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자체가 길 위에 있고, 그 길은 언젠가 끝난다. 길의 끝을 향해 쫓기듯 빨리 갈 필요는 없다. 여유롭게 주변도 둘러보고 길에서 만나는 사람과 가볍게 인사할 수 있는 삶의 길을 걷자. 소요유(逍遙遊)...
[본문발췌]
길을 걸으며 생각을 담고 인생을 깨닫고 자신을 직면하는 것이 길이 할 일이다.
길에서 느낀 행복, 자유, 평화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다. 지치고 상처받은 영혼들을 치유할 수 있는 길을 내 고향 제주에 내기로 했다. - 서명숙, <사람을 살리는 길, 치유하는 길>
수묵화에 자신의 색을 입히는 것이 인생이구나. - 박수자, <길은 '마음의 병' 처방전>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가. 길 위에서의 질주를 잠시 멈추고 주위를 돌아보자. 인생이란 길 위에서 찾은 자기만의 삶의 방식이 행복지수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부분 자신이 왜 뛰고 있는지 모른 채 정신없이 달려가는 삶을 살고 있다. 남들이 뛰니까 남들에게 뒤지지 않기 위해 그냥 정신없이 달리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정신없이 달려만 가는 삶에는 남들만 있을 뿐 자신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 오솔길에 들어서면 누구나 철학자가 되어, 나는 누구이고 어디서 와서 지금 어디에 있고 앞으로 어디를 어떻게 걸어갈 것인가를 자문한다. 마음의 여유로 해서 비로소 찾은 자기와의 만남이다. 바로 이것이다. 남들을 따라 정신없이 뛰어가던 큰길에서 잠시 벗어나 자기와 온전히 만날 수 있는 숲속의 오솔길 만들기. 큰길을 그렇게 달려가 봤자 결국은 아무것도 만져지는 것이 없다는, 달려간 길 끝에서의 허망을 아는 사람만이 목적이 아닌 그것으로 가는 과정의 삶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게 마련이다. - 전상국, <삶의 오솔길 걷기>
"나는 이 세상에서 세 가지의 소원이 있으니, 이 세상에서 좋은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것이고, 이 세상의 좋은 일을 하고 싶은 것이고, 또 이 세상의 좋은 경치를 보고자 하는 것이다." - 이수광, <지봉유설>
"그대들의 눈에 비치는 사물들이 순간마다 새롭기를, 현자란 바라보는 모든 것에 경탄하는 사람이다." - 앙드레 지드, <지상의 양식>
사람의 일상과 일생은 채우고 비우는 과정의 연속이다. 학습, 체험, 지적인 일, 사무, 인적 연결 등은 정신적으로 채우는 행위이고 식음, 운동, 접촉, 육체적 노동 등은 신체적으로 채우는 행위이다. 우리는 채우는 것의 결과로 지식축적, 명예, 지위, 권세 등의 지적 적신적 산물과 체력 외모 등의 형태적 산물을 향유해간다. 그런데 우리의 몸과 마음으로부터 채워진 산물들에서 채움과 비움이 조화를 이루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지만 균형을 잃으면 병들고 불행해진다. 우리 몸에서 채움이 크고 비움이 적어 기와 혈의 순환과 소통이 원만하지 못해 오는 결과가 비만, 암과 같은 신체적 질병이고 마음에 채움이 크고 비움이 적어서 온 결과가 갈등, 불면증, 성냄, 불만, 소외감, 우울증 등의 정신적 질병이다. 이렇게 우리의 몸과 마음, 신체적 정신적 건강과 행복은 결과적으로 채움과 비움의 소통과 순환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 순행하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 <도덕경>의 '爲學日益(위학일익), 爲道日損(위도일손), 배움은 채우는 것이요, 도는 비우는 것이다'라는 말은 이 채움과 비움, 소통과 순환의 가치와 의미를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바로 자신의 몸과 마음에서 채움과 비움의 순환이 순조롭게 이뤄져 조화하고 있는지 챙겨볼 일이다. 구길본, <채우기와 비우기>
걷는다는 것은 찬찬히 들여다보며 살피고 음미함을 통해 몸과 마음이 어떤 대상과 하나가 될 기회를 가진다는 것이다. 세계가 열리는 순간이다. 생명의 순환 그물 속에 한코의 그물임을 시작하는 것이다. 걷기의 매력은 여기에 있다. 사느라 무심했던 것, 스쳐왔던 것에 대해 뒤돌아봄이요, 미처 몰랐던 세계의 발견이다. 그리하여 걷기는 시나브로 치유와 소통, 배려와 존중, 더불어 삶을 찾는 학교이자 병원이고 도서관이다. - 이성근, <온 마음으로 걷기>
