해할 수 있게 해주는 실천적인 지혜가 될 것이다.
알랭 드 보통, <낭만적인 연애와 그 후의 일상>
그는 이제 거의 어떤 것도 완벽해질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처럼 완전히 평범한 인생을 사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 모든 것을 유지하고, 거의 정상인이라는 지위를 계속 확보하고, 가족을 경제적으로 부양하고, 결혼 생활을 지속하면서 아이들을 잘 키우는 것, 이 계획들이 어느 영웅담 못지 않게 영웅적인 면모를 보일 기회를 제공한다. 조국에 봉사하거나 적과 싸우라고 부름을 받을 리는 없지만, 그의 제한된 영역 안에서도 용기가 필요하다. 불안에 굴복하지 않을 용기, 좌절하여 남들을 다치게 하지 않을 용기, 세상이 부주의하게 입힌 상처를 감지하더라도 너무 분노하지 않을 용기, 미치지 않고 어떻게든 적당히 인내하며 결혼 생활의 어려움들을 극복할 용기, 이것은 진정한 용기이고, 그 무엇보다 더욱 영웅적인 행위이다. 그리고 이 늦은 오후 여름 햇살 아래 스코틀랜드의 산비탈에서 경험한 짧은 순간 - 그리고 기 이후에도 때때로 - 라비 칸은 커스틴이 곁에 있으면 인생이 무엇을 요구하든 충분히 헤쳐나갈 수 있겠다고 느낀다.
코이케 류노스케, <침묵입문>
분노, 탐욕, 어리석음에서 비롯된 말들이 난무할 때, 그 속에서 조용히 침묵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야마구치 슈,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인간이 이상으로 여기는 개인의 성장과 행복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분리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매사를 생각하고 느끼고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더욱이 무엇보다도 꼭 필요한 것은 자신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데 용기와 강인함을 지니고 자아를 철저하게 긍정하는 일이다. - 에리히 프롬, <자유로부터의 도피>
현대와 같이 분업이 표준화된 사회에서는 악행을 저지르고 있다는 자각조차 못 한 채 거대한 악행에 가담하고 있기 쉽다. 수많은 기업에서 행하고 있는 은폐와 위장은 바로 분업에 의해 가능했다. 이러한 행위를 막기 위해서는 자신이 어떠한 체계에 속해 있는지, 자신이 하고 있는 눈앞의 일이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를 짚어 보고 공간적, 혹은 시간적으로 큰 테두리 안에서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런 후에 무언가 개혁이 더 필요하다고 여겨지면 용기를 내어 "이건 이상하지 않은가? 잘못된 게 아닌가!"라고 자기 의견을 적극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
정철, <한글자>
글, 글을 쓴다는 건 바다를 '파도 공장'이나 '깊이 더하기 넓이'라고 멋을 부려 표현하는 게 아니라, 바다를 바다라고 말하는 용기를 내는 것이다.
유발 하라리, 재레드 다이아몬드 외, <초예측>
미국에서는 국민을 두 부류로 나누어 생각합니다. 한 부류는 에너지가 넘치고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고자 하는 사람들입니다. 다른 부류는 지금까지 해온 과정을 고수하려는, 야심 없는 사람들이지요. 이민은 둘 중 위험을 택할 용기가 있는 사람이 합니다. 위험이 겁나는 사람은 이민을 엄두조차 못 내지요. 미국은 이민자들을 받아들인 덕분에 가장 야심만만한 국민을 얻은 셈입니다.
김영하, <여행의 이유>
신뢰란 죽음만큼이나 동기를 짐작할 수 없는 어떤 인물에게 의지하게 만드는 힘이다. 낯선 이를 신뢰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 신뢰 안에는 용기뿐 아니라 기쁨과 유쾌함도 들어 있다. 신뢰는 위기가 닥쳤을 때 웃게 해준다.
E. F. 슈마허, <작은 것이 아름답다>
우리는 이토록 폭넓은 지혜에 기초해서만 정의와 용기, 그리고 절제에 도달할 수 있다. 절제란 적절한 선에서 만족할 줄 아는 것이다. "지혜란 진리에 대한 인식을 현실에 부합되는 의사결정으로 변형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오늘날 지혜를 배우고 함양하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 있겠는가? 이것은 틀림없이 문명이 존속하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세 가지 다른 더곡을 진정으로 이해하도록 인도할 것이다.
정의가 진리와 연결된다면, 용기는 선과 연결되며, 절제는 미와 연결된다. 반면에 지혜는 어떤 의미에서 이 세 가지를 모두 포함한다. 지금까지 진, 선, 미를 마치 너무도 모호하고 주관적인 것이어서 사회 생활이나 개인 생활의 최고 목표로 채택되기 힘든 것이라거나 부와 권력을 갖게 되면 저절로 생겨나는 것인양 취급했던 현실론은 '괴상한 현실론'이라 불리곤 했는데, 이는 적절한 지적이다. 도처에서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자문한다. "나는 실제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그 대답은 어려우면서도 간단하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 노력할 수 있다. 이러한 노력에 필요한 지침은 과학이나 기술에서 찾을 수 없다. 과학이가 기술의 가치는 분명히 그것이 기여하고자 하는 목적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여전히 우리는 이 지침을 인류의 전통적인 지혜에서 발견할 수 있다.
알랭 드 보통, <뉴스의 시대>
뉴스는 절대로 우리를 혼자 있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먼저 자신만의 생각을 잉태시킬 만한 인내심 많은 산파의 기술을 터득하지 못하는 이상, 다른 사람에게 전해줄 수 있는 단단한 무엇을 하나도 갖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무선 신호를 끊고 읽을거리도 손에 쥐지 않은 채 멀리 기차 여행을 떠날 필요가 있다. 객실은 거의 텅 비어 있고 탁 트인 경치가 펼쳐 있으며 들리는 거라곤 기차바퀴가 철컹철컹 리듬감 있게 연속적으로 철로를 지나는 소리뿐이다. 우리는 창가 자리에 앉아 비행기 여행을 떠날 필요가 있다. 두세 시간 동안 집중할 것이라곤 구름 꼭대기와, 짐작도 못할 추위 속에서 널찍한 잿빛 날개 아래 달려 있는 롤스로이스 엔진, 우리에게서 겨우 몇 미터 떨어진 곳에서 우리의 방랑하는 사색에 시동을 거는 절제와 용기를 지닌 엔진의 지속적인 현존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그런 여행 말이다.
김형경, <좋은 이별>
울음을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눈물은 한 사람은 가장 위대한 용기, 고통을 참고 견딜 수 있는 용기가 있음을 입증하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 간혹 어떤 이들은 겸연쩍은 얼굴로 자기가 울었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나의 동료 가운데 한 사람도 눈물을 흘렸다고 고백했다. 그는 한때 부종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부종의 고통에서 벗어나 있었다. 나는 그에게 어떻게 부종을 이겨 냈는지 물었다. 그는 이렇게 고백했다. "실컷 울어서 부종을 몸 밖으로 내보냈다네."
슬퍼할 수 있는 능력. 충분히 건강한 자아, 슬픔을 토로해도 용인해 주는 환경, 슬픔을 잘 처리할 수 있는 용기 등이 있어야만 슬퍼할 수 있다. 눈물을 보이는 순간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울음을 보이면 세상이 외면할 거라는 두려움이 있다면 우선 그 감정부터 보살핀다. 소리 내어 울 수 있다면 마음이 건강한 상태이다.
하지만 "통찰은 마술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통찰과 해석으로 삶의 문제들을 알게 되었다고 해서 바로 그 순간 모든 문제가 눈 녹듯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통찰로 알아낸 문제를 스스로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용기와 인내의 시간이 뒤따라야 한다. 낡은 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삶의 방법들을 습득해 나가고, 예전의 자기를 버리고 새로운 자기를 만들어 가는 노력을 몸에 밸 때까지 반복해야 한다. 그것을 '훈습'이라 일컫는다. 불교 수행에서 깨달음을 얻은 다음 그것을 일상 속에서 실천하는 '보림'과 같은 의미가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는 훈습 단계에서 심리학의 행동 치료, 인지 치료 등 치료 기법과 인류의 지혜가 집적된 신화, 종교 등의 도움을 받았다.
용서하지 않을 자유, 용서할 수 있는 용기. 정말로 용서하고 싶지 않다면 억지로 용서할 필요는 없다. 용서하지 않고도 과거를 정리하고 화해할 수 있다. 하지만 용서하면, 내면 깊은 곳으로부터 용서할 수 있다면 가해자보다 강해졌다는 뜻이다. 진정한 자유는 용서한 사람이 받는 선물이다.
