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플레이와 네트워크에 연결되지 않으면 불편하고 불안해하는 세상이다.

좀 더 인간적이고 충만한 삶을 위해 연결을 잠깐 멈추어 생각하고 충전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No Screen, No Network Time!

 

 

[본문발췌]

 

 

stop! breathe! think!

 

 

인간은 외부와 연결되고자 하는 욕망 혹은 군중의 요구에 부응하고자 하는 욕망과 함께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을 추구하는 정반대의 욕망을 '동시'에 갖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 두 가지 욕망의 균형점을 찾는 것이다.

 

 

스크린은 개인과 기업을 비롯한 다양한 조직에 필요한 업무를 손쉽게 해결해주었다. 편리함과 즐거움을 제공할 뿐 아니라 세상을 한 걸음 더 가깝게 만들어주기도 했다. 하지만 스크린을 통한 네트워크가 촘촘해질수록 우리의 일상은 정신없이 바빠졌다. 그로 인해 우리는 매우 중요한 것을 잃고 말았다. 바로 시간을 두고 천천히 느끼고 생각하는 방법이다. 우리는 이를 두고 '깊이'라는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다. 사고와 감정의 깊이, 인간관계의 깊이,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의 깊이가 사라지고 있다. 충만하고 의미 있는 삶의 핵심인 깊이가 사라져간다는 것은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스크린을 통해서도 가치 있는 경험은 할 수 있다. 그러나 여유는 반드시 필요하다. 아마 빛을 받지 못하고 이미 지나가버린 기회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일이 잘 풀리지 않고 이건 내가 바라던 삶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지나가버린 그 기회가 그리워질 것이다. 얻지 못했던 깨달음, 통찰력, 기쁨, 마음이 결코 떠나지 못했던 여행이 그리워질 것이다.

 

 

디지털 기술을 대하는 지금의 사고방식, 즉 네트워크는 절대 끊어지지 말아야 한다는 근거 없는 믿음은 시간의 공백이 가진 중요성을 완전히 간과하고 있다.... 시간의 공백은 디지털 도구를 실용적인 도구에서 창조성, 깊이, 초월성의 도구로 만드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 시간의 공백은 사람들을 줄 서게 만든 마법의 핵심이다. 시간의 공백 덕분에 나는 지극히 평범한 경험을 통해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디지털 도구를 사용하는 모든 일이 마찬가지다. 시간의 공백이 없다면 가치 있는 경험도 없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는 공백을 만들기는커녕 점점 더 없애고 있다.

 

 

20세기의 철학자 폴 틸리히는 '외로움loneliness'은 '홀로 있는 괴로움'을 표현하기 위한 단어인 반면 '고독solitude'은 '홀로 있는 영광'을 표현하기 위한 단어라고 말했다. 나는 대학 시절 두 가지 상태를 모두 경험했지만 기억에 남는 대부분의 기억은 고독에 관한 것이다. 나는 나이가 들수록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어느 정도 독립성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지만 동시에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도 실감하게 되었다. 사회는 군중이 없는 개인은 무가치하며 모든 것이 군중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세뇌시킨다. 그리고 개인과 군중 사이의 장애물을 끊임없이 제거하고 있다. 개인의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내세우는 나라의 시민들은 그러한 은밀한 메시지를 대수롭지 않게 여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유에 따르는 책임은 무거운 법이며 책임이 무거울수록 순응에 대한 매력도 커진다. 이를 알아챈 광고업자들은 군중 속의 개인들이 가진 개인주의적 감정을 일깨워 제품을 파는 방법을 익혀 왔다. 그들은 콜라부터 자동차까지 모든 제품이 자기표현과 자유를 위한 수단이라고 홍보한다. 물론 현실은 그 반대다. 반항하라! 모두가 신고 있는 이 신발을 신고!

 

 

군중이 일제히 하나의 관점만 받아들이면 비판적 사고의 기능은 사실상 멈추고 만다. 특히 디지털 맥시멀리스트들의 생각은 바뀌기가 어렵다. 그들은 군중과 함께하는 것이 전부이며 스스로 그러한 목표를 강화하기 때문이다. 

 

 

디지털 중독의 문제는 3가지 측면에서 발생했다. 첫째, 개인의 내적인 삶이다. 전문가들은 내가 경험했던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정신적, 정서적 장애가 확산되고 있다고 판단했다. 둘째, 가족을 비롯한 개인적인 인간관계이다. 스크린을 사용하는 시간이 얼굴을 맛대는 시간을 대신하고 있다. 셋째, 기업을 비롯한 조직적인 측면이다. 어느 하나에 집중하지 못하는 직원들로 인해 생산성이 감소하기 시작했다.