내마음으로 섭취되는 것은 독초도 있고, 약초도 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는 탐욕, 시기, 질투, 애증, 분노, 경멸, 무시, 사기, 배반, 억압, 지배, 비난, 비판, 근심, 걱정, 슬픔, 비탄 등 부정적 생각과 행동은 마음을 병들게 하는 독초와 다름없을 것이다. 반면 사랑, 자비, 연민, 희생, 봉사, 인내, 신뢰, 자유, 평등, 조화, 칭찬, 공경, 존중, 희망, 기쁨, 희열 등 긍정적 생각과 행동은 우리 마음을 치유하는 약초에 해당된다. ... 걷는 것은 세심洗心하는 것이다. 걷기는 일상의 탈출을 통해 몸과 마음을 청결하게 하고 재탄생시킨다. 몸과 마음을 자연과 생명 본원의 청명한 기운으로 환원한다. - 구길본, <걷기와 세심>
도종환, <처음 가는 길>.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은 없다. / 다만 내가 처음 가는 길일 뿐이다. / 누구도 앞서 가지 않은 길은 없다. / 오랫동안 가지 않은 길이 있을뿐이다. / 두려워 두려워하였지만 / 많은 이들이 결국 이 길을 갔다. / 죽음에 이르는 길조차도 / 자기 전 생애를 끌고 넘은 이들이 있다. / 순탄하기만 한 길은 길 아니다. 낯설고 절박한 세계에 닿아서 길인 것이다.
길을 걷는다는 것은 그 길의 존재 이유를 찾아가는 것이다. 내가 왜 이 길을 걷는가에 대한 답은 이 길은 왜 여기에 존재했는가에 대한 물음과 닿아 있다. .... 길은 일부러 만든다고 길이 되는 것이 아니다. 존재의 이유가 분명해야 길이 되는 것이다. 또한, 길은 그 길을 걸었던 사람들의 인생사가 투영되어 있을 때만이 사랑을 받는다. - 김산환,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길>
길은 무엇인가? 길의 철학이 무엇일까? 왜 사람들이 길에 관심을 두는가? 길은 걷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길은 자연스럽게 생긴 것이고 길 위에는 인생과 삶과 철학이 있다. 길은 소통이고 관계이다. 길에는 사람이 있다.
트레킹. 산 정상을 향해 정신없이 달려가는 것이 아닌, 그 정상까지 가는 길 위에서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는 마음의 여유. 사람 살아가는 일이 그렇다. 오직 '무엇'을 위해 걸어가는 길은 '어떻게' 걸어야 즐거울 것인가에는 아예 관심이 없다. 나중에 정승처럼 살기 위해서는 현재를 개처럼 막 살아도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개처럼 산 그가 정승이 될 수도 없을 뿐더러 설사 정승이 됐다 하더라도 그는 이미 늙었고 사람들은 여전히 그를 개 바라보듯 할 것이 분명하다. 무엇을 위해 달려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무엇을 향해 가는 과정, 그 길 위에서의 시간을 생애 최고의 순간 만들기에 마음을 쓸 일이다. - 전상국, <산길에서 나를 만나다>
길은 살아 있는 모든 것이 걸어간 삶의 궤적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 길 위에서 그네들이 남기고 간 숱한 이야기와 만나게 된다. - 전상국, <김유정의 그 '길'을 걷다>
지리산 그 푸른 능선의 구불구불한 선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각인된다. 쩨쩨하게 이 눈치 저 눈치 보고 살지 말자. 당당하게 독립적이고 자존을 지키며 살자. 작은 감정에 휘둘려 미혹에 흔들리지 말고 큰 산 그림자가 되자. 몸이 경험한 만큼 쉽게 잊히지 않을 것이다. - 박수자, <지리산에는 못난 소나무가 산다>
원종문, <오래 두고 걷고 싶은 구도의 길 '오헨로'>. 시코쿠 순례길. 길은 누구에게도 기대나 의무 같은 조건이 없이 받아주고 돌려보내는 넓은 포용력을 보여준다. 길 위에서 누군가는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누군가는 새로운 삶을 발견하고 준비하는 무게를 지며, 누군가는 삶을 정리하고, 누군가는 만남을 통해 관계를 형성해나간다. 길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늘 우리 주변에 서 있는 찾기 쉬운 동무이다.