혜민 스님. <고요할수록 밝아지는 것들>
이런 자기 소외가 깊어질수록 안타깝게도 자기 기준을 못 찾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그러면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의 기준, 이 사회가 좋다고 욕망하라고 정해준 것들을 내 기준으로 삼습니다. 그러다보면 심한 경쟁 속에서 남들 쫓아가기 바쁘고, 그 과정에서 또 상처받고 좌절하고 우울해지는 것 같아요. 남들이 뭐라 하든 내 식으로 살아보려는 용기, 내 삶의 주도권을 내가 갖고 사는 주체성 없이 남들이 여기저기서 요구하는 것들만 처리해주기도 너무 바쁜 삶, 어떠신가요? 힘들지 않으신가요?
이규경 시인, <용기> : 넌 충분히 할 수 있어 /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 용기를 내야 해 /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 그래서 나는 용기를 / 내었습니다 // 용기를 내서 이렇게 / 말했습니다 / 나는 못해요
피나는 노력을 해서 기필코 해내는 것만이 용기가 아니라고, 자기는 못한다고, 할 수 없다고, 이 길은 내 길이 아닌 것 같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용기라고...
행복의 요소 가운데 중요한 부분이 바로 '삶의 주도성이 내게 있는가?' 하는 점이다. 즉 지금 하는 일을 남이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해서 할 때 사람은 행복하다고 느낀다. 내가 삶을 주도할 수 없을 때는 그게 아무리 남들이 재미있는 것이라 해도 힘겨운 일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세상 많은 사람이 그 주도성을 잃고 사는 것 같다. 왜냐하면 나는 못한다고, 할 수 없다고, 이 길은 내 길이 아닌 것 같다고 용기 내어 말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처럼 자신의 미래를 내 스스로가 아닌 옆 사람들을 보면서 결정했기 때문이다.
'고통스럽더라도 익숙한 것'과 '행복을 가져다줄 새로운 것' 가운데 사람은 보통 고통스럽더라도 익숙한 것을 선택한다고 합니다. 내 고통에 그렇게 충성할 필요 없어요. 익숙하지 않아 두렵더라도 용기를 내서 행복의 길을 선택하세요.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일에 지나치게 간섭하는 것은 어쩌면 자신의 삶을 충실히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일지 모른다. 자신의 삶을 사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지만 남 인생 간섭하는 섯은 입만 있으면 된다.
인도의 또 다른 스승 오쇼 라즈니쉬는 인간이 성숙해진다는 것은 우리 마음을 바위처럼 단단하게 만들어서 어떤 상처도 받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고, 반대로 자신과 타인의 상처를 대면할 용기가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상처를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더 민감하게 느끼면서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수용하고 지혜롭게 대처해날갈 때 비로소 우리 영혼은 성숙해진다.
김형석, <백년을 살아보니>
젊었을 때는 용기가 있어야 하고 장년기에는 신념이 있어야 하나, 늙어서는 지헤가 필요하다. 젊었을 때는 삶의 활력이 넘치는 시기이기 때무에 용기가 없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만용이라고 할까? 자제해야 할 욕망을 위한 용기 같은 것은 진정한 용기가 아니다. 선한 의지와 고상한 목표를 위한 용기가 있어야 한다. 인생에 있어 장년기는 가장 오랜 세월을 차지한다. 30에서 60까지는 장년기에 속한다고 보아 좋을 것이다. 어떤 이는 70까지를 장년기로 보기도 한다. 자신의 일과 더불어 성장하는 기간이며 일의 사회적 의미와 가치를 평가받는 기간이기도 하다. 그 긴 기간동안에는 어떤 신념이 있어야 한다. 무엇이 선이고 무엇은 악이라는 윤리적인 신념도 필요하다. 사회생활에 있어서 가치 있는 것과 무가치한 것을 식별할 수도 있어야 한다. 해서는 안 되는 것과 어렵더라도 해야 할 의무를 구별하는 기준이 필요하다. 이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뚜렷한 삶의 목표와 목적을 위한 확고한 신념이다.
최인호, <네팔 히말라야 트레킹>
히말라야 트레킹을 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시간과 돈, 체력 이 세 가지가 필요하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히말라야를 가고 싶어도 시간이나 돈, 혹은 체력이 없어서 가지 못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시간은 있는데 돈이 없는 사람과 돈은 있는데 시간이 도저히 안 나는 사람, 시간과 돈은 있는데 체력이 안 되는 사람 등 어느 하나가 부족해 히말라야 트레킹을 못 간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간과 돈, 체력은 히말라야 트레킹에 꼭 필요한 것이지만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시간과 돈, 체력이 있어도 못 가는 사람이 더 많다. 히말라야 트레킹을 결정하는 핵심은 가슴 속에 꿈과 열정이 살아 있느냐다. 꿈과 열정은 히말라야 트레킹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모든 여행과 관련되어 있다. 가고자 하는 여행이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고 좋아하는 것인가 하는 문제다. 이것을 '열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꿈과 열정이 있으면 히말라야 트레킹을 갈 수 있을까? 아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쉽게 떠나지 못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떠날 수 있는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수만 가지 핑계가 존재한다. 그 핑계를 없앨 수 있는 것은 용기밖에 없다. 열정과 용기가 있는 사람은 방법을 찾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핑계를 찾는다. 열정과 용기를 가진 자만이 '영혼을 비추는 거울' 히말라야와 마주할 수 있다.
이반 일리치, <과거의 거울에 비추어>
저개발된 지역에 이런 부러움이 생기기 시작하면 용기와 반성으로 치유해야 합니다. 그러나 제3세계에서는 생존 자체가 '내 손으로 지을' 귄리와, 땅 한 뼘과 서까래 같은 몇 가지 물건을 소유할 권리 사이의 균형을 올바르게 유지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김진선, <적당히 벌고 잘 살기>
우동사의 조정훈도 '애쓰지 않는 삶'을 이야기했다. 롤링다이스의 제현주는 '지금 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도 계속해나갈 수 있느냐?'라는 질문이 지속 가능성을 확인하는 중요한 척도라고 했다. 그들의 유연한 삶의 방식은 매 순간 자신들의 상태를 정확히 보고 변화를 자연스레 수용하기에 가능한 것이다. 애쓰지 않는 삶이라... 어찌 보면 배부른 소리나 무책임한 말로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언제든 그만둘 수 있는 용기가 그들을 지속하게 하는 힘인 건 분명해 보인다.
네이트 실버, <신호와 소음>
예측은 아주 중요하고, 그 때문에 더욱 어렵다. 소음에서 신호를 분리하려면 과학적 지식과 자기 인식을 동시에 갖추어야 한다. 즉, 객관적 실체와 주관적 실체를 교차시켜야 한다.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겸손함과 예측할 수 있는 것을 예측할 수 있는 용기, 그리고 이 둘 사이의 차이를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정재승, <열 두 발자국>
독창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세상을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사람들이다. 오랜 세월 동안 그들을 연구하고 접촉해온 끝에 나는 놀랍게도 그들이 겪는 내면의 경험이 우리가 겪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두려움을 느끼고 회의에 빠진다. 그들이 우리와 다른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용기를 내서 행동에 옮긴다는 점이다. 그들은 하다가 실패하더라도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보다는 후회를 덜 한다는 사실을 마음속 깊이 알고 있다. - 애덤 그랜트, <오리지널스>
두려움 안느끼는게 용기가 아냐, 두려움보다 중요한.. 뭔가에 대한 확신이 용기란다. 사람이 지나치게 신중하면 의미있는 인생을 살 수 없단다 - 영화, <프린세스 다이어리 2001>
소노 아야코, <약간의 거리를 둔다>
스스로 선택하지 못하는 인생은 재미없다. 인생에서 '기호'를 갖는다는 건 굉장히 중요하다. 타인의 평판을 신경쓰는 사람은 자신의 기호가 아닌 주어진 기호대로 따라가는 사람이다. 기호가 없는 사람처럼 위험한 존재는 없다. 그들에게 타인의 조종에 의해 흥분하게 될 소질이 있다. 인간의 정신은 시시각각 선택이라는 조작에 의해 움직인다. ... 선택이란 인간 정신의 용기를 말해주는 증거다.
조지 오웰, <위건 부두로 가는 길>
웰스의 유토피아 소설 <신같은 인간Men Like Gods>이나 <꿈The Dream>에 나오는 인물들은 이를테면 용감하고, 관대하고, 튼튼한 것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물리적인 위험이 사라져버린 세상에서(기계에 의한 진보는 분명히 위험을 제거하는 경향이 있다) 육체적 용기가 남아 있기 쉬울까? 그것이 '가능하긴' 할까? 그리고 육체노동이 전혀 필요하지 않은 세상에서 육체적 힘이 왜 남아 있어야 하는가? 아무 흠도 없는 세상에서는 충실이니 아량이니 하는 것들도 아무 소용이 없을 뿐만 아니라 아마 상상하기도 힘들 것이다. 우리가 인간의 자질로 찬미하는 것 가운데 상당수는 사실 재앙이나 고통이나 어려움에 맞서는 과정에서만 발휘될 수 있다. 그런데 기계적 진보의 경향은 재앙이나 고통이나 어려움을 제거하는 것이다. <꿈>이나 <신 같은 인간> 같은 책에서 힘이나 용기나 아량 등과 같은 자질이 살아 있는 것은 그것들이 매력적인 특성이며 온전한 인간에게 필요한 속성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유토피아의 주민들은 이를테면 용기를 기르기 위해 인위적인 위험을 만들어내고, 아무 쓸모도 없는 근육을 단련하기 위해 아령 운동을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는 진보라는 관념에 대체로 나타나는 대단한 모순을 목격하게 된다. 기계적 진보의 경향은 환경을 안전하고 편하게는 하는 것인데, 정작 거기 사는 사람은 자신을 용감하고 강인하게 만들려고 애쓰는 것이다. 앞으로 맹렬하게 돌진하는 동시에 뒤로 절박하게 물러나려고 하는 꼴이다. 이는 런던의 증권 중개인이 중세의 사슬 갑옷을 입고 사무실에 출근하여 중세 라틴어로 대화를 하려는 것과 같은 일이다. 그러니 결국 진보의 옹호자가 시대착오의 옹호자가 되는 셈이다.