 

 

노모포비아nomophobia, 휴대전화가 없는 상태를 두려워하는 증상

 

 

가난한 자는 적게 가진 사람이 아니라 더 많이 원하는 사람이다. - 세네카

 

 

몰입flow은 한 가지 활동에 몹시 빠져들어 주변 세상이 멀리 사라지는 것처럼 느끼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칙센트 미하이가 말하는 '일상생활에 대한 불안이나 걱정 없이 특정 활동에 수월하게 깊이 몰입한 상태'를 가능하게만 한다면 그 활동은 퍼즐을 맞추는 것처럼 단순한 활동일 수도 있고 비행기를 조종하는 것처럼 복잡한 활동일 수도 있다. 이 상태에서는 집중을 방해하는 것이나 시간에 대한 감각이 사라지고 그 순간에 완전히 몰입하게 된다. 칙센트 미하이에 따르면 인간은 '내적 경험을 통제'하고 '의식의 질서'를 발견하는 법을 배움으로써 이 행복한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 몰입 상태를 가능하게 하는 활동에는 일종의 한계가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하자면 완수할 가능성이 있는 목표 지향적인 활동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맞지도 않는 퍼즐을 맞추거나 링도 없이 칠판을 향해 농구공을 던지는 활동으로는 결코 몰입 상태에 도달할 수 없다.

 

 

분주하고 복잡한 세상에서 조금 덜하는 것이 더 얻는 길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또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고 보람 있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이 더 좋을 뿐만 아니라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인간과 기술의 상호작용에 대한 한 연구에 따르면 인간은 물리적 실체가 있는 대상과의 상호작용을 더 선호한다. 물리적 실체가 있는 3차원적 도구는 몇 가지 중요한 점에서 인간의 마음에 더 쉽게 작용한다. 3차원적 도구는 직관을 일깨운다. ... 속도가 곧 미덕인 오늘날 종이 수첩의 또 다른 장점은 바로 디지털 세상과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단순한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보의 속도를 늦추고 마음을 여유롭게 한다. 스크린 안의 활동은 늘 변화하며 덧없이 사라진다는 점에서 매우 가볍다. 하지만 가끔은 무겁게 가라앉을 필요도 있다.

 

 

인간의 맥시멀리즘적 성향을 일깨우는 새로운 기술의 등장은 역사 속에서 되풀이되어 왔다. 그와 동시에 인간은 조용히 그리고 끈질기게 균형을 찾기 위해 노력해왔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신을 똑바로 차릴 수 있도록 도와주고 새로운 기술이 선사하는 미래로 건너갈 수 있게 해주는 다리가 아닐까. 스티븐 그린블랫에 따르면 <햄릿>의 가장 위대한 성과 중 하나는 바로 '자기 성찰의 충실한 묘사'다. 셰익스피어는 개인이 어떤 문제와 씨름하고 있을 때 그의 마음속에서 역동하는 진짜 생각을 붙잡을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발견했다. 햄릿의 자기 성찰이 바로 <햄릿>의 핵심이며 그는 테이블을 통해 자신의 마음속으로 들어가고자 했다.

 

 

기술에 대한 배움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 새로운 도구의 등장은 늘 3가지 범주의 문제를 야기 한다. 첫째, 기능적 측면이다. 이 도구가 우리에게 무엇을 해줄 것인가? 가장 잘 사용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둘째, 행동적 측면이다. 이 도구를 사용하기 위해 바꿔야 할 오래된 습관이나 습득해야 할 새로운 습관이 있는가? 마지막 세 번째 측면은 새로운 도구를 사용하기 시작하는 초기 단계에서 종종 경시되는 문제기도 하다. 바로 내적 혹은 '인간적' 측면이다. 이 도구가 나와 내 경험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 이 도구가 내 사고방식을 바꿀 것인가? 이 도구가 하루의 리듬을 바꿀 것인가? 이 도구를 사용하면 삶이 더 빨라질 (혹은 느려질) 것인가? 이 도구가 내가 하는 일에 영향을 끼칠 것인가? 가정생활에는? 만약 그렇다면 좋은 영향일까 나쁜 영향일까? 이 세 번째 측면의 문제가 결국 가장 중요한 문제이며 이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나서야 우리는 그때까지의 기술 사용법에 문제를 제기하고 새로운 접근법을 찾기 시작한다. 거대 기업들은 디지털 홍수가 기업의 이윤을 감소시킨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야 이에 대해 걱정하기 시작했다. 기업의 생산성에 문제를 일으키는 측면도 바로 이 인간적인 측면이다. 직원들의 '마음 상태'가 나쁘기 때문에 생산성이 감소한 것이다. 이 세 번째 측면을 무시하는 것은 바로 문제를 자초하는 것이기도 하다.

 

 

변화를 추진하는 제도의 힘은 '제도를 따르는 사람'에게 그 제도가 어떤 의미인가에 달려 있다. 제도를 통해 뿌리 깊은 행동 양식을 바꾸기 위해서는 개개인의 마음속에 반드시 변해야 한다는 신념이 있어야 한다. 이것은 바꿀 수 있는 '방법'의 문제가 아니라 바꿔야만 하는 '이유'에 관한 문제다. 내적 변화는 내적 확신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벤저민 프랭클린이 자신을 들여다보며 나쁜 습관을 없애고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줄 좋은 성품이 무엇일지 생각해보고 3가지 덕목과 이를 갖추기 위해 필요한 행동 지침을 적었다. 프랭클린은 이 규범을 '도덕적 완전함에 이르기 위한 담대하고 험난한 계획'이라고 불렀다.