차를 타고 점 중심으로 본 제주도와 올레길을 걸으며 선 중심으로 경험한 제주도는 맛이 다르고 느낌과 시각이 다양할 수밖에 없다. ... 길은 도로와 다르다. 길은 걷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고 도로는 차와 산업과 경제를 위해서 만든 것이다. 길은 자연스럽게 생긴 것이고 도로는 사람이 만들고 개발한 것이다. 길 위에는 인생과 삶과 철학이 있고 도로 위에는 산업과 경제와 과학이 있다. 길은 소통이고 도로는 속도다. 방향 중심이 길이고 속도 중심이 도로다. 도로에는 일이 있지만 길에는 관계가 있다. 도로에는 차가 있고 길에는 사람이 있다. 도로는 사업을 위해서 바쁘고 길은 만남을 위해서 여유롭다. 도로는 도시 중심이고 길은 지역과 시골 중심이다. 도로는 집권적이고 중앙 집중적이지만 길은 분권적이고 지역 중심적 분산적이다. - 안동규, <길의 철학>
로버트 푸르스트, <가지 않은 길>. ....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노라고 / 그리고 나는 사람들이 덜 다닌 길을 택했노라고 / 그리고 그것이 내 운명을 정했노라고....
공간적인 길, 삶에서의 방법이나 수단을 의미하는 길, 살아갈 때의 방향이나 지침을 나타내는 길.... 자동차를 타기보다 걷기를 즐기는 사람들, 그 사람들은 아무래도 삶에 대해 조금 더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일 거라고 선뜻 믿어버리게 되는 것은 길이 지닌 이 은유적 속성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인생에도 오르막이 있고 내리막이 있다거나, 누구는 탄탄대로를 걷고 있다거나, 지름길을 택했다거나 하는 것들은 모두 삶의 한 단면을 길에 비유한 것입니다. - 한명희, <이런길, 저런길, 요런길>
길은 소통과 순환의 통로가 될 때 가장 빛나는 것이다. - 이성근, <동해 해파랑길에서>
선진국의 개발과 번영은 지구의 환경을 담보로 위험한 곡예를 하고 있다. 그러나 넘쳐나는 물질적 풍요와 인위적 쾌적성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행복을 누리지 못한다. 그나마 세계화의 소통 속에 지구의 안위와 인류의 미래를 걱정하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은 다행이다. 우리네 삶은 '지구별 여행자'라는 나그네 길, 잠시 머물다 가는 지상의 삶이 아름다운 건 공존의 삶을 살 때 가능할 것이다. 모든 생명체는 하나의 원이며, 뿌리며, 울이라는 인식이 기본 바탕이다. 인간 중심의 삶을 선택하면서 우리는 행복해지는 게 아니라 불행의 늪으로 추락하고 있다. - 신용자, <길의 3박자>
경제성장은 국민들의 삶을 윤택하고 편리하게 해주었지만, 국민들의 정서적 측면을 빈곤하게 만들었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 사회에서 '성공'이란 단어는 '부의 창출'이라는 도식이 형성되었다. 이 도식에 따라 국민들은 경제적 논리에 포섭되었고, 이는 성과에 대한 집착과 압박, 지나친 빠름의 추구, 이기주의, 무임승차 등의 문제들이 순환되는 부작용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우리 사회에서는 이러한 부작용의 순환을 끊어낼 수 있는 다양한 창조적 시도들이 전개되고 있다. 국가 중심의 논리에서 지역 논리로, 빠름보다는 장기적 안목과 계획을 안배한 느림으로, 이기주의보다는 상생을 위한 네트워크 사회로, 무임승차보다는 참여를 통한 소통으로의 시도가 그것이다. 이런 시도들이 우리 사회에 좋은 변화를 이끌어내고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한계 또한 내포하고 있다. - 원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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