P. G. 해머튼, <지적 생활의 즐거움>
육체적 생활과 지적 생활은 별개의 얼굴이 아닙니다. 뛰어난 문학가들, 특히 오랜 세월 위대한 작가로 불려온 대가들에게는 풍부한 운동경험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육체는 가장 훌륭한 소재였습니다. 그들이 몸을 움직일 때마다 소재는 다양해졌고, 인물은 풍부해졌으며, 문체는 살아 있는 생명을 누렸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위대한 과학자는 하나같이 운동을 공부했습니다. 자신의 신체 특성에 어울리는 육체적 활동을 고안해냈습니다. 그 발견은 곧 위대한 발명과 학설로 이어졌습니다. 감각적이고 사색적인 화가들은 어떤가요. 그들은 낯선 타지로 망설임 없이 걸어갔습니다. 그 와중에 만난 사람들, 풍경들, 경험들이 캔버스에서 위대한 예술로 재탄생하는 것을 우리는 수없이 목격했습니다. 철학이라고 다를 리 없습니다. 철학의 발상은 어디에서 시작될까요? 대학도서관? 강당? 아닙니다. 순수한 육체적 용기와 인내에서 시작됩니다. 철학은 육체를 의존합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강인한 육체를 자랑한 철학자는 소크라테스였습니다.
신영복, <담론,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
우리가 일생 동안 하는 여행 중에서 가장 먼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행'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낡은 생각을 깨뜨리는 것입니다. 오래된 인식틀을 바꾸는 탈문맥입니다. ... 우리는 생각이 머리에서 이루어진다고 믿습니다. 전두엽이 변연계에서 형성되는 이미지를 생각이라고 한다면 그렇습니다. 그러나 생각은 잊지 못하는 마음입니다. ... 생각은 가슴이 합니다. 생각은 가슴으로 그것을 포용하는 것이며, 관점을 달리한다면 내가 거기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생각은 가슴 두근거리는 용기입니다. 공부는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는 애정과 공감입니다.
코에케 류노스케, <생각 버리기 연습>
우리들 마음에 있는 악마여. 당신의 첫 번째 군대는 욕망이요, 두 번째 군대는 불만이요, 세 번째 군대는 배고픔과 목마름이요, 네 번째 군대는 갈애渴愛다. 다섯 번째 군대는 나른함과 졸음이요, 여섯 번째 군대는 두려움이요, 일곱 번째 군대는 망설임과 의심이다. 그리고 여덟 번째 군대는 속임수와 강요, 거짓으로 얻은 이익과 명성, 존경, 명예처럼 자신을 추켜세우고 사람을 깍아 내리는 것이다. 악마여, 이것은 당신의 군대이며 어둡고 추잡한 공격이다. 용기없는 자는 마음속에 존재하는 악마를 이길 수 없다. 용기 있는 자만이 싸워서 승리하고 평화를 얻을 수 있다.
법륜 스님, <인생수업>
우리의 인생도 나고 자라고 나이 들어가는데, 잘 물든 단풍처럼 늙어가면 나이 듦이 결코 서글프지 않습니다. 자연이 변화하듯 편안하게 늙어가면 그 인생에는 이미 평화로움이 깃들어 있습니다. 잘 물든 단풍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나침'을 경계해야 합니다. 과욕을 부리지 않아야 하는데, 나이 들어 과한 것은 항상 부작용이 따릅니다. 젊을 때는 무리해도 금방 회복이 되지만 나이 들어서 지나치면 이겨내지를 못합니다. 과식, 과음, 과로를 하면 안 됩니다. 나이 들면 지나치면 안 되고, 젊을 때처럼 욕심을 내면 안 됩니다. 젊을 때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면 "젊은이가 용기가 있고 의욕이 있다"고 말합니다. 또 큰 욕심을 내어서 무엇을 하려 하면 세상사람들이 "포부가 크다"고 말해줍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서 그런 생각을 하면 노욕이라고 하는데, 좀 추하게 욕심을 부린다는 뜻이거든요. 그리고 젊을 때는 격렬하게 주장해도 결과가 좋은데, 나이가 들면 어떤 주장도 격렬하게 하기보다 평화적으로 설득하고 점잖음을 유지해야 나도 좋고 세상에도 이익이 됩니다. 나이가 들면 자꾸 일을 벌이고 계획을 세워서 무언가를 하려고 할 게 아니라 정리를 해나가야 합니다. 인생을 포기한다는 게 아니고 열매를 맺는 과정이기 때문에, 잔가지들을 정리하면서 잘 마무리를 해야 한다는 겁니다. 또한 나이 들어감을 한탄하거나, 나이를 인정하지 않고 젊어지려고 애쓰는 게 아니라, '단풍처럼 물들어가는 나'를 차분하게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여유를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 자연스레 욕심을 하나하나 내려놓을 수 있게 됩니다.
카트린 지타, <내가 혼자 여행하는 이유>
얼마나 많은 용기를 갖고 있는지에 따라 그 사람의 삶이 움츠러들기도 하고, 넓어지기도 한다. - 아나이스 닌
‘용기’또한 당신이 자신과의 여행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얻는 멋진 기념품 가운데 하나다. 혼자 여행을 떠난 것 자체도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인데, 스스로 그 여행을 꾸려 가면서 당신이 얼마나 용감한 사람인지 깨닫게 될 것이다.
혜민 스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한두 사람이 비평에 상처받아 쉽게 포기하지 마세요. / 나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고 쉽게 한 말에 / 너무 무게를 두어 아파하지도 말아요. / 안티가 생긴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잘 진행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 용기 내어 지금 가고 있는 길, 묵묵히 계속 가면 돼요.
내 삶의 방향타를 내 스스로 잡고 가려는 용기가 필요하다. 다른 사람들이 정해놓은 삶의 지도를 그대로 따라가면 조금은 안전할 수는 있으나,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될 수는 없다. 내 삶을 살고 싶다면 다른 사람이 뭐라고 판단하고 이야기하건 용기를 내어 내 길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
E. H. 카, <역사란 무엇인가>
비용을 지불하는 사람들이 이익을 거두어들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저 유명한 엥겔스의 화려한 글은 기분 나쁠 만큼 적절하다. "역사는 모든 여신들 중에서도 아마 가장 잔인한 여신일 터이니, 그녀는 전쟁의 시기뿐만 아니라 '평화로운' 경제 발전의 시기에도 시체 더미 위로 승리의 전차를 몰아댄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우리 인간은 너무나 어리석은 나머지 거의 견디기 어려울 만큼의 고통을 당하여 내몰리지 않는 한 진정한 진보를 위해서 용기를 내지 않는다."
김위찬, 르네 마보안, <블루오션 시프트>
"우리는 처음 결함이 있을 때 용기를 잃거나 멈춰서서는 안 돼. 오히려 이런 결함을 예상해야 해. 계속 마음을 열어놓고 있어야 해. 용기를 잃거나 누군가를 탓하려고 해서는 안 돼. 이것을 소중한 학습의 기회로 여겨야 해. 그리고 이런 결함을 최대한 빨리 해결하려고 해야 해." 결함을 전제하는 접근 방식은 시장에서 재무적인 위험, 신용상의 위험과 함께 조직 구성원에게 나타나는 의욕 상실의 위험을 최소화한다.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나쁜 소녀의 짓궂음>
"넌 항상 작가가 되고 싶어했지만, 그럴 용기를 내지 못했잖아. 이제 혼자 있게 될 테니 그 시간을 유익하게 사용하도록 해. 그러면 나를 너무 그리워하지 않을 수 있을 거야. 자, 말해봐. 내가 너에게 소설 한 편을 쓸 좋은 주제를 주었다고. 그렇지, 착한 소년?"
바버라 브래들리 해커티, <인생의 재발견>
활기차게 살라. 당신 삶의 일부(배우자, 자녀, 일)로부터 정서적으로 분리되면 산소가 부족한 환자처럼 죽음에 이르고 말 것이다. 끔찍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사실 의도한 바지만), 이제 당신 인생에서 자동조종장치는 사라졌다는 통찰이 거듭해서 당신을 찾아올 것이다. 주의를 기울여 열정을 쏟을 대상을 찾아라. 활기찬 중년을 보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목적의식을 가지고 참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18살 이하의 아이들이 40대 이상의 중년에게 최고의 롤모델일 수도 있다. 아이들은 열심히 공부하고, 새로운 기술을 익히고, 새로운 것에 열정을 쏟는다. 그들은 마침내 성공을 이룰 때까지 끊임없이 도전하고 실패하며, 마음의 상처를 무릅쓰면서 친구를 사귀려 든다. 여기서 중년을 위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물론 결혼생활에 열정과 애정을 쏟기 위해서는 많은 수고가 따르고, 단지 수입뿐 아니라 의미를 추구하는 일을 택하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하며, 노화된 두뇌를 명석하게 만들려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연구결과 드러난 사실은 매우 명확하다. 사람은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일을 할 때, 그 순간뿐 아니라 장기적으로도 보다 큰 기끔과 만족을 느낄 수 있다.
이기주, <언어의 온도>
사랑을 겪어본 사람은 안다. 진한 사랑일수록 그 그림자도 짙다는 사실을, 태양처럼 찬란학 빛나던 사랑도 시간속에 스러진다는 것을, 설령 사랑이 변하지 않더라도 언젠가 사람이 변하고 만다는 것을. 감정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 이모션emotion의 어원은 라틴어 모베레movere다. '움직인다'는 뜻이다. 감정의 멈추어 있지 않고 자세와 자리를 바꿔가며 매 순간 분주하게 움직인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말한다. 이별 또한 사랑의 전개 과정이라고. 사랑이 기승전결을 거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어쩌면 우린 사랑이 한결같을 거란 믿음에서 벋어나야 하는지도 모른다. 사랑의 쇠퇴와 소멸을 감지할 때 지난 사랑의 생채기를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할 수 있고, 새롭게 다가온 사랑 앞에서 용기를 낼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영화 'Youth'. 시간과 세월만으로 나이가 결정되지 않는다. 나이를 좌우하는 뜨거운 용광로가 있다고 치자. 거기에는 건강이나 신체적 상태가 가장 먼저 들어갈 테지만, 인간의 감정과 생각, 상상력, 그리고 두려움을 물리치는 용기, 안이함을 뿌리치는 모험심 같은 요소들도 뒤섞이기 마련이다. 단순히 '젊음'을 잃으면 '늙음'이 될까? 삶은 죽음으로 향하는 여정에 불과할까? 글쎄다. 어떤 이는 '늙은 젊은이'로 불리고 또 어떤 사람은 '젊은 노인'으로 불리는 걸 보면 '늙음=나이 듦'이라는 등식이 꼭 성립하는 건 아니다. 늙음은 무엇인가 하는 이 만만치 않은 질문에 여전히 나는 답을 하지 못하겠다. 다만 '낡음'이 '늙음'의 동의어라는 주장에는 절대 동의하지 않는다. 느끼는 일과 깨닫는 일을 모두 내려놓은 채 최대한 느리게 생을 마감하는 것을 유일한 인생의 목적으로 삼는 순간, 삶의 밝음이 사라지고 암흑같은 절망의 그림자가 우리를 괴롭힌다. 그때 비로소 진짜 늙음이 시작된다.
시라토리 하루히코, <니체의 말>
자신과 친구에 대해서는 늘 성실하라. 적에 대해서는 용기를 가져라. 패자에 대해서는 관용을 베풀어라. 그 밖의 모든 경우에 대해서는 언제나 예의를 지켜라.
우리가 읽어야 할 책이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읽기 전과 읽은 후 세상이 완전히 달리 보이는 책. 우리들을 이 세상의 저 편으로 데려다 주는 책. 읽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마음이 맑게 정화되는 듯 느껴지는 책. 새로운 지혜와 용기를 선사하는 책. 사랑과 미에 대한 새로운 인식, 새로운 관점을 안겨주는 책.
이정우, <개념: 뿌리들>
플라톤에게는 영혼의 세 가지 힘이 존재합니다. 하체(욕망, 생산자 계층), 어깨(의지/열정의 삶을 살게 하는 기개, 전사 계층), 머리(이성, 지도자 계층)... 이렇게 세 계층이 가져야 할 덕이 절제, 용기, 지혜입니다만, 마지막에 가장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이 세 가지 덕을 모두 전제하면서 동시에 이 세 가지를 통일적으로 조화시켜 주는 것이 마자믹 네번째 덕으로서 바로 정의인 것이죠. 특정한 영혼, 특정한 계층이 아니라 영혼의 모든 측면에, 그리고 사회의 모든 계층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정의입니다. 플라톤은 이렇게 세 개의 특수한 덕(절제, 용기, 지혜)에 하나의 일반적 덕(정의)을 추가해 덕론을 전개했는데, 그래서 이를 플라톤의 '사주덕'이라 부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서 덕이 중요한 원리는 중용中庸입니다. 적절한 측도mesotes로서의 중용은 모자람과 넘침을 피하고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는 힘입니다. 예컨대 절제는 낭비와 인색의 중용이고, 용기는 만용과 비겁의 중용이죠. 동북아 사상에서도 중용은 특히 강조되죠. 중용을 지킨다는 것, 균형을 잡는다는 것은 사실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수학처럼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많은 경험과 시행착오와 고민을 겪어 가면서 조금씩 균형을 잡아 가게 되는 것이죠. 중용이란 이론의 문제라기보다는 오랜 세월 동안 터득해 나가는 지혜인 것 같습니다. 나는 사람들이 타인을 불편하게 대하고, 서로 싸우고, 세상이 팍팍하고 거친 이유가 전체를 보지 못하기 때문에, 편협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물론 그 외에 다른 이유들도 많습니다. 편협함은 타인에 대한 오해, 왜곡, 비교, 경쟁의식을 낳습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은 아집, 열등의식, 우월감, 질시, 견제를 낳습니다. 그래서 내가 가장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가치들 중 하나가 중용입니다. 그런데 중용은 우선 시야의 넓이를 전제합니다. 넓게 보아야 거기에서 진정한 중용을 취할 수가 있죠. 애초에 시야가 편협하다면, 그 편협한 시야 내에서 취한 중용은 사실상 치우침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유의 넓이, 삶의 넓이가 매우 중요합니다. 넓다는 것이 전제되고 그 위에서 중용을 취할 때 든든한 중용이 성립하는 것입니다. 좁은 지평에서 취한 중용은 자의적일 수 있습니다. 남이 볼 때는 치우쳐 있는데 자신은 중용을 지킨다고 고집할 수도 있으니까요. 또, 중용이라는 가치는 좀 싱겁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나쁘게 말해서, 똑부러지는 이야기가 아니라 늘 적당히 균형을 잡으라는 정도의 이야기 밖에는 되지 않으니까요. 그럼에도 중용은 참 중요합니다. 특정한 상황에서는 특정한 방향으로 치우쳐야 한다 해도, 바로 그 치우침 자체가 제대로 되기 위해서는 평소에 중용을 갈고 닦는 것은 중요한 것이죠. 중용의 잠재력을 갖추고 있어야 특정 상황에서 어디로 치우쳐야 할지도 분명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유시민, <청춘의 독서>
옷을 입지 않은 임금을 보고 벌거벗었다고 말한 소년의 우화는 소년의 순진함이나 용기만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언젠가는 진실은 반드시 진실대로 밝혀지게 마련이라는 인간간생활의 진리를 말하려는 것만도 아니다. 그러나 이 우화의 해석은 대체로 그 우화를 구성하는 일련의 인과적 요인들이 엮어내는 '과정'에 대해서는 깊게 들어가지 않는 것 같다. ... 옷을 걸치지 않고서도 입었다고 우기는 '통치자의 진리와 권위'는 임금의 것인가 측근 아첨배의 것일까. 이와 같은 '허구와 허위'는 통치자들의 속서이어야 하는가. 허위가 진리의 가면을 쓰고 나타날 수 있는 그 사회의 제도와 풍토는 어떤 것일까. ... 가장 어리석은 소년에 의해서 온 사회의 허위가 벗겨지기까지 그 임금과 재상들과 어른들과 학자들과 백성들은 타락과 자기부정 속에서 산 셈이다. ... 역사는 한 단계의 투쟁이 끝나면 으레 '임금은 알몸이다'라고 폭로한 소년의 용기에 열중하는 나머지 힘없는 소년에게 그런 엄청난 임무를 떠맡기게 된 그 사회의 실태에 대해서는 눈이 미치질 않는다. 문제시해야 할 중요한 것은 그 영광(또는 해결)까지의 과정에 얼마나 많은 인간적 타락과 사회적 암흑과 지적 후퇴가 강요되었느냐 하는 사실을 인식하는 일이겠다.
지식인은 무엇으로 사는가. 리영희 선생은 말한다. 진실, 진리, 끝없는 성찰, 그리고 인식과 삶을 일치시키려는 신념과 지조. 진리를 위해 고난을 감수하는 용기. 지식인은 이런 것들과 더불어 산다.
같은 지역에서 살아가는 두 원시인 부족이 경쟁 관계에 놓이게 되었다고 해보자. 다른 조건이 모두 같은 상황에서 한 부족이 용기 있고 공감을 갖고 충실한 구성원이 많았다고 하자. 이들은 위험이 닥쳤을 때 항상 서로에게 위험을 알리고 서로 돕고 방어할 준비가 되어 있으므로 다른 부족보다 더 빛나는 성공을 거두고 결국은 다른 부족을 정복했을 것이다. (…) 집단을 이루는 구성원의 사고력과 선견지명이 향상됨에 따라 각 구성원은 동료를 도와주면 자기도 그 답례로 도움을 받게 된다는 것을 곧 알게 되었을 것이다. 이런 단순한 동기 때문에 그는 동료를 돕는 습관을 획득했을지도 모른다. (…) 높은 도덕 기준은 한 개인이나 그 후손에게 부족 내의 다른 구성원에 비해 약간의 이득을 줄 수도 있고 전혀 주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좋은 품성을 갖춘 사람들이 늘어나고 도덕성의 기준이 진보할수록 부족 전체는 다른 부족에 비해 막대한 이익을 얻게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높은 수준의 애국심, 충성심, 복종심, 용기, 동정심이 있어서 항상 남을 도울 준비가 되어 있고 공동의 이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 많은 부족은 다른 부족에 비해 성공을 거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자연선택이다.
에릭 호퍼, <길 위의 철학자>
자기기만이 없다면 희망은 존재할 수 없지만, 용기는 이성적이고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본다. 희망은 소멸할 수 있지만 용기는 호흡이 길다. 희망이 분출할 때는 어려운 일을 시작하는 것이 쉽지만, 그것을 마무리하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전쟁을 이기고, 대륙을 제압하고, 나라를 세우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희망없는 상황에서 용기가 힘을 발휘할 수 있게 해 줄 때 인간은 최고조에 달할 수 있다.
롭 무어, <레버리지>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고용자 아니면 고용인, 노예 아니면 주인, 리더 아니면 추종자다. 각 개인은 다른 개인을 섬긴다. 한쪽은 레버리지 하고 다른 한쪽은 레버리지 당한다. 아무도 당신을 위해 일하고 있지 않다면 당신이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당신으로부터 돈을 벌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시간과 돈이 정비레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백만장자, 억만장자 들은 그것들이 반비례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제 우리는 더 열심히 더 오래 일하라는 사회의 명령에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 이 책은 남들과 다른 삶을 살아가려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변화를 만들고 싶은 사람들, 자신이 믿는 것을 끝까지 밀고 나갈 용기를 가진 사람들, 삶에 천천히 시들어가는 것보다 더 중요한 어떤 것이 있다고 믿기에 종종 오해를 받으면서도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시어도어 젤딘, <인생의 발견>
페리클레스는 행복을 결정하는 것은 자유이고, 자유를 결정하는 것은 용기라고 말했다. 하지만 사회는 사람들을 용기 있게 만들도록 조직되지 않았다. 사람들의 저신과 에너지를 쥐어짜는 일이 너무나 많다. 사람들을 생기 넘치고 흥미를 느끼게 하고 온전히 깨어 있게 하는 일은 너무 적다. 더 생생히 살아 있음을 느끼고 싶다면 일을 통해서 사회에 기여하는 노력을 인정받고 재능과 예술적 기교로 돈 많은 사람들의 변덕에 복종하는 것 이상의 일을 해야 한다. 이런 요구에 대한 자각은 조직의 스트레스를 최소화하기 위한 진정제로만 조직에 투입되었다. 고대 아테네에서 고용은 노예를 위한 것으로 자유인은 남에게 굽실거리며 일을 해서 임금을 받는 것을 불명예로 여겼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거꾸로다. 고용되지 않으면 부끄러운 일이고 자기를 팔아서 시간제 임금을 받는 것을 성공으로 여긴다. 깨어 있는 시간의 절반을 자유롭지 않은 상태로 지내야 하는데도 그것을 자연스러운 상태라고 여긴다. 그럼에도 국가가 번창할수록 국민은 자유로운 인간으로 일하기를 꿈꾸면서 굽실거리고 아첨하지 않고도 자신의 재능과 시간을 활용할 방법을 찾아나선다. 스스로 일을 통제하고 창조력을 발휘하고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되고 인정받는 방법을 찾기 위한 넓은 탐색의 영역이 열려 있다. 그러나 이런 기회를 허락하는 일은 많지 않다. 굳이 이런 기회를 요구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 일이란 본래 그런 것이라고 체념하고 일을 하고 얻는 알량한 보상에 만족하거나 일 밖에서 만족을 찾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알랭 드 보통, <공항에서의 일주일>
죽음을 생각하면 우리는 무엇이든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향하게 됩니다. 죽음이 우리에게우리가 마음속에서 귀중하게 여기는 삶의 길을 따라가도록 용기를 주는 거죠
헨리 조지, <진보와 빈곤>
궁핍과 비참, 무지와 야만이 부정의한 사회제도에 의해 생긴다는 사실을 알고 힘이 자라는 데까지 이를 시정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곧 실망과 쓰라림을 맛보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있다. 그러나 정말로 쓰라린 것은 노력과 희생을 해보았자 희망도 결과도 없다는 생각이다. 심지어 매우 훌륭하고 용기 있는 인물도 이런 생각을 하는 수가 있다. 사실, 역사상 씨를 뿌린 사람 중에 그 씨가 자라는 것을 본 사람은 드물며, 그 씨가 도대체 자라기나 할 것인지를 확실히 안 사람도 드물다. 사실을 위장하지 말자. 이 세상에서 진리와 정의는 되풀이해서 세워져 왔다. 그러나 진리와 정의는 되풀이해서 무너지고 말았으며 유혈 사태가 발생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만일 진리에 반대하는 세력이 약하다면 어떻게 오류가 그토록 오랫동안 지배할 수 있을까? 정의의 여신이 고개를 들기만 해도 부정의를 쫓을 수 있다면 압박받는 사람들의 통곡이 그토록 오래 그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러나 진리를 알고 따르려는 사람이나 정의를 인식하고 이를 위해 일어서려는 사람에게는 성공이 유일한 목적은 아니다. 성공! 성공은 거짓으로 이루기도 하고 부정의로 이루기도 한다. 진리와 정의는 본래의 권리로서 그 자신의 것인 - 우연이 본질에 의해 자신의 것인 - 그 무엇을 주지 않는가?
버트런드 러셀, <행복의 정복>
부모의 사랑에 굶주린 어린이들은 겁이 많고 진취적인 용기가 부족하며, 공포와 비애에 사로잡히게 되므로 활발하고 명랑한 기분으로 인생을 살아가지 못한다.
가오싱젠, <창작에 대하여>
창작의 영역에 반드시 지켜야 할 법칙이란 없습니다. 정해진 법칙이 없다는 것만이 예술가에게는 불변의 진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술가는 그 어떤 규범에도 휘둘리지 않고 홀로 자신의 길을 갈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예술가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런저런 사회적 제약을 받으며 살아갑니다. 사회에서의 인간관계란 늘 얼마간의 구속을 받는일이지요. 그러나 예술가라면 자신의 창작세계에서만큼은 충분한 자유를 누리고 용기와 신념을발휘해야 합니다. 정치나 윤리의 교조를 벗어던지고 유행과 습속의 구속도 떨쳐내야 합니다. 창작의 자유는 결국 예술가 자신에게 달려 있는 문제입니다.
김용택 엮음, <어쩌면 별들이 너의 슬픔을 가져갈지도 몰라>
바람이 나를 가져가리라 햇살이 나를 나누어 가리라 봄비가 나를 데리고 가리라
- 지치고 힘든 순간, 희망과 용기의 메시지
용기 ㆍ 요한 괴테
신선한 공기, 빛나는 태양,
맑은 물, 그리고
친구들의 사랑
이것만 있다면 낙심하지 마라.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ㆍ 킴벌리 커버거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내 가슴이 말하는 것에
더 자주 귀 기울였으리라
더 즐겁게 살고, 덜 고민했으리라
금방 학교를 졸업하고 머지않아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걸 깨달았으리라
아니, 그런 것들은 잊어 버렸으리라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하여 말하는 것에는
신경 쓰지 않았으리라
그 대신 내가 가진 생명력과 단단한 피부를
더 가치 있게 여겼으리라
더 많이 놀고, 덜 초조해 했으리라
진정한 아름다움은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는 데 있음을 기억했으리라
부모가 날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알고
또한 그들이 내게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믿었으리라
사랑에 더 열중하고
그 결말에 대해선 덜 걱정했으리라
설령 그것이 실패로 끝난다 해도
더 좋은 어떤 것이 기다리고 있음을 믿었으리라
아, 나는 어린아이처럼 행동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으리라
더 많은 용기를 가졌으리라
모든 사람에게서 좋은 면을 발견하고
그것들을 그들과 함께 나눴으리라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나는 분명코 춤추는 법을 배웠으리라
내 육체를 있는 그대로 좋아했으리라
내가 만나는 사람을 신뢰하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신뢰할 만한 사람이 되었으리라
입맞춤을 즐겼으리라
정말로 자주 입을 맞췄으리라
분명코 더 감사하고,
더 많이 행복해 했으리라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벤저민 그레이엄의 <증권분석>
전통적으로 투자자들은 곤경에 처한 투기자들이 낙담하여 주식을 팔 때 용기와 인내심을 발휘하여 주식을 샀다.
전반적인 시장 등락을 이용하는 기법... 1900년 이후 주가가 너무 높거나 낮은 모습이 거듭 나타나므로, 가치보다 낮은 가격에 사서 나중에 가치보다 높은 가격에 팔 기회가 되풀이되는 셈이다. 가장 간단한 투자방법은 과거 시장 등락의 대략 중간 지점을 잇는 직선을 그은 다음, 이 직선 아래에서 매입하여 직선 위 어느 지점에서 매도하는 것이다. 아마 이 "시스템"도 다른 기법만큼 현실적이지만, 더 과학적인 기법을 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 시스템은 다음과 같이 다듬을 수 있다. 1) 선도업종 주식으로 잘 분산된 포트폴리오를 구성한다. 2) 현행 장기금리를 바탕으로 평균이익을 자본화하여 "정상" 가치를 산출한다. 3) 이 정상가치의 일정 비율 밑에 매수 지점을 설정하고, 일정 비율 위에 매도지점을 설정한다. (매수와 매도 규모를 점진적으로 축소하거나 확대할 수도 있다.) 이런 기법에는 타당한 논리가 들어 있다. 오랜 역사를 돌아보아도, 시장이 침체했을 때 사서 대중이 낙관할 때 팔아야 성공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기법 어딘가에 문제가 있음을 곧 눈치 챘을 것이다. 결함이 무엇일까? 이 기법에는 세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시장 흐름의 일반 패턴은 예상할 수 있지만, 매수 지점과 매도 지점 설정은 트릴 수 있으며, 시장이 극단으로 치우칠 때 거래 기회를 놓칠 수 있다. 둘째, 시장 흐름은 언제든 크게 바뀔 수 있으므로, 과거에 효과를 발휘했던 기법이 가치를 상실할 수 있다. 셋째, 이 기법을 실행하려면 불굴의 용기가 필요하다. 대개 심리적으로 사고 싶을 때 팔아야 하고, 팔고 싶을 때 사야 하며, 산 다음 주가가 떨어지는 모습이나, 판 다음 주가가 더 오르는 모습을 장기간 지켜보아야 할 수도 있다. 이런 단점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불굴의 용기를 갖춘 사람에게는 추천할 만한 기법이다.
장기 기준으로, 그리고 객관적으로 판단해서 시장이 분명히 침체했을 때 대표적인 우량주를 산다. 이 방법에는 인내와 용기가 필요하며, 이 과정에서 심각한 착오를 저지를 위험도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좋은 실적을 올리는 방법이다.
이희인, <여행의 문장들>
용감한 시골 귀족, 이곳에 잠들다. 탁월한 그대의 용기 죽음의 신도 그대 목숨 죽음으로써 빼앗지 못했다고 세상 사람들 전하도다. ... 광인으로 세상을 살다가 본 정신으로 세상 떠났으니. - 미겔 데 세르반테스 시아베드라, <돈키호테>
린위탕(임어당), <생활의 발견>
인생을 즐길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성격은, 마음에 온정이 있고 근심이 없으며 게다가 용기가 있는 성격이다.
이희인, <여행자의 독서>
'나를 죽이지 못한 시련은 나를 한층 강하게 만들 뿐'이라던 니체의 말은 용기와 객기 사이에 갈 곳을 마련하는 여행자들의 마음을 뒤흔든다. '트래블'에 '트러블'은 때로 필요악이다'라던 후지와라 신야의 말도 그러하다.
야마구치 세이코, <버리고 비웠더니 행복이 찾아왔다>
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는 평온을,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꾸는 용기를, 그리고 이 둘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옵소서. - 라인홀드 니버, <평온을 비는 기도> 중.
문요한, <여행하는 인간>
여행은 도전이며 건강한 스트레스다. 우리는 여행을 통해 기쁨은 순수한 즐거움이 아니라 스트레스와 즐거움이 버무려진 '칵테일 감정'임을 깨닫는다. 우리는 결코 두려움을 떨칠 수 없고 스트레스를 피할 수 없다. 가치 있는 삶은 대가를 필요로 한다. 불편을 거쳐야 만족은 깊어지고, 두려움 앞에 마주 서야 즐거움은 빛나게 마련이다. 두려움이 없는 게 용기가 아니라 두려움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을 위해 두려움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용기다. 두려움과 맞설 때 당신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용기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젊은이들은 여행을 통해 이제 자신의 힘으로 살아갈 수 있는지를 확인하고 싶어 한다. 그렇기에 여행은 자신의 한계에 대한 도전이고, 홀로서기 연습이며, 어른으로 성장하기 위한 훈련의 장이 된다. 배낭여행을 다녀온 젊은이들은 한목소리로 용기와 자립심을 얻었다고 말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여행 자체가 선택의 연속이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지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특히 혼자 떠난 자유여행이라면 여행의 시작부터 끝까지 스스로 모든 것을 알아보고 결정하고 행동해야 한다. 여행의 시간 동안 온전히 책임의 주체가 되는 것이다. 그것은 건강한 어른이 되어가는 성장 과정이다.
우리의 자아 경계는 여행을 할 때 느슨해진다. 여행은 자아 밖으로 우리를 이끌어 새로운 사람, 자연, 문화 등과의 연결을 만들어낸다. <체 게바라 어록>에는 왜 여행을 할 때 낯선 존재에게 먼저 다가갈 수 있게 되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 나온다. "낯선 존재에게 말을 거는 용기는 아마도 자연이 가르쳐준 것이리라. 자연의 존재들은 끊임없이 낯선 존재에게 말을 건넨다. 바람은 나뭇잎과 가지에게, 곤충은 꽃에게, 하늘은 땅에게, 모든 존재들은 나에게 말을 건넨다. 그런 자연에는 절대 고독이란 없다."
여행에서 느끼는 자유로움과 즐거움은 불확실성과 즉흥성에 기초한다. ... 여행은 불확싱설으로부터 끊임없이 도망치려는 우리에게 불확실성과 친구를 맺을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진짜 여행이 시작되는 것처럼 잘 닦여진 길에서 벗어나 자신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 용기를 준다. 때로는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사람들이 별로 가지 않는 길이라 불편하고 두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불편과 두려움은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자 하는 사람들이라면 감내해야 할 조건이다.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이들은 명확한 방향을 정하고 확신에 차 걷는 사람이 아니다. 불확실성과 모호함을 견뎌낼 줄 알는 사람들이다. 다만 자신이 걷는 길 자체를 사랑하고 자신이 내딛는 발걸음 하나하나, 자신의 시도 하나하나가 모여 곧 길이 된다는 믿음이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세상의 모든 여행은 결국 삶으로의 여행이다.
인생을 살면서 우리는 어떤 '부름'을 들을 때가 있다.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는 내적 신호가 북소리처럼 울리면, 인생에 있어 전환의 시간이 찾아온 것이다. 그 시기에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어떤 의식을 치르려고 한다. 그 의식을 통해 지난 시기를 매듭짓고 새 시기로 나아가려고 하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의식이 바로 여행이다. 그렇기에 여행지에서는 삶의 전환점에 서 있는 수많은 이들을 만날 수 있다. 군대를 제대하고 복학을 앞둔 학생,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 진출을 앞둔 사람, 직장을 그만드구 자기 사업을 시작하려는 사람, 은퇴 후 삶을 시작하려는 사람 등 삶의 전환기에 놓인 많은 사람들이 지금 이 시간에도 길 위에 있다. 그들의 여행은 지난 시간의 수고에 대한 보상인 동시에 새로운 세계로의 여행을 위한 준비이기도 하다. 삶의 전환기에 서 있는 사람들은 설렘과 두려움을 모두 느낀다. 그렇기에 이들은 낯선 세계로의 여행을 통해 이제 그들이 곧 마주할 새로운 삶으로의 여행을 준비하는 것이다. 안전한 정착을 위한 리허설을 갖는 셈이다. 그들은 전환기의 여행을 통해 새로운 삶을 여행하는 데 필요한 용기와 경험을 미리 얻게 된다. 인생은 전환의 연속이다. 새가 털갈이를 하고, 뱀이 허물을 벗고, 곤충이 변태를 하듯이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다. 때가 되면 익숙한 세계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는 더 큰 만남을 위해 떠나야 한다. 이를 거부해서는 안 된다. 그 거부의 대가는 혹독할 수 있다. 조셉 캠벨은 <신화의 인생>에서 이렇게 경고한다. '만일 우리가 부름에 대해 떠나지 말아야 할 어떤 이유를 생각해 낸다거나 두려움을 느끼고 안전한 사회 속에 남아 있는 경우, 그 결과는 부름을 따랐을 때에 생기는 결과와 판이하게 달라진다. 여러분이 떠나기를 거부한다면 그것은 다른 누군가의 종이 되는 것이다. 부름을 거부할 경우, 일종의 말라붙음, 즉, 삶의 감각이 상실되는 현상이 벌어진다. 여러분 속의 모든 것을 요구되는 모험이 거부되었음을 안다. 그로 인해 분노가 형성된다. 여러분이 긍정적인 방식으로 경험하기를 거부한다면, 결국 그것은 부정적인 방식으로 경험되는 것이다.' 만일 당신이 인생의 어느 시기에 여행을 몹시 갈망하고 있다면, 이는 어쩌면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삶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허지웅, <버티는 삶에 관하여>
내가 생각하는 좋은 사람이란 계산된 위약을 부리지 않고 돈 위에 더 많은 돈을 쌓으려 하기보다 내게 필요한 것과 필요하지 않은 것을 구분할 줄 알며 인간관계의 정치를 위해 신뢰를 가장하지 않고 미래의 무더기보다 현실의 한줌을 아끼면서 천박한 것을 천박하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갖되 네 편과 내 편을 종횡으로 나누어 다투고 분쟁하는 진영논리의 달콤함에 함몰되지 않길 하루하루 소망하는 자다.
프란스 요한슨, <메디치 효과>
두려움과 맞서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는 일이다. ... 두려움을 제대로 안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우선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것과 타협하고, 현재 지니고 있는 것을 모두 잃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이것은 당신이 모든 것을 잃게 되더라도 계속해서 일을 실행해나갈 수 있을 만큼 편안한 마음을 지녀야 한다는 뜻이다. ... 우리는 두려움을 항상 피할 수 없지만 그래도 그것을 관리할 수는 있다. 두려움을 받아들이고 실패의 가능성을 인정한다면, 우리는 교차적 아이디어를 실현하기 위해 훨씬 더 효과적으로 전진할 수 있다. 마크 트웨인은 이렇게 말했다. "용기는 두려움에 저항하고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이지 두려움이 없는 게 아니다."
테미 스트로벨, <행복의 가격>
GDP는 우리 아이들의 건강, 아이들이 받는 교육의 질, 아이들이 놀이에서 느끼는 즐거움을 나타내진 않는다. GDP에는 시의 아름다움이나 결혼생활의 안정성, 대중토론의 지적 수준이나 공무원의 청렴도가 포함되지 않는다. GDP는 우리의 기지도 용기도, 우리의 지혜도 학식도, 우리의 연민도 나라에 대한 헌신도 측정하지 못한다. 한마디로 GDP는 우리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들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것을 측정할 뿐이다.... 그렇다면 GDP가 측정하는 것은? 이라크전쟁, 원유유출, 산림파괴, 핵탄두 개발 비용, 우리가 쇼핑몰에서 사들이는 그 모든 물건. 이런 것들로 말미암아 생산성, 소비, 서비스, 무역 등이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측정한다. - 로버트 케네디
김동우, <트레킹으로 지구 한바퀴>
매일 빠른 속도로 의미 없이 일상이 내 곁을 흘러갔다. 두 눈은 어지러웠고, 두 어깨에는 극심한 피로감이 쌓였다. 미친 듯이 돌아가는 사회에, 그리고 게슴츠레 침을 흘리는 내 인생에 쉼표를 찍어 보고 싶었다. 한 번쯤 내 감정에 솔직해지기... 나 자신에게 떳떳해지기... 남이 아닌 내가 원하는 일 해보기... 정말, 그래 보기. 하지만 가면을 벗기까지는 적잖은 시간과 용기가 필요했다. 생각이 많아질수록 실현 가능성은 낮아진다. 가장 좋은 방법은 두 눈을 질끈 감고 움켜진 손아귀를 펴는 거다. 그러면 새로운 걸 잡을 수 있다. 새로 손에 쥔 그 무엇은, 그동안 꽉 쥐고 놓지 않았던 것들이 실은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느끼게 해주었다. 해보기 전에는 절대 알 수 없는 경험이었고, 놓기 전에는 절대 얻을 수 없는 자유였다.
장강명, <한국이 싫어서>
근본적인 해결책은 힘이 들고, 실행하려면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니까. 회사 상사에게 "이건 잘못됐다"라고, 시어머니에게 "그건 싫다"라고 딱 부러지게 말하기가 무서운 거야. 걔들한테는 지금의 생활이 주는 안정감과 예측 가능성이 너무나 소중해.
이권우, <여행자의 서재>
모든 여행과 산행이 그러한 법. 내가 가는 듯하지만, 실은 불러서 갔을 뿐. 그래서 자연의 '온화한 힘에 대해 깊은 존경'을 느끼고. '세계의 웅장한 규모를 이해'하며, '전에는 있는 줄 몰랐던 인내심과 용기'를 발견하는 법. 그것이 어느 길이든 우리가 떠나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다 담겼다. 숲이 호명하면, 응답하시길. 우리가 거듭날 절호의 기회렸다.
리 호이나키, <정의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
내 부모님은 뼈와 살 속에서 근대적 '아동' 이라는 것이 나쁜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오늘날 '아동기'는 소비주의에 대한 중독성 의존증을 일찍부터 기르고, 직업적 전문가들과 정부기관들에 의한 다양한 복지 프로그램에 기대는 것을 배우는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놀이터로서 기능한다. 이런 종류의 아이들 키우기는 거의 틀림없이 나이는 어른이지만 여전히 아이로 남아있는 인간을 산출한다. 그런 인간에게는 계속해서 장난감이 필요하고, 만족감이 없으면, 이만하면 충분하다는 느낌이 드는 법이 없다. 그들은 최소한의 것을 추구한 소로우의 이상이 내포한 지혜를 알아보지 못하고, 평생 동안 한 장소에 머물면서 그 장소가 제공하는 경이로움을 갈수록 더 깊이 느끼는 삶 속에서 행복을 발견할 수 없다. 오늘날 미국인들이 보편적으로 경험하는 '아동기'는 갈수록 지나치게 버릇없는 인간들로 넘쳐나는 새로운 세대들을 산출하도록 프로그램화되어 있다. 오늘날의 아이-어른들은 끊임없이 유동적이며, 언제나 새로운 일자리와 다른 도시를 찾아 헤매면서, 판에 박은 일상을 깨기 위해서 여행상품을 산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갈급증을 치유할 수가 없다. 그들은 휴가에 '이국적'이고 '흥미로운' 곳을 끊임없이 방문하여, 갈수록 심해지는 권태로움을 해소하고, 그들의 사회적 지위를 확실히 하기 위해서 필요한 돈을 버느라고 강박적으로 쫓기고 있다. 내가 나의 일자리를 떠날 때, 나는 내가 좋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모든 근대적 기관들 - 교육, 건강, 고용, 문화적 기관 -을 거부해야 한다고 믿었다. 이제 나는 내 부모님이 농민적 '편협성'이 보다 용기있고, 보다 대담한 것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대 그들을 둘러싼 세계에서 중산계급의 '아동기'라는 관행을 의심하는 어떤 목소리도 없었다. 나는 배우는 것이 느린 사람이다. 그러나 나는 내 부모님이 그들 자신의 지혜로써 자신들의 삶을 좋은 삶으로 만들고, 그들의 아이들에게 매일매일의 덕행의 본보기를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들의 아이들을 '아동기'라는 수렁으로 빨아들이는 시대적 흐름에 조용히, 그리고 용감하게 저항할 수 있었다는 것을 마침내 깨닫게 되었다.
하퍼 리, <앵무새 죽이기>
손에 총을 쥐고 있는 사람이 용기 있다는 생각 말고 진정한 용기가 무엇인지 말이다. 시작도 하기 전에 패배한 것을 깨닫고 있으면서도 어쨌든 시작하고, 그것이 무엇이든 끝까지 해내는 것이 바로 용기 있는 모습이란다. 승리하기란 아주 힘든 일이지만 때론 승리할 때도 있는 법이거든.
오마에 겐이치, <난문쾌답>
모르는 상태를 견디다. 무엇이 옳은 것인지 모르는 상태를 참고 견디며 도전하다 보면 결국 답을 찾게 된다. 아무도 답을 모르는 문제나 사건에 대해 스스로 가설을 세우고 입증해내는 '용기'와 '집요함'. 이것이 21세기를 살아가는 개인과 집단에게 가장 필요한 능력이다.