  • 절제 - 배부르도록 먹지 마라. 취하도록 마시지 마라.
  • 침묵 - 자신이나 타인에게 유익한 말만 하라. 쓸데없는 대화를 피하라.
  • 규율 - 모든 물건은 제자리에 두어라. 모든 일은 제때에 하라.
  • 결단 - 해야 할 일은 실천할 것을 결심하고 결심한 일은 반드시 실행하라.
  • 검약 - 자신이나 남에게 이로운 일에만 돈을 써라. 쓸데없이 낭비하지 마라.
  • 근면 - 시간을 낭비하지 마라. 언제나 유익한 일을 하라. 불필요한 행동을 삼가라.
  • 성실 - 타인을 속여 상처를 주지 마라. 결백하고 공정하게 생각하라. 말할 때도 그렇게 하라.
  • 정의 - 타인을 모욕하거나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음으로써 타인의 이익을 해치지 마라.
  • 중용 - 극단을 피하고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경우에도 화를 자제하라.
  • 청결 - 신체, 의복, 주택을 불결하게 하지 마라.
  • 평온 - 사소한 일이나 피할 수 없는 사고에 흥분하지 마라.
  • 순결 - 성관계는 건강과 자손을 위해서만 하라. 그로 인해 심신이 둔해지거나 약해지지 않도록 하고 자신이나 타인의 평화 혹은 명성에 해가 되지 않도록 하라.
  • 겸양 - 예수와 소크라테스를 본받아라.

 

 

나는 숲으로 갔다. 천천히 살며 오직 삶의 본질만 마주하고 삶이 내게 가르쳐준 것 중에서 배우지 못한 것은 없는지 살펴보기 위해서, 마침내 죽게 되었을 때에야 제대로 살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지 않기 위해서 나는 숲으로 갔다. ... 나는 삶의 정수를 빨아들이며 깊이 있는 삶을 살고 싶었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

 

 

내 오두막에는 3개의 의자가 있다. 하나는 고독을 위해, 다른 하나는 우정을 위해, 또 다른 하나는 세상을 위해서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

 

 

당신은 내가 인류에게서 멀어짐으로써 내 자신을 빈곤하게 만든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고독 속에서 나만을 위한 실을 지어 번데기를 만들고, 그 번데기에서 빠져나와 더 나은 사회에 알맞은 더 완벽한 창조물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

 

 

중요한 것은 메시지와 내용 자체이지 이를 전달하는 도구가 아니다. - 마샬 맥루한

 

 

데이비드 리스먼은 그의 책 <고독한 군중>에서 자신의 가치와 신념을 따르는 '내부 지향형inner-directed' 인간이 줄어들고 사회의 가치와 신념을 따르는 '타인 지향형other-directed' 인간이 늘어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책에서 리스먼은 객관적 존재가 자기 성찰을 대신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인간이 사용하는 도구는 인간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치지만 통제하는 측은 바로 '우리'여야 한다. 맥루한은 매스미디어 사회에 살면서 느낄 수 있는 몇 가지 근본적인 문제를 밝혔다. 누구나 가끔 뇌가 몸을 떠나 외부 세계까지 확장되어 있는 것처럼 느낄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런 느낌이 들 때 다시 내면을 들여다보거나 혼자만의 사고를 하는 것은 몹시 어렵다. 깊이는 인간의 의식이 바깥에서 안으로 가져온 많은 정보를 정리하고 그 의미를 파악하는 데서 얻어지는 것이다. 외적인 것을 자기만의 것으로 만들 때 깊이가 가능하다. 내적으로 행복한 삶을 이루는 유일한 방법은 내면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며 끊임없이 바깥세상에 한눈을 팔고 있다면 결코 불가능하다. 주의력 결핍이나 인터넷 중독을 비롯해 기술과 관련된 다른 모든 병폐는 전부 바깥을 향해 고정된 시선을 거두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문제는 균형의 상실, 다른 것을 포기하는 것, 스크린을 향한 충동이 야기하는 마음 상태다. 우리는 가족과 함께 가족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스크린과 함께, 스크린을 위해, 스크린 안에서 살고 있다. 개인과 마찬가지로 군중 안에 존재하는 작은 단위인 가족에게도 가족만의 내적 삶이 있다. 이 내적 삶을 충만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스크린에서 떨어져 있을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개인과 가족은 군중에게 의지하게 되고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일보다 '저 밖에서' 일어나는 일에 따라 스스로를 정의하게 된다. 소로는 강박적으로 우체국을 찾는 남자는 자신으로부터 오랫동안 소식을 듣지 못했을 거라고 말했다. 가족 구성원이 무엇을 위해서든 스크린을 더 많이 찾을수록 진심을 나눌 시간은 줄어들고 가족의 내적 삶은 성장하지 못한다.

 

 

디지털 문화는 한 시간도 네트워크에서 달아나지 말라고 우리를 붙잡으며, 달아나면 뒤쳐진다는 생각을 끊임없이 조장한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605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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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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