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속한 공간은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기본 요소다. 

 

 

[본문발췌]

 

 

<행복의 건축>에서 알랭 드 보통이 말한 것처럼, "장소가 달라지면 나쁜 쪽이든 좋은 쪽이든 사람도 달라진다." 건축은 '삶을 담아내는 그릇을 축조하는 과정'이기에, 행복한 삶을 설계하는 건축가들에게 '우리는 어디에서 가장 행복한가'에 대한 신경과학적 이해는 필수다. ... 내 공간을 둘러보고 내 삶의 담아내는 그릇으로서 나의 공간이 얼마나 적절한가?

 

 

심리지리학은 건축물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나는 어떤 공간에서 행복하고 창의적이며 안식을 얻는가'를 생각해 보라고 권한다. 역세권이나 학군, 투자가치만으로 집과 건물을 바라보지 말고, 공간 속에 놓인 내 안을 들여다보라고 말이다.

 

 

인간은 건축물을 지어서 지각을 바꾸고 사고와 감정에 영향을 끼치며, 이런 식으로 인간 행동을 조직하고 권력을 행사하고 또 많은 경우에 돈을 벌어들인다.

 

 

설계에 의해서든 우연에 의해서든 건축물은 아이의 행복한 미소를 보고 따라 웃으면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는 현상과 유사한 방식으로 우리를 행동하고 느끼게 만들어준다. 이런 연결은 원래 우리가 경험을 서로 나누고 자연의 위험과 기회에 적절하게 반응하도록 설계된 신경회로의 작용으로, 우리의 신경계에 깊이 새겨져 있다.

 

 

수천 년 동안 전통적인 벽은 건축 설계로 인간의 행동에 영향을 끼치는 완벽한 방법이었다. 벽은 사람들의 이동을 막고 시야를 가린다. 벽은 사생활을 보호하고 안전을 보장한다. ... 벽은 사회적 관습과 문화적 규준을 강화하거나 새로 만든다.

 

 

제이 애플턴Jay Appleton은 인간과 다른 동물들 사이의 진화적 연속선을 주장하면서 '조망prospect'과 '피신refuge'이라는 두 가지 기본 원리로 인간이 심미적으로 특정 자연경관을 선호하는 성향을 설명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애플턴은 동물이 서식지를 선택하는 결정적인 요인은 "보는 것이지 보이는 것이 아니다."라는 독일의 생태학자 니코틴버겐의 주장에 주목했다. ... 애플턴의 조망과 피신 이론은 미학부터 조경과 실내 설계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역에서 우리가 특정 장면을 선호하는 생물학적, 진화적 기초에 주목하게 만들었다. 애플턴의 연구를 시작으로 수백 편의 연구에서 우리가 무엇을 보고 싶어하고 어디에 머물고 싶어하는지를 결정하는 데 이런 공간의 중요성을 확인했다.

 

 

프랜시스 쿠오와 윌리엄 설리번이 풀과 나무의 양이 각기 다른 도심의 거주구역 연구를 시작으로 쏟아져나온 여러 연구에서는 풀과 나무가 많은 환경에서 사는 사람들이 더 행복하고 안전하다고 느낀다고 보고했다. 실제로 통제가 잘된 몇몇 현장 연구에서도 초목이 많은 동네에서는 반문화행위와 범죄율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초목이 많은 환경에 사는 주민들은 서로를 알고 지내고 대화를 많이 나누며 사회적 결속력도 높아서, 특정 정신병리에 시달리지 않을뿐더러 경범죄 피해도 덜 입는다. 이상의 모든 연구에서는 자연에 대한 원초적인 반응이 현대의 거주지 선택에 필요하지 않은 진화적 요인과 관계되지만, 여전히 도시환경의 범죄율과 거주적합성, 행복을 비롯해 심리적으로는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람들은 자연에서 발견되는 프랙털 차원과 비슷한 범위 내에 있는 이미지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이미지의 프랙털 속성과 우리의 선호도가 일치하는 현상과, 나아가 이런 이미지에 대한 생리적 반응(자연풍경에 반응해서 나타나는 회복탄력성과 같은 반응)을 기반으로 우리의 뇌가 자연을 인지하는 방식은 수학적 속성의 도움을 받는다는 개념이 나왔다. 우리가 자연에 끌리는 성향을 프랙털 수학 개념으로 설명하는 방식은 특히 매력적이다. 