차라리 넘어져라. 인생은 스키와 비슷하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애를 쓰기보다 차라리 넘어져버리는 것이 낫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버틸수록 계속 엉거주춤할 수 밖에 없다. 실패를 두려워한다면 과감하게 새로운 일에 도전할 용기를 가질 수 없다.
버리는 용기. 아이디어를 많이 생각해내는 훈련을 해보라. 그러면 쓸모없는 아이디어를 버리는 용기가 생긴다.
학생이 배우고 생각하는 것을 돕는 것이 교사의 유일한 일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학생이 의문을 가졌을 때 스스로 답을 찾도록 옆에서 도와주고 그 과정의 감동과 흥분을 함께 나누어야 한다. 교사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가설을 검증하며 아무도 걷지 않은 길을 걸어 갈수 있도록 '용기'를 주는 것이다.
스티브 도나휴, <사막을 건너는 여섯가지 방법>
허상의 국경선은 항상 두려움을 낳는다. 이 두려움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잘못된 믿음과 연관되어 있고, 이 잘못된 믿음은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는다. 그에 저항할 용기나 통찰력이 없다면, 그 둘이 합세하여 우리를 사막 한가운데에 가두어 버릴 수도 있다. 허상의 국경선은 허상처럼 보이지 않고, 진짜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그 국경선을 건너면 뭔가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이다. 그 국경선을 넘지 않으면 끔찍한 일이 생기는 것이다.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블랙스완>
백만장자의 공통된 특징 : 용기,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기, 낙관주의 ......
실패자들의 특징 : 용기,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기, 낙관주의 ..... 두 부류를 나누는 진정한 요인은 단 한가지 행운?
문영미, <디퍼런트>
아주 독특한 아이디어를 통해 소비자들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가기로 결단을 내린 아이디어 브랜드. 그들은 기존 브랜드들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요소들을 과감하게 삭제하기로 결정을 내린 용기 있는 브랜드다.
오쿠다 히데오, <공중그네>
무너져버릴 것 같은 순간은 앞으로도 여러 번 겪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주위 사람이나 사물로부터 용기를 얻으면 된다. 모두들 그렇게 힘을 내고 살아간다.
류콴홍, <철학우화>
우리가 이 세상에 온 그순간부터 모든 사람은 탄생과 죽음, 사랑과 미움, 괴로움과 즐거움, 행복과 불행 등과 끊임없이 마주하게 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 속에서 선과 악, 고귀함과 비천함, 성공과 실패, 고통과 즐거움은 언제나 그림자처럼 함께 따라다닙니다. 우리 삶 속에는 유쾌한 일도 고민스러운 일도 함께 있지요. 생활 속의 고민은 누구나 피할 수 없지만 가끔식 생기는 유쾌한 일들이 그런 고민을 잊게 해줍니다. 누군가 성공하고 싶다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용기입니다. 어린 시절 우리는 줄곧 어른에게 의존하며 무슨 일만 있으면 어른들의 도움을 청했지요. 주변의 낯선 세계가 두려웠고 눈앞의 험난한 현실을 어떻게 직면해야 하는지 몰랐으니까요. 그러나 용기는 우리 인생의 필수품이랍니다. 평생 부모의 품에 누워 응석만 부릴 수는 없어요. 언젠가는 자신만의 삶을 개척해 나가야겠지요.
김선현, <그림의 힘>
'창조란 곧 용기다. Creativity takes courage' - 마티스
클레이트 M. 크리스텐슨, <당신의 인생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부모에게 용기 있는 결심은 아이에게 더 어렵지만 더 가치가 있는 인생의 경로를 밟게 만드는 것일지 모른다.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중해 기행>
모든 길의 끝에는 <승리의 여신>이 기다리고 있어.. 그런데 너는 항상 조급하게 굴다 끝내 용기를 잃고 돌아서 버리지. 대중은 <세이렌>을 보지 못해. 공중에 울려 퍼지는 노랫소리를 듣지 못하지. 눈멀고 귀먹은 채. 지상에 매인 자신들의 노를 젓느라 웅크리고 있을 뿐이야. 그러나 보다 정선된 인간인 선장은 자기 내면 - 자신의 영혼 - 에서 들려오는 세이렌의 노래에 귀를 기울이고 그녀와 더불어 장엄하게 삶을 탕진하지. 너는 인생에 다른 무슨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가엾은 인간들은 세이렌의 소리를 듣고도 믿지 않아. 조심스럽고 겁 많은 그들은 평생 금화 다는 저울로 <예-아니오>를 저울질하다가 죽는 거야.
강신주, <감정수업>
"대담함이란 동료가 맞서기 두려워하는 위험을 무릎쓰고 어떤 일을 하도록 자극되는 욕망이다."
대담함을 욕망이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스피노자의 비범함을 발견하게 된다. 욕망이란 기본적으로 기쁨의 증진을 도모하는 작용이기 때문이다. 사랑만큼 살아갈 힘과 기쁨을 증폭시키는 경험이 또 있을까? 조지 오웰이 <1984>에서 모색했던 것도 바로 사랑의 파괴력, 그러니까 압도적인 힘 앞에서 주눅 들지 않는 대담함이라는 감정이었다. 오직 위기를 감내하려고 할 때에만 용기와 대담함은 빛을 발한다.
"경멸이란 정신이 어떤 사물의 현존에 의하여 그 사물 자체 안에 있는 것보다 오히려 그 사물 자체 안에 없는 것을 상상하게끔 움직여질 정도로 정신을 거의 동요시키지 못하는 어떤 사물에 대한 상상이다." 내 감정을 소중하게 여기고 자신을 긍정하기 위해서는 경멸하는 대상과 단절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파울로 코엘료, <흐르는 강물처럼>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사는 동안 쓸데없는 일들을 걱정하고, 일을 미루고, 중요한 순간들을 인식하지 못한 채 스쳐지나간다. 위험을 감수하려 하지 않고, 늘 푸념하면서도 막상 행동하기는 두려워한다. 모든 것이 달라지길 바라면서도 스스로는 변화하려들지 않는다.
죽음에 대해 조금만 더 생각한다면, 오랫동안 미뤄온 전화 통화를 더는 미루지 않게 될 것이다. 우리 삶은 지금보다는 좀더 활기를 띠게 될 것이고, 육신의 종말을 두려워하지 않게 될 것이다. 어차피 일어날 일을 두려워할 사람은 없을 테니까.
인디언들은 이렇게 말한다. '세상을 떠나기에 특별히 좋은 날은 없다.' 한 현자는 이렇게 말했다. '죽음은 언제나 당신 곁에 있다. 그리고 당신이 무언가 중요한 일을 할 때 필요한 힘과 용기를 주는 것은 바로 그 죽음이다.'
나는 그 경지에 이르기를 바란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어리석다. 우리 모두 이르든 늦든 언젠가 죽는다. 그리고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자만이 삶 앞에 준비된 자이다.
도정일,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
시민의 덕 : 인간 사회의 정의, 공동체를 위한 덕목,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할 능력과 용기와 실천력 - "플라톤 대화편"
스티브 디거, <잠들기 전에 읽는 긍정의 한줄>
마음속에 흔들림 없는 원칙을 새겨 두고 가야 할 길을 지도에 분명하게 긋는 사람, 흐트러짐 없는 용기와 절제력을 가진 사람에게 인생은 전혀 복잡하지 않다. 복잡하다는 것은 스스로 지어낸 것들이다. - B. C. 포브스
두려움은 우리를 가두고, 신념은 우리를 석방한다. 두려움은 마비시키고, 신념은 힘을 준다. 두려움은 용기를 빼앗고, 신념은 용기를 준다. 두려움은 병을 주고, 신념은 약을 준다. 두려움은 무용지물로 만들고 신념은 쓸모있는 것으로 만든다. - 헨리 에머슨 포스딕
의기투합하는 친구들로 자신을 보강하라! 무작위로 여러 명을 고른 뒤 누구에게는 편지를 쓰고, 누구는 함께 밥을 먹으러 가고, 누구는 집에 놀러 가고, 누구는 문제가 있을 때 털어놓고 이야기를 나누어라. 개중에 최소한 한 명은 나를 이해해주고, 용기를 갖게 하며, 언제라도 필요할 때 기분을 전환시켜줄 친구가 있을 것이다. - 조지 매슈 애덤스
용기는 무모하거나 바보 같은 경우가 거의 없다. 용기는 맞서 싸워야 할 장애물에 대한 고도의 실질적인 판단을 수반한다. - 마거릿 트루먼
다릴 앙카. <가슴 뛰는 삶을 살아라>
가슴 뛰는 것과 불안해 하는 것은 정반대입니다. 하나는 긍정적으로 본 것이고 하나는 부정적으로 본 것입니다. 그것을 인정하는데는 많은 용기가 필요합니다. 정말로 가슴 뛰는 일을 하고 있는지, 그렇지 않으면 불안감을 피하기 위해 그 행위를 하고 있는지, 당신은 어떻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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