 

 

자연의 심리적 혜택을 얻는 데 굳이 자연이 필요하지 않다면, 자연을 아예 없앤 뒤 건물 전면에 폭포 소리와 새소리를 삽입한 대형 컬러화면을 부착해 도시를 건설하면 되지 않을까? ... 다른 대안이 없는 환경에서는 자연을 시뮬레이션한 장치만으로도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실제 창문으로 자연을 내다볼 수 있는 환경에서는 화면 속의 자연이 주는 효과가 미미하다.

 

 

자연이 정신건강에 좋다는 증거가 쏟아져나온 오늘날에도 우리는 여전히 업무에 중점을 두고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활동에 고도로 집중하는 능력을 최고로 여긴다. 중간에 자연공간에서 보내는 상쾌한 시간은 생산과 소비 중심의 '실제 생활'에서 잠시 벗어난 휴식 정도로 여긴다. 정신이 유연하게 변화하는 초등학교를 비롯한 교육제도에서는 정규교육의 목표를 교실에 가만히 앉아 한가지 활동에 주의를 집중할 수 있는 인간을 길러내는 것으로 삼는다. 이런 활동을 힘들어하는 아이들은 따로 분류하거나, 환자로 취급당하거나, 약물로 뇌 기능을 변형해서 고도의 선택적 집중을 강화하는 치료를 받아야 한다. 유치원부터 대학교 강의실에 이르기까지 모든 교실이야말로 부자연스럽고 유도된 집중력을 강화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하지만 이런 집중력은 금방 떨어진다.

 

 

인간이 벽돌, 모르타르, 회반죽, 창문을 배치하기 시작한 시대부터 세상을 보는 효과적인 인공 창문의 역할을 하는 전자화면의 발명에 이르기까지, 환경 설계의 역사는 우리가 세계를 보고 세계에 존재하는 자연스러운 방식에 대한 체계적인 도전의 역사로 볼 수 있다. 우리의 타고난 집중 습관과 힘든 일상에서 잠시 숨 돌릴 틈을 찾는 습관 대신에 고도로 집중하고 선택적으로 주목하는 지각 상태가 자리잡았다. 두 가지 모두 우리의 욕구를 끌어내고 충족시키는데 도움이 되지만 궁극적으로 우리를 정신적으로 고갈시킨다. 집중력을 끌어내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우리는 자연의 질서에 융합된 칼라하리 부시맨의 삶처럼 기술 이전의 사회에서 누리던 생활양식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대신 우리는 주어진 환경에서 최적의 생산자와 소비자가 되도록 단련된 신경장치가 되었다. 사실 우리가 인류를 존재하게 해준 원시적인 야생 환경을 (나날이 복잡해지는 물질적 욕구를 만들어내고 만족시키는) 소비지상주의의 집착에서 벗어나기 위한 임시 탈출 밸브로 여기는 것은 역설적이다. 현대인으로 산다는 의미가 이렇게 급격히 달라진 점을 감안할 때 초기 인류의 흔적이 현재의 감정, 현재의 기호, 현재의 행동에 여전히 영향을 끼친다는 뚜렷한 증거가 있다는 사실은 더욱 놀랍다. 나와 마찬가지로 현대의 건축 환경이 주는 안락을 거친 야생의 생활과 바꾸고 싶은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우리가 여전히 수천 년전에 떠나온, 인류의 생존 가능성을 높여주던 환경과 자연의 기하학을 갈망하는 것도 명백한 사실이다. 자연을 선호하는 성향은 우리가 어디에서 걷고 어디에 앉을지 선택하는 것부터 무엇을 보고 싶어하고 어떻게 생활하고 싶어하는지에 이르기까지 행동이 거의 모든 측면에서 집중력을 끌어내는 기술로 나타나기도 하고 (실제 자연이든 시뮬레이션 자연이든) 자연 장면의 회복탄력성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자연을 향한 우리의 갈망은 가장 중요한 심리지리학적 구조의 토대가 된다.

 

 

지루한 경험에 잠깐만 노출되어도 뇌와 신체의 화학반응이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식으로 변형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결과는 건축 환경을 설계하는 사람들이 권태를 유발하는 요인에 주목하는 계기가 되었다. ... 개성 없고 단조로운 환경이 우리의 행동뿐 아니라 뇌에도 눈에 띄게 영향을 끼친다.

 

 

장소는 우리를 감정에 휩싸이게 하고 우리의 움직임을 지시하고 우리의 의견과 결정을 바꾸며, 때로는 우리를 숭고하고 종교적인 체험으로 이끌어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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